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를 보았다.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았다.
주인공 ‘펀’의 캐릭터가 나와 비슷해서 금방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는 충청도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했고,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대구로 전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그 이후에는 서울의 흑석동, 봉천동, 연희동, 신촌, 홍대앞, 건대앞과 경기도의 안산, 일산, 원당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 5년 전부터는 전라도에서 살고 있다. 그 와중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1년 정도 살았고 1998년부터 2015년까지는 1년의 절반가량을 동남아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책을 2권이나 썼으며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도 “유목”과 “소외”이다.
「노매드랜드」는 실직과 남편과의 사별을 겪은 주인공 ‘펀’이 파트타임 잡을 찾아 미국 곳곳을 떠돌며 살아가는 행적을 담담하게 추적하는 영화이다. 집이자 이동수단인 자신의 차량에 ‘선구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펀’은 편안한 침대, 정겨운 가족, 푸짐한 음식이 왠지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펀’의 삶은 내가 꿈꾸는 삶과 닮아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가방에 모든 소지품을 쑤셔넣고 이틀에 한 번씩 거처를 옮겨 다니는 삶을 꿈꾸어 왔다. ‘펀’과 내가 다른 점은, ‘펀’은 자신의 차로 이동하지만 나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뿐.
「씨네21」은 “「노매드랜드」는 트럼프 시대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회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노매드들이 선택한 대안적인 삶이 물리적인 집에 대한 집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포착해낸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 기사를 쓴 이는 「노매드랜드」를 잘못 해석했다. 이 영화는 트럼프 시대가 아니라 금융 위기 직후인 2011년 무렵을 시대배경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위의 문장에서 ‘트럼프 시대’라는 문구는 빼야 한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진 모습을 시종일관 차분한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써 무엇이 문제인지를 관객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한다.
노매드족의 한 사람인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볼 때 노매드적 삶은 대안적 삶이 아니다. 여러 다양한 삶 중 하나일 뿐이다. 노매드적 삶을 대안적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모든 삶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삶은 노매드적이다, 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는 있겠다.
덧붙이자면, 나는 1983년에 출판계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출판편집자로 일해 왔다. 입문은 사회과학전문출판사로 했지만, 경력의 대부분은 문학편집자로 일하면서 쌓았다. 수많은 국내외 문학도서를 기획해서 출간했으며 내 손으로 창간한 문예지도 2종이나 된다. 그런데, 30년 넘는 세월을 문학편집자로 일했던 내가 독립해서 차린 첫 출판사는 친환경전문출판사였다. 그 출판사에서 펴낸 첫 책은 녹색연합이 편찬한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이라는 친환경요리책이었고.
재미 삼아 말하자면, 나를 포함해서 「미나리」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작품상은 「노매드랜드」가 차지할 것 같다.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도 「노매드랜드」에게 주어질 것 같다. 아쉽지만 「미나리」는 여우조연상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