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불고기와 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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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불고기와 규동

이런이름 11 260


가끔은 어려서 먹던 서울식 불고기가 먹고 싶어집니다. 근데 제 주변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황동 불판 가생이로 육수를 채우고 양념한 소고기를 구워 먹는 서울식 불고기를 파는 식당이 없어요. 그래서 생각만 하며 입맛만 다시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고기를 얼추 다 먹고 나면 육수에 밥을 비벼 김치 한 조각 얹어 먹던 맛과 추억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뚝배기 불고기라는 음식이 서울식 불고기를 흉내 낸 거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불판 위에서 구운 고기와 육수 속에 넣고 끓인 고기가 같은 맛을 낼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으니 비교를 한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유튜브를 뒤져 찾아낸 "이거다!" 싶은 조리법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고기의 식감은 당연히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육수 맛은 제법 비슷하더군요. 물론 불맛이 배어있지 않아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만들어 먹을 의향도 있고요. 

그런데 뚝배기 불고기를 먹으며 생각난 건 옛 추억이 아니라 일본 음식 규동(牛丼)이였습니다. 그래서 딱히 할 거 없는 주말인지라 심심풀이로 뚝배기 불고기와 규동을 대충 비교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뚝배기 불고기와 규동은 기본적으로 같은 음식인 거 같습니다. 

(일본의 야키니쿠가 불고기의 원조라는 턱도 없는 주장을 하는 역사도 모르고 음식도 모르고 생각까지 짧은 황교익같은 녀석이라면 규동이 뚝배기 불고기의 원조라고 주장하겠지만) 고기와 양파만 보이는 요시노야의 규동과는 다르게 뚝배기 불고기에는 버섯 등을 비롯하여 들어가는 재료가 더 많아서 그런지 뚝배기 불고기가 규동의 상위 호환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요시노야의 규동과 비교한 이유는 역시 요시노야가 규동 프랜차이즈의 시초이고 규동의 표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입니다.) 

제게 규동은 배고픔과 외로움의 시절을 함께 한 음식입니다. LA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때에 요시노야의 콤보 메뉴는 적은 돈으로 포식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음식이였거든요. (소고기 규동, 닭고기 테리야키, 데친 야채, 음료수, 디저트를 포함해서 $8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양도 많아서 2번에 나눠 먹은 적도 많았습니다. 

인터넷에 요시노야 규동의 카피캣(copy cat)이라고 주장하는 조리법들이 꽤 많이 돌아 다니는데 재료 중에 적포도주가 없다면 오리지널 레시피는 아닙니다. 

(요시노야 규동 초기 광고 중에는 적포도주가 듬뿍 들어간다고 홍보한 예도 있고 지금도 포장 식품으로 판매하는 규동 성분표에는 레드 와인이 들어간 걸로 표기되어 있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술을 안마심에도 불구하고 규동을 만들 때 넣으려고 5달러짜리 싸구려 적포주까지 사두고 있습니다.) 

조리법들을 찾아 보며 느낀 점은...

① 뚝배기 불고기에는 양조간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규동은 오히려 국간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뚝배기 불고기에도 국간장을 사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음... '국간장 70% + 양조간장 30%' 정도까지는 양보할 수 있지만 양조간장만 100% 사용하는 건 국물 음식에 대한 모욕이고 국간장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합니다. ^ ^)

② 일반적으로 한국 음식에는 마늘이 많이 사용되고 일본 음식에는 생강이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뚝배기 불고기와 규동에서도 이런 양념의 차이가 여실히 나타납니다. 

뚝배기 불고기는 마늘을 위주로 양념하고 규동은 생강으로만 양념을 하더군요.  

(공통적인 양념은 간장, 설탕, 다시다인데 사실 이게 육수 맛의 핵심이긴 하지요.)  

③ 사용하는 고기 부위는 음식 자체를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뚝배기 불고기에는 흔히 불고기감으로 알려진 목심이나 등심을 많이 사용되던데 육수에 넣고 끓이니 굽거나 볶는 것보다는 약간 더 질겨지는 거 같습니다. 

저는 샤브샤브용 등심으로 만들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뚝배기 불고기를 만들기에 좋은 고기 부위를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러 부위로 몇 번 만들다 보면 제일 잘 어울리는 부위를 찾게 되겠지요. 

(혹시 뚝배기 불고기에 사용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부위를 알려 주시면 정말 매우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 사실 이 질문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규동에도 역시 일반 불고기용 부위는 얇게 썰더라도 뻣뻣해서 잘 어울리지 않아요. 요시노야에서는 우겹살같아 보이지만 업진살을 사용한다더군요. 
(홈페이지에서도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맛을 위해 비싼 고기 부위인 업진살을 사용한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어요.) 

근데 업진살은 마트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있더라도 살코기만 많아 좀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차돌박이로 대체해 봤는데 그럭저럭 비슷했어요. 

④ 만드는 과정을 보면 규동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고 빠릅니다. 양파만 썰어 놓으면 조리 준비가 끝나니까요. 

반면에 뚝배기 불고기는 고기를 재워두는 시간이 필요해서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제가 사용한 조리법에서는 2일 정도 냉장해두라고 했거든요. 저는 다른 재료들을 손질하는 동안만 재워 놓았다가 만들었는데 그래도 먹을만 했습니다.) 

⑤ 먹는 방법의 차이는 뚝배기 불고기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해서 찌개처럼 떠먹고 규동은 덮밥처럼 밥 위에 얹어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는 거겠지요. 

(듣기로는 고대 일본에서는 상류층에서나 숟가락을 사용하던 식습관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이제는 오히려 숟가락으로 비벼 먹는 걸 천박하게 보는 수준에 이르렀다더군요.) 

⑥ 이건 비교는 아니고... 규동에도 변화가 생겨 '토쿄 치카라 메시'처럼 규동보다는 불고기덮밥에 더 가까운 야키규동도 나왔고 치즈를 토핑으로 얹는 치즈규동도 메뉴에 올라와 있는데 역시 파를 가늘게 썰어 물에 담가 냄새를 뺀 후에 규동 위에 얹고 달걀 노른자를 올린 네기타마규동(ねぎ玉牛丼)이 간단하면서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 

결론 : 
뚝배기 불고기가 규동에 비해 강렬한 맛은 있습니다. 규동은 '간장이라도 더 뿌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 밍밍하죠.  

(저는 규동에 테리야키 소스를 뿌려 먹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게 음식의 우열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뚝배기 불고기가 더 땡길 수도 있고 규동이 더 땡길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상 뚝배기 불고기를 처음 먹어 본 사람의 소감이였습니다. 





11 Comments
필리핀 07.10 06:00  
요시노야...10여년 전 도쿄에서 두어 번 먹어봤는데
제 입에는 우리나라 김밥천국 수준이었어요ㅠㅠ
이런이름 07.10 23:08  
[@필리핀] 제가 김밥천국을 못가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저렴하고 흔한 분식집 수준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신 거라면 그 평가가 맞을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요시노야는 국물없는 국밥집입니다.

맛은... 만일 규동만 먹어야 한다면 저는 먹고 싶지 않아요. 밍밍하고 느끼하고 결정적으로 맛이 없어서요. 예전에도 배부르고 싸니까 사먹은 거지 맛있어서 사먹은 건 아니였어요.
1천억맨 07.10 09:58  
아!
진짜 황동불판 어느날부터인가 없어지기시작했는데
느끼지를 못하고 살았군요.
똑같은건데 중국산싸구려스텐레스 또는 알루미늄주물로 된불판을 라오스 방비엥.루앙프라방가면 같은구조 같은사용법으로 무한리필고기집에서 사용해요.단 밥은 안비벼먹고 쌀국수 넣어먹죠.
이런이름 07.10 23:10  
[@1천억맨] 쌀국수를 비벼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뭔가 잡채맛 비슷한 느낌을 줄 거 같은데요. 제 어머니는 잡채를 만들 때 양념한 고기를 볶고 그 국물을 같이 넣어 만드셨는데 맛있는 잡채로 동네에서 알아줬었지요.

뚝배기 불고기에도 대부분 당면을 넣더라고요.
(근데 당면은 왜 넣는 건지 모르겠어요. 설렁탕에 국수나 당면을 넣는 걸 따라 한 건지...)
호돈 07.11 23:19  
제 혀가 느끼는 불고기와 일본 규동, 필리핀 비프 타파 등 아시아의 다른 간장에 재운 소고기음식과의 차이는 참기름 같아요. 

서울식이든 어디 식이든 불고기라 칭해지는 음식에는 늘 참기름이 들어간 것 같은데,
다른 나라의 간장+소고기 요리는 참기름 향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이런이름 07.13 09:47  
[@호돈] 오! 그러네요.

참기름이 음식맛 자체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생각을 안해봐서 간과한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일본 요리에서 날로 먹는 생선 요리에 참기름을 쓰는 건 봤어도 소고기에 사용하는 건 못 본 거 같습니다.

요술왕자님도 태국식 무말랭이볶음 질문에서 태국에서는 참기름이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나라들은 한국만큼 참기름을 즐겨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호돈 07.13 22:52  
[@이런이름] 아....날로 먹는 생선 요리에 참기름을 쓰기도 하는군요..
먹어 봐야할 것이 또 생겼네요~~ ㅎㅎ

밥에 김으로 말았는데,
밥에 식초와 설탕 간을 했으면 스시라고하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했으면 김밥이라고 하는
우리는 참기름을 참 즐겨 사용해요~
이런이름 07.16 08:11  
[@호돈] 다진 참치살로 만드는 스파이시 튜나에도 참기름이 들어 가고 회덮밥의 일종인 포케(poke)에 얹는 일부 생선에도 참기름을 넣잖아요.
호돈 07.16 11:34  
[@이런이름] 사실 빨간 살 생선(참치, 연어, 송어 등)을 왠만하면 안 먹어서....
예 남겨 주신 말씀 듣고 찾아 보고 스파이시 튜나 라는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함 찾아 먹어 보려고요.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엔 07.15 13:46  
저는 된장국(味噌汁)을 따로 사야하는 요시나야보다, 규동에 딸려 나오는 마츠야를 더 좋아했습니다.  홍생강(紅生姜)이랑 시치미 올려 먹으면 싸게 한끼 먹을 수 있었지요.
이런이름 07.16 08:11  
[@구엔] 꼭 먹어야 한다면 저도 마츠야를 선택할 거 같아요.

요시노야나 스키야에서 사용하는 후쿠시마산 농산물이 마음에 걸려서요.

굳이 방사능 오염이 의심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사먹을 이유가 없잖아요.

게다가 마츠야에서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장국도 충분히 매력적이고요. 그러고 보면... 한국의 반찬 인심은 정말 넉넉한 거 같습니다. 반찬에 관해서는 한국같은 나라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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