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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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9.

겨울나그네 8 1954

오늘은 정말 안 좋은 손님들 이야기를 씁니다.


손님 다섯명이 왔다.

한 눈에 봐도 조폭들이 분명했다.

나이는 사십대들로 보였다.

진짜 조폭도 못되고 그저 팔뚝에 문신이나 하고 조폭 흉내내는 양ㅇㅇ 들이었다.

다섯놈 중에 두놈은 선배 세놈은 후배인데 지들끼리는 깍듯이 예의를 갖춘답시고 말끝마다 형님 소리를 붙여서 하는 대화가 귀에 몹시 거슬렸다.


오랬만에 봉고차 타고 골프장 가서 손님들 티업시켜놓고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좀 쉴려던 생각에 다섯명짜리 골프 팀 하나 해보겠느냐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게 후회스러웠다.

회사에서는 사실 나를 배려해서 좋은 팀을 배정 한 것이었다.

방콕1박 파타야 2박 골프3회 포함사항은 매일 마사지와 알카자쇼가 있었다.


남자 다섯명에 방 다섯개 그러면 무조건 야간 옵션이 들어가는 팀이다.


공항에서 미팅을 하고 봉고차에 태웠는데 첫마디가 " 고향이 어디시요?  아랫녘 우리동네 사람 같은디 "

" 목포가 고향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 아따 반갑소 고향 사람이 맞네 잉 아 글고 우리는 밤에는 ㅇ질 좀 하고갈라고 왔응께 그쪽으로 쪼까 더 신경을 쓰쑈"

" 아 그쪽은 걱정허지 마십시요 내가 방콕에서 일등가는 ㅇ질 전문 가이드요"

" 와따 용코로 가이드를 지대로 만나소 잉"

몇마디 말이 척척 죽이맞아 돌아가자 분위기가 좋아졌다.

가이드는 손님들과 첫만남에서 분위기를 살리는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분위를 좋게 살려놓으면 그 뒤로는 투어가 술술 풀려가게 마련이다.

" 그런데 ㅇ질을 제대로 하고 갈라믄 쩐을 좀 묵직하게 갖고와야 되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며 눈치를 살피자 

" 동생들은 빼고 친구랑 나랑 일인당 만불씩 갖고 왔는디 "

" 아 충분합니다 그정도면 그리고 앞으로 수고해줄 우리 운전기사한테 팁을 좀 먼저 주시면 손님들 계시는 동안 잘 모실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한놈이 손지갑을 열더니 백불짜리 하나를 꺼내 기사를 주라고 손짓하며 나에게 줬다 내가 운전중인 기사에게 돈을 주자 기사가 큰소리로 콥쿤캅을 연발했다.

내가 일단 이천불을 달라고 해서 가방에 넣고 바트를 쓰기로 했다.

일행 모두는 태국 여행이 처음이었다.


기분이 최고로 업 된 우리는 호텔로 안가고 그길로 쏘이나나로 달렸다.

뻘건 불빛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적당한 업소에 들어간 일행들은 마냥 좋아서 오래 시간을 끌려고 했으나 내가 서둘러 적당한 타이밍에 각자가 초이스한 푸잉들을 챙겨서 호텔로 왔다.


다음 날은 방콕에서 공을 치고 파타야로 갔다.

파타야가는 차 안에서 또 오천불을 받았다.

공을 치고 무제한 삼겹살을 먹고 알카자쇼에 손님들을 넣어놓고 가이드들은 가이드 대기실이나 밖에 나와서 좀 쉰다.


이때 가이드들끼리 많이 만난다.

아는 가이드들은 서로 손님 상태? 를 말하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내 손님들의 상태? 를 듣던 후배들이 " 형님 좋겠습니다 촉디하십시요 "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투어 행사 진행에서 오는 긴장감을 풀기도 하는 것이다.

손님들이 쇼를 보고 나오자마자 가라오케로 직행했다.

그날도 거의 광란의 저녁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파타야에 있는 피닉스 골프장에 갔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전반 9홀이 끝나고 후반 9홀을 돌고 있다가 갑자기 한놈이 윗통을 벗어 재꼈다.

런닝셔츠까지 벗어버리고 반바지 하나만 입고 공을 친 것이다.

그러자 한놈 한놈 따라서 전부 상의를 모두 벗어버렸다.

캐디들이  악을 쓰고 말려도 듣지 않았다.

급기야 캐디가 지배인에게 전화로 사태? 를 설명했다.


골프는 예절과 매너가 정말로 중시되는 스포츠이다.

라운딩을 하다가 웃통을 벗어버리고 공을 친다는건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직원들이 카트를 타고 달려와서 말을해도 듣지 않았다.

직원과 캐디 한명이 카트를 타고 와서 넓은 로비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졸고있던 나를 찾아냈다.


상황설명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손님들한테 가보니 다섯명이 상의를 전부벗고 그늘집에 앚아 있었다.

이미 경찰을 불렀다 잠시후에 골프장 영업방해로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주섬주섬 벗어논 옷을 입더니 다시 골프를 치러 나갔다.

캐디들과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물론 경찰을 불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양ㅇㅇ들에게 경찰보다 무서운 존재는 없다.


파타야에 오면서 태국경찰이 얼마나 무서운 권위를 갖는 존재인지 태국 감옥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곳인지 설명해놓길 잘했다 싶었다.

 

나머지 홀을 도는둥 마는둥 마치고 샤워도 안하고 골프장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일단 호텔로 갔다. 

로비에서 기다리는데 한놈이 로비로 내려와 나를 찾았다.

지금 좀 같이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손님방에 올라가 보니 다섯놈 모두 등과 어깨와  팔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는데 심각해 보였다.

틀림없이 화상이었다.

통증이 밀려오니 다들 죽겠다고 하는데 속으로 나는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호텔 식당에 전화를 해서 얼음을 많이 갖다 달라고 했다.

호텔 직원이 와서 상황을 보더니 병원에 가는게 좋다고 권했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설득을  했지만 움직일 생각들을 안했다.

호텔로 안마사 다섯명을 불렀다.

운전기사에게 전화해서 마트에가서 얼음 열봉지를 사다 달라고 했다.

얼마 후 안마사들이 도착하자 각자의 방으로 보내고 얼음을 두봉지씩 배당했다.

안마사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얼음을 풀어넣은 찬물에 타올을 적셔 손님들에게 덮고 그위에 얼음을 놓기도 하고 얼음을 꺼내 팔과 어깨를 문질러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안마 두 타임 총 4시간의 얼음마사지가 끝나자 출장 안마비와 오백바트 씩의 팁을 주고 보냈다. 

얼음마사지로 조금 살만해지자 식사를 하러 갔고 밥을 먹고 또다시 가라오케로 갔다.

그리고 다음 날은 골프가 끝나고 방콕으로 올라와 식사를 한 다음 공항으로 가서 센딩을 했다.

일은 잘 끝났지만 사무실에 가서 이 이야기를 하자 욕이나 한마디 해주지 그냥 보냈냐고들 했다.


남자 손님 네명이 왔다.

이 팀은 투어손님이 아니었다.

서울에 있는 여행사 사장의 지인들이었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호텔 방 두개와 봉고차 한대 그리고 한국인 가이드 한명만 주문하고 왔다.

일당을 받기로 하고 나간 팀이었고 일체의 관광도 쇼핑도 없었다.

그저 손님들이 가자는데로 움직이고 통역이나 해주면 된다고 했다.


공항에서 미팅을 하고 호텔로 왔다.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냥 내일 방콕에 있는 옷시장에 데려다 달라고 하고는 입을 닫았다.

1박2일이니 놀러오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의류 유통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손님들은 방콕에는 왔지만 가이드가 별로 필요없는듯이 보였다.

아마도 호텔과 차량만 있어도 될듯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에 쫒기듯이 보였다.

관광도 마사지도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이 왔다.

주말이었으면 짜뚜짝 시장에 데려다주면 좋았을텐데 그날은 평일 이었다.

그래서 빠뚜남 시장으로 갔다.

빠뚜남시장은 바이욕스카이 타워 옆에 있는 큰 시장이다.

주로 옷과 신발이 많이 있다.

빠뚜남 시장에 도착해서 시장 안으로 안내를 하려는데 손님이 나를 말렸다.

자기들끼리 둘러보고 올터이니 어디가서 몇시간 쉬라는 것이었다.

뭐 그러시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손님들과 헤어졌다.

몇 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전화가 왔다.


시장입구에 갔더니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주로 쓰는 항공마대가 7-8개가 있는데 그 안에 가득가득 티셔츠와 청바지등등 옷이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이걸 다 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걸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밤에 비행기에 싣고 갈거라는 대답이 나왔다.

기가 막혔다.  한심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걸 비행기에 싣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그냥 자기들이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큰 화물차를 한대 불러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차를 기다렸다.

한군데의 가게 물건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 가게에서 어디든 배송까지 해줘야 했을 것이다.

저녁은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해도 괜찮다는 대답이 나왔다.

마침내 기다리던 차가 왔고 돈무앙 공항으로 갔다.

수완나품 공항이 오픈하기 전 이니까 오래된 사건이긴 하다.

내가 화물차를 타고 손님들은 봉고를 타고 뒤를 따랐다.


엉청난 짐을 공항청사에 내려 놓았더니 보딩을 도와주는 아타직원과 피켓보이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게 뭐냐고 내게 물었다.

네명의 손님들이 오늘 밤에 한국으로 가져갈 물건이라고 말하니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네명이서 줄을 잡고 끌면서 하나씩 하나씩 옷이 꽉 들어찬 거대한 항공마대를 대항항공 보딩 게이트 앞으로 옮겼다.

시간이 되자 보딩게이트에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설명을 하자 놀란 표정을 짓던 직원들이 전화로 대한항공 지사장을 불러왔다.

지사장이 왔다 말쑥한 차림새의 한국인이었다.

지사장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오늘 밤 비행기로 이 짐을 모두 가져갈 수는 있다  그러나 오버차지가 너무 크다  이정도면 최대한 할인을 해도 대략 천만원 정도 내야한다 그러니 사람만 가고 짐은 내일 람차방 항구로 보내 배에 태워보내라.


그러자 네사람은 공항청사 밖으로 나가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한참 후에 들어온 일행은 짐을 비행기에 싣고 가겠다고 했다.

결정이 났지만 큰 항공마대가 보딩카운터 옆에 붙어있는 저울에 올릴 수가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타직원들에게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검은색 대형 쓰레기 봉지를 구해달라고 했다.

초조한 시간이 지나가고 직원들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 봉지를 가져오자 항공마대에서 옷을 꺼내서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항공마대에 가득 실려있는 옷들과 꺼내놓은 옷과 검은색 봉지들과 보딩하러 밀려오는 탑승객들이 엉켜 난리가 아니었다.

태국 직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 많은 옷과 신발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렸다.

태국직원들에게 넉넉한 수고비를 줘야한다고 강하게 요구하자 어께에 둘러맨 지갑을 열어 바트를 꺼내주었다.

한국에서부터 태국 바트를 가져왔던 것이다.

내게도 약속된 수고비를 주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웬지 기분이 더러웠다.

가이드가 그렇게 못믿을 존재일까 !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첫날 밤 미팅 때부터 쌀쌀하게 나를 멀리했으니 이사람들은 한국에서부터 태국가서 가이드 말은 절대 믿지 말아라 뭐 이런 말을 듣고 온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들이 만일 나를 믿었다면 아마도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컨테이너 한개 분량은 아니었으니 백만원에서 이백만원 정도면 충분히 한국으로 물건을 보냈을 것이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해서는 또 얼마나 세금을 냈을지 궁금했다.

참 씁쓸한 여운을 남겼던 손님들이었다.


나는 어딘가를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어두운 곳이었고 빛은 없었다 갈 길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은 젊음의 통로라는 이름이었다 내게 다가온 젊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산란된 빛마저 비추지 못하는 유혹적인 아가리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쉴 곳도 없고 머물 곳도 없었다 늘 목이 말랐고 늘 배가 고팠다

가야할 곳은 찾지도 못하는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봉오리가 암팡지게 피어있는 꽃을 보고 다가가 손에 잡고 꺽어버렸다

사슴이 보였다 껑충껑충 뛰더니 바닷가 절벽 끝에서 멈췄다

파란색 바닷물이 보였고 하아얀 바다 모래가 더없이 깨끗했다

활이 손에 잡혔고 화살을 걸어 시위를 당겼다

날아간 화살에 사슴이 맞더니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허공을 가볍게 날아 사슴에게 다가 갔다

사슴은 온데간데 없고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새하얀 드레스에 새빨간 핏물이 번지고 있는데 그 여자 앞에 무릅을 꿇고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여자는 죽어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불분명했다.

눈을 감고 다시 꿈 속으로 돌아가려고 정신을 집중하며 누웠다.


파타야 비치를 걷다가 어떤 장소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정사각형의 붉은색 조명이 은은한 칵테일바 같은 곳이었다.

이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에 그런 술집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곳은 파타야 비치가 시작되는 곳 이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틀림없이 그곳이 맞았다.

그러나 그 술집은 없고 그런 장소가 있을 수도 없는 곳이었다.


치앙마이에 처음 방문 했을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다니는 길다란 도로 입구에서 쏭태우를 내렸다.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인공 암벽등반을 하는 곳에 몇사람이 매달려서 올라가고 있었고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낭만이 넘치는 멋진 곳이었다.

카페도 많고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수년 후

다시 찾은 치앙마이 짐을 풀자마자 또다시 쏭태우를 타고 사람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엉뚱한 곳에 내려줬다.

다음 날 오토바이를 랜트하고 치앙마이 시내를 이 잡듯이 돌아다녔지만 내가 갔던 그곳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 였다.

가능성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보고 그곳을 다시 가고자 했으나 십년을 넘게 살아도 그곳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수년전에 갔던 인공암벽등반장이 있고 길다란 도로 차는 없고 사람만 다니던 그곳은 어디란 말인가!



치앙마이에서 방을 얻을려고 돌아다니다가 3-4층 높이의 콘도를 발견했다.

내가 문 앞에 서있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고 내게 2층에 있는 방을 하나 보여줬다.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서 올라갔고 창문을 열고보니 치앙마이 앞산이 바로 보였다.

그곳에 다시 오기위해 집 밖으로 나와 장소를 기억하려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정사각형 해자가 북쪽 산을 보고 있는 곳이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얼마후에 돈을 들고  계약을 하려고 그곳에 다시 갔는데 집은 없고 집이 있던 자리에 오래된 절이 있었다.

내가 뭘 좀 착각했는가 싶어 오토바이를 타고 그 주변을 골목마다 샅샅이 누볐다.

그 집은 커녕 비슷한 건물조차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십년동안 살면서 그 근처에 갈 때마다 그 건물을 찾았지만 없었다.

내게 있어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세가지 미스터리다.

제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그러지 말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라는 답글은 

하지 마시기를 부탁한다.

ㅡㅡㅡㅡㅡㅡ10편으로 계속 ㅡㅡㅡㅡㅡㅡ


























8 Comments
킁타이 2022.07.01 03:38  
잼난글 구독 잘하고 있슴니다
슬리핑독 2022.07.01 13:46  
글솜씨가 좋으시고 진솔하고 재밋고 추억도 떠올리고 한편으로 여러가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 재밋게 보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겨울나그네 2022.07.01 15:19  
[@슬리핑독] 감사합니다
타미엄마 2022.07.01 22:58  
저는 93년도인가.. 필리핀 가이드였어요. 님 글을 읽어보니 잊고 살았던 그 갖은 진상들이 떠오르네요.  책으로 쓰면 한 질은 나올 그 매너없고 끔찍했던 팀들.. ㅋ 물론 좋은 팀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저도 썰 한번 풀어야겠네요 ㅎㅎㅎ
겨울나그네 2022.07.02 07:32  
[@타미엄마] 내년에 책으로 한번 엮어볼려고 이렇게 초고를 써서 올리는 겁니다
타미엄마님의 소중한 경험을 저도 듣고 싶네요
아니 제목을 ㅡ 우리는 동남아 관광가이드 였다 ㅡ 로 하고 여러사람이 참여하여 공동집필을 하면 어떨까요?
타미엄마 2022.07.02 09:55  
[@겨울나그네] ㅎㅎㅎ 굿 어이디어~
할리 2022.07.12 00:29  
저도 태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푸켓 올드타운과 꼬창에서 파타야에서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분명 과거에 갔던 곳을 맞게 찾은거 같은데 없고 계속 근처만
빙글 빙글 반복해서 지나가는 느낌. 귀신에 홀린 듯한 오묘한 기분!!!!
겨울나그네 2022.07.12 03:28  
[@할리] 안겪어본 사람들은 모를겁니다  정말 미치고 팔짝뛸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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