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4.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4.

겨울나그네 11 713

자세히 보니 머리를 뒤로 모아서 묶어 장발이고 덥수룩한 수염은 길었지만 용이가 분명했다.


너무나 반가워서 얼싸안았다.

그날 밤에 다시 만나서 기나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파타야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친 후 한국에 나왔다가 아내와 헤어지고 아들은 용이가 키우기로 합의했다.


서울에서 사고를 치고 방콕으로 가기 전 룸싸롱을 할 때 술집에 자주오던 손님들 중 매너를 잘지키고 오면 모두가 반가운 마음이 들던 손님들이 있었다. 


IT 업계의 연구자들이었다.

올 때마다 인사도 하고 외상을 주기도 했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그러다가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용이가 어려운 상황이되어 망설이다가 전화 연락을 했는데 나무나 반겨주고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했다.


그 팀들은 용이가 방콕으로 떠난 후 팀 전체가 유명한 포털사이트로 거액을 받고 회사를 합쳤고 일도 계속하는 중이었다.


일억을 빌려주면 태국에서 다시 사업을 하겠다고 했더니 자세히 묻지도 않고 돈을 빌려줬다.


오천만원을 고생만 했던 애 엄마한테 위자료로 보내주고 나머지 돈을 갖고 홍콩으로 갔다.

 

은행직원이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동생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서 아들을 맡긴 후 홍콩으로 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용이와는 다르게 평탄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생이 있어 다행이었다.

늘 사고를 치고 언제나 불안정한 삶을 사는 자신의 운명에 힘들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친동생이 고마웠다.


홍콩에 막상 도착하니 막막했다.

가이드북도 없었다.

그냥 공항에서 환전을 하고 무작정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다가 버스를 탔다.


홍콩은 태국과 많이 다르다.

그곳에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갔던 용이는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한놈에게 따라가서 술을 먹고 수천달러의 바가지를 썼다.

술장수가 술집 삐끼에게 당한 것이다.


그리고 몇일 있어보니 도저히 태국처럼 쉽게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항에서 잡혀도 다시 태국으로 가자고 마음먹고 비행기를 탔다.

공항 통과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후아힌으로 갔다.

거기에서 방을 얻고 사무실을 한칸 빌렸다.

랜드사를 만들어 후아힌에서만 손님을 받을 생각이었다.


콘도와 식당 등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여직원을 한명 구한다고 했더니 얼마후에 여직원 면접을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대학 졸업후 집에 와있던 후아힌 아가씨 였다.


여직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용이는 매일 사무실에 나가는것이 즐거웠다.


수 개월이 지나면서 여직원을 살펴봐도 특별히 마음에 걸리는것이 없었다.


모든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청혼을 했다.

흔쾌히 좋다는 대답이 나왔고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겠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태국인 부인을 얻었고 아이를 데려왔다.

장인은 돼지농장을 갖고 있었다.

시간만 나면 농장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사료값이 관건이었다.

사료값을 줄일 수 있다면 큰 사업으로 키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 되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강물에 떠내려 오는 물풀을 가져다가 뜨거운 물에 데친 후 사료를 절반을 섞여 돼지먹이로 주었더니 잘먹었다.

사료비 절감 문제가 해결 된 것이다.

몇달이 지났고 돼지들은 체중은 조금 덜 나갔지만 잘 자라 주었다.

한마리를 잡아서 먹어보니 고기 맛도 좋았다.

 강물에 떠내려오는 물풀은 시기가 지나면 양이 줄었다.

그래도 규모를 키운다면 수지타산이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올인했다.

축사를 넓히고 새끼돼지 숫자를 늘렸다.

처가살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갓집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한때 강남에서 디제이를 했고 룸싸롱 사장을 하면서 화려한 명품을 걸치고 외제차를 타던 사람이 장화신고 돼지똥을 치우고 있었다.


용이는 성숙되고 있었다.

한국사람 한명도 만나기 힘든 시골에서 그렇게 태국 농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갓집에서 후아힌 시내까지는 차로 한시간 거리였다.

가끔씩 시내에 나올 일이 있을때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기름값이 차를 타는것 보다 훨씬 적게 들었다.

 돼지들은 늘어났고 고기맛이 좋다는 것이 알려지자 주문도 차츰 늘어났고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돼지농장을 키워가던 어느날 돼지가 걸리는 질병인 구제역이 태국에 상륙했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출하를 앞두고 있던 돼지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매일 보아야했다.

태국은 한국처럼 보상체계가 잘되어 있지 않다.

멀쩡한 돼지들조차 전부 물고기 사료공장으로 헐값에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올라와서 다시 가이드를 시작했다.

손님을 모시고 온 골프장에서 나를 만났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용이는 치앙마이에서 허브샾을 하기도 했고 베트남 다낭에 가기도 했으나 다시 한번 돼지를 키우기 위해 후아힌으로 내려갔다.

용이를 깊이 생각할때가 많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용이가 떠오른다.


용이를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분명히 뭔가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돼지사업이든 뭐든 용이가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정도 많고 프로 가수처럼 노래도 잘한다.

뭔가 기대를 갖게 만든다. 용이는 그런 사람이다.


옛날에 누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큰 인물을 만들고자 하면 먼저 어렸을 때 부모를 빼았아간다.

그리고 제대로 공부도 못하게 만든다.

늘 목숨이 위험하게 난관을 놓는다.

굶주림과 추위와 외로움과 고독을 넘치도록 주고 사랑하는 여인이 남의 남자 품에 안겨서 남의 아들을 낳게 만든다.

친구가 배신하게 만들고 부하가 등 뒤에서 칼을 들고 덤비게 만든다.

그렇게 혹독하게 담금질을 해서 그릇을 만든 후 그 그릇에 천하를 담아 준다.

읽다가 알아챈 사람이 많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징기스칸의 이야기다.

용이를 징기스칸에 비교한 것은 아니다.

동양 최고의 영웅을 한낱 가이드에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크게 될 사람은 남다른 시련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젊어서 고생을 일부러 사서 해도 좋다는 말도 있다.

고생을 하고 고통의 터널을 지날때는 시간도 안가고 삶이 비참하게 느껴지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한순간에 모든것을 잊어버린다.

때때로 고난의 파도가 밀려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은 좋은 것이다.

희망을 잃으면 안된다.  희망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대략 20년 전에 이름모를 어떤 가이드가 썻던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태사랑인지 한아시아 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가이드의 글을 퍼서 내가 그동안 보관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떤 가이드의 글



99년 9월... 이 날짜가 태국에 이주해 살겠다고 처음(이전에 여행 몇번 와 봤 지만...)발을 들여놓은 시기입니다. 벌써 6년이란 새월... 중간에 잠시 1년 6개월 정도 한국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들어와 도전해 보겠다고... 결국 다음 달 정도에 한국으로 철수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건 다른 이유로 태국에 건너와 살고 싶다고 하는 분 에게는 어쩜 해당되는 부분이 작겠지만, 여행업에 종사하고 싶다고 들어오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의 정보가 되리라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아이엠에프 직후 살아보겠다고 들어왔고 힘들게 살다가 다시 또 한국 들어가 적응하겠자고 그러다 못 견디고 다시 태국 들어와... 이젠 종지부를 찍습

 

니다. 태국이란 나라에 대해선 아마 한국에 돌아가도 많이 그리울 것입니다. 태국 속에 한국 이란 우물안에 살다보니 결국 떠나게 만드는 염증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본인은 태국에서 '가이드'로 살았습니다. 처음 태국에 발을 들여놓고 너무나 열심히 하고자 했던 기억들... 손수건 목에 걸치고 생수 한병 가방에 끼워 땀을 있는대로 흘리며 이곳 저곳 돌아다니던 기억들...

 

일 때문에... 유명한 호텔들 방문해서 구조 익히고 브로슈어 모으고 돌아와야 했던 숙제(예전엔 그렇게 공부했습니다.)를 마치고 나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달게 자곤 아침에 깨었습니다. 매일 매일 말 배우고... 역사를 외우고... 위치를 파악하고... 말도 안 통하고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라차다 허름한 원룸 아파트에 살면서 얼굴 터 놓은 중국계 아줌마의 밥집에 찾아

 

가면 말은 안 통하지만 접시가 터져라 카우팟 무를 줬고 20밧이면 배가 터지게 먹고 또 다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던... 말도 익히고 어느 정도 투어가 가능해 질 무렵 주머니는 그야말로 1밧자리 몇개만이 채워진... 선배들 새로 가이드 하겠다고 들어오면 그렇게 유흥지로 대리고 다니면서 돈 내게하고 돈 빌려다 쓰고 안 돌려주고... 가난하게 만들어야 일 열심히 한다는

 

'억지' 농간에 놀아나다 겨우 첫 팀 받 았던 기억... 어떻게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긴장의 연속속에서 간 떨어 지게 살다가 한달이 되어도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손님들 안내하는게 가이드가 아닌 이 계통의 진실을 터득해야만 돈이 된다는 사실에 한동안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져 해매 던(아마 지금의 생각과 같은...) 까이마이 (신입가이드) 생

 

활을 때고 나서 조금씩 돈이 된다는 즐거움에 먹을 것 입을 것 아껴 가면서 살았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잘 아시는 옵션에 쇼핑 열심히 했었고 조금씩 모아지는 돈들에 환희를 느끼며... 가이드... 노가다 입니다. 한시도 굴러가지 않으면 당장 밥을 굶게 되는 현실... 돈 좀 모아서 좀 살겠다 싶으면 찾아오는 싸스... 조류독감... 지진... 메스컴의 동남아 죽이기...

 

그러다 보면 일 끊기고 알량히 모아놓은 돈 조금씩 빼다 쓰다보면 도로 텅 비어버리는 지갑. 벌기도 힘들지만, 쓰기엔 더 없이 좋은 '소비국가'의 전형에 살면서도 가라오 께 가서 내돈주고 한번 마셔보지도 못 하면서 살지만 절대로 돈을 모을 수 없는 구조속에 살았습니다. 모든 물가가 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습니다면 절대로 아닙니다. 태국 사람처럼 먹고 태국 사람처럼

 

입고 태국 사람처럼 잔다면 싸겠지만... 또 다시 찾아온 조류독감에 태레에 지진에... 뭘 더 가져다 붙여야 최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지금이 그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의 3달을 놀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처럼 행복한 시간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를 예측하건데.... 절대로 더 오래 머물 면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그래서 떠나려 합니다. 너무나 많은 '가이드' 란 직업관 먼 일들을 일정 내내 해야 했다는 것에 대한 괴리감... 그렇게 하고도 얻는 것이 별로 없다는 빈곤감. 가이드 끼리 머리터지게 경쟁하면서(여행사에서 조장을 하지만) 실종 되버린 동료의식이나 직업적 사명감 같은 것에 안타까워 했습니다. 저가 페키지가 양산시킨 저처럼 가난한 가이드들이 여기

 

서 살고 있습니다. 가이드 하면 돈 많이 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오해 하지 마셨으면 좋겠네요. 대 다수의 가이드들이 여러분들이 그렇게 욕 하시는 투어 하면서 얻어지는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점점 하한가를 갱신하고야 마는 저가 페키지 요금에... 손님들 점점 더 영악해지고...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 관광상품의 소스를 한달에도 몇번씩 거쳐야하고... 즐겁겠습니

 

까? 맨날 같은 코스를 돌아다녀야 하는 가이드가? 욕을 먹으면서... 각종 메스컴에 시달리면서도...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면서... 결국 쉽게 손 땔 수 없는 '외국 생활'이라는 태두리에 갖혀서 거의 기계적으로 일하고 먹고 사는 것 뿐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한시도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말입니다. 팁도 의례 받았던 시기를 출발해 이젠 그

 

팁 마져도 여행사의 손아귀에 좌지 우지 해야되는... 상품가 낮추는데 활용되어져야 하는 단계까지 왔군요. 팁...그걸 누가 손 댈 수 있는 부분이라고 계산에 넣게 된 건지... 말 그대로 고마워서 성의 표시하는 부분 마저도 말 없이 개워 넣어야 하는게 가이드 입니다. 불쌍하지 않습니까... 점점 치솟기만 하는 생활비를 감당 하기 매 순간 벅차하고 있습니다. 예.. 불쌍하기 싫어서

 

전 과감히 이 일을 포기했습니다. 다신 미련 갖지 않으려 합니다. 날짜 정해두고.... (물론 한국 돌아가 다시 적응하는 커다란 문제가 있지만) 지금 처럼 마음편하게 태국 생활 해 본 기억이 없군요. 먹고... 자고... 책보고... 생각하고... 툭 하고 깊은 올가미에서 스스로 탈출 해 나오니... 아직도 많은 가이드들이 존재합니다. 악다구니치고 어떻게든 몇 개의 옵션을 더 팔려하고 더

 

많은 쇼핑 매출에 목숨(정말 목숨이라고 말 하는 건 먹고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걸고 열심히 하다가 그래도 적자내고 돌아서며 온몸에 땀냄새를 맏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죽기보다 싫지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사람들. 특히 가정이 있는 가이드들 어쩌겠습니까. 박 차고 나가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많은 가이드들이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옹호도 아

 

닌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 뿐입니다. 점점 더 심해 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이드의 등골을 뽑아 부자도 되지 못하고 근근히 현상유지만 해 나가는 여행사가 있는 한... 그들은 한 없이 불쌍한 앵벌이 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벌써 부터 저쪽 캄보디아에선 저가 페기치에 지쳐서 가이드 단체로 싸구려 손님들 안내하지 않겠다고 단합을 하고 나섰습니다. 더 많이 벌겠자가

 

아니라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모순의 고리가 여행자나 여행사나 가이드나 모두 만족 할 수 없는 결과로 까지 치 닫는지 모르겠지만, 공급때문이 아닌 수요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라는(칼 자루는 여행자가 잡고 있기에...) 공염불을 외워 봅니다. 싼 거 좋아하고... 한푼이라도 깍아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여행자 아니 한국 사람들의 '나랑 무슨

 

상관있는데...' 식의 관행들이 우선 아니겠 습니까. 제 값 치루고 들어와서 가이드 수고비 주고 정당한 써비스 받아 잘 놀고 기쁘게 돌아가기.... 이게 전부인 것을... 조금 더 깍고 조금 더 지출폭 줄이고 수고비 같은 거 안 주고 싶고... 이러게 출발한게... 아마 앞으로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터기 자꾸 올라가는게 두려워 바깥 풍광은 구경하지 않고 계속 미

 

터기만 바라다 보며 속 끄리는.... 감히 말 합니다. 이게 한국 사람의 여행 페턴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 만나는게 좋았던 사람입니다. 나로 인해서 즐겁게 여행 마치고 좋은 추억 만들어서 돌아가면 그게 보람 이었던 한 가이드 였습니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시절에... 점점 힘들어져서 악다구니 치지 않으면 절대로 먹고 살 수가 없는 지금의 현실을 외면하고야 마는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누가 가이드 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은 마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 6년여의 시간들...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다시 무언가를 해야하는 악날하리 만치 가혹한 시험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디어서 너무나 질려서 이젠 다시는 가이드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되어 잠시 홀가분한 시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전 한국으로 돌아갑니다만... 어렵

 

게 살고 있는 가이드들 너무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태국 여행오시면 절대로 옵션 안하고 절대로 쇼핑 안 하겠다는 단합(현실적으로 불가능 하지만)이 된다면 지금의 페턴이 바뀌지 않을까 꿈을 꾸어 봅니다. 회사도 망하고 가이드도 굶고... 그럼 그런 저가 페키지 상품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대신 옵션도 쇼핑도 존재하지 않는 투어가 된다면 이렇게 서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값 다 주고 들어와 옵션에 쇼핑 안 해도 되는... 그럴 필요도 없는... 한약방이 문 닫고... 뱀집이 문 닫고... 쇼핑 점이 문 닫고... 오로지 여행만 할 수 있을때... 전 다시 기쁘게 손님 맞이하는 가이드가 되고 싶습니다. 방콕 ‘깐깐하게’ 즐기기 인천~방콕 비행시간은 5시간. 마침 방콕에 최근 신공항이 문을 열었다. 역시 공항이 좋아야

 

여행 기분도 난다. 수바나부미공항(www.airportsuvarna bhumi.com)은 아시아의 최신 허브답게 규모가 엄청나다.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공항 오픈에 맞춰 신형 도요타로 일제히 바뀐 리무진 택시를 탈 것. 가죽 소파가 있는 전용 대합실도 근사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900바트(약 2만5000원)부터. ▲ 레스토랑 '쿠피'의 새우요리 어떤 호텔에서 자느냐가 여행의 경험

 

을 좌우한다. 방콕에 즐비한 다국적 체인의 초특급 호텔은 물론 어디라도 근사하다. 추천하고 싶은 곳은 콘래드호텔(www.conradbangkok.com)과 메트로폴리탄호텔(www.metropolitan.como.bz). 둘 다 요즘 방콕에서 한창 ‘뜨는’ 곳이다. 패션 피플이 몰리는 세련된 호텔 보다는, 좀 더 로맨틱한 호텔을 찾는다면 유지니아(www.theeugenia.com)호텔이 있다. 등급은 낮아

 

도 과거 식민지풍의 하얀색 건물이 이색적이다. 방에는 캐노피 달린 ‘공주풍’ 침대가 있다. 콘래드호텔은 스탠다드룸이 1박에 7650바트(21만4000원선·11월1일부터)선. 유지니아 호텔은 스위트룸만 12개. 가격은 5400바트(15만원선) 부터다. 방콕이야말로 다른 어떤 도시보다 독특한 ‘오픈 루프톱(open rooftop)’ 바(bar)가 즐비한 곳. 방콕을 100% 만끽하려면 50층 이상 높이

 

에 붕 떠 있는, 밤 하늘 아래 그대로 노출돼 있는 옥상 바에 가야 한다. 제일 유명한 곳은 스테이트 타워 63층에 있는 시로코(Sirocco, www.thedomebkk.com). 너무나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서 프로포즈해도 실패한다면, 그냥 포기하는 게 좋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좀더 부드럽고 은밀한 곳을 원한다면 반얀트리 호텔 61층 야외 바 버티고(Vertigo, www.ban

 yantree.com)로 갈 것.

ㅡㅡㅡㅡㅡㅡㅡ5편으로 계속ㅡㅡㅡㅡㅡㅡㅡㅡ


11 Comments
Vagabond 06.25 21:58  
많은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솔직히 저도 늘 궁금하고 황당했던 부분입니다
1.도대체 왕복항공권에 3박5일 호텔까지 포함해 239,000원이면
내가 지금 내고 다니는 항공권은 바가지인가?
2.가이드팁은 $40 마사지는 $50로 못박는건 도대체 어느나라 룰인가
3.왜 가이드 출신이라면 다들 슬금슬금 피하며 사귀려고 하지않는가 등등
백패커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더불어 다음글도 매우 기다려집니다
사실 오늘도 종일 글 올라오길 기다렸어요 ㅎㅎ
겨울나그네 06.25 22:27  
[@Vagabond] 감사합니다.  가이드을 하다보면 정말 죽고싶을 때가 있었어요. 허지만 그거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야 생활비 써가면서 태국에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보다 싫은 귀국을 해야 합니다. 누구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누가 가고 싶겠습니까?
가이드를 하면서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싶은 심정일 때가 많았어요.
항공사 와 대형 페케지 여행사들의 운영방식이 맨 아래 가이드의 등꼴을 뽐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거에 대해 나중에 한번 설명하려고 합니다.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Vagabond 06.25 23:32  
[@겨울나그네] 자격증이 필요한것도 아니고,
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천지삐까리고,
국내에선 우후죽순 생겨나는 여행사들의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시골 노인네들도 일년에 몇번씩 떠나는...
바야흐로 여행의 수요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라 그런듯합니다

팬데믹 직전까지 저는 한국연예인들이 제일 부러웠어요
꽃보다청춘,할배,윤식당,짠내투어 등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이유로
방송국에서 경쟁적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줬거든요 ㅋ

한국인들이 그토록 중국인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어떤 일이라도 한다는 점인데...
사실 저는 우리가 중국인과 뭐가 다른가 했었거든요
많은 가이드들이 양심에 대해, 정당함과 떳떳함에 대해
깊은 갈등을 해왔다는 이야기는...
사실 저에게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머독 06.26 14:51  
재미있는 드라마의 다음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들어와서 새로운 글이 나왔나 확인하곤 합니다. 한번뿐인 인생 무슨 일을 하였건 간에 최선을을 다한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결과가 어쨋든 간에 저같이 굴곡이 없이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절박하지  않아서 혹은 최선을 다해보지 못한 삶이 부끄러워 집니다. 저도 이 나이에 어찌 굴곡이 없었냐만은 그저 결과가 낫기에 평범하게 아이들 키우고 살기에 성공했다기 보다는 그저 만족하고 살려고 합니다.
겨울나그네 06.27 10:29  
[@머독] 감사합니다 누구나 재미있는 사연은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세요
malitaksin 06.26 18:49  
재미있어요
다음편 기대 합니다
2편에 나온 김 사장님 식당에 가끔 갑니다 ^^
ktgeon 06.26 22:38  
96년 97년 모두투어 직원이였습니다.  가이드는 아니지만. . IMF가 와서 지금은 다른일을 하지만 상당히.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시간 가는줄 몰랐네요.  글을 참 잘쓰시네요.  혹시 제. 지인중에 차범준이라는 분이 계신데. 혹시. 아신다면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제 메일은 ktgeon@hanmail.net 입니다
겨울나그네 06.27 10:27  
[@ktgeon] 들어본 이름 같기는한데 잘 모르는 분입니다
가솔린집시 06.26 23:47  
오늘도 잘읽고 갑니다^^
할리 07.11 16:24  
새벽을 지새우며 읽다가 이제 낮시간에도 짬을 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겨울나그네 07.11 19:46  
[@할리] 감사합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