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기로 온 날은, 케익을 드세요"
이 타자기로 펜은 불의 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어언 10년으로 길목에 있는데...
처음이나 지금까지 악당들은 사라지지 않고 더 크게 더 많이 아우성 치며 16명이나 버젓이 왔다.
그래서 이것으로 싸우기로 했다.
세상과의 불화
나는 오래동안 세상과 불화하였다.
불화의 원인은 세상이 ‘옳고 그름’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싸웠기 때문이다.
즉, 세상(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 수 있음에도 알려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르치려 들지 마. 내가 편들고 싶으니 편드는 거야.”
이렇게 옳고 그름이 좋고 싫음으로 대체되어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니, 세상을 해석할 힘이 생겼다.
나는 어릴적부터 모든 것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로 내몰려 살았다.
‘옳고 그름’의 문제에 집착하여 세상을 볼수록 세상과 나는 동떨어져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좋고 싫음'에서 더 나아가 "나는 알기 싫다, 고로 혐오한다"로 대체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래동안 ‘옳고 그름’에 깊이 빠져들었던 나에게 위로하는 시를 하나 발견하였다.
눈풀꽃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꽃들 사이에서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 루이스 글릭 Louise Gluck (미국, 1943― ) 2020년 노벨문학상
-에필로그
우리의 누군가의 아기로 이 세상에 왔다.
엄마는 아기가 악에 물들어 괴상망측한 영혼의 몰골로 살기 바라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이 땅에 올 때 기쁘게 울음의 나팔수로 세상에 왔다.
왜 이렇게 살어?
상주사심(常住死心)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잊지 않아야. 처음 세상에 아기로 온 의미를 알수 있다.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늘 죽음을 기억하라,
처음 세상에 온 날의 의미를 알려면, 생의 한 가운데에서도 늘 죽음을 잊지 말라
그리하면, 별 지랄하면서 살 일도 없을 거야.
오늘은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이 더욱 행복한 날이 되기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