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X의 문화유산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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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X의 문화유산답사기

sarnia 5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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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과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세계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한국의 4 대 명물이 있다. 


넷째가 영주(풍기) 부석사

셋째가 안동 병산서원

둘째가 서울 창덕궁 후원


그리고 첫번째, 


죽기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한국의 명소로 종묘를 꼽는다. 


이 말을 처음 전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씨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이기도 하다. 


건축과 문화유산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명소를 보는 느낌은 다 비슷한 것일까? 

이미 이 네 곳을 모두 다녀온 나는 경이롭게도 네 명소 모두의 깊은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 중에서도 종묘는 하루가 멀다하고 방문했다. 

숙소가 종로나 광화문일때는 거의 매일가서 산책했다.  


언젠가부터 종묘 자유관람이 제한되고 가이드투어만 가능해지자 가이드투어에 참가해서라도 종묘산책은 빠지지 않았다.  


특히 비오는 날 

박석 위에 서서 바라보는 정전과 영녕전의 풍경은 표현하기 어려운 압권의 매력이었다. 


전각사이를 잇는 길들은 신로와 보행로로 구분되어 있는 게 종묘의 특징이다. 

고인들(조선 역대왕들과 왕비들)의 신주와 위패가 있는 사당이므로 신로를 따로 만들어 놓았다. 

가운데 있는 신로는 왕들도 걸을 수 없었다.

종묘에서 산책하는 동안 외국인 여행자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신로 위를 걷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석으로 구성된 신로와 보행로가 전각 사이에 이어져 있는 종묘에는 차량이 출입할 수 없다. 

박석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소방차와 앰뷸런스 등 긴급자동차를 제외한 경내 차량통행이 금지된 이유다.


따라서 그 어느 누구도 차량으로 종묘에 들어오지 못한다. 

문화재청장도 문체부장관도 대통령도 밖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 

일제강점기 총독을 비롯한 식민지 관료들도 종묘에는 차를 타고 들어오지 않았다.

하긴 그들이 종묘에 들어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왕들도 종묘에 들어올때는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왔다.   


1 년에 한국에 두 번 씩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종묘산책이었다. 

조선왕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역량을 총동원해 궁궐보다 더 섬세하게 지은 걸작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종묘는 나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는 특별한 장소였는데, 


작년 가을, 

이 세계문화유산이 능멸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의 1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처구니가 없다. 

아마도 올해 9 월 한국방문때는, 

아니 아마도 당분간은 종묘에 가게 될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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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필리핀 18시간전  
유홍준씨는 구라가 너무 심해서 신뢰하지 않아요.
sarnia 16시간전  
[@필리핀] 유홍준씨가 어떤 사람(인격)인지는 모르겠고, 다만 프랭크 게일 등 건축가들이 K-사당 종묘에 열광하는 건  사실이죠.

그건 그렇고, 

언젠가 별도 주제의 글로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종묘에서 발견한 가장 치명적 문제는 소혜왕후 한씨와 정순왕후 송씨의 신주를 나란히 옆에 두었다는 것 입니다.
소혜왕후 한씨는 후에 인수대비가 되는 수양대군(세조)의 책사겸 며느리이고 정순왕후 송씨는 노산군(단종)의 정비입니다.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는 두 여인의 신주를 이웃으로 합사해 놓았으니 그 나쁜 기운이 융성하여 폐비가 된 명신왕후 김씨와 같은 엉뚱깽뚱한 날도둑년이 나타나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게 제 해석입니다.
필리핀 7시간전  
[@sarnia] 역사를 통찰하면
이 나라를 망친 건 대부분 남자들이에요.
몇 안 되는 여자들 너무 욕하지 마세요^^
두루아빠 15시간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유사한 문화적 영향 아래 있던 베트남 응웬왕조의 후에 왕궁을 생각하면 이런 사회적 예술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조선의 국가조직 수준, 경제력과 사상적 깊이, 장인들의 기술력을 짐작하게 하지요.
sarnia 12시간전  
[@두루아빠] 도산서원에 갔을때는 그냥 서원이구나 했는데 병산서원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누각안에서 바라보이는 낙동강의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서양은 건물구경, 조선의 건축물들은 전각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이라는 말, 여기와서 알아들었어요. 
부석사 무량수전도 강추 중의 강추입니다.
등산도 안 했는데 소백산맥 줄기들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모습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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