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에 다녀왔다!
오랜 벗, 김탁환을 만나러 곡성에 다녀왔다. 그는 나보다 몇 살 아래지만 나를 깨우쳐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게 1990년대 초니까 어느새 30년이나 되었다. 그때 나는 살림출판사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 『상상』의 편집장이었고 그는 다섯 명의 편집위원 중 하나였다. ‘문학의 새로움 문화의 새로움’을 주창했던 『상상』은 상업영화와 대중음악 리뷰를 연재하는 파격적인 기획으로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상상』에 소설 비평을 연재하던 그는 연작소설집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를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얼마 뒤에는 KAIST 교수가 되었고, 교수로 있으면서도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등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KAIST 교수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 뒀냐고 물었더니 “교수 오래 하면 글을 못 쓸 것 같아서 때려치웠다.”고 답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떤 이는 교수가 되지 못해 안달인데 그걸 제 발로 걷어 차버리다니! 게다가 더 좋은 자리로 가려는 게 아니라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서라니!
교수를 그만두자 그는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그의 몸속에는 도서관이 하나쯤 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많은 이야기를 술술 꺼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내가 사는 고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그가 집필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새로운 일도 벌인다고 해서 짬을 내 가보았다. 곡성 들녘 한가운데 아담한 폐교 자리에 ‘달문의 마음’이 있었다. 2년 전부터 채식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전보다 맑아보였다. 서울에 있을 때 그는 아침마다 첼로 연주를 틀고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첼로는 몸을 가라앉히기 위함이고 커피는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일수 찍듯이 글을 쓰기 위한 그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곡성에 와서는 더 이상 첼로를 듣지 않는다. 들녘으로 난 창문을 열면 수많은 새떼가 연주하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집필실 1층에는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이 개관을 앞두고 한창 단장 중이었다. 그가 직접 고르고 짧은 추천사까지 적은 85종의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앞으로 500종까지 늘리려고 한단다.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곡성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생태책방까지 내게 된 것은 농부과학자 이동현 박사 때문이다. 우연히 이동현 박사를 알게 되고 그에게 매료되어 책(『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까지 내더니 이제 그의 곁에 터까지 잡은 것이다.
나는 한때 친환경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오가닉과 로컬리즘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지금도 일상에서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가 벌이고 있는 일들이 무척 반갑다. 중앙 중심, 대도시 중심의 사회는 소수만 행복하고 다수는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모두가 고루 행복해지려면 지역 단위의 작은 공동체가 더 많아져야 한다.
글 쓰는 이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도시소설가 김탁환이 곡성 들녘에 뿌려놓은 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곤궁한 시대의 양식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