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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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에 다녀왔다!

필리핀 12 645


오랜 벗, 김탁환을 만나러 곡성에 다녀왔다. 그는 나보다 몇 살 아래지만 나를 깨우쳐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게 1990년대 초니까 어느새 30년이나 되었다. 그때 나는 살림출판사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 『상상』의 편집장이었고 그는 다섯 명의 편집위원 중 하나였다. ‘문학의 새로움 문화의 새로움’을 주창했던 『상상』은 상업영화와 대중음악 리뷰를 연재하는 파격적인 기획으로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상상』에 소설 비평을 연재하던 그는 연작소설집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를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얼마 뒤에는 KAIST 교수가 되었고, 교수로 있으면서도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등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KAIST 교수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 뒀냐고 물었더니 “교수 오래 하면 글을 못 쓸 것 같아서 때려치웠다.”고 답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떤 이는 교수가 되지 못해 안달인데 그걸 제 발로 걷어 차버리다니! 게다가 더 좋은 자리로 가려는 게 아니라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서라니! 

교수를 그만두자 그는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그의 몸속에는 도서관이 하나쯤 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많은 이야기를 술술 꺼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내가 사는 고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그가 집필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새로운 일도 벌인다고 해서 짬을 내 가보았다. 곡성 들녘 한가운데 아담한 폐교 자리에 ‘달문의 마음’이 있었다. 2년 전부터 채식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전보다 맑아보였다. 서울에 있을 때 그는 아침마다 첼로 연주를 틀고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첼로는 몸을 가라앉히기 위함이고 커피는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일수 찍듯이 글을 쓰기 위한 그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곡성에 와서는 더 이상 첼로를 듣지 않는다. 들녘으로 난 창문을 열면 수많은 새떼가 연주하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집필실 1층에는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이 개관을 앞두고 한창 단장 중이었다. 그가 직접 고르고 짧은 추천사까지 적은 85종의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앞으로 500종까지 늘리려고 한단다.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곡성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생태책방까지 내게 된 것은 농부과학자 이동현 박사 때문이다. 우연히 이동현 박사를 알게 되고 그에게 매료되어 책(『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까지 내더니 이제 그의 곁에 터까지 잡은 것이다. 

나는 한때 친환경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오가닉과 로컬리즘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지금도 일상에서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가 벌이고 있는 일들이 무척 반갑다. 중앙 중심, 대도시 중심의 사회는 소수만 행복하고 다수는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모두가 고루 행복해지려면 지역 단위의 작은 공동체가 더 많아져야 한다.

글 쓰는 이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도시소설가 김탁환이 곡성 들녘에 뿌려놓은 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곤궁한 시대의 양식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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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sarnia 10.28 04:00  
김탁환이 누구인가 검색하니 오늘 생일이네요. 27 일이니 한국은 어젠가.

노태우가 사망했다는데 가까이 있었으면 빈소가 어떻게 생겼나 구경이라도 가 봤을 것 같습니다.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건지 아들의 혼자 행동인지 잘 모르겠지만, 죽었다니까 유가족들에게는 조의를 표합니다.
필리핀 10.28 06:57  
김탁환...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죠.
세월호 사건을 다룬 소설도 여러 권 집필했고...암튼 잘 씁니다^^
뽀뽀송 10.28 04:23  
마지막 두 분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30년 전 서로 젊은 청년으로 만났을 두 사람에게,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모습은 서로에게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봅니다.
미실란을 네비에 저장했네요. 조만간 들러볼 기회가 있겠지요.
필리핀 10.28 06:58  
엊그제 만난 거 같은데 어느새 흰머리 아재들이 되었네요^^;;
미실란...꼭 한번 가보세요.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재료로 밥집도 운영하는데 맛있어요!
태국짱조하 10.28 13:00  
오, 김탁환님 소설은 저도 제법 읽었습니다. 국내작가 중 잘 쓰시는 분 중의 한분이시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첼로연주도 잘하신다니 역시 작가들은 감성도 풍부하시군요. 좋은 소설 기대됩니다!!
필리핀 10.29 10:21  
김탁환님이 직접 첼로 연주를 하는 건 아니고요
아침마다 연주를 듣는다는 거였어요^^;;
첼로 연주는 돌아가신 노회찬님이 하셨죠ㅠㅠ
Vagabond 10.28 14:27  
문학가도 공과대학 강단에 서는군요...
첨 알았네요..ㅎㅎ
전라지방은 예부터 올곧은 양반들이 많이들 내려가서 그런지
슬로우시티가 유독 많은것 같아요
연고는 없지만 늘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필리핀 10.29 10:22  
KAIST 있을 때
동료 교수였던 정재승 박사랑
<눈먼 시계공>이란 책도 같이 냈지요.
후니니 10.29 15:36  
눈먼 시계공 저자가
리처드  도킨스인데.....하고 찾아보니
동명 책이름 이네요

진화론 관련 서적을 관심있게 읽다보니 생각나서요
필리핀 10.30 07:17  
오...후니니님의 독서 취향은 상당히 웅숭깊으시네요^^
쨉짜이 10.28 19:30  
곡성이라 그래서 얼마전 영화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마지막 사진의 멋지게 나이드신 두 분의 모습 너무나 멋집니다..!
필리핀 10.29 10:23  
영화 <곡성>은 약간 으스스한데
실제 곡성은 포근한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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