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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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6.

겨울나그네 16 1670

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6.


치앙마이 투어를 오는 손님들을 모시고 호텔을 출발하면 가는 도중에 백색사원을 관광하고 골든트라이앵글 근처의 타이식당에 도착해서 식사를 한다.

마약박물관을 들어가기도 하고 메콩강에서 배를 타고 돈사오 섬을 관광한다.

돈사오 섬은 한때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세운 카지노회사가 뒤쪽의 강물을 메꿔버려서 더 이상은 섬이 아니다.

카지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근처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미얀마 마을을 둘러본다.

미얀마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기거하는 곳인데 주로 양철집들이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곳인데 밤에 가보면 곳곳에 켜진 조명등과 함께 묘한 분위기가 이국적이고 낭만적이다.


그 다음은 당나라 시대의 거리를 만들어 놓은 거리가 있다.  

상당히 큰 규모이다. 마치 무슨 영화세트장에 온 듯 하다.

그 거리를 걷다가 호골주를 파는 곳에도 들른다.

호랑이 한마리분의 뼈가 들어있는 큰 유리관이 술로 채워져 있다.

진짜 호골주다.

밤에는 카지노에 갈 수도 있고 카지노 근처를 천천히 걸으면서 밤의 정취를 느껴볼 수도 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아주 독특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다.

밤거리에 나와있는 여자들도 많다.

주로 중국에서 돈 벌기 위해서 온 여자들이다.

강변 쪽으로 발 길을 옮기면 몽고식 텐트가 보인다.

몽고인인지 중국인인지 모를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팔고있다.


숙소에 돌아와 쉬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새벽시장에 가기 위해서 호텔을 나와야 한다.

라오스 마을의 새벽시장이다.

정말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시장이지만 이곳도 역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차를 타고 잠시 이동하면 라오스 몽족 마을에 도착한다.

수 십명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들에게로 달려든다.


미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먹을 것들을 준비해서 온 것을 아이들이 알고서 달려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거의가 맨발이다.

남자 아이들은 거의가 낡은 반바지 하나만 입고 있고 여자 아이들은 반바지에 다 낡은 상의를 입고 있지만 아이들 전체가 영락없는 거지꼴들이다.


그곳을 관광코스로 만든 사람은 그린월드 김사장이다.

김사장이 그곳을 처음 방문해보니 동네에 유난히 불구 노인들이 많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전직 군인들이었다.

작은 나라 라오스에 태어난 죄로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어가야 했던 몽족들이었다.

그곳을 다 보고 다시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태국으로 넘어오다보면 손님들은 자기들이 대한민국 국민인것이 얼마나 큰 축복 속에 있는지 절실히 깨닿게 된다.

나도 실제로 많은 손님들을 모시고 그곳을 다녀왔다.

국가에 대해서 국력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코스이다.


태국 북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고산족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소담한 집들을 짓고 살고있는 고산족들의 얼굴을 보면 비록 풍요롭지는 않아도 큰 걱정거리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 후손이라는 라후족도 있고 머리에 구슬장식을 하는 아카족도 있고 목에 사슬을 차고 긴 목을 하고있는 카렌족 그리고 라오스의 몽족도 있다.

그밖에도 여러가지 분파로 나눠져있는 고산족들이 버마와 태국 그리고 라오스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있다.


방콕에서 십여년을 살다가 치앙마이로 올라와서 가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사실 고산족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고산족들을 분류하고 특징을 연구하는 것은 관심이 없다.

그저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촌에는 여러 인종이 있고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소수민족들도 있구나 하는 정도이다.


치앙마이 그린월드 여행사 김사장이 하루는 차를 타고 여기저기 고산족 마을을 답사하다가 한 마을에 들어갔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던 김사장 앞에 몇명의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데 

한 여자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피부가 하얀색이고 영락없는 한국 아이처럼 보였다.


그 순간 뭔가 짚이는게 있던 김사장이 여섯살 쯤 돼보이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네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을 알아듣고 아이는 자기 집으로 걸었고 김사장은 아이 뒤를 따랐다. 

동네 아이들도 모두 다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김사장을 따라왔다.

아이의 엄마는 마침 집에 있었다.

김사장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혹시 이 아이의 아빠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나왔다.


아이의 엄마는 수년 전 그 마을을 방문한 한국인 배낭족 한명과 밤을 지냈었고 그 결과 피부색 하얀 한국 아이 한명이 태어나 아빠도 없이 고산족 마을에서 커나가는 상황이었다.

아이의 아빠가 누구일까 궁금해진 김사장이 혹시 아이 아빠를 찾아 줄 수 있을까 하여 자세히 묻고 캐봤지만 아이아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 사람이 콘까올리(한국사람) 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김사장 자신도 타이야이족 여인과의 사이에서 딸을 두고 있는지라 남의 일처럼 모른척 할 수 없었다.

갖고 있던 돈을 모두 아이엄마에게 털어주고 잘 키우라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 김사장에게 자꾸만 아이가 떠올라 눈에 밟혔다.

김사장은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생긴것은 조폭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만큼 시커멓고 강하게 생겼지만 속 사람은 참 따듯한 구석이 많다.


나에게 그 사연을 털어 놓으면서 아이와 아이엄마하고 작별하기 전에 아이의 한국 이름을 하나 지어주고 왔다고 했다.

그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김사장이 지어준 한국 이름을 과연 지금도 잊어먹지 않고 사용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가 한국인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달리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만일 그 아이가 한국인 아빠를 만나서 한국으로 갈 수 있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국적은 얻고 살아갈 수 있을텐데 ....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발 어디가서 씨를 흘리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죄없는 아이가 전세계 어느 나라든지 마음껏 여행 할 수 있는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하고 깊은 산속에서 나이 이십도 되기전에 고산족의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매여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싶다.

 

고산족들은 태국 국적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

태국 땅에서 살아가지만 외국인 등록증만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타이야이족이 있다.

타이야이족은 영어로는 (Shan) 샨 족이라고 불린다.

태국북부지역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있는 샨족의 전체 수는 대략 오십만에서 백만명 정도라고 알려져있다.

이 샨족들이 치앙마이나 치앙라이등 북부지역의 건설현장이나 그밖에 위험하고 힘든 일 등 태국인들이 하기 꺼려하는 직종에 많이 종사하고 있다.

타이야이족 사람들도 자기들의 언어가 있다.

그렇지만 태국에 살다보니 태국어도 유창하다.


이 사람들의 원래 살던 지역은 지금의 미얀마이다.

미얀마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두 세번째로 인구수가 많다고 알려져있다.

미얀마 정부에서는 태국에서 살고 있는 샨족들을 미얀마 땅으로 불러오고 싶겠지만 그럴 힘도 없고 그렇게 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아뭏튼 분명 태국에서 살고 있고 태국어도 하지만 태국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샨족들에게는 확실한 미래가 없어보인다.

한국인이 태국에서 타이야이족 여자와 결혼을 하는것은 가능하지만 한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쉽지 않다.

국적이 불분명하고 미얀마 여권을 만드는 것마저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겨도 아이에게 쉽게 한국여권이 발급되지 않는다.

엄마의 신원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사실 확인이 쉽지않고 아이를 한국인 아빠의 호적에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이 아주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에 쉽게 이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깊은 절망감을 맛보기 쉽다.

나라가 있고 국민에게 국적이 있고 결혼할 자유가 있고 아이에게 부모의 국적을 물려주는 일이 당연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샨족 다른말로 타이야이족에게도 하나의 꿈이 있다.

독립된 국가를 갖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독립국이 되려면 몇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 영토가 있어야 한다.

둘째 국민이 있어야 하고.

셋째 정부가 있어야 하고 그 정부가 다른 나라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샨족에게는 영토가 없다.

미얀마와 태국이 샨족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영토를 내줘야 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일 가능하기만 하다면 '산족의 독립국가 '그들에게 그보다 더 큰 꿈은 없다.


그것은 그들에게 '대의 '다. 추구해야 할 가장 큰 가치라는 말이다.

나라없는 설움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그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일하다가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해서 불구가 되어도 타이야이족들이 어디가서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다.

미얀마에 가기는 싫고 태국에서는 국적을 안준다.

태국인 부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태국 국적을 얻는 것이 어렵다.


타이야이족들이 한때나마 독립국가의 꿈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샨족들이 영웅처럼 떠받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사람은 마약왕 '쿤사' 로 많이 알려졌다.

쿤사의 원래 이름은 '장치푸 '이다.

쿤사 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호칭이다.

샨족들은 쿤사라는 호칭을 '대부' 정도로 쓴다고 보면 된다.

영화 '대부'를 보면 주인공 알파치노 보다 '대부' 역을 연기한 말론브란도의 연기가 더 실감난다.


쿤사 라는 칭호의 원래뜻은 이롭게해주는 왕자 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중국인 이었으나 친어머니가 바로 샨족 타이야이족이다.

운남성에 살던 쿤사의 할아버지가 일가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터를 잡고 살게된 곳은 타이야이족 마을이었다.


지역으로는 미얀마이지만 타이야이족들은 미얀마 군사정부와 거리를 두고 살았고 그 전에도 미얀마 중앙정부가 변방에 살고있던 샨족에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쿤사의 아버지는 샨족 여인과 결혼해 쿤사를 낳았지만 쿤사가 세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년 후 뒤를 이어 쿤사의 어머니도 말라리아 모기가 옮기는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으나 할아버지가 쿤사를 교육시키며 키워냈다.

그 당시의 샨족에게 교육기관이란 없었다.


쿤사도 정규교육과정을 받지는 못했으나 할아버지로부터 중국어와 한문을 배웠다. 십오륙세가 되었을 때는 이 삼년 출가하여 절에서 승려노릇을 하며 미얀마 문자와 태국어를 배웠다.


남달리 총명하고 영리했던 쿤사는 그 후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여 영자신문을 읽고 원서를 구해 읽었으며 유명해진 다음에 

는 수 많은 서방의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영어로 하여 기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중국의 국공내전이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군이 승리하자 국민당 군대의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때쯤 이미 샨족 청년들 중에서 지도자급으로 여겨지던 쿤사와 샨족 청년들은 국민당군에게 협조하고 그 댓가로 현대식 무기를 다루는 법과 어느정도의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중국계 샨족으로 자라났으나 유창한 중국어와 문자를 알고 지도자의 자질이 있던 쿤사는 급속히 커가기 시작했다.

많은 돈이 필요해진 쿤사와 쿤사의 무리는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쿤사의 샨족들이 생산해낸 아편은 순도가 높아서 찾는 사람이 많았다.

생산이 급격히 늘었어도 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많은 돈이 생기자 그 돈으로 암시장에서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쿤사가 생산한 제품을 주로 거래하던 지역을 골든트라이앵글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미얀마와 태국 그리고 라오스의 국경이 맞닿는 곳이다.


저 멀리 중국의 서북쪽 쿤둔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천산에서 시작되는 메콩강은 중국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육개국을 거쳐 동베트남 앞바다로 흐른다.


메콩강이 태국의 북부지역 강으로 된 국경선에 다가오면 우측엔 미얀마와 태국이 있고 왼쪽엔 라오스가 있다.

세 나라의 국경이 Y 자 형태의 강변에서 만나는 곳이다.

마약 밀매꾼들이 활동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이다.

강 하나를 건너면 삼개국중 어디로든지 도망칠 수 있고 중국으로 강을 타고 올라가기도 좋다.


쿤사가 미얀마 정부의 골칫덩이가 된 공산반군들과 싸움을 벌이자 쿤사의 마약거래를 눈감아 줬고 태국정부도 태국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않는 쿤사를 한동안 묵인했다.


베트남 전쟁에 깊이 관여했던 미국의 CIA는 처음에는 쿤사에게 협조적이었다.베트남 전쟁에서 덩치작은 베트콩들의 땅굴작전에 애를 먹던 미국은 덩치작고 기민한 라오스 몽족과 미얀마 샨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베트남에 데려갔고 베트콩들과 싸움을 붙였다.

기대 이상의 전과를 올리는 몽족과 샨족 용병들로 인해 미군의 피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나자 그동안 미국으로 흘러들어간 마약에 중독된 미국인들 때문에 쿤사는 미국의 공적으로 떠올랐다.

메스컴에서는 연일 마약에 빠진 미국인들의 문제를 다뤘고 쿤사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마약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제거대상 1호 인물이 되었다.


CIA에서는 마약왕 쿤사의 제거에 나섰으나 이미 대단한 존재가 되어버린 쿤사조직을 제거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미국정부는 태국정부를 움직였고 마침내 1982년 태국군이 쿤사의 본거지를 공습하고 지상군을 보내 공격을 했고 극렬히 전투를 벌이며 버티던 쿤사조직을 미얀마로 쫒아버렸다.


그러자 쿤사는 미얀마 국경지역에 새롭게 진영을 설치하고 조직을 재건하고 세력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의 헤로인 밀반입은 줄었지만 중국으로는 점점 더 많은 헤로인이 밀반입되고 있었다.


원래 중국인의 후손이었던 쿤사는 그 무렵 동남아는 물론 중국과 홍콩 타이완에도 인맥을 확장시키고 많은 돈을 써가며 자기 조직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늘려나갔다.


쿤사가 전성기 시절 보유한 군대는 주로 중국제 무기로 무장한 보병 이만명이 있었고 그밖에 여러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대략 오만에서 육만명의 인력이 있었다.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매년 수억달러가 넘었으며 그 돈을 가지고 쿤사왕국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자치권을 만들고 있었다.


매일 엄청난 분량의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쌀과 야채 과일 등 많은 음식과 물자가 쿤사의 조직원들에게 풍족하게 공급되었다.


샨족들의 염원을 담아 마침내 쿤사는 찬방공화국 이라는 독립국가를 선언하고 초대 국가주석직에 올랐으나 국제사회의 인정은 전혀 받지 못한 자기들끼리의 동네잔치에 불과했다.

그러자 샨족의 독립의지를 확인한 미얀마 정부는 쿤사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미얀마 군사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의 쿤사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도 나쁠것이 없었다.

쿤사의 조직에서 간부급들은 대다수가 중국 출신이었다.

쿤사의 오른팔이자 작전참모도 중국인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1996년 미얀마 군사정부와 더 이상은 공존 할 수 없어진 쿤사의 조직을 미얀마군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항을 했으나 수 많은 부하들의 희생을 막아야 했던 쿤사는 미얀마군 사령관과 협상에 나섰다.


쿤사의 신변과 가족 그리고 재산을 온전히 보존받는 대신 쿤사는 조직을 해체하고 양곤의 자택에서 은거한다는 조건으로 항복을 했다.

국적도 없고 여권도 없는 쿤사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양곤으로 들어가겠다는 쿤사의 제안은 신의 한수 였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다.

양곤에 들어간 쿤사는 더 이상 미얀마의 적이 될 수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최후의 수를 생각해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때 쿤사가 양곤의 저택으로 옮겨가지고 간 금괴만도 5톤이라는 말이 있었다고는 하나 상당히 과장된 말인 것 같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거대한 저택을 사들이고 그곳에서 지내던 쿤사는 약속대로 미얀마 군부가 안전한 노후를 보장했다.

미국에서는 계속적으로 쿤사를 인도하라고 미얀마 정부를 설득했지만 미얀마의 장성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쿤사가 양곤으로 오지 않고 다른 어떤 곳으로 갔더라도 미국은 반드시 쿤사를 찾아내고 미국으로 끌고가서 법정에 세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미국의 악명높은 감옥에서 지옥같은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양곤의 대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안락하고 조용히 지내는 쿤사에게 미얀마 군부의 장성들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2007년 세상을 떠난 쿤사는 지금도 타이야이족들의 많은 존경을 받고있다.

비록 마약왕이기는 했지만 샨족들의 교육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만들고 도로를 만든 사람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쿤사는 이중적 인물이었다.

마약을 생산하고 팔았지만 그 자신은 물론 조직원들 누구라도 마약 사용을 엄격히 통제했다.

샨족 독립을 위한 자유의 투사이기도 했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식의 무모한 도발이나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쿤사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많았고 평소 자상한 사람이었으나 조직을 배신하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보복도 서슴치않는 냉철한 사람이기도 했다.

태국과 미얀마의 산악지역에 자기의 왕국을 만들고 호쾌하게 살고 활동했던 쿤사는 양곤의 자택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냈으나 단 한줄의 글도 기록도 남기지 않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중국인이었으나 고산족이었고 샨족이었으나 자유인이었던 쿤사는 중국의 고전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을 실제로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쫒기는 사람 배고픈 사람 갈 곳 없는 사람 누구라도 찾아오면 따뜻하게 받아주고 자유와 편안한 삶을 보장해 주었다.

사람들이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을 하게 만들줄 알았다. 쿤사는 차원 높은 용인술의 소유자였다.


믿음을 배신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가차없이 처리했지만 좋은 친구라면 천금을 아까워 하지 않고 쾌척할 줄도 알았다.


이십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에 실제로 살았던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쿤사,

샨족의 영웅 쿤사는 떠났지만 그가 꿈꾸었던 타이야이족의 꿈은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16 Comments
malitaksin 2022.07.19 13:50  
항상 재미있게 봅니다
다방면 으로 지식도 늘고 유익하고 재미있네요^^
건강하시고 즐거운 치앙마이 일정 되세요
감사드립니다
jbrother 2022.07.19 21:49  
갑자기 든 생각, 골프 좋아하시고 나이도 장년층이신 여행업계 계셔서요. 겨울나그네님이.

하와이에서 골프 투어, 랜드사 차량과 가이드는 휴지기이고 현재 상황 입니다 ,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모집 할수있다면 장년층 대상으로 하면, 소수 고객 단위로 고가 상품 투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여행사는 아니고 앨애이와 하와이를 오가며 살다보니까
하와이 블루 오션, 골프 투어가 앞으로는 잘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린피가 한국과 같고 해서
겨울나그네 2022.07.20 18:45  
[@jbrother] 하와이 골프투어에 대한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하와이에서 랜드사를 운영하던 후배와 함께 의견 나눠보겠습니다
할리 2022.07.20 04:31  
남자가 씨를 함부로 부리면 안된다는 큰교훈과 함께 태국 북부 여러 고산족들 중에 타이야이(샨)족 출신의 마약왕 쿤사가 등장하게 된
시대적 상황과 각국의 정치적 입장 그리고 역사까지 두루 두루 다방면으로 공부를 시켜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재미 없을 것 같은 정치,역사적 소재도 흥미진지한 재미난 이야기 거리로 만들어 주시니 정말 글쓰시는 재주가 뛰어 나세요.
역시 다음편을 또 기대해 봅니다.
겨울나그네 2022.07.20 18:45  
[@할리] 감사합니다
kairtech 2022.07.20 12:46  
베트남에서만난 라이따이한이생각나게만드는글이네요
붕타우까지 구소련이만든 고속하이드로포일선이운행하던시절이니 10년도더된시절이겠네요
같은라이따이한 순이라는아내와 같이작은식당을하던부부
붕타우에서 딸하나낳아 행복하게살아가던부부
이후몇년에한번씩찿아가만나던부부
딸이 공부를잘해서  한국외국어대학에 유학까지와서 공부하고
이젠 하노이에서 한국계회사에서일한다고 자랑스럽게이야기하는 라이따이한부부
금년 5월 붕타우에서 재회했습니다
모두가 해피엔딩이면 좋을텐데  그렇지않은경우가더많아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겨울나그네 2022.07.20 18:46  
[@kairtech] 마음 아픈 사연이었지만 좋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적도 2022.07.21 05:08  
쿤사라는 이름은 오래 전 시사저널에서 연재를했던가요?? 아님 1회 분량이 많았던지 그것을 읽고 처음으로 골든트라이앵글이란 곳을 알았지요,
투어로야 그런 곳은 못가보고, 배를타고 메콩강 어느 한 섬?에 세우면 50밧을 입국세 명목으로 받고 들어가 조그만 라오스 시장에서 비어라오를 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치앙마이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많이 갔었고 기억이 많은 곳이지요
 필력이 좋으시네요 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겨울나그네 2022.07.22 14:20  
[@적도] 감사합니다
85a80Lobo81e 2022.07.24 10:51  
1회부터 쉬지않고 한번에 정주행했네요. 대단하신 내공이 문맥마다 느껴집니다. 달관하신것 같은 기운 ..... 편향되지 않은 열린 인생관, 수많은 각종 경험이 글쓴이의 엄청난 독서량과 함께한 결과물이라 감히 추측해봅니다. 상처없는 고목이 어디있으랴.....아~ 맞는 말씀... 기독교 집안의 크리스천이라하셨는데 글에서는 초기불교의 향기와 동양사상의 기운이 느껴지는건 왜죠??  모든 종교와 사상은 결국 그 정점에서는 합일하는거라 하더니.....저는 태사랑  오늘 가입했습니다. 5년전 한달간 중국서남부 여행땜에 중여동 가입하고 많은 정보로 도움받았었는데.이번에는 태사랑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않을까 합니다. 좋은 정보를 가지신분들이 글과 사진 보다는 수입이 있는 동영상  유튜버로 돌아서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시청각 매체에는  저의 뇌가 아직 적응을 못하고있습니다. 활자매체로만 정보를 습득하던 뇌가 유튜브로는  입력량이 조절이 안된다는얘기죠. 이상하게 금방 잊어버리고 머리속에 정보정리가 안됩니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미국여권은 태국 무비자가 한달입니다. 벼락부자 교만 부리다가 적을 너무 많이 만든 결과죠, 덕분에 한달살기는 물건너 갔고요. 뱅기값이 비싸서 한번가면 오래있어야 하는데....참,저는 매운생강 눈치만 보고있는 은퇴자입니다.
우옛거나 9월초부터 10월초까지 28일간 LAX-인천-방콕 땅콩뱅기 온라인으로예약부터 했습니다.(머리는 밉다하는데 태극로고가 가슴을 두드린다는)  2명 2천불이네요.우째 한국 단독보다 더 쌉니다. 중국갈때도 그랬지만.요 .그때되면 뱅기값 더 내려갈지 조마조마. 9월이 치앙마이에 비가 가장많이 오는 시기라던데 이거도 조마조마. 9월되면 방콕에 호텔비도 더 올라가지않을까 조마조마.. 막상 여행지 가서 어떻게 헤멜지는 1도걱정 안하고 있네요.인터넷도 깜박깜박(지역마다 다르겠지만), 구글도 안되고 영어 한마디 안통하는 중국 시골, 동티벳에도 완전 똥베짱으로  다녀왔으니 별걱정은 안합니다^^. 인터넷과,스맛폰, 구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90년도초 영어판 론리 프라넷 한권 달랑들고 배낭여행 다녔던 저로서는 격세지감에 상전벽해에요,아~~ 요새 개인 단독여행하기 정말 편하죠, 가이드님들과 여행사는 죽을맛이겠지만...
아직 출국까지 한달이상 남았으니 부지런히 정보습득할거고요.  그사이 겨울나그네님의 글은 다 읽을수 있겠죠?  제가 바누아투라는 남태평양섬에 갔을때도  한국인이 뿌린 씨가 원주민들과 자라는걸 본적이 있는데....글이 너무 길어집니다. 자주 댓글 올리겠습니다. 유튜브처럼 도움은 안되겠지만요,,, 참, 저희가 치앙마이에 가면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할수 있나요? 근데 저의 아이디가 무슨 암호같은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거 어케 바꿔야하나... 수정에 들어가도 바꿀수가 없네요. ㅜㅜ
요술왕자 2022.07.24 11:25  
[@85a80Lobo81e]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https://thailove.net/bbs/member_confirm.php?url=register_form.php
85a80Lobo81e 2022.07.24 12:01  
[@요술왕자] 그곳이 이미 여러번 들어가서  아이디를 바꾸려 했는데요. 기존 아이디에 커서를 가져다 대면 금지 표지판이 나오고 입력이 안됩니다. 가입하자마자 댓글을 달아서인지.. 가입을 카카오로 했거든요.우옛건 감사합니다~~
요술왕자 2022.07.25 13:24  
[@85a80Lobo81e] 아이디가 아닌 닉네임을 변경하셔야 합니다.
loboyang 2022.07.25 14:30  
[@요술왕자] 카카오와 뭔가 엉킨건지  아무리해도 되지를 않아 탈퇴하고 다시 가입했어요.
겨울나그네 2022.07.25 16:45  
[@85a80Lobo81e] 별것도 아닌 글을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일단 27일 서울에 들어갔다가 아내와 함께 다시 들어올 예정입니다.
제 카톡아이디는
kjhkjh6229 입니다.
ahz5 2022.08.09 21:20  
쿤사의 일대기이자 전기네요. 그저 마약왕 쿤사로만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한편으론 영웅이고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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