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부끄럽지만 한국어 발음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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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럽지만 한국어 발음 질문

이런이름 10 1333

글을 읽을 때 보통은 눈으로 읽지만 가끔은 속으로 소리 내어 읽기도 합니다. 일종의 발음 연습인 셈이지요. 그러다가 제가 같은 글자라도 뜻에 따라 다르게 발음하고 있다는 걸 깨닫았습니다. 


예를 들면 '창병'이라는 단어를 두고 瘡病일 때는 [창뼝]이라고 발음하고 槍兵일 때는 [창병]으로 발음하고 있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질환을 뜻하는 '병'을 발음할 때는 대체로 좀 강하게 발음하고 있었습니다. 


심장병 [심장뼝], 위장병 [위장뼝], 간장병 [간장뼝] 하는 식으로요. 엄밀히 말하면 [뼝]보다는 좀 약하긴 하지만 [병]보다는 확실히 더 강해서 된소리에 가깝게 발음합니다. 


그런데 군인을 뜻하는 '병'을 발음할 때는 그냥 쓰여 있는대로 [병]이라고 발음합니다. [해병], [보병], [포병], [복병], [정찰병], [창병] 하는 식으로요.  


혹시 앞글자의 받침에 따라 다른가 하고 이런저런 단어를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연결점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따져 보자면 각종 피부병이나 매독같은 성병을 뜻하는 창병(瘡病)은 한의대에 다닐 때 배운 단어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어서 익숙하지만 창을 무기로 다루는 창병(槍兵)은 근래에 웹소설을 읽다가 알게 된 새로운 단어여서 익숙하지 않다는 정도가 차이점의 전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구점은 [문구점]이라고 발음하면서 차이점나 특이점은 [차이쩜], [특이쩜]으로 '점'도 역시 선택적으로 된소리로 발음을 하고 있네요.


이거 저 혼자만 그런 거겠죠? 


10 Comments
엑소더스1 2023.09.01 15:06  
된소리되기 라는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국어사전 찾아보시면 발음기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차이-점 差異點
발음[ 차이쩜 ]

이렇게요
이런이름 2023.09.03 01:38  
[@엑소더스1] 고맙습니다. 저 혼자만 된소리로 발음하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했었는데 국어사전에도 [차이쩜]으로 발음된다고 쓰여 있다니 안심이 됩니다. 이제까지는 국어사전을 그저 단어의 뜻을 알아보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발음 확인까지도 더해야겠네요.
펭구리링 2023.09.01 19:46  
통찰력이 뛰어나시네요ㅎㅎ
저는 고등학교에서 문법을 가르치고 있는 국어 교사입니다.
분석하신 대로 '창병'은 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이면서 동시에 종성이 ㅇ인 어근 뒤에 ㅂ이 오는 동일한 환경임에도 의미에 따라 발음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건 표준발음법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자어에서의 된소리되기 현상은 매우 수의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도 이 현상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전에는 표준발음정보가 제공되고는 있지만, 이는 단순히 실제 발음 현실을 반영한 것일 뿐이죠.
분명한 설명은 어려우나 아마 제 생각에도 글쓴이님께서 분석하신 내용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덧붙이자면 표준발음법 된소리되기 현상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두 말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록 된소리되기가 자주 일어난다고 나와 있습니다. 눈치 채신 대로 예로부터 병을 이르는 창병이 병사를 이르는 창병보다 더 생산적으로 쓰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런이름 2023.09.03 01:39  
[@펭구리링]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장문을 쓰는 게 번거로운 일이였을텐데도 이렇게나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혼자만 이상하게 발음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는 위의 단어들을 발음할 때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쓰고 읽는 게 맞다며 된소리가 정서에 악영향을 준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걸 본 후로 된소리는 나쁘다는 인상을 받게 되어 그 후로는 발음할 때 신경이 제법 쓰였거든요.
펭구리링 2023.09.03 12:23  
[@이런이름] 고대와 중세 초기에는 된소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요. 중세 중기 이후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근대에 많은 것들이 된소리화 되었습니다. (곶>꽃, 고키리>코끼리)
현대에도 된소리 경향성은 젊은 세대일 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요.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나쁜 건 아닙니다ㅎㅎ
현실 발음을 고려하여 자장면이 짜장면이 된 것도 흐름을 따르는 것뿐 나쁘다면 인정되지 않았겠지요ㅎㅎ 정서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도 단지 일부의 견해일 뿐 납득할 수 있게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보라고 하면 또 마땅히 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래 답변에 교과과정 얘기가 나왔길래 덧붙이자면, 공통교육과정에는 훈민정음 서문(중세국어)을 배우는 시간이 있고요. 선택교육과정에선 국어사를 심화적으로 배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현재 수능에서도 문법을 선택했을 시 국어사 문제가 필수적으로 한 문제씩은 출제되고 있고요.
예전만큼 자세히는 배우지 않을지 모르나 그래도 현대국어 사용을 보다 풍부히 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는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이름 2023.09.06 01:32  
[@펭구리링] 과거에는 없었거나 지금보다는 적게 사용되어지던 된소리가 시대가 바뀌면서 점점 더 많이 사용되는 게 한국어의 흐름이군요.

된소리가 사람들의 성격을 거칠게 만든다는 주장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꾸며 억지로 갖다 붙인 핑계일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이 주장대로라면 된소리 발음이 많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이 많이 거칠어야 할텐데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아 동의하기는 좀 난감하죠.

(사실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는 한국어의 된소리가 고맙기까지 합니다. 영어를 포함해서 된소리 발음에 어려움을 겪는 언어들이 은근히 많아요.)

그리고 고문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로군요. 다행입니다. 전에도 문과 학생들은 고문을 배웠지만 이과에서는 고문을 안배우고 대신에 수학 과목을 하나 더 했던 걸로 기억해요.

다시 한번 더 고맙습니다. 발음에 관한 궁금중도 풀렸고 그래서 속도 시원해졌습니다.
깨몽™ 2023.09.01 23:07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안 쓰더라도 올바른 발음을 위해서는 훈민정음을 살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은 옛날 발음의 흔적이라고 봅니다.
요즘은 쓰지 않고 소리나지 않는 소리지만 옛날에는 닿소리(자음)이 남아 있었거나 했던 것의 흔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기를 들어서, 요즘은 '암컷'이라 쓰고 소리내는 말은 ''과 '것'이 합쳐진 말이라 합니다. '수컷'은 '숳+것'...
'+닭'이 '암탉'이 되는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
일부 이런 원리를 못 밝히거나(옛글자가 쓰인 보기를 못 찾은 경우. 보기를 들어 '얼키설키'는 '얽히고 섥히다'는 뜻이지만 그 보기를 찾지 못 했다고 어원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얽히섥히'라고 쓰지 않고 '얼키설키'라고 쓰고 있습니다.) 무시하고서는 억지 규정과 규정만큼이나 많은 예외사항을 두기도 하고 있습니다.(사이시읏의 경우.)
글자가 쓰인 보기를 찾지 못하더라도 거의 명백한 경우를 인정하고 옛 글자 원리를 인정하고 거기다 옛 훈민정음 쓰기 법칙까지 일부 되살린다면 아마도 우리말의 쓰임이 엄청나게 풍부해 질 것이고, 말 그대로 '사람이 내는 소리로는 못 적을 소리가 없는' 소리글자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덧붙여 病의 경우 지금은 그냥 '병'이라 소리내고 적지만 옛날에는 다른 닿소리가 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닭'이 평소에는 '닥'이라 소리나지만 뒤에 홀소리(모음)가 붙으면 받침 리을이 살아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이름 2023.09.03 01:44  
[@깨몽™] 저는 '있습니다'가 아니라 '있읍니다'로 배운 세대인데다 한동안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맞춤법을 다시 공부하고 있는데 너무(?) 자주 바뀌는 규칙에 피로감을 느낄 정도 입니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일이 어색하기도 하고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중에 하나가 언급하신 사이시옷이예요. 예전에는 없던 사이시옷이 들어간 단어들이 꽤 많이 생겼더라고요. 예를 들면 뭇국이나 장맛비 같은 단어들인데 그냥 한 단어로 인정하여 무국이나 장마비로 사용해도 될 거 같은데 굳이 '무+국' '장마+비'로 보고 사이시옷을 넣는 게 저로서는 더 어색해요. 물론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예외가 더 복잡하고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요.

근데 고문(古文) 시간에 옛날에 쓰던 표현이나 표기를 따로 배우는 거 아니였나요? 혹시 이제는 교과 과정에서 고문이 없어진 건가요?

한때 한문이 교과 과정에서 없어져서 한문을 가르치지 않던 시기가 있었는데 우리말을 공부하는 고문 시간이 없어졌다면 많이 아쉬울 거 같네요.
이베로 2023.09.26 04:09  
[@이런이름] 문법이 자꾸 바뀌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문학자들의 밥벌이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니, 사회 구성원 다수가 동의하면 그것이 표준일진데, 예컨데 짜장면을 굳이 자장면이라 우겼던 것도 국문학자들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과시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죠. 쓸데없는 문법, 특히 띄어쓰기같은 것은 없어도 전혀 의사소통에 지장없는데, 정말 쓸데없이 생겨난 것들입니다... 지금이렇게띄어쓰기없이글을적어도이글의의미를파악하는데아무런문제가없습니다.아무짝에쓸데없고오직국문학자들밥벌이를위한문법들...
이런이름 2023.10.06 05:28  
[@이베로] 한국어 문법 중에서는 역시 띄어쓰기가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우리말 겨루기'라는 방송에서도 달인이 되는 마지막 관문은 항상 띄어쓰기 문제가 출제되더라고요. 그리고 많은 도전자들이 여기에서 실패하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띄어쓰기에 관해서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네요. 제가 다녔던 학교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문법을 명확하게 교육받았던 기억도 없어요.

언어는 계속 변화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영어와 비교해 보면) 한국어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문법 자체가 자주 바뀐 경우가 또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60년 전에 출간된 영어 문법책은 지금 사용해도 문제가 없지만 한국어의 경우에는 어림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아직도 한국어 문법이 정립되어지는 과도기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 지경입니다.

(실제로 제게 큰 도움을 준 안현필 선생의 '영어실력기초'가 아직도 판매되고 있더군요. 이 책이 1950년대 중반에 나왔다니까 60년도 넘은 된 책인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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