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속도로 위에서 자고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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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속도로 위에서 자고 먹기

이런이름 4 2019
꼼짝도 안하고 있었는데 너무 집 안에 있는 것도 안좋은 거 같아 오랫만에 밖에 나왔습니다.

코비드-19 이후에 모 항공사에서 착륙은 하지 않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만 보고 돌아오는 여행 상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아이디어를 빌려 운전을 하면서 창 밖으로 바라만 보는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이 6일째로 이 글을 쓰는 현재에도 고속도로 위에 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서부에 위치한 주들이 대개 그렇듯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서 고속도로가 무척 한적합니다. 그리고 창 밖으로 펼쳐치는 하늘과 땅의 풍경이 시원시원합니다. 노을은 아름답고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숙소는 이용하지 않고 졸립거나 피로하면 뒷자리로 옮겨 눈을 부치고 식사도 준비해 온 육포, 초코렛, 비스켓, 컵라면 등으로 대충 때우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궁상맞지만 운전을 하면서 지난 날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나름 혼자만의 만족한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일단 시야가 탁 트여 있으니까 마음도 넓어지고 여유도 생기는 거 같습니다.

음... 쓰려고 하는 내용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서 자동차로 여행을 할 때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고 있으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몇 가지를 쓰려고 했는데 사설이 길었네요.

근래에는 한국서 미국으로 여행/관광을 오는 사람들 중에 미국서 자동차를 빌려 직접 운전하고 다니며 이곳저곳 돌아보는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도 몇 개 있고요.
(미국은 도시에서 관광지/명승지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으니까 단체관광이 취향에 안맞거나 자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경우에는 차량을 빌리는 거 이외에는 방법이 없긴 하지요.)

첫번째 이야기는 '차박'입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온 미국서 불편하게 차 안에 쪽잠을 자며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일정이 꼬일 수도 있고 극성수기에는 가고자 하는 곳 근처에서 방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인적 없는 황무지에 가기를 좋아하는 제 경우에는 숙박시설이 너무 멀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저는 불편하게 자는 건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가장 곤란하게 여기는 부분이 씻는 문제입니다. 못 씻으면 기분까지 불쾌해져서 여행이고 뭐고 다 싫어지기도 하더군요.

이럴 때 트럭스탑(truck stop)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트럭스탑은 대형 트럭들을 위한 주유소인데 컨테이너가 달려있는 커다란 차체 때문에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고생을 하는 트럭 운전사들을 위해 고속도로 변에 위치하며 편의시설이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편의점을 기본으로 식당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규모가 좀 되는 곳은 샤워실과 빨래방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소형 영화관이나 게임룸이 있는 곳도 있고요.

샤워실은... 트럭 운전사는 (50갤론 이상 주유하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일반인도 사용료를 내면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트럭스탑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12~$15 수준이라더군요.
(부부라고 말하면 한 샤워실을 같이 사용할 수 있답니다.)

샤워실을 빌리면 비누와 수건이 제공되고 샤워실 안에는 세면대, 거울, 변기, 샤워해드, 선풍기, 길다란 나무의자가 있습니다.
(벤치 형태의 긴 의자는 짐을 놓아두거나 양말이나 신발 등을 신을 때 앉는 용도인 거 같습니다.)

1시간 이상 샤워를 했는데 뭐라고 하지 않는 걸보면 딱히 사용시간에 제한은 없는 거 같았습니다. (물어보면 30분이라고 할 거 같아 일부러 안물어봤어요.) 샤워실은 사용하고 나면 직원이 바로바로 청소를 해서 그런지 청결했습니다.

가격이 좀 비싼 점은 아쉽지만 이용하지 못할 가격도 아닌 거 같습니다. 씻고 나면 개운해지고 피로도 좀 풀리는 거 같잖아요.

여담으로 한국의 기사식당은 값싸고, 맛있고, 양 많고, 음식이 빨리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트럭스탑에 딸린 식당도 (빨리 나오지는 않지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는 동네 맛집으로 통하는 경우도 종종 있더군요. 어쩌면 그 동네에서 유일한 식당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근데 요즘은 식당들이 줄어들고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빨래방은 사용을 안해봐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듯 합니다. 빨래감을 넣어 놓고 밥 먹고 샤워하면 빨래에 따로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이런 걸 떠나서도 주유할 때도 트럭스탑을 이용하는 게 좋습니다. 일반 주유소보다 싸거든요.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있어 시간도 절약되고요.

트럭스탑의 위치와 시설 내용이 포함된 전국 지도가 있기는 한데 여행객들은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방법이 더 유용할 거 같습니다. 'truck stop with showers near me'를 검색어로 사용하면 샤워실을 갖추고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트럭스탑이 나올테지요.

주유하고 씻는 건 트럭스탑을 이용하는 게 좋지만 잠은 고속도로 위에 있는 레스트 에리어(rest area)에서 자는 게 비교적 안전합니다. 레스트 에리어는 화장실 건물 하나만 있는 주차장으로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많이 다릅니다.
(동부의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레스트 에리어가 있기는 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지치면 레스트 에리어에 주차하고 눈을 부치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서 밤엔 차박을 해도 남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아주 가끔 고속도로 순찰대가 들리기도 하고 주위에 사람들도 있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안전 문제는 거의 안생기는 거 같습니다.
(무료로 캠핑할 수 있는 곳들이 꽤 많기는한데 대개 고속도로에서 멀어서 캠핑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곳은 실용성이 없습니다.)

어차피 불편한 차박이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려면 가로등 불빛을 가릴 수 있는 수면 안대와 교통소음을 줄일 수는 귀마개를 준비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저도 ear plugs를 귀에 꽂고 뒷자리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3가지 정도 이야기를 하려 했었는데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샤워하는 거 하나밖에는 못썼네요. 다른 내용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지요.

(아무튼 주유는 주유기에서 카드로 계산하고 밥은 레스트 에리어에 설치되어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먹고 잠은 차 안에서 자니까 진짜로 직접 접촉은 거의 하지 않고도 여행을 가장한 궁상떨기가 가능하네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차박을 기본으로 미국 여행을 계획하지는 마십시오. 이건 자동차 여행하다가 맞닥뜨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처하는 방편으로 이야기하는 거 뿐이니까요.
4 Comments
sarnia 2021.09.15 08:22  
개빈 뉴섬 주지사 소환 찬반투표는 마치고 여행을 떠나신 거겠지요. 일개 주의 문제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중요한 선거니까말이죠.

그건 그렇고,

대륙횡단을 비롯한 장거리 로드트립 많이 했지만 차박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RV도 이용한 적 없어요. 체질적으로 캠핑을 싫어합니다. 어렸을 때 파로호(한국)에 캠핑갔다 비맞고 얼어죽을 뻔 한 후론 캠핑같은 거 전혀 안해요. 프리웨이 근처 모텔 아주 저렴하게 건질 수 있으니까요. 하루에 천 킬로씩이동하고나서 따뜻한 욕조에서 반신욕하고 깔끔한 침대에서 TV 보는 게 로드트립의 즐거움이지요. 

트럭스탑에서 돈내고 샤워해 본 적은 없지만 기사식당이 좋아서 몇 번 이용해봤습니다. 로드트립은 무조건 잘 먹어야 합니다. 허스키나 Denny’s 아침식사 가성비 좋고 괜찮아요. 혹시 Denny’s 가시면 럼버잭이나 스테이크 오믈릿 꼭 들어보세요. 커피도 비싸긴 하지만 좋아요. 텀블러 가져가면 가득채워줍니다. 식사할 때 3 분의 1 쯤 마시고 나갈때 리필해 가죠.
이런이름 2021.09.16 00:17  
처형댁에서 캠퍼를 빌려 나왔었는데 차체가 밴 정도 크기여서 운전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침대가 있다는 것만 빼면 나머지는 일반 차량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어요. 겉으로 보기엔 RV와 비슷해 보이지만 역시 다르네요. 캠퍼는 시설이 갖춰진 캠핑장에 적합한 차박용 차량인 거 같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멀리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남의 차량이다보니 조심스러워지더군요. 어쩌면 그래서 더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에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제가 사는 곳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부에서는 매미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근데 이번 여름에는 유난히 매미소리가 듣고 싶네요.

(콜드 런칭이 공식적으로 완성되었네요. 이제야 한국의 잠수함이 비대칭전략무기로써 제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국방 분야에서 굵직굵직하고 시원시원한 이야기들이 자주 들려 옵니다.)
sarnia 2021.09.16 08:34  
콜드런칭 성공은 한국군 현대사에 획을 그을만한 큰 사건이고 며칠 전  조선(북한)의 고정밀타격 크루즈미사일 비행성공도 축하할만한 일입니다. 유사이래 한국을 못살게 굴던 일본과 중국이 동시에 기절초풍한 대사변인데 정작 한국언론들은 크게 다루지 않고 있군요. 도리도리인지 짜장인지하는 하는, 아무리봐도 실성한듯해 보이는 놈 스캔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날밤을 지새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스프린터나 포드 트랜짓웨건같은 미니밴들을 개조해서 미니RV 로 나온 게 많습니다. 차고가 높아 실내가 커 보이지요. 가족이 함께모여 여행다니는 시대는 지났고 요즘은 가족이 있든없든 혼자 따로따로 다니니까 이런 미니RV가 많이 팔린다고 해요. 이 작은 밴 안에 스토브는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설치한 것도 있더군요.
이런이름 2021.09.16 15:41  
RV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말립니다. RV는 크기에 상관없이 화이트 탱크를 채우고 블랙 탱크를 비워야 해서 어쩔 수 없이 RV 파크에 들리게 돼요. 차량이 작을수록 더 자주 가게 될테고요. 그럴 때마다 비용도 들지만 족쇄가 되어 버리기도 하죠.

차라리 일반 차량으로 다니면서 모텔에서 자는 편이 신경 쓸 일도 적고 피로도 덜 느끼죠. RV 구입비와 유지비까지 따져보면 훨씬 더 경제적이기도 하고요. 저도 한때는 RV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대형 RV도 운전하려고 B클래스 운전면허까지 취득했지만 RV를 사용해 보고는 환상이 산산히 깨져버렸어요. 이제는 RV는 남이 보기에만 좋은 차량이라고 생각해요.

모텔이 없는 오지에 갈 때는 캠핑장비를 챙기는데 실제로 사용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아요. 오히려 국립공원에서 더 많이 사용한 거 같아요. 제가 가 본 국립공원 안에는 캠핑장이 다 있었어요. 국립공원 안에서 자니까 모텔까지 왔다갔다 하지 않아도 되고 여유로워진 시간만큼 트래킹이나 바이킹을 더 할 수 있어서 국립공원에 갈 때는 가능하면 캠핑을 하려는 편이예요. 한밤중에 별을 보면서 스프나 스튜를 먹는 재미는 덤이고요.

(그나저나 미국의 의중을 모르겠지만 한국에 가해져 있던 무기 개발 제한을 푸는 방향을 보면... 한반도에 핵무기를 작접 배치하기에는 마찰도 크고 부담스러운 미국이 한국으로 하여금 자체 개발한 미사일로 중국의 핵무기 보유고가 있는 신장까지 사정권 안에 넣으라고 종용한다는 느낌입니다. 고체연료 사용규제를 없앤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미사일 탄두에 뭐가 실릴 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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