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7.
전편에 양씨스토리 때문에 먹먹해진 가슴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어서 오늘은 우울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글 쓸 기분이 아닙니다 . 대신에 태국에 있을 때 써놨던 짧은 글 몇개를 올려보겠습니다
2016년 8월 14일
석달만에 돌아온 치앙마이다.
하늘엔 늘 구름이 껴있고 날씨는 무덥지 않다.
10일 밤,방콕에서 출발했던 기차가 오던도중 고장이 났다.
세상에 기차가 고장이 날줄이야....금방 찜통이 되어버린 실내,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역에 도착해서 두어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직원들이 와서 모든 짐을 다 가지고 내리라고 알려주었다.
그밖에는 아무런 멘트도 없었다, 승객들은 내렸고 묵묵히 기다릴뿐이었다.
누구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의 대부분은 여행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태국어를 할 줄 몰라 묻지 않는게 아니었다.
아무도 영어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하다는듯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만일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아이패드에 담아놓은 잡지를 읽던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이렇게 다른걸까......
작은나라 좁은 땅에서 바글 거리며 살아오면서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인가 여유를 잃어버렸다. 대다수 국민들이 참을성도 없다.
한국에 갈 때마다 절절히 느껴지지만 참 사람살기 힘든 곳이 한국이다.
희망이 없는 나라, 희망이 없는 사회는 암울한 회색빛이다.
옛말에 세가지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했다.
첫째. 아이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높은 실업률과 높은 집값은 신혼살림을 꾸려서 새 가정을 만들어 나가야할 젊은이들에게 높다란 담장이 되고 있다.
결혼은 더 이상 아무나하는, 아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면으로 고등고시패스처럼 어려운 것이 되었다.
아이는 공장에서 물건처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양육되고 성장할 최소한의 환경 즉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이토록 어려운 과제가 되도록 만든 사회는 병든 사회다.
가진자들의 탐욕과 국가 백년지대계를 세우고 실천해오지 못한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부동산가격 상승과 그로인해 발생한 불로소득과 수많은 연계문제에 대해 통찰하고 대비하지 못한 그동안의 무능한 정부들.....
두번째. 베틀짜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제조업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수많은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건 입만 아플 뿐이다.
제조업의 쇠퇴는 그간의 한국의 교육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정말이지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세번째.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살면서 직업을 갖고 가족들을 부양해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여유도 시간도 없다.
오죽 했으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주겠노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나올 정도일까.....
책을 읽는것은 교양을 쌓고 내면의 자아를 향상시키고 고상한 인격을 형성해 나아가는데 꼭 필요하다.
그런데 책을 읽는다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치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삶이 건조 해졌다는 뜻이다.
삶이 건조해질때 사람의 마음은 무감각 해진다.
한국사회는 이미 너무 건조하고 곳곳에 균열이 가고 있다.
중이 절보기 싫으면 떠난다고 했다.
나는 태국에 잘왔다고 생각한다.
벌써 이십년이 되었다.
인생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했던가......
한접시의 솜땀과 찐쌀밥 그리고 약간의 구운 닭고기만 있으면 성찬이다.
욕심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전하진 않다.
치앙마이는 이제 만 5년을 살았다.
태국은 아직도 가볼곳이 많다.
아주 작은 여유만 생겨도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며 맛보는 라이딩의 맛은 아는 사람만 안다.
낯선 곳에 가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내면이 가득차있는 사람이거나 무감각한 사람이다.
이제껏 가진것도 없고 이룬것도 없지만 그런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삶의 목표라는 것도 없이 살았다.
그래서 성취가 없었겠지만 또 그렇게 살았기에 좌절도 없었고 비교적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다.
나는 도대체가 삶을 얽어매는 것들이 거의 없이 살았다.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른다. 그런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누가 감히 나 아닌 다른이의 삶을 판단하거나 정의할 수 있겠는가.....
백인백색 천인천색일 뿐이다.
어차피 모두는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갈 것이다.
오지않은 미래의 고민을 미래 가불해서 괴로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미래에는 그날의 삶이 있을 것이고 나는 지금 오늘을 살고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또한 오롯이 내 삶의 한 요소일 뿐.
언젠가 모든것은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2016년 10월 14일
어제 저녁 7시 아파트 로비에 걸려있는 TV앞에 모여들었던 태국인들은 담담한 표정들이었다.
프라윳찬오차 총리가 푸미폰아둔야젯 국왕의 서거를 발표하자 서거나 앉아있던 몇몇 사람들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순간 한시대가 끝났음이 분명해졌다.
뉴스가 나가는 시간동안 방콕의 붐비는 거리도 잠시 한적해졌다.
큰 인물의 죽음. 260여년을 이어져오는 태국의 라마왕조 그 라마왕조의 9대 왕이자 온 국민들의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받는 태국인들의 아버지가 영면에 들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푸미폰국왕의 모습 또한 태국인들이 보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국민들과 함께하고 국민들 과 소통하고 국민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셨다.
산간벽지 오지의 구석구석 찾아다니시며 국민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들의 실생활에 깊은 관심과 도움을 주고자 애쓰시던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오늘은 온 종일 추모방송이 나왔다.
그분이 그토록 사랑했던 태국의 국민들은 이제 그분을 떠나보내드릴 준비에 들어갔다.
한송이 한송이 고이고이 키워진 꽃들을 손에손에 들고 그 꽃들을 그분의 영정앞에 놓아드리고 두손모아 그분의 명복을 기원할 것이다.
몸은 비록 떠나시는 분이지만 그분이 남기고 가시는 국민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오래도록 태국국민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정신이 될것이다.
아무쪼록 푸미폰국왕의 사후 태국이 혼란에 빠지지않고 더욱 더 발전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피를 흘린 태국은 한국의 우방이자 피로 맺은 혈맹의 나라다.
앞으로 상당기간 이어질 추모기간동안 태국은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다.
온 국민이 함께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는 왕을 모셨던 태국국민들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푸미폰왕이시여!
평온한 안식에 계시다가 자비로우신 주께서 부르시는 날 아름다운 새생명으로 돌아오소서....
2021년 겨울
태국에 가지 못하고 맞는 세번째 겨울이다.
90년대 중반에 가서 살기 시작했던 태국은 추운 겨울이 없다.
대신에 좀 지겨운 더위가 있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선 땀을 흘리며 먹는 매운음식이 있어 더위를 이열치열의 힘으로 잘 버텼다.
가장 그리운것은 태국음식이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쏨땀 매콤하게 만든 쏨땀에 찐쌀밥과 숯불에 구운 닭다리 이 세가지 음식은 항상 같이 먹어야하는 세트 메뉴다.
실컷 먹고 마셔도 일인당 3-4천원이면 충분하다
쏨땀 세트를 먹을 때면 행복하고 즐겁다
먹기도 전에 먹으러 가면서부터 기분이 좋다 무우맛 비슷하게 별 맛이 없던 채썰어놓은 파파야가 매운고추와 젖갈국물 맛나는 간장과 다양한 양념을해서 버무리면 맛있는 쏨땀이된다.
쏨땀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마치 김치가 집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새로 이사하는 동네마다 제일 먼저 온동네를 다니며 맛있게 만들어내는 쏨땀 집을 찾아낸다
쏨땀을 좋아하고 맛을 알게되면 나중에는 보기만해도 무슨 맛인지 알게 된다
만드는 사람의 인상만 봐도 알게 되고 완성된 쏨땀 한접시를 보기만해도 그 맛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쏨땀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밝은 대낮에 점심때 먹는것이 가장 맛있다
땀을 흘리면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작열하는 햋빛이 모든것을 말려버릴듯한 더운 날씨에 파라솔 아래 앉아서 쏨땀 세트로 점심을 먹고 땀을 흘리고나면
새로운 힘이 솟아오른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떠오른다
태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맛있는 쏨땀집을 찾아내고 먹고 즐거워했던 기억들...
순박한 얼굴로 쏨땀을 만들어주던 태국인들이 그립다
별다른 욕심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수 많은 태국인들이 많이도 보고싶다.
시간이 멈춘듯한 나라 태국
살다보면 금방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수 년이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언제나 멈춰 있는듯 하다
계절의 변화가 적어서일까?
치앙마이 집 앞 담장앞에 서있는 나무에 화사하게 만발한 붉은 꽃잎들 위로 햋볕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이동식 아이스크림 손수레를 끌고가는 낡은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꽃나무 줄기가 얼기설기 쳐놓은 천막위로 쭉 뻗쳐있다
천막 아래에는 반쯤 찢어지고 숭숭 구멍이 뚫린 파라솔이 천막을 지탱하고 있다
파라솔 옆에 담장에 리어카가 고정되어 있고 그 위에 도마가 놓여있고 식재료를 담아 두는 소쿠리들이 보인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나는 태국으로 간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잊지 못할 사람과 사연도 많았다
때때로 깊은 명상에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은 의미가 없고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하는 세계가 나타난다
지나간 추억들은 허상이지만 의식이 존재하는 동안은 실상이기도 하다
오늘의 실상은 매래의 허상이며 매래의 실상은 지금은 허상이다
아직도 찾지못한 음악 한소절이 또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고 흥얼거린다
누구의 음악인지도 모르고 태국 음악인지 외국곡인지도 모른다
태국이라는 세계에 침잠할때면 어김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평안함과 위로를 주는 음악이 있다
오늘도 이렇게 태국의 추억을 글로 쓰고 있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평화가 나의 온 몸을 감싸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8편으로 계속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