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지난 가을 잿빛으로 변해버린 낙엽들.
마지막 잎새가 애처롭게 매달려있다.
잔가지마다 눈꽃이 내려앉은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정적만이 감도는 공원 전경.
솔잎으로 월계관을 만들어 얹어놓다니 참으로 기발하다.
첫눈 오던 날 누군가 이렇게 꼬마 눈사람을 이쁘게 만들어 놓고 가버렸다.
나는 겨울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추워서만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다.
게다가 눈이라도 오는 날엔 알레르기를 일으킬 만큼 예민해지기도 한다.
눈 오는 게 싫다고 말하는 내게 어떤 이는 낭만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마지막으로 꽃잎처럼 눈이 펄펄 쏟아졌던 날 저녁, 망설이다 공원엘 나갔는데
생전 처음 보는 멋진 설경을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황량하기 그지없던 나뭇가지마다 눈이 쌓여서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원을 마치 내 정원을 거닐듯 혼자 걸으며 마치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행복한 착각을 하면서 이제껏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는 눈 덮인 사진을 몇 컷 담아두었다.
지금 봐도 사진이 예뻐서 어느 사진 작가에게 보여주며 너무 잘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
더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이면 그게 바로 좋은 사진이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인 듯 싶었다.
내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적막한 공원에서 그런 기막힌 아름다움을 본 것은 아마도 내겐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왜 눈이 오는 날엔 더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세상의 온갖 소음들이
눈 속에 파묻혀서 그럴 것이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난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난 앞으로 겨울을 싫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혹독하게 추운 날일수록 더 투명하고 진한 쪽빛의 밤하늘을 볼 수 있다.
그건 다른 계절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사계절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 아닌가 싶다.
한 해가 겨울로 시작해서 겨울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겨울이 오기까진 저렇게 아름다운 눈 덮인 공원의 풍경을 다시
보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니 눈 덮인 밤 풍경이 새삼 두고두고 그리워질 것만 같다.
다시 봄이 왔다.
어쩌다보니 벌써 3월이 되었다.
하늘도 한겨울에 보던 것과는 다르고 햇볕도 한결 따스하고 바람도 향기롭고 부드러워진 걸 느낄 수 있다.
언제부턴가 난 겨울이 없이 바로 봄이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봄을 간절하게 기다리게
되었다.
얼마나 그 바람이 컸던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해서라도 봄이 빨리 왔으면 했다.
내가 어서 오라고 재촉을 하던 제발 더디 와달라고 하던 봄은 와야 할 때를 스스로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비록 코로나폭풍이 세상을 뒤덮었어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있다.
며칠 전 공원에서 노란 산수유꽃과 하얀 매화꽃이 핀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아,,, 탄성이
나왔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꽃들이 먼저 서로 피어나려고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뜨릴 것이다.
겨우내 추위를 견뎌내던 목련나무에서도 꽃망울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길고 모진 추위속에서도 살아낸 만물의 생명력을 보며 우리는 희망을 기대한다.
회색빛 거리가 봄의 색깔로 눈부시게 바뀌고 화사한 봄날을 뽐내는 세상을 미리 상상해보며
지난 겨울의 잔재가 사라진 봄의 향연을 맘껏 즐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