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촌스러움에 대한 미안함이랄까..
전 세계 넷플릭스 K-드라마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K-아저씨 이선균의 그 노래 ‘아득히 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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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친구나 가까운 지인을 만났을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있다.
‘옷차림이 촌스럽다’는 거였다.
‘머리깎은 게 옌볜 스타일’이라는 둥, ‘염색을 몽고에서 하고 왔느냐’는 둥 하는 소리도 각각 한 번 이상 씩은 들었다.
옷차림이나 외모에 별무관심인 문화권에서 살다가 한국에만 오면 쏟아져 들어오는 차림새 지적질에 처음에는 황당해 하다가 나중에는 한 귀로 듣고 넘겼었다.
지금은 내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로마에서는 로마사람처럼 행동하라’는 보편적 지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보편적 지혜를 담은 속담(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이 정작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다소 뜬금없는 속담이 있기는 있다.
어쨌든,
세금 한 푼 안내는 사람들일수록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국민의 혈세’ 운운하는 말이고,
멋을 부릴 돈이나 능력, 지식,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에 담는 말이 ‘외모지상주의 운운’하는 투정이라는 이 나라 상류층의 특이해 보이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요즘 한국 최상류층에서 은밀하게 유행한다는 서울스타일 책패션도 배워왔다.
외국어 제목과 부제가 달린 자주색 양장본을 팔 위에 걸친 검은색 명품코트나 재킷으로 3 분의 1 쯤 살짝 가린채 나돌아 다니는 게 서울스타일 책패션인데, 겉표지를 제외한 나머지 책내용은 한글로 인쇄되어 있다.
책패션의 유래가 된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고 ‘총균쇠’도 유행한다는데, 나는 ‘사피엔스’를 추천했다.
펠 전쟁사나 ‘총균쇠’ 같은 책들은 책패션에 빠진 사람들이 열 페이지 쯤 읽다가 내던져버릴게 거의 분명하지만 유발 하라리 특유의 천재적 구랏발이 현란하게 녹아든 사피엔스는 엉겁결에 단숨에 읽을 사람들이 비교적 많아 유행추종욕구도 챙겨주면서 텅 빈 머리도 약간 채워주는 일석이조의 본전을 뽑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옷차림이 촌스럽다고 지인들에게 구박을 받던 내가 한국식 표준의상으로 바꾸자 단기간에 내 외모가 혁명적으로 일취월장했는지 며칠 전에는 강남에서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다.
당황한 내가 캐나다 직녀님에게 ‘사건’의 내막을 직보하고 조언을 구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날아왔다.
로컬시간은 새벽 4 시 46 분이 아니라 오후 7 시 46 분이다. (참, 이 날 누나를 만나 밥을 사는 조건으로 수훈에 대한 반쪽짜리 축하인사를 건네긴 했다)
당신이 비록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문화에 익숙해 있을지라도 한국에 가서는 그 나라의 드레스코드를 존중하는 게 예의라면 예의다.
그 예의가 지나쳐 로컬 아줌마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오버를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최소한 지인으로부터 ‘촌스럽다’는 핀잔을 듣지 않을 정도는 외모를 가꾸고 한국에 입국할 것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