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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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5.

겨울나그네 6 1452


2000년 쯤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태국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이경숙(가명)이 있었다.

경숙은 활기넘치고 늘 웃음이 입가에 머물러 있는 여자다.

170쯤 되는 키와 탄탄한 몸을 가졌다.

몸을 보면 분명 운동선수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손님들을 모시고 쇼핑센터에 갔는데 못보던 여직원이 있었다.

쇼핑센터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많은 경우 가이드의 부인이거나 그들의 친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가이드가 말을 예의없이 하거나 성적암시가 들어간 농담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불평을 늘어놓으면 쇼핑샾 직원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가이드의 평판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쇼핑샾에 들어가서는 늘 웃음을 띄고 쇼핑이 안나와도 내 탓으로 생각하고 더 웃음으로 인사하고 나와야 한다.


쇼핑이 잘 나오지 않으면 직원들은 미안해 하고 심지어 자책을 하기도 한다.

모두 우리 여행업계의 가족이고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있는 동료이다.

함께 고생하는 식구들이다.


경숙은 처음 태국에 와서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쇼핑샾에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샾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얼굴이 밝고 건강미가 넘치고 우울함이 없었다.

어떤 가이드가 와도 기쁜 얼굴로 커피를 갖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물건 한개라도 더 팔아줄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경숙은 이혼녀였다.

대학 선배였던 사람을 만나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지만 아이 둘을 낳고 이혼녀가 되었다.


여자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면 젊은 날의 꿈은 사라진다.


꿈 많은 처녀가 고작 일찍 결혼해서 애를 빨리 낳는 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다.

위자료 한푼 받지 못하고 그저 나를 놔달라고만 했다고 한다.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남편은 아이들을 양육할 수 없었다.

시댁에서는 절대 이혼을 반대했으나 단호한 결심을 하고 도장을 찍었다.


친구가 있는 태국으로 넘어왔다.


경숙의 밝은 성격은 내가 보건데 분명 타고난 것이지만 스스로의 잘못된 결정으로 떠안아야 하는 삶의 무게를 어차피 버릴 수 없다면 기꺼이 떠안고 가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 일 수도 있었다.

경숙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비행기 승무원이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져도 어울릴 것 같았고 배낭여행족이 되어 유럽과 동남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고 다녀도 좋을만한 여자였다.


이십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두 아이의 엄마가되어 꿈은 접어두고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의지가 약한 여자였다면 아이들을 입양기관에 보내고 혼자 살았을 것이다.


쇼핑샾에서의 수입으로는 세사람이 살아가기도 바빴다.

하루는 손님을 모시고 쇼핑샾에 갔더니 " 내가 가이드를 하고 싶은데 실장님이 도와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건 곤란하다고 내가 말했다.

쇼핑샾에서 일하는 직원을 빼내서 가이드를 시키면 샾 사장에게 면목이 없어서였다.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경숙은 어느날 부터 필드에서 (필드 / 가이드의 투어행동반경 전체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쇼핑샾에서 일 할 때보다 더욱 활기있어 보였다.


그러다가 함께 같은 랜드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황사장이 태국에 다시 들어왔고 와이드투어에 합류할 무렵 잠시 프리가이드를 하던 경숙도 합류했다.


황사장은 가이드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사람을 믿어준다.

직원들과 가이드 다 마찬가지 였다.

사장이 믿고 일을 맡기면 기대에 부응하고자 일을 더 열심히 한다.


와이드투어에서 함께 뭉친 팀들은 이상하리만치 결속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일에 반영되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단 한건의 컴플레인도 없었고 거의 모든 팀들이 성공적으로 투어를 마치고 정산도 많이 받았다.


파타야에 투어를 가면 와이드투어의 손님들은 모두 한 호텔을 썼다.

가이드들도 호텔의 방갈로 방에서 잤다.

본질적으로 프리랜서이지만 와이드투어의 가이드들은 강한 팀원 의식이 있었다.


경숙은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한번은 파타야 비치로드를 내가 가이드하는 버스가 서서히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왁자지껄 씨끄러운 쏭태우가 버스 옆을 같이 달렸다.

밖을 보니 쏭태우에 손님을 태우고 이동중인 가이드는 경숙이었다.


쏭태우에 허니문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커플티를 입고 열명정도 타고 가면서 큰소리로 군가를 불러대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싸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모두 다 어디서 거나하게 술 한잔 마시고 큰 소리로 군가를 부르고 경숙은 쏭태우 뒷 문에 매달려 서서 왼손으로는 차를 잡고 오른 손으로는 위아래로 흔들며 지휘를 하고 있었다.


팀 분위기는 최고였고 마지막 날의 쇼핑도 대박이었다.


경숙이 그룹가이드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기 시작하자 회사에서도 중요한 가이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인정받는 가이드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도 어느정도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가이드로서 인정을 받은 경숙은 두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엄마노릇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혼 이후 막막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땅 태국에 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늘 밝은 표정을 지었던 보석같은 여자 경숙은 때가 되자 한국에서 화장품을 수입해 태국시장에 공급하는 사업을 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이 된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판로개척이며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특유의 밝은 얼굴로 끈기있게 밀고나가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다.


앞으로도 더더욱 사업이 번창하고 큰 사업가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태국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중의 한명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진실한 사람들과 약싹빠른 사람들이다.

진실한 사람들은 쉽게 친해지기 어렵다.

교활한 사람들은 쉽게 다가오고 금방 친해진다.

자기에게 쉽게 접근하고 잘 해주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쉽게 접근해 온 것만큼 쉽게 돌아서서 멀어질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한다.

언어가 뜰떠있는 사람과 말이 너무 매끄러운 사람도 조심하기 바란다.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그런 사람들과 만난다면 욕을 얻어먹을 만큼 멀리하지도 말고 너무 가까이 다가 오지도 못하게 거리를 두면 좋다.


약싹빠른 사람은 반드시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양심도 무뎌서 반성도 안한다.


태국생활을 하다보면 특별한 인연도 아닌데 가깝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진실하고 좋은 사람이 다가 온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교활한 사람이 다가 온다면 반드시 뭔가 해를 끼치고 손해를 당하고 헤어진다.


나는 사람을 함부로 믿지 않는다.

적어도 삼년 사년 오랬동안 두고 본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술은 한잔만 마셔봐도 맛을 알지만 사람은 오래도록 겪어보아야 안다.


잘못된 만남이 사람을 고통에 빠지게 만든다.


가이드를 해도 똑같다.

좋은 손님을 만나면 돈을 못벌어도 즐겁다

진상 손님을 만나면 3박4일 때로는 4박5일의 시간이 괴롭다.


차라리 배낭여행이나 갈 것이지 싸구려 페케지 여행으로 와서 불평불만이 너무 많다.


컴플레인을 하다하다 할게 없으면 가이드가 투어중에 자기를 한번도 안쳐다봐서 기분 더러웠다고 컴플레인 걸기도 한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얼굴을 안보는 것도 죄일까!


호텔방이 더럽다 식사가 개밥이다  버스가 고물이고 어디가나 시끄럽다

가이드가 옵션을 강요했다 쇼핑센터 안가겠다고 했더니 버스에 남겨놓고 에어컨을 꺼버렸다 등등 한국에 돌아가 불만을 쏟아놓는다.


이런 종류의 손님을 만나면 아무리 경험많은 가이드도 정말 힘들다.


그저 좋게좋게 달래서 끌고 다니다가 센딩해서 보내버리는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좋은 손님들은 미팅 때부터 다르다.

가이드에게 협조적이고 함께 여행하는 다른 사람을 고려해서 행동한다.


이런 손님들만 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가이드만 하더라도 오케이다.

사실 가이드는 그렇게 나쁜 직업이 아니다.


아는것도 많아야하고 현지 언어는 물론 영어도 어느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인성도 좋아야 하고 외모도 너무 인상이 안좋으면 곤란하다.


손님들은 한국에서 힘들게 스트레스 받다가 기분전환이라도 할까하고 오는 것이다.


가이드도 거기에 맞게 손님들을 즐겁게 대하고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즐거움을 찾아서 여행오는 손님들을 즐겁게 여행 안내를 하는 직업이 천한 직업은 아니다.


어떤것이든 사람이 만들기에 따라 달라진다.

즐거움을 찾아왔다가 악몽같은 여행이 되기도 하고 별 기대도 안하고 왔다가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고 가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잠시도 잊어선 안된다.

누구라도 소중한 존재이다.

한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내가 남을 존중하면 언젠가 반드시 존중이 돌아오고 내가 사람을 무시하면 언젠가 나도 남에게 무시를 당하게 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좋다.

내가 먼저 서로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뭐든지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업이 망가지고 우리 여행업계 식구들도 다들 힘들게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각자의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하고 태국에서 다시 모이기를 소망한다.


나는 골프를 좋아한다.

내가 만약 1997년에 태국에 오지 않고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 골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골프의 매력을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만두고 골프와 관련은 있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예전에 방콕에 내기골프를 하던 멤버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 한타에 백바트 이백바트 정도의 내기골프를 하다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한타에 천바트 이천바트 오천바트 만바트까지 올렸다.


만바트면 삼십오만원 골프를 치면서 한타에 만바트면 큰 도박으로 봐야한다.


내기골프에 미쳐버린 네 사람이 막판을 향해 나아갈 때 네명이서 내기 골프를 나가면 일인당 캐디는 두명을 불렀다.


네명은 각자의  골프채를 끌고 네명은 골프 옷가방을 맡았다.

가방안에 현금이 있었다.

 

한홀이 끝나면 오고가는 돈이 이삼십만 바트가 될 때도 있었다.

전액 현금으로 주고 받고 했다.

 

게임이 끝나면 캐디 8명에게는 무조건 일인당 천바트씩의 팁을 주었다.


모두 가정이 있고 부인과 자식이 있고 방콕에 사업체가 있던 사람들이었다.

결국은 파국이 왔다.


네명의 내기꾼 중 두명이 완전히 거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로가 원수가 되어 그 모임은 끝났다.


골프를 하면서 약간의 내기를 하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고 한다.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말이다.

골프든 뭐든 돈을 걸고 뭔가를 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들이 뭘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각자는 다 생각이 다르니까 그저 그려려니 한다.


오늘은 평범한 이야기만 했다.

머리통 깨어지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사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어도 평범하다.

이야기는 골통들에게 많다.

ㅡㅡㅡㅡㅡ6편으로 계속 ㅡㅡㅡㅡㅡ











6 Comments
불불스키 2022.06.27 15:55  
1편부터 잘보고 있읍니다.느끼는바가 많습니다. 다음편 기다리겠읍니다.
겨울나그네 2022.06.27 17:00  
[@불불스키] 감사합니다
조제비 2022.06.27 16:10  
이런글로 정독을 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인생사 이야기가 다 그러하겠지만 그곳이 태국이고 만나는 인간군상들의 다양함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다음편니 몹시나 기다려집니다.
겨울나그네 2022.06.27 17:02  
감사합니다
가솔린집시 2022.06.27 21:10  
5편 잘읽고 갑니다^^
할리 2022.07.11 16:38  
역시 내기나 도박은 끝이 안좋은게 정답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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