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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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와 나...

필리핀 9 406

내가 김민기 선생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1980년이었다. 


그때 나는 대구 대건고 2학년으로 문예반이었다. 그해 가을, 문예반 3학년 선배가 원광대 주최 고교현상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당시 원광대에는 1년 전 우리 학교를 졸업한 문예반 선배가 국문과에 재학 중이었다. 당선자를 비롯한 문예반원 몇은 시상식에 참석하고 선배도 만날 겸 원광대에 가기로 했다. 


그 무렵 내가 살던 대구에서 원광대가 있는 이리(현 익산)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대구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전역으로 간 다음, 호남선이 운행하는 서대전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다시 열차로 갈아타고 이리까지 가야 했다. 차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고생 끝에 우리는 무사히 원광대에 도착했고, 시상식까지 여유가 있어서 원광대생 선배의 안내로 교내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그러다 선배는 우리를 방송실로 이끌더니 음반 한 장을 꺼내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게 바로 김민기 선생의 노래였다. 


그날 나는 「친구」 「저 부는 바람」 「아침이슬」 등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듣던 노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노래였다. 


대구로 돌아온 나는 김민기의 음반을 수소문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당시 김민기의 음반은 판매 금지되어 복사본만 지하로 떠돌던 때여서 세상 물정 모르는 까까머리 고딩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솔직히 음반을 구해도 집에 전축이 없어서 들어볼 수도 없었다^^;;)


고3이 되어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나는, 낮에는 이창동 감독의 맏형 이필동(예명 아성) 선생이 운영하던 극단을 기웃거리고 저녁에는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 중앙파출소 앞 심지다방에서 DJ를 봤다. 당시 문학청년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던 심지다방에는 수백 장의 음반이 있었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견습 DJ로 일하던 나는 신청곡이 뜸할 때면 3면의 벽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음반을 뒤적이다 맘에 드는 걸 무작정 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맨 아래 칸 구석탱이에 꽂혀 있는, 귀찮아서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음반들을 뒤적이다 한 장의 음반을 발견하고 인생 최초로 온몸에 전율이 돋는 걸 경험했다. 1년 전, 원광대 방송실에서 몰래 들었던 김민기의 음반이었다. 나는 그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얹은 다음 서서히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김민기의 노래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을까. 누군가 DJ박스의 문을 왈칵 열고 들어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양쪽 귀를 감싸고 있던 헤드폰이 강제로 벗겨졌을 때야 나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눈을 뜨자 다음 타임의 DJ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시 심지다방에는 나 말고 4명의 DJ가 있었는데, 2명은 조무래기 연극배우였고 2명은 경북대 치과대 재학생이었다. 그날 내 귀에서 헤드폰을 벗긴 DJ는 치과대 재학생이었고, 내가 튼 김민기의 음반은 그가 몰래 구해서 숨겨놓고 애지중지하던 것이었다. 그의 애장품에 함부로 손을 댄 것도 문제였지만, 김민기의 음반을 공공장소에서 틀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당시에는 월북시인의 시집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끌려가서 고문을 받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날로 나의 견습 DJ생활은 끝이 났고, 한때 음악계로의 진출을 꿈꾸던 나의 예술적 방랑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나의 18번이 되었다. 1980년~1990년대에는 각종 모임의 뒷풀이 때마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한곡씩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침이슬」을 불렀다. 


지난 3주 동안 방영된 김민기 선생의 다큐를 보면서 그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맑은 영혼을 보유했던 시절이...


#사족1: 당시 원광대 고교현상문예 당선자는 그 혜택으로 문예장학생이 되어 이듬해 원광대에 입학한 이정하 시인이다.

#사족2: 당시 원광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예반 선배는 한해 전에 역시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한 안도현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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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물우에비친달 05.06 08:59  
고딩시절 정지용 시인의 시 '고향' 혹은 '향수'였던가..?? 배우면서 문학 쌤이 말씀 하시길.....라떼는 말이야 누가 만든 시인 지도 모르고 이 시를 읽었다.....작가는 정X용 이라고 표기 되어 있었고....이유는 월북시인이어서. 지금은 해금?되어서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그 말씀이 생각나네요ㅎㅎ 아 그리고 노래는 김민기보단 산울림이 제 취향ㅋ^^
필리핀 05.06 09:25  
[@물우에비친달] 물달님 세대는 산울림이죠!
그 다음 세대는 서태지^^
물우에비친달 05.06 09:31  
[@필리핀] 아....아닙니다...서태지ㅋ 아니구요....듀스 세대임ㅋㅋㅋ
필리핀 05.06 09:44  
[@물우에비친달] 듀스는 너무 반짝하고 말아서...ㅠㅠ
호돈 05.06 10:17  
그 삼부작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런 분이었다니...
90년대 대학로에서 연극들도 많이 보곤 했는데, 학전은 한 번도 안 갔었네요.  저긴 김민기라는 사람이 하는 곳인데 어쩌고 저쩌고 매우 단편적인 모습만 왜곡되어 전해 들었던 듯 했었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검증할 출판물도 없고 구전으로 전해들은 정보들이 죄다 잘못된 정보였던 것을 느꼈어요.
좀 건강하셨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매주 조금씩 더 생기더라는.
필리핀 05.06 11:58  
[@호돈] 1970년~1980년대에 얼마나 많은 왜곡이 있었는지
뒤늦게 알게 됩니다. 참 나쁜 시대였습니다...
뽀뽀송 05.06 13:17  
부산 깡통시장엔 일제 워크맨이 쌌어요.
AIWA 워크맨은 유일하게 MBC TV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토요일 학원가는 버스 안에서 서태지를 까던 주말 예능프로를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아침이슬을 양희은의 노래로 알다가,
어느 라디오에서 원곡이라고 들려줬던
남자 가수가 부른 아침이슬을 듣고
생경했던 기억만 있을 뿐,
제가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에요.

김유신 장군 옆에
함께 성장했던 김춘추가 있었듯이,
김완준 소설가 옆에는
이정하 안도현 시인이 계셨군요.


저는,
부럽네요.
필리핀 05.07 07:26  
[@뽀뽀송] 오...뽀송님 고향이 부싼인가요?
고딩 때 부싼 자주 놀러갔어요.
개그맨 이경규가 그때 부싼 모 고등학교 문예반이어서
한두 번 만난 기억이 있네요^^
물에깃든달 05.13 09:35  
오오... 멋있습니다. 저는 문예반까진 아니었고, 수능세댄데 수능에서 국어과목이 늘 거의 만점(다른 과목도 그랬다는거 아님;) 나오니까 문학시간에 수업 안듣고 무슨 책을 읽어도 용인해줬었던 선생님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래서 그때 퇴마록이니 드래곤라자니 로도스섬전기 12국기 ...이런걸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네.. 우리나라 1세대 장르문학이 시작했던 시기에 덕후된 사람입니다....ㅋㅋ
요즘엔 웹소설 보면 그때 그런맛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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