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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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7.

겨울나그네 7 779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 왔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젊은 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면서 동시에 가장 불확실한 날 들의 향연이다.


잘 익은 사과의 윤기나는 껍질에 부딪친 햇살이 반사되어 천연색 스펙트럼을 이룬다.

젊음은 그런 것이다. 그저 빛의 향연일 뿐이다. 초대받지 못한 향연에 슬며시 들어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빛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아무리 값비싼 보석의 광채도 젊음의 빛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운명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의 기회를 허락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젊은 날 

누구라도 젊음의 방황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면에서만 소용돌이치던 태풍이었을지라도 겉으로는 언제나 평온하게만 보인다.

산란되어 흩어질 빛은 젊은 날을 옭아매지 못하였다.

다만 무한 공간속에 흩뿌려질 자신의 빛을 응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젊음은 한없는 방황과 고뇌 속에서도 자라난다.

그러나 누군가는 방황마저도 사치라고 느끼는 어느 한순간 자신의 길을 비추는 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 빛을 놓칠새라 새벽의 찬공기를 마시며 정진하는 젊음도 있다.

봄에 씨를 잘 뿌리는 사람만이 가을의 결실을 거두고 추운 겨울의 기나긴 휴식을 맞이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태국에 오게 되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서 좋았다.

아무것도 강요하는 힘이 없었고 광야에 내던져진 듯 한 느낌이 좋았다.

따가운 햇빛에 머리를 난타당하며 온 몸이 늘어지도록 돌아다녀도 좋고

볶음밥 한 접시를 먹고 들어와 허름한 월세방에서 내 맘대로 뒹굴어도 좋았다.


1997년 겨울이던가....

파타야에서 지내고 있었다.

좀티엔 비치 근처에 있던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인다.

방문을 조금만 열어두면 맞바람이 쳐서 아주 시원했다.


아침이면 비치에 나가서 달리기를 했었다.

20분 정도를 달리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힘들면 걷고 다시 뛰기를 반복하며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린 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하면 하루종일 밖에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더운줄을 모르게 된다.


태국 생활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침에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몸이 축축하게 젖어든다.

그래서 에어컨만 찾게된다.

태국 생활을 오래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방법이다.

삼년 정도를 계속해서 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반 관광객들과 다르게 몸이 변해버린다.

더위에 강해지고 추위에는 더 약해진다.


하루는 아침에 운동하려고 돈도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가 좀티엔 비치를 따라서 계속해서 걸어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호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비치를 따라서 계속 걷다가 문득 목이 말라 물을 사서 마시려는데 돈없이 나온것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좀티엔 비치를 따라서 파타야 시내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걷다보면 비치 로드가 끝나는 지점에 지금도 성업중인 태국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길 위로 올라와서 길을 따라서 계속 동쪽으로 걷어가면 방살레이 비치가 나온다.

파타야에서 이삼십킬로 떨어진 곳이다.

아침에 걷기 시작했던 내가 물 한모금도 못마시고 방살레이 비치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 때였다.

입은 갈증으로 말라버렸고 허기가져서 그냥 아무데서나 누워버리고 싶었다.

그때는 무슨 오기가 도져서 그런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방살레이 비치는 한적했다.

번잡하고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파타야비치나 좀티엔비치가 아니었다.

방살레이 비치는 다른 비치에 비해서 그렇게 길지 않다.

비치가 끝나는 곳에 조그만 항구가 있고 고기를 잡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비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꼬치구이를 구워서 파는 리어카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 때가 되어 태국인들도 하나 둘씩 어디선가 나타나 꼬치구이를 사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운동복이라도 호주머니에 얼마라도 비상금을 넣고 다녀야 한다.

돈이 없으니 구경만 하고 달라는 소리를 못하는 나를 꼬치파는 아주머니가 힐끔힐끔 보더니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일본인이냐고 한국인이라고 대답한 다음 돈도없이 좀티엔비치에서 여기까지 걸어 왔다고 설명하자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오늘 먹고 돈은 나중에 줘도 된다고 하면서 물을 한병 줬다.


태국에 살면서 가장 맛있는 물 한병을 원샷으로 마셨다.

꼬치구이와 찐쌀밥을 몇개 먹었더니 제 정신이 돌아왔다.

고맙다고 말하고 가려하자 이십바트짜리 돈을 한장주면서 큰 도로에 나가서 파타야쪽으로 가는 쏭태우를 타고 가라는 설명까지 해줬다. 

방살레이 근처 큰도로에 나왔더니 파타야 방향으로 가는 쏭태우들이 정거장처럼 들렀다가 가는 사각 지붕만 있는 정류소가 있었다.


그 다음날 오토바이를 타고가서 꼬치구이를 다시 먹었다.

남편은 아이 둘과 그녀를 버리고 가버렸고 식당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꼬치구이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얼굴 표정은 밝아 보였다.

태국 전역에 어디를 가도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태국인이고 평범한 사연이었다.

자식을 버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치앙마이에 '현수'라는 이름을 쓰는 한국 여자가 있었다.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른다.

교민사회에 가명을 쓰는 사람도 많고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다.


처음에는 허브제품을 판매하는 샾을 했다.

그러다가 여행사 사람들과 가이드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마침 한국인이 운영하던 한식당이 매물로 나오자 적당한 가격에 인수해서 식당 여사장으로 변신을 했다.

식당은 잘되었다.

그전 사장이 오랬동안 많은 공을 들여 만들었고 운영을 잘해서 치앙마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투어식당이었다.


현수는 치앙마이에 오기 전 이미 두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아빠도 달랐지만 두 아이 모두 아무 구김없이 잘 지냈다.

현수는 비록 남편과 헤어지더라도 아이들은 반드시 내가 키운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현수를 칭찬했다.

아주 밝고 화통한 성격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의 어머니도 현수만큼 남편 복이 없는 여자였다.

첫번째 남편을 만나서 임신을 했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다.

그래서 빌 클린턴은 유복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 유복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새로 만나는 남자들도 하나같이 술 주정뱅이 아니면 능력없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들을 반듯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빌 클린턴이 했던 말 중에 자기는 나이 열여섯에 이미 사십이 되어 있었다는 말이 있다.

못난 새 아버지들을 겪으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으면 16살 짜리가 철이 들어버린 것이다.   

새 아버지들을 보면서 자기는 인생을 저따위로 살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죽어라고 공부했다.

청소년 시절에 미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백악관에 초청했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 자기도 케네디처럼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웠다. 


빌 클린턴의 목표는 대통령이었지만 한편 남편도 없이 자기를 데리고 다니며 키워준 엄마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야했다.

조지타운대학을 마치고 로즈장학생에 선발되어 옥스포드로 유학을 갔다 왔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클린턴은 마침내 사십대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재선에 성공하여 팔년간 대통령을 했다.

그가 쓴 자서전을 열면 첫 장에 이런 글이 보인다.  

' 비천한 사람을 존중히 대하라고 가르쳐주신 나의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 첼시에게 이 책을 바친다'


현수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하게 빌 클린턴의 스토리가 튀어 나왔다.

현수는 참 훌륭한 여자처럼 보였다.

비록 결혼 생활은 연이어 실패했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구김살 없이 잘 키웠고 대인관계도 원만했으며 인정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인기가 있었다.

인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

오랜동안의 생활이 삶이 그리고 쌓이고 쌓인 생각과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 사람의 아우라를 만든다. 아우라가 좋은 여자였다.

치앙마이에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일본인 아저씨가 있었다.

어쩌다보니 현수와 일본인과 가라오케에서 만나 합석해서 같이 놀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일본 아저씨가 안 보였다.

그 무렵 내가 손님들과 식당에 가면 혼자인 모습이 좀 외로워 보였다.

혼자 쓸쓸히 지내는 것 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김사장을 만나서 가까이 지내는가 싶더니 얼마안가서 둘이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두 사람 모두 정착을 하고 잘 사는가 싶었는데 몇년 안가서 또 남남이 되어버렸다.


현수는 내게 늘 오빠라는 호칭을 썼다.

나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고 이것저것 자문을  

내게 구하기도 했다. 진짜 오빠처럼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었다.


김사장과 무슨 일때문에 헤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고 현수는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가서도 내게 연락을 해왔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김사장은 현수를 못잊고 그리워했다.

참 좋은 여자라고 내게도 여러번 심정을 토로했었다.

헤어지고 그리워질 사람이라면 꽉 잡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자책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김사장보다는 현수가 더 많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 했었는데 정반대였다.


현수는 그 이후에 교회를 다니면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NASA 에서 근무한 적도 있는 공학박사라고 했다.

공학박사가 진짜인지 사기꾼인지 태국에 사는 내가 알 길이 없었지만 어쨌든 축하하고 잘 되었다고 말해주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 뒤로도 몇번 연락을 해왔으나 연락이 끊겼다.


수년이 지난 뒤 현수 소식을 전해들었다.

나사에서 근무했다는 사람은 결혼사기꾼이었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여자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이었다 고 했다.

만나는 장소는 주로 교회를 이용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미국시민권자 그것도 말이 통하는 한국출신 미국시민권자와 만나서 결혼을 하는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한때 치앙마이에서 재밌게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는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어쨌거나 태국에서 편히 살다가 영어권 국가에 가면 그 나라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할 텐데 그게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태국이다.

처음에 언어문제로 약간의 고생은 하지만 일단 몇달 지내다보면 정말 편해서 다른 나라로 가기 싫어지는 곳이 태국이다.

오랬만에 수완나품 공항에 와서 이 글을 썼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7 Comments
풍경1962 07.26 20:27  
항상  하시는일  잘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도오늘  한시간넘게 땀흘리며  낮에걷고    저녁을 사먹으니  꿀맛입니다 
여행은  외로움도  여행의일부라  생각합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작가의 글같아  다른글도  찾아  읽어봅니다
홍익여행사 07.26 22:03  
Welcome to Thailand.^^
ktgeon 07.26 22:27  
늘 쓰신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관광업계, 모두투어에 본사에 근무해서 가이드분들을 좀 아는데 지식도 많으시고 역마살도 많고 또한 자유로운 영혼이 많았습니다. 기존 직업과는 다른 체계에서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이드라는 직업을 하시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  저도 딱 1년 반만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지금은 완전 다른일을 하지만. .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첫 출장지인 태국을 이리도. .
겨울나그네 07.27 00:54  
댓글을 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순간의빛 07.27 11:46  
평안하고 행복한 태국 생활되시길 바랍니다. ^^
슬리핑독 07.28 13:44  
지난 젊음에 대한 소회가 절절합니다. 너무 공감되고 멋집니다. 태국에서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계속 겨울나그네님의 글을 볼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할리 08.03 01:07  
언제 올리시나 계속 기다리는 애독자가 됐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선의를 베푸신 꼬치구이집 사장님과도 좋은 인연이 되셨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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