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숫자로 살펴보는 타이족의 이동과 태국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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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숫자로 살펴보는 타이족의 이동과 태국 문화

요술왕자 12 622

태국을 여행하거나 준비하다보면 태국어 숫자 발음이 우리말과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되죠.

태국어로 3은 쌈, 20은 이씹. ㅅ 발음이 태국에서는 된소리만 있는 걸 감안하면 같은 발음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4 씨, 5 하, 6 혹, 7 쩻, 8 뺏, 9 까오 등 다른 숫자 역시 얼추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숫자의 발음은 우리말이나 태국말이나 한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원래 타이족은 현재의 중국 남부 광시성 쪽에 모여 살았습니다. 물론 그때는 광시성도 아니었고 중국 땅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인구도 많아지고 한족이 확장하다 보니 서쪽으로, 남쪽으로 이주하여 동남아 내륙부는 물론 멀리 인도 동북부 지방까지 넓은 지역으로 퍼지게 되었죠.


참고 : 타이족의 이동

https://books.google.co.kr/books?id=GHiuDgAAQBAJ&lpg=PP1&pg=PA27&redir_esc=y#v=onepage&q&f=false

TaiFamilyTree_Overlaid_On_Map.png


많은 분들이 원나라때 운남쪽에 살던 타이족들이 이주한 걸로 알고 계신데, 그때(1200년대)는 소수의 인구만 이동하였고 태국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그 훨씬 전인 서기 100년즈음부터 조금씩 이주를 하였고 700년대~11세기 전후로 대규모 이주가 있었어요. 


참고 : 쿠빌라이칸의 대리(난짜오) 정복이 남방으로의 타이족 대량이주를 초래했는가?

http://www.siamese-heritage.org/jsspdf/1981/JSS_077_1c_DuYutingChenLufan_KublaiKhanConquestAndThaiMigration.pdf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나라와 민족들이 한자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700년대로 당나라 때 입니다.

각 나라에 맞게 약간 변형이 있긴 했지만 몽골어(원)나 만주어(청)에 영향을 많이 받은 현대 북경어보다 주변 지역의 한자어 발음이 당나라때와 더 비슷합니다.


아래 표를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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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지금 중국 표준어인 현대 북경어보다 주변 나라의 발음이 당나라 시기 상고한어와 더 비슷하죠. 잇, 칫, 펫의 끝소리 '-t'는 태국어나 광동어에서는 그대로 이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ㄹ'발음으로, 소리를 나누어 발음하는 일본에서는 '-치'로 변경 된 정도입니다.



현재 태국어 숫자 중에 3~10은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1, 2는 능, 썽입니다. 능, 썽은 무얼까요?


'능'은 타이족 고유말입니다.

우리말은 한자어숫자와 별개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은 물론 그 이상의 숫자도 고유말이 여전히 쓰이고 있잖아요. 하지만 태국어에서는 유일하게 '능'만 남아 있습니다.

라오어나 샨(타이야이)어로도 역시 '능'이며 멀리 인도쪽의 타이족 친척인 아홈어로는 '릉'입니다.


'썽'은 한자어 '雙(쌍)'에서 왔습니다. 태국 이외의 다른나라에서도 雙을 숫자2의 의미로 간혹 쓰이긴 하나 태국에서는 일반적인 수사로 쓰고 있습니다.


다만 '엣'과 '이' 역시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21은 '썽씹능'이라고 하지 않고 '이씹엣'이라고 합니다.



타이족이 지금의 땅으로 이주해 온 것이라면 타이족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바로 크메르족과 몬족입니다. 이들은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지금의 태국과 주변에서 문화를 일구고 작은 나라를 형성하며 쭉 살아왔어요. 특히 크메르족은 인도로부터 종교와 과학, 제도, 언어 등을 들여와서 동남아의 강대국이 됩니다.

타이족은 크메르인들 사이에서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는 융화되지만 마을의 원로나 촌장을 중심으로 결속하며 말과 사회관계 등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규모가 큰 마을은 작은 도시국가 정도로 발전하기도 하죠.

크메르 제국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쑤코타이 지방의 타이족 지도자가 왕국을 세우며 타이족 최초의 독립국가가 시작됩니다.

쑤코타이 이전에도 지금의 태국 북부 및 중국 남부 지역에 응언양-란나, 치앙훙 등의 작은 나라가 세워지지만 태국 사람들은 이 나라는 각각 타이유안(콘므앙)족, 타이르족이 세운 나라라고 구분을 둡니다. 뿌리는 같지만 갈라져 나온지 오래된 먼 친척으로 보는 거죠.


아무튼 그렇게 쑤코타이 왕국이 들어서는데요, 이때 제도와 문화 면에서 크메르의 그것을 많은 부분 차용합니다. 크메르는 인도 문화로 만들어진 푸난과 첸라를 계승한 나라이기 크메르의 기반 문화 역시 인도 문화입니다. 현대 태국 문화 곳곳에서 브라만교-힌두교의 색채가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태국어-크메르어-라오어 숫자표기

태국어와 크메르어는 모양이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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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숫자 이야기로 돌아가서...

1부터 10까지의 숫자는 위에서 알아보았죠.

0은 태국어로 '쑨'입니다. 이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쑨야'에서 왔습니다. 


참고 : 공[空,Śūnya]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87462&cid=41978&categoryId=41985



100 이상의 숫자를 볼까요?

100 러이

1,000 판

10,000 믄

100,000 쌘

1,000,000 란

이들은 모두 크메르어 '러이, 포안, 믄, 쌘, 리안'에서 온 말입니다.



중국 남부 첩첩 산골에서 출발한 타이족은 남쪽으로 내려와 광활한 짜오프라야 평원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선주민과 융합하여 번창하게 되죠. 그들이 있던 곳의 문화를 자기것으로 만들어 발전시킵니다.


태국을 여행하거나 살다보면 태국인들의 문화수용성과 개방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죠.

아마도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12 Comments
05.19 19:13  
언어로 살펴보는 태국인의 이동과 태국 문화 - 아주 흥미롭습니다.

저는 민족을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태국어를 보면 태국이 보이고 한국어를 보면 한국이 보이고 그런 것 같아요.
요술왕자 05.19 20:12  
[@명] 명님이 말씀하신게 제목으로 더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앨리즈맘 05.19 19:48  
요왕님 박식한 지식에 다시  놀랍니다 잘지내시죠?
요술왕자 05.19 20:14  
[@앨리즈맘] 저도 궁금해서 틈틈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
늘 화이팅 하세요~
Vagabond 05.19 20:51  
그럼 태국과 라오스가 언어소통이 대충 가능한것처럼
태국과 캄보디아도 소통이 가능한건가요??
요술왕자 05.19 21:17  
[@Vagabond] 아뇨, 어휘만 같은게 좀 있을뿐 서로 다른 말입니다. 어족 자체가 달라요. 우리말에 한자로된 단어가 있지만 중국어와 소통은 안되는 것처럼요.
Vagabond 05.20 07:46  
[@요술왕자] 허..신기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밀접한 관계임에도 언어가 다르다니..
물론 한중일도 그렇습니다만..그래도 의외네요 ㅎㅎ
방콕에서 캄보디아 국경까지가 서울부산보다 가까워서 그렇게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요술왕자 05.20 10:36  
[@Vagabond] 감사합니다~
뽀뽀송 05.20 08:47  
거란족은 요나라 멸망 이후로 흐지부지 다른 민족으로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는데,

몽족은 참 신기합니다. 특별히 나라를 세우지도 않았는데,
크메르 타이 비엣 버마 틈바구니에서
멸족하지도 않고 흡수되지도 않고
여전히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힘이 대체 뭘까요?

태국인들에게도 몽족은 그냥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여느 외국인들에게 처럼 태국인들에게도
몽족마을은 관광지이고 몽의 아이들은 기념사진의 이색경험일뿐.
몽족도 딱히 태국인들과 섞이지 않고
자기네 무리 끼리만 뭉쳐서 살아가는 것 보면,
조국독립의 정신을 가진 한민족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데,
저는 태국인의 문화수용성과 개방성에 대해 조금 생각이 달라요.
수용이 문화의 융화인지 차용인지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요술왕자 05.20 10:53  
[@뽀뽀송] 국가를 세우지 못한건 많은 인구가 모이지 못하고 분산되어 있는게 가장 큰 이유인듯 합니다.
중국 남부와 인도차이나 산지의 다른 여러 고산족 처럼요...
타이족은 짜오프라야 유역의 평원으로 내려오면서, 라오족은 메콩강 중류의 평원을 차지하면서 세력이 커지게 된거죠.
몽족과 한 뿌리인 묘족의 경우 한족에 동화가 많이 되기도 했죠.
공심채 05.25 22:47  
몽골의 남하로 인한 대리의 멸망이 타이족의 주된 이동원인이라는 설은 주류가 아니지만 그래도 몽골의 남하가 수코타이 왕국의 건국에는 영향을 미쳤으니 그런 면에서는 태국과 관계가 깊은 사건이 아닐까요.. 몽골의 남하, 그로인한 크메르의 약화, 그를 틈탄 타이족의 최초의 왕국 건설.. 요렇게 이어지니..
요술왕자 05.26 09:33  
[@공심채] 의견 감사합니다.
본문에 말씀드렸다시피 몽골이 운남을 점령이 타이족의 대량이주를 발생시키지 않았으며 타이족은 이미 이전에 현재 땅에 많이 정착해 살았습니다. 시점 관계도 쑤코타이 왕조 성립(1238)이 원의 운남정벌(1253)보다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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