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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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6.

겨울나그네 11 1691

이 양반 이야기를 하려니 또 가슴 한켠이 찌릿해진다.

나의 태국생활에서 만난 절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인간.

이 인간의 이야기를 쓰면 가공인물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오산의 오래 전 멤버라면 다 알고 있다. 알만 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카오산로드 홍익인간에서 한 이삼개월 무료 숙식을 하고 있을 때이다.

아이엠에프의 찬바람이 여행업계를 덥고 있을 때니까 나도 최대한 돈을 아껴써야 할 때였다. 쥔장 달이형의 배려였다.


 형님과 형수가 밤에 살던 집으로 퇴근을하면 가게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밤 늦게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내려 홍익인간으로 찾아오는 배낭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익인간은 밤에도 문을 닫을 수 없었다.

낮에는 자유시간을 갖고 밤에만 나와서 가게에서 잠을 자거나 밤새워 책을 읽거나 하면 되었다.

달이형의 형수는 내가 와서 먹으라고 내가 먹을 밥과 반찬을 준비해놓고 퇴근했다.


하루는 달이형이 한국에서 걸어오는 전화를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였다.

여행도 태국도 처음이고 영어도 모르고 어쩌고 저쩌고 횡설수설하더니 달이씨만 믿고 갈테니 좀 도와주시라....그런말이었다.


누군가의 소개로 홍익인간을 알게 되었고 자기딴에는 카오산로드를 연구도 해보고 하다가 막상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나가려니 자신감도 없고 해서 달이형한테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하루는 낮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밤에 가게에 왔는데  반짝거릴 정도로 기름기가 흐르고 검은색 피부의 얼굴이 길쭉하게 생긴 사람이 다리형하고 같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달이형이 나를 그사람한테 소개하더니 앞으로 몇일간 개인 가이드를 좀 해주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양씨를 (가명) 만났다.

양씨가 내게 한 첫마디가 이랬다.

" 아 내가 사실 좀 오입쟁인데 앞으로 수고 좀 해주라"

대뜸 반말이었다. 나이는 다리형과 같다고 했다.


한 눈에 딱 봐도 색골이었다.


나는 태국에 오기전에 서울 남산도서관 아래 후암동에 살았다.

남산도서관에 있는 수 많은 책들을 무료로 읽기 위해서 였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나는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해서 중국고전문학에 유명한 책들을 대충 섭렵하기도 했고 동양철학에 관련된 책도 좋아했다.

그밖에 운명학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 사람의 골상과 관상을 좀 볼 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씨는 색골 중에서도 최고의 색골 진골을 넘어 성골에 가까운 골상이었다.

사람의 골상 중 최고의 정력절륜한 남자는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키에 살짝 마른듯 한 몸매에 피부색은 검을수록 좋다.

오행의 원리에 의하면 수 즉 물의 색은 검은 색이다.

수는 장기로 보면 신장에 해당한다.

피부색이 검다는 것은 수의 기가 왕성하다는 것이고 신장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강한 신장의 기운은 남자의 정기가 왕성함을 의미한다.


목소리는 쇳소리나고 윤기가 있어야 한다.

목소리에 쇳소리가 난다는 것은 쇠는 금이고 금생수 의 원리에 따라서 수의 기운이 더더욱 왕성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자도 이렇게 생긴 여자는 무조건 남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남녀 불문하고 색골은 천골로 친다.

천하다는 것이다.

섹스를 과도하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생각이 고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천골로 보는 것이다.


딱 책에서 묘사하는 그대로의 남자였다 그렇지만 솔직하고 화통한 사람 같았다.

전날 밤 카오산에 도착해서 어디서 자고 오후 늦게 홍익인간에 들어와서 돈 좀 가져왔다고 폼을 잡는 중이었다.


그날부터 몇일동안 밤만 되면 둘이 돌아다녔다.

일단 마사지샾에 가서 요금 지불하는 법

팟퐁과 쏘이나나 쏘이 카우보이에 있는 술집에가서 노는 법 등등

밤의 노하우를 거의 전수 해주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고 약속했던 하루에 백불씩의 수고비를 받았다.


그때부터 양씨의 전성시대가 시작 되었다.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씻고 밥먹고 오후부터 또 다시 유흥가와 마사지샾을 찾아 온 방콕을 누비고 다녔다.

가져왔던 만불을 금새 다 쓰더니 송금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뭘 했냐고 물어도 끝내 입을 닫고 말을 안했다.


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어도 자기가 놀러 다닐 때 특히 접대부들을 상대할 때 써야하는 말은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며 적어가면서 

배웠다.

나중에는 나를 만나면 여자들과 둘만 있을 때 은밀하게 쓰는 말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몇달 저러다 가겠지 했다.


그랬는데 아예 콘도를 얻고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사다가 방을 꾸미더니 아주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남자가 유흥가를 가끔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차원이 달랐다.


골프도 안배우고 도박도 안했다.

술도 거의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웠다  마약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여자였다.

눈만 뜨면 여자 밥만 먹으면 여자였다.


섹스귀신이 있다면 이 사람에게 귀신 백명이 붙어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람의 인성은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 놀줄도 알았다.

그렇게 거의 일년정도 시간이 흘렀다.


카오산에서 장기 체류하던 배낭족들에게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그러면서 친해진 사람들에게는 전날 밤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하던 양씨가 어느날 부터 얼굴에 수심이 보이더니 밤에 활동을? 중단하고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증발한 것처럼 카오산에 발길을 뚝 끊었다.


궁금했다. 

달이형은 물론이고 누구한테도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고 살던 콘도에 가봤더니 방을 빼고 나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갔다면 간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 잔뜩 궁금하게 만들어놓던 양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핸드폰도 없어지고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아직 방콕에 있다는 것이었다.

약속 장소에 나가 양씨를 만났다.

거지꼴이었다.

밥을 먹고 싶다기에 가까운 식당에 데려가서 밥을 먹이고 이야기를 들었다.


간신히 몇마디만 하더니 입을 닫았다.

돈을 보내주던 어떤 여자가 있었다. 

양씨는 본부인과 별거중이었고 그 여자는 방콕을 한번 다녀간 다음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한국에 돌아가지 그랬냐고 나무라듯 말했다.

돌아갈 곳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는 대답이 나왔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물으니 거지가 따로 없었다.


잠은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밥 사먹을 돈이 없으니 혹시 돈을 주울까 시장통이나 안올사왈리 버스정류장 땅바닥을 자세히 찾아보면 떨어져 있는 동전이나 가끔씩 지폐를 줍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공중전화통에 충격을 가해서 동전이 쏟아지게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면서 자기가 태국에서 절대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말도 했다.

불과 몇달전에 밤마다 유흥가를 다니던 사람이 내 눈 앞에 완벽한 비렁뱅이가 되어 있었다.

지갑을 열어 있던 돈을 털어주었다.


그러다가 한싱여행사에 들어갔었고 다시 가이드를 시작했던 것이다.

양씨 소식이 궁금했지만 내 일에 몰두하고 사느라 차츰 양씨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가끔씩 홍익인간에 놀러가서 달이형을 만나서나 양씨가 화제에 올랐다.

궁금했지만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가끔 투어버스나 택시를 타고 방콕을 돌아다닐 때는 길거리에 쓰러져 자고 있는 거지가 혹시 양씨가 아닐까 쳐다보곤 했다.

달이형과 나 그리고 카오산 식구들은 그렇게 차츰 양씨를 잊어가고 있었다.


일년 이년 해가 바뀌고 있었다.

어느날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말투가 조선족이었다.

양씨를 아시는지 물었다.

자기는 사톤 이미그레이션 본부에 있는 구치소에서 나왔고 거기에 있는 양씨가 나에게 연락을 하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고 사톤 이민국에 갔다.

사고를 치고 경찰에 체포되거나 오버스테이를 하다가 검거되거나 여권이 없거나 여권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이민국 내에 있는 임시 보호소에 구금을 시켜서 문제가 해결되면 추방을 시키거나  계속 태국에 있도록 풀어주거나 한다.


면회를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양씨를 면회했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져 있었다.

밥을 제대로 못먹고 있었다  오전 10시와 오후 4시 하루에 두번 쌀죽을 주는데 숫가락 쓸것도 없고 그릇째 마신다는 것이었다.

돈이 있으면 사식을 사먹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배식 주는 죽만 먹어야 했다.


이천바트를 둘둘접어 아크릴 가림막 아래쪽으로 던져주었다.


양씨는 여권이 없었다  분실한지 오래되었고 이미 상당기간 오버스테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지 꼴로 길거리를 배회하던 양씨를 경찰이 검문을 했고 외국인이기에 이민국으로 보낸 것이다.

그날은 그렇게 면회를 끝내고 나왔다.


카오산에 들러 달이형한테 양씨 소식을 전했더니 양씨한테 갔다주라고 오천바트를 주었다.

두번째 면회를 갔다.

이 삼일 사이에 얼굴이 좀 좋아져 보였다.

비행기표 살 돈을 구했으니 이제 한국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잘 들어가시라고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게 끝인줄 알았다.


일년 정도가 지났을때 또 다시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양씨를 아시느냐고 사톤 이민국 감방에 아직 있다고......

미칠 일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된 일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다시 양씨를 면회신청하고 면회실에 먼저 가 앉아 있었더니 면회실 문이 열리고 웬 노인이 한사람 들어왔다.

양씨였다.

한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양씨가 한국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무럭무럭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 달이형과 나는 가끔씩 골프를 같이 치거나 홍익인간에서  만나면 양씨 이야기를 하며 소식 한번 없는 무정한 인간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단군이래 최강의 정력가 한번 만나본 것 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하며 웃었다.

그랬는데 지금 내 앞에 그 최고의 정력남이 폐인이 되어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첫번째 면회를 하고 간 이후  이민국 간부가 양씨에게 오더니 당신은 자선단체에서 주는 무료 비행기표를 타고 한국에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양씨는 기분이 좋았다.

먹고 싶은것을 실컷 사먹고 돈이 없어 사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먹을것을 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비행기표 살 돈을 빠르게 쓰고 말았다.

여권이 없는것도 문제였다.

한국대사관에서는 양씨에게 빨리 여행자 증명서를 발급해줘야 하는데 한국으로의 신원조회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을 동사무소에서 직권말소를 시킨 것이다.

공짜 비행기표는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육개월 일년 세월은 흘렀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 앞에서 양씨는 서서히 절망하고 있었다.

절망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무너뜨렸고 양씨는 처절하게 깨닿고 있었다.

끝없이 방종한 생활이 불러온 운명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누군가를 시켜 내게 연락을 해왔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단지 카오산에서의 만남의 인연이 질기기도 했다.


오년 후

나는 차 운전을 하면서 울산을 찾아가고 있었다.

양씨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

마지막으로 양씨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  

양씨 스토리 끝

ㅡㅡㅡㅡㅡㅡㅡ7 편으로 계속 ㅡㅡㅡㅡㅡㅡㅡ














11 Comments
Vagabond 2022.06.28 11:20  
그분은 어쩌면 본인 의지와는 관계없이
본인의 관상이 정해준대로 살 수 밖에 없었던거네요
서글프지만 불꽃같은 삶이네요..ㅎ
겨울나그네 2022.06.28 13:03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글이라서
수위조절이 힘들어요
한순간의빛 2022.06.28 16:43  
천일야화 같아요. 요새 코로나 걸려서 격리 중인데 7편 기다리겠습니다. ^^b
부인과 2022.06.28 16:48  
아, 정말 책으로 나와도 될 것 같습니다.
태국에 관계된 책은 다 사보는데
그 어떤 책보다도 나을 듯합니다.
겨울나그네 2022.06.28 17:25  
[@부인과] 감사합니다
불불스키 2022.06.28 16:56  
혹시 양 X 용(영) 아닌지요?아닐거라 생각됩니다만,, , ,
겨울나그네 2022.06.28 17:24  
[@불불스키] 실명을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주세요
가솔린집시 2022.06.30 21:53  
6편 잘읽고 갑니다^^
에코우 2022.07.07 13:30  
단행본으로 출판 하셔도 될듯합니다 ^^  재밋어요
겨울나그네 2022.07.07 14:47  
[@에코우] 감사합니다
emeraldthai 2022.07.18 12:16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차라리 일본에 태어나서 AV배우가 되었다면  자기하고픈 것 마음껏하면서 돈도 제법 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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