연극배우 윤석화씨와의 추억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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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전
1992년 2월, 살림출판사에 입사했다.
그 무렵 살림은 이문열의 <사색>,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 등 베스트셀러를 연속으로 펴낸, 속된 말로 잘 나가는 출판사였다.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 등 베스트셀러를 연속으로 펴낸, 속된 말로 잘 나가는 출판사였다.
1993년 가을, 주인석을 주간으로, 임재철 서영채 강헌 김종엽을 편집위원으로,
이문열 황지우 이창동 박광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계간문예지 <상상> 창간호가 나왔다.
이문열 황지우 이창동 박광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계간문예지 <상상> 창간호가 나왔다.
'문학의 새로움, 문화의 새로움'을 주창하면서 표지에 영화배우 사진을 싣고
대중음악 리뷰를 수록하는 등 문예지로는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인 <상상>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대중음악 리뷰를 수록하는 등 문예지로는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인 <상상>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창간호가 매진되어 재판을 찍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상상>은,
편집진과 발행인의 의견 대립으로 기존 편집진은 2호만에 사퇴하고
1994년 봄호부터 장경렬 정재서 진형준 류철균이 새로운 편집위원이 되었고
그해 겨울호부터는 김탁환이 편집위원으로 합류했다.
편집진과 발행인의 의견 대립으로 기존 편집진은 2호만에 사퇴하고
1994년 봄호부터 장경렬 정재서 진형준 류철균이 새로운 편집위원이 되었고
그해 겨울호부터는 김탁환이 편집위원으로 합류했다.
당시 살림출판사 기획실장이었던 나는
<상상> 창간호부터 편집장을 겸하며 배후(?)에서 실무작업을 도왔는데,
편집위원 물갈이가 이루어진 3호부터는 전면에 나섰다.
<상상> 창간호부터 편집장을 겸하며 배후(?)에서 실무작업을 도왔는데,
편집위원 물갈이가 이루어진 3호부터는 전면에 나섰다.
<상상>의 대표 연재 꼭지였던 '상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당시 화제의 문화인물을 인터뷰했는데 한동안 그 꼭지의 인터뷰어를 맡았다.
당시 화제의 문화인물을 인터뷰했는데 한동안 그 꼭지의 인터뷰어를 맡았다.
'상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어를 하면서
강우석 감독, 여균동 감독, 주철환 피디, 손석희 기자 등을 만났다.
강우석 감독, 여균동 감독, 주철환 피디, 손석희 기자 등을 만났다.
1995년 겨울호 '상상에서 만난 사람들'에서는 당시 초연을 앞두고 있던
뮤지컬 <명성황후>의 탄생 주역인 소설가 이문열, 연출가 윤호진, 연극배우 윤석화를 만났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탄생 주역인 소설가 이문열, 연출가 윤호진, 연극배우 윤석화를 만났다.
<명성황후>는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윤호진이 연출하고 윤석화가 주연을 맡은 국내 최초의 대형 뮤지컬이었다.
윤호진이 연출하고 윤석화가 주연을 맡은 국내 최초의 대형 뮤지컬이었다.
연습장 한쪽 구석에서 이루어진 인터뷰 내내 세 사람은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간다는 기대와 떨림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간다는 기대와 떨림을 숨기지 않았다.
그때 윤석화씨가 "명성황후는 한국의 잔다르크입니다."라고 했던 게 기억 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족1: 인터뷰하는 동안 연습장에서는 한 여성이
시종일관 큰 소리로 외치며 연습을 이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박칼린 음악감독이었다.
시종일관 큰 소리로 외치며 연습을 이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박칼린 음악감독이었다.
*사족2: <상상> 창간 멤버 가운데 주인석씨는 삼성출판사와 손잡고 <이매진>을 창간했고,
서영채씨는 남진우씨와 손잡고 <문학동네>를 창간했고, 김종엽씨는 <창작과비평>에 합류했다.
서영채씨는 남진우씨와 손잡고 <문학동네>를 창간했고, 김종엽씨는 <창작과비평>에 합류했다.
수년 전 어떤 평론가는 모 문예지의 기고문에서 "그때 <상상> 창간 멤버가 깨지지 않았으면
지금의 <문학동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논평을 남겼다.
지금의 <문학동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논평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