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느 태국의 관광가이드 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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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느 태국의 관광가이드 였다 2.

겨울나그네 10 504

나는 태국의 관광 가이드 였다 2.



내 이야기는 시간대별로 하는게 아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적어나갈 뿐이다.

나는 전문적인 직업 작가도 아니고 글을 짜임새 있게 쓰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글의 내용이 순서도 없고 어수선 하더라도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치앙마이에 2010년 쯤 올라왔다.

잠시 한국에 나가 있던 나는 친하게 지내는 전영환씨에게 전화를 했고 영환형은 치앙마이로 오라고 권했다.


방콕으로 들어갔다가 몇일을 지낸 후 기차를 타고 치앙마이로 올라갔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은 네가지가 있다.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운전해 가거나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는 것이다.

운전을 해서 가면 지루하고 버스를 타고가면 너무나 강하게 틀어주는 에어컨 때문에 잘못하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

빨리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시간이 많다면 기차를 타고 가는게 좋다.

나는 가능하면 기차 여행을 선호한다.


태국의 기차는 장거리를 갈 경우에는 의자를 접어서 침대를 만들어주는데 조금 비좁지만 편하게 누워서 갈 수가 있고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를 주문하면 가져다 주는데 먹을만 하다.


이른 아침에 치앙마이역에 도착하면 택시 역할을 해주는 송태우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자기가 가야할 지역을 합승해서 가면 된다.

배낭 여행족이라면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되는데 대부분 같은 지역에 모여 있어서 게스트하우스 이름만 알려주면 데려다 준다.

치앙마이에는 그전에도 몇번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도착하자 빈방을 하나 배정 받고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영환형에게 연락을 하고 저녁에 영환형이 일하고 있던 여행사의 사장을 만났다.


김사장은 방콕의 호돌이 여행사에서 가이드 일을 했었고 소위말해 잘나가는 가이드 였다.

그러다가 무슨 연유에선지 치앙마이로 올라왔고 그린월드 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영환형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김사장은 처음부터 나에게 특별한 마음을 써주고 여러모로 잘 대해 주었다.


가이드가 일을 끝내면 회사에 가서 정산서를 작성하고 정산을 받는다.

그렇게 정산해서 가이드가 받아갈 돈을 한달에 한번주는 회사도 있고 일주일에 한번씩 주는 회사도 있고 그때 그때 곧바로 정산을 해주는 여행사도 있다.

프리랜서인 가이드의 입장에서는 곧 바로 정산을 해주는 여행사가 좋을 수밖에 없다.

월급제도 아닌 가이드가 무슨 한달에 한번 정산을 해준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십년을 일해본들 퇴직금도 없는 프리랜서가 말이다.


김사장은 정산이 쿨했다.

가이드가 일을 나가서 무슨 돈을 어떻게 얼마를 쓰더라도 모두 다 인정해줬다

자기가 오랜시간 가이드를 해봐서 가이드의 심정과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어쨌든 그린월드에서의 시간은 즐거웠다.

김사장은 일이 끝나면 거의 매번 가이드들을 데리고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사줬다.

태국의 일반인은 물론 가이드들 조차도 알지 못하는 특별한 장소에 숨어있는 식당을 찾아내고 그런곳을 가이드들에게 소개하고 밥을 사주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김사장은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잠시 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사직에 싫증을 내고 여행사에 취직해서 직원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태국에 들어왔고 가이드로서 최고점을 찍어본 적도 있었고 자유분방하게 자기 삶을 엔조이 할 줄도 아는 멋쟁이였다.


김사장은 방콕에서 가이드를 하면서 태국 여자 의사를 한명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깊은 관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사장은 어찌된 일인지 의사 애인과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언젠가 결혼을 해야될 것 같았으나 보이지 않는 뭔가가 두사람을 갈라놓고 있었다.

여자 의사의 집은 방콕에서도 알아주는 부잣집이었고 만일 결혼만 한다면 돈 걱정 할 일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이 펼쳐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결혼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싸우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맺어질 인연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김사장을 사랑했던 그녀는 끝내 다른 인연을 만나는 걸 거부하고 지금도 혼자라고 한다.


김사장은 그 후로도 몇명의 여자와 인연이 있었으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항상 혼자가 되고 말았다.


김사장은 한번도 정식 결혼을 해본 적은 없어도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도 열심히 돈을 벌어 양육비를 보내주고 있다.

한국에서 얻은 큰 딸은 시집을 보냈고 치앙마이에 와서 뒤늦게 얻은 둘째 딸과 아들은 치앙마이 근처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친구의 사생활을 너무 다 밝히는것 같지만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할 도리 다 하고 있는데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남의 사생활을 욕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나는 이 글에서 영웅담을 쓰고 있는것이 아니다.

각자의 처지와 운명과 개성이 다 제각각인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태국에서 살아왔던 사연들을 말 할 뿐이다.

좋은 일들도 있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많고 그리고 사건도 많았었고 어쨌든 우리는 같은 업계에서 같은 시간을 똑 같이 공유하며 지냈다.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어떻게 얻었든 자기 아이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친구의 아이들은 하나 같이 똑똑하고 건강하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나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자랑을 하기도 한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린월드에서 돈을 벌었고 여행사 이후의 사업을 고민하던 친구는 치앙마이의 대학로 라는 님만해민 거리의 메인로드에 접해있는 큰 규모의 장소를 임대했고 내부수리 후 카페겸 레스토랑을 오픈 했다.

한동안 잘 되는 듯 했으나 가게 매출이 점점 떨어져 어렵게 운영을 하다가 코로나가 오자 속절없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오똑이처럼 다시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내 친구 김사장

 언제나 지금처럼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린월드를 추억하면 우리가 늘 모이던 사무실 앞 빈공간의 의자들과 티테이블 그리고 사람좋은 영환형의 재미있는 얼굴 표정이 떠오른다.

사무실 바로 앞 길 건너편에 작은 개울이 있고 개울 둔덕에는 빨간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영환형의 구수한 입담으로 왁자지껄하고 시끄럽지만 활력이 넘쳐나던 사무실 분위기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여행사의 사무실 분위기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일터가 즐거우면 삶의 질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일터가 불편하면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된다.

사업장을 가진 사장이라면 모름지기 즐거운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김사장은 그런 면에서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노력도 많이 한다.

가이드들이 사무실에 나오고 싶게 만든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사람들이 모이고 싶도록 만들어 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분명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이든 어디든 사무실 근무자들이 입는 양복 수트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자유복장을 하고 근무하면 안되는 것일까?

미국 대통령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근무하고 한국의 대통령이 골프복을 입고 집무실에 나와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그대로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치면 나라가 망할까?


모든 조직의 직장인들이 편한 복장을 하고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갖고 상하좌우 모든 구성원들끼리 격의없이 토론하고 일을 하면 회사가 망할까?

마음 속에 늘 품고 있는 궁금증이다.

코로나 시국에 한국에 나와 이런 저런 일을 찾아서 닥치는대로 일을 다니다 보니 그린월드를 편하게 운영하고 돈도 잘 벌던 김사장 생각이 간절하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이란 자기가 어렵고 힘들 때 따듯한 밥이라도 한끼 사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건 당연하다.

그런 사람중에 이근성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한국에서 이십대일 때 이미 제법 큰 여행사를 운영했고 제주도 국내투어를 장악하려다가 그곳의 기존 여행사와 쇼핑센터들의 담합으로 큰 손해를 보고 회사 문을 닫아야 했던 이근성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치앙마이에 와서 친구인 김사장이 운영하는 그린월드에서 처음 가이드를 시작했으나 누구못지 않게 일을 잘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리고 번돈의 대부분을 한국으로 송금하여 남아있던 빚을 청산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일과 돈에 대한 욕심이 때론 지나쳐서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사람이고 뒤끝도 없다.


한번은 방콕에서 일하던 내 후배 가이드 장동보가 치앙마이에 일을하러 올라왔다.

장동보는 체격도 준수하고 무에타이를 수련하고 선수 생활까지 한 적이 있는 파이터이기도 하다.

그러니 웬만한 폭력배 한 두명은 장동보에게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린월드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장동보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근성이가 사무실에 와서 자기 팀을 배정받자 일을 하고있던 장동보의 태국가이드를 바꿔버렸다.

이근성은 오직 한명의 태국가이드만을 고집했고 그 가이드가 장동보와 일하고 있었다.

장동보는 황당할 일이었다.  투어중에 새로 바뀐 태국가이드는 아직 한국투어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가이드였다.

저녁 식사를 치앙마이 아리랑 식당에 예약하라고 하고 손님들과 함께 식당에 갔는데 예약이 안되어 있었다.

태국가이드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치앙라이에 있는 아리랑 식당에 예약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리랑 식당은 치앙라이와 치앙마이 두군데에 있었다.

아직 투어에 익숙치 않은 초보 가이드가 실수를 한 것이다.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투어중에 가이드를 빼간 이근성에게 화가 잔뜩난 장동보가 나중에 사무실에 함께 모였을 때 이근성에게 따지고 들었다.

발끈한 이근성이도 나름 한주먹 한다고 자부하는터라 한번 붙자는 거냐고 일어서는 찰나 장동보의 킥이 이근성의 얼굴로 날아와서 꽂혔다.

웬만한 사람이면 그 한방으로 끝났겠지만 이근성이도 뚝심이 대단했고 싸움이라면 나름 자신있는 처지라 쓰러졌다 일어나 곧 바로 반격의 주먹을 날렸다.

그걸 가만히 맞아줄 장동보가 아니었다.


슬쩍 피하면서 또 한발의 킥을 날리려는 순간 내가 두 사람 가운데 뛰어들었다.

씩씩거리던 이근성은 장동보가 맨 몸으로 당해낼 적수가 아니라는것을 곧 깨닿고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망치를 손에 들고 나왔다.

장동보는 망치를 들고 나온 이근성을 보고도 피할 생각이 없었다.

큰 일이 벌어지겠구나 생각한 내가 화를 내면서 강하게 소리쳐 싸움을 말리는데 성공했다.

와일드한 남자들인지라 한 두시간이 지나자 언제 서로 싸웠냐는듯이 서로 얼싸안고 화해를 하더니만 그 다음날부터 장동보는 이근성이 행사하는 버스에 핼퍼로서 같이 올라타고 이근성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가이드 경력은 장동보가 훨씬 오래되었으나 수입이 높은 가이드에게 배우기 위해서 스스로 핼퍼를 청하고 또 그것을 이근성이 쾌히 받아주었던 것이다.

근성이는 내가 힘들때 내게 용돈까지 쥐어주던 친구고 여러면에서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치앙마이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근성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태국에서 비자 기간을 넘기고 오버스테이를 했었는데 이 사실을 누군가 알게되어 이민국에 고발을 해버렸다.

나중에 고발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나 다 끝난 일이었다.


만일 누구라도 무슨 이유이든 비자 기간을 넘겨 오버스테이를 하게 되면 스스로 이민국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그것은 태국 이민국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설령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야 할 수 밖에 없을지라도

일단 그 사람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한적이 있었다는 점은 나중에 정식으로 문제가 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법에도 인정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의 고발이나 사건을 일으키고 문제가 되어서 이민국에 끌려가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

사람이란 하나 둘씩 적을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큰 손해가 발생하게 되어있다.

이근성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무슨 영문이지 몰랐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성이는 부인이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치앙마이에 친구도 많았기에 별 걱정 하지 않고 금방 잘 해결하고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방콕에 내려와 있어서 쉽게 치앙마이에 가 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내가 볼일을 다 마치고 치앙마이에 돌아와서 이근성의 소식을 들으니 한국으로 추방되었고 향후 십년간 태국 입국이 금지 되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이렇게 태국에서 추방되면 십년동안 태국 입국이 금지된다.


한국으로 추방된 이근성은 태국으로 오지 못하고 태국의 이웃나라 라오스에서 현재도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어떻게든 태국으로 되돌아 오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속절없이 몇년의 시간이 흐르자 끝내는 한식당을 하던 부인과 헤어지고 말았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홀로 쓸쓸히 지내던 이근성은 외로움 때문에 미얀마 여자를 새로 만나더니 나이 육십이 되어 예쁜 딸까지 얻었다.


육십살이 되어 얻은 딸은 남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니 어떤 무게일까!

어리디 어린 딸을 쳐다보는 이근성의 심정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성장하면 아빠의 인생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아마도 먼 훗날 아이가 사십살 오십살이 되면 아빠의 인생을 이해 할 수도 있겠지만 친척 하나 없는 라오스에서 국적도 앞으로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버린 이근성을 누가 욕 할 수 있겠는가!

인생은 소설보다 소설같고 영화보다 영화같은것을....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하루빨리 코로나 시국이 끝나야 한다.

아직은 일을 할 수 있는 근성이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못하고 기약없이 기다리는 친구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욕심은 좀 있어도 늘 힘차게 살아가던 친구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내 심정도 무겁긴 마찬가지다.

털어서 먼지도 나지 않을 사람이 이세상 어디에 있을까!

이근성도 사람이고 한두가지 흠이 왜 없겠는가?

다만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관계가 조금 부드럽지 않은 면이 있고 그것 때문에 늘 적을 만들며 살았지만 본질적으로는 참 좋은 사람이고 의리도 있는 사람이었다.


근성이가 추방되어 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시간에 근성이는 나쁜 브로커에게 설득되어 이십만바트의 돈까지 날렸다.

태국 이민국에서 정식으로 처리되어 추방된 사람에게 무슨 힘을 어떻게 써서 입국 금지를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처럼 속이고 큰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라면 양심은 없고 양심이 있었던 흔적마저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을 악용해서 돈을 갈취하는 사람도 한국 사람이었다.

나중에 크나큰 벌을 받을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도 뻔뻔한 사람이 있다.

그러니 그런 인간들은 아예 처음부터 안보고 사는게 최선이다.

그러려면 사람보는 안목을 좀 길러야 한다.

큰 일을 당할수록 침착하게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당황하고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려고 할 때 나쁜 인간들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된다.

날이 갈 수록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악해져가는 세상이다.

사는 날 동안 정신 바싹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치앙마이에 있는 아내와 자신의 모든것을 되찮기 위해서 발버둥쳤던 이근성은 끝내 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는 모든 것들을 운명처럼 받아 들이고 라오스에서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뒤늦게 얻은 딸의 재롱을 받으며 잠시라도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해본다.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은 없다.

주어진 운명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운명은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과 하등 동물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태국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이 와서 살기에 이만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은 나라가 태국이다.

태국인은 한국인을 무시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대를 보내주고 많은 희생을 했고 전후 복구사업까지 도와주었던 나라가 태국이다.


또 다른 친구는 진영복이다.

이근성과 진영복은 앙숙관계다.

치앙마이 그린월드 여행사의 에이스 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다 보니 가이드라이벌 관계가 된 친구들이다.

한번은 나까지 세사람이 공항에 미팅을 나갔다.

손님을 태우고 날아오는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기 적어도 한시간 쯤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가이드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안부도 주고받고 한다.

그런데 그날 공항에 도착해서 가이드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가고 있는데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고 있더니만 급기야 치고박고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가까이 근처에 접근했을 때는 아무래도 힘이 약한 진영복이가 밀리고 있었다.내가 두사람을 급히 뜯어 말리지 않았다면 진영복이가 많이 맞을뻔 했다.

 이것을 고맙게 여겼는지 진영복이 내게 잘해주기 시작했고 인간미 넘치는 진영복이 싫지 않았던 나도 호응해서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가 되었다.

치앙마이의 겨울 시즌이 끝난 몇년 전 초봄에 진영복은 딸이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베트남의 다낭으로 떠났다.

많이 아쉬웠다.

옆에 있을 땐 잘 모르다가 그 사람이 떠난 뒤에야 절실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진영복이가 내게는 그런 친구였다.

치앙마이에 있을 때 영복이가 내게 해줬던 만큼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항상 갖고 있다.

다낭에서 언젠가 반드시 재기해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진영복의 군대시절 사진을 보면 원빈하고 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다.

그러나 나이들고 누구나 모습은 변하게 마련이다.


진영복이는 원래 축산학을 전공하고 꽤 큰 규모의 축산업 유통을 하기도 했었던 사람이다.

조금 늦은 나이에 태국에 들어왔고 치앙마이에서도 축산업을 시작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태국이 살기 좋은 나라 라고 생각이 든 영복이는 한국으로의 철수 대신에 이런저런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여행사에 들어와 가이드를 시작했다.

가이드를 시작하자마자 쭉 상승그래프를 그려대던 영복이는 치앙마이 전체 가이드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가이드를 잘했다.

보통의 가이드들은 일을 나가는것을 힘들어 한다.

그런데 진영복과 이근성은 달랐다.

일을 즐기는듯 보였다.

즐기는 사람을 못당한다 라는 말이 있다.

나의 치앙마이 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두 친구가 지금은 모두 태국을 떠났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치앙마이고 친구들의 얼굴이다.

비록 한 때 였으나 헤어지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친구들아

부디 잘 살기만을 바란다.


나는 가이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한번도 탑가이드가 되어본 적이 없고 바닥만 기어다니는 가이드도 아니었다.


가이드 생활을 하는 동안 순전히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에 원형 탈모증이 두번이나 생겼었다.

그러니 나는 가이드 일이 잘 맞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 일을 나갔다가 끝내고 사무실에 와서 받아가는 정산 금액이 진영복 이근성 두 사람은 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회사는 돈 잘 벌어오는 가이드에게 더 좋은 팀을 배정하고 돈을 못벌어오는 가이드에게 돈 벌기 힘든 팀을 배정한다.

내가 사장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이드는 한번 상승 곡선을 타면 계속 상승곡선을 타고 한번 하락 곡선을 타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더더욱 하락 곡선을 타게 된다.

한마디로 선순환 악순환의 원리가 가이드 업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가이드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서비스 업이다.

남을 위한 무료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돈을 잘 버는 가이드는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고 돈을 벌지 못하는 가이드는 늘 풀이 죽어 있고 옷차림새부터 남루하다.

그러다가 어느날 부터 보이지 않게 된다.

자기에게 잘 맞지 않는 직업이라면 빨리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게 좋다.

가이드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얼굴 표정부터 달라지고 생기도 있어 보인다.

그러다가 내리막을 타면 그때부터는 모든 일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도 꼭 하강곡선을 탈 때 일어난다.

또 안전사고도 나게되고 진상 손님들이 와서 애를 먹이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컴플레인을 한다.


서두에 언급했던 전영환씨도 한참을 잘 나가다가 하강곡선을 타게되자 정신없이 미끄러져서 바닥을 친 적이 있다.


멀쩡히 잘 달리던 버스가 고장이 나서 일정이 꼬인 날 공항에 도착해서 손님들의 단체보딩을 하기 위해 여권을 다 걷어서 태국가이드에게 줬는데 그 가이드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손님들의 여권을 몽땅 다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때부터 영환형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여권을 찾아 내라는 손님들의 성화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영환형은 그 와중에 자기의 손가방을 또 잃어버리게 된다.

손 가방 안에 신분증은 물론 돈도 있고 한마디로 가이드의 손가방은 가이드의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정신이 거의 다 나가버린 영환형이 손님들에게 돌아와 나도 손가방을 분실했다고 말하자 더욱 더 세찬 질책이 돌아왔을 뿐이다.

이렇게 가이드와 손님사이에 신뢰 관계가 깨어지면 그 이후는 정말 힘들어 진다.


가이드가 무슨 말을 해도 손님들은 믿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만 보낸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입을 닫고 있을 수도 없고 .... 죽고 싶어지는 것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한 손님들을 다시 호텔로 모시고 와서 재우고 먹이고 그 다음날 단체로 한국 대사관에 가야하고 여권 분실 신고 후 여행자 증명서를  발급받고 비행기표를 새로 끊어야 하고 비행기 탈 때까지 추가 관광을 시켜야 하고 하루치 버스비와 연료비를 줘야하고 태국 가이드비도 하루치 더 줘야하는 이 모든 돈을 가이드가 다 물어내야 한다.


만일 여권을 잃어버린 날이 금요일이면 다음 주 월요일 까지의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가이드가 책임져야 한다.

가이드에게는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가까이 했던 사람들중 여자 문제로 원한을 사서 죽은 사람은 없다.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유명한 재벌가의 아들이 태국 파타야에 있던 콘도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를 내고 현장에서 죽은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 추락사고처럼 보였고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자기의 태국 여자친구에게 평소 폭언과 폭력을 행사 했었다는 주위의 증언이 있었던 점으로 보면 누군가가 강제로 밀어서 떨어져 죽게 했었을 수 있다.


만일 태국 여자가 이성에 대해 원한을 갖는다면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충고가 아니라 그냥 알려주고 싶다.

나 또한 태국에 가자마자 들었고 나는 그 말을 깊이 명심했기에 단 한건도 이성에게 원한을 품게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알려주는 것이다.


태국 여자를 조심하라.


이 아홉 글자를 무조건 명심하기 바란다.

태국 여자는 한국 여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 여자는 원한을 품어도 칼을 들고 남자를 죽이려고 들지는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태국 여자는 완전히 다르다.

자기가 상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고 버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그것도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후에 ....그렇게 배신 당했다고 느끼면 상대 남자의 목숨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게 된다.


여자가 직접 칼을 휘두르는 경우도 많고 약간의 돈을 주고서도 킬러를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렇게해서 죽은 한국 남자도 한 둘이 아니다.

특히 킬러들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여자의 오더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맡아서 처리해 준다.

지금도 태국에는 직업적으로 활동하는 킬러가 많다.

그러니 태국 땅에서 누군가에게 원한 살 일은 하지 않는게 현명한 사람이다.


또 애인이 있거나 결혼한 기혼자와 간통을 벌이다 그 사실을 남편이나 여자의 남자 친구가 알게 되었다면 그 남자의 목숨은 그때부터 반쯤 죽은 목숨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국인 여행사의 사장이 자기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유부녀와 한동안 간통을 범하다가 사실을 알아챈 그녀의 군인이었던 남편에게 자기가 살던 콘도 침실에서 총을 맞고 죽은 적도 있다.


백과장을 떠나보냈던 같은 절에서 장례식이 있었고 죽은 사람의 철부지 어린 아들은 아빠의 죽음 앞에서도 태연하기만 했다.

마음이 아파서 아이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고인이 야속했다.

고인과 별다른 인연은 없었으나 모두가 다 방콕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이기도 하다.


현역 군인이었던 그 사람은 태연한 모습으로 자수를 했다고 알려졌고 형도 가볍게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건 이후 그 콘도에 살던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로부터 십년쯤 뒤에 일어난 사건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어떤 남자 가이드가 있었다.

한국에 살던 지인으로부터 한국 여자를 한명 소개를 받았는데 대여섯살 된  아들을 한명 가진 이혼녀였다.

이 여자가 태국으로 아들과 함께 와서 가이드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결혼도 하기 전에 동거생활부터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가이드가 평소 남몰래 마약을 하는것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마약을 판매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남자는 사업을 한다고 여자를 속이고 여자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동거하던 여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상당량의 마약을 거액을 들여 구입하고 집에 보관을 하고 있던 가이드가 집을 비운 사이에 집안을 청소하던 여자가 하얀 가루 봉지를 발견하고 화장실 변기통에 붓고 물을 내려 버렸다.


집에 돌아온 가이드와 여자는 그 일로 인해 크게 싸우다가 그만 여자가 죽고 말았다.

그리고 완전히 미쳐버린 남자는 죄없는 어린이를 ....동거하던 여자의 어린 아들까지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대형 마트에가서 톱과 칼 대형 쓰레기 봉지를 구입한 후 두 모자의  시체를 화장실로 옮기고 토막을 내고 승용차에 실어 방콕 외곽의 한적한 웅덩이에 던져버리고 태연하게 다음 팀을 받아 파타야로 손님들과 함께 투어를 나갔다.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가이드와 함께 즐거운 태국 관광에 나선 손님들은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여자와 함께 교회에 다니던 교민 여자 한 분이 죽은 여자에게 전화를 여러번 했는데도 받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지 남자에게 전화를 했다.

모른다고 하는 남자의 말을 이상하게 여긴 여자분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고 신고인의 증언을 들은 경찰들은 단순 실종사건이 아닌 잠정적 살인 용의자로 남자를 주목하고 수사를 했다.

몇일 후 남자가 집근처 대형마트에서 톱과 검은색 비닐봉지를 사는 장면을 시시티브이로 확인한 경찰은 또 다른 팀을 태연히 행사하고 있던 가이드를 파타야에서 잡아 경찰서로 압송했다.


눈 앞에서 경찰이 와서 자기들을 안내하던 가이드를 잡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된 손님들이 받아야 했을 충격은 어떠했을까!

경찰들은 범인을 심문한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이 사건은 한인 사회 뿐 아니라 태국사회 전체에도 커다란 충격을 줬고

마약을 하는 사람이 어떤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해줬다.


나는 평생 단 한번도 마약을 해본 적이 없다.

마약 따위에 인생 전체를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태국이든 어디서든 마약을 해보라는 유혹을 받는다면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말고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호기심에 한번 사용하게 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악마의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또 한가지 멀리해야만 할 것이 있다.

도박이다.

태국은 도박이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다.

그래서 카지노 허가가 나지 않는다.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황사장의 도박으로 인한 운명이 바뀌게된 케이스는 정말로 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 경우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박에 빠져서 인생을 완전히 망치게 된다.

베트남의 다낭에서 몇달 지낸 나는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모든 것을 날리고 자살을 선택하는 한국인이 여러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생을 도박에 희생하기에는 삶이 너무나 고귀하다.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건가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지 고작 마약이나 도박으로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희생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무가치한 일인가!

작금에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통탄 할만한 사건들의 배후에 악마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토막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수년 후

우연히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사건이 벌어졌던 콘도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방문했던 콘도가 사건이 일어났던 콘도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빈방을 보러 왔다고 하자 여자 직원 한명이 나를 안내했다.


방을 안내하는 여직원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의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서는 여직원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불현듯 몇년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이 떠올랐다.

콘도 내부를 둘러보니 상당히 오랬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퀴퀴한 냄새가 나고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내가 여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 방이 몇년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방이 아니냐고

그랬더니 망설이는 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방을 나온 내가 다시 물었다.

그동안 이방을 한번도 임대하지 않고 빈방으로 두었느냐 

고  그랬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떤 한국인 부부가 이 방에 와서 살았는데 거의 매일 저녁 큰소리로 부부싸움을 하다가 한달도 못살고 나간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더 이상 집을보러다닐 기분이 아니어서 그냥 살던 집으로 와버렸다.



---------3편으로 계속---------



  



10 Comments
Vagabond 06.23 12:21  
커...
평범한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가
냉혹한 현실이었다가
액션 느와르였다가 범죄 살인사건까지...
글을 조금만 다듬으면 정말 출간해도 될것 같습니다
마치 예전에 금고털이였던 자신의 과거를
대도라는 자전적 소설로 승화시키고
마침내 검거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다 재소자에게 듣게되어
실미도라는 책까지 쓰신 백동호 작가의 글이 떠오릅니다
다소 산만한 전개와 간간이 틀린 맞춤법은 전혀 거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것 그대로의 거침이 저는 좋네요
근데...실명들을 이렇게 다 거론해도 괜찮은건가요?
아님 가명을 쓰신건가요?
겨울나그네 06.23 13:09  
가명으로 바꿨습니다
킁타이 06.23 18:27  
아!!!!
글을 중간에  포기를 못하게 하시는군요
3편 목빠지게 기다려 봅니다
머독 06.23 19:26  
세월이 참. 전역하고 30년이 넘었는데 어찌그리 지났는지. 거의 매년 가는 병콕이 조금씩 조금씩 바껴서 크게 모르다가도  20년도 더 전에 첨으로 라차다에 묵었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제기억에 그레이스호텔였던 것 같네요. 호텔안에 한국음식점이 있었고 한국인 관광객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당시 MRT가 없었고 밤에 걸어나가면 길따라 중고차 파는업체인지 길따라 조금 보이고 횡 했었는데 큰개도 길가에 자주 마주처서 많이 놀래기도 한 동네가 뭔 콘도도 그리 많아 졌는지 참.
젊을때는 태국에서 살고 싶어 고민도 많이 했는데 또 돌아보니 일케 직장생활 하면서 다니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것 같기도 합니다. 은퇴이민 신청하려고 하는데 아직멀었네요.
겨울나그네 06.24 21:36  
[@머독] 태국 오랫동안 살았더니 남는게 없어요
은퇴하시고 한 두달씩 쉬다 가세요
뽀뽀송 06.23 22:27  
재벌가의 아들은, 대한민국 오렌지족의 원조. 너무나 유명한 분이셨죠.
역사의 산 증언을 듣는 느낌이네요.
Vagabond 06.25 00:04  
[@뽀뽀송] 기억이 가물가물 도저히 생각이 안나는데요
아무리 검색해도 안나오고 ㅋㅋ 미치겠네요
좀 갈쳐주셔요
뽀뽀송 06.25 00:48  
Vagabond 06.25 08:45  
[@뽀뽀송] ㅎㅎㅎㅎㅎ 생각났어요
감사합니다
가솔린집시 06.26 23:11  
재밋게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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