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절에 떠나는 '열대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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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절에 떠나는 '열대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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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코로나 시절에 떠나는 '열대 낙원'

 

 

등단 18년 김완준 첫 소설집 '열대의 낙원'
'유목'과 '소외' 키워드로 현실 속 이상향 추구
시인으로 등단, 출판인으로 살아오며 소설 겸업
"내게 소설 쓰기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

코로나 시절에 해외여행은 아득한 꿈이 돼버렸다. 자유롭게 대륙을 오가며 글로벌 오지까지 헤집고 다니던 시절이 전설처럼 다가오는 이즈음이다. 2000년대 들어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작단에도 여행소설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한국문학에서 소설 공간은 거의 무국적 상태로 변질된 지도 오래다. 한때는 지금 이곳의 치열한 삶을 벗어나 이국적인 풍물에 기대는 자세를 안일하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코로나가 생활 패턴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시점에서 여행소설은 그 자체로 위무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점이다. 시인으로 등단해 소설을 겸업해 온 김완준이 최근 펴낸 첫 소설집 '열대의 낙원'은 코로나로 인해 억울한 수형 생활을 하는 '호모 비아토르'들에게 맞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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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뒤 오랜 꿈이었던 소설가의 길로 다시 들어선 김완준. 오랫동안 짬짬이 써 온 단편들을 선별해 첫 소설집을 펴낸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소설을 쓴다"면서 "내가 행복해야 내 소설을 읽는 사람들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두하]

 


'어제 낮에 낚시를 갔다가 햇빛에 등을 태워먹었다. 30분이 될까 말까한 시간이었는데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등이 따갑다. 살인이라도 저지르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다. 이놈의 햇빛과 모기만 없다면, 이곳은 파라다이스다. 미칠 것 같은 열대의 낙원!'

 

세상의 모든 항구에 있는 술집을 섭렵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는 꿈을 꾸었던 형이 보내온 엽서는 뜨거웠다.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면서 삶의 쾌감을 끝까지 밀어부치던 형은 뜻밖에도 태국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 불춤을 추는 작은 여인이 그 형을 정주(定住)로 이끌었고, 형은 말라리아에 걸려 여인과 아이까지 남겨둔 채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떠났다.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고시원에 틀어박혀 있는 쌍둥이 동생인 '나'가 형의 유해를 수습하러 태국으로 떠나는 이야기가 이 소설집 모두에 배치된 표제작 '열대의 낙원'이다.
 

'풀문 파티가 열리는 핫린 해변에 달이 뜨면 얼마나 크고 밝은지 몰라. 마치 세상을 향해 주술을 걸고 있는 어둠의 정령 같지. 보름달이 뜰 때면 해변을 대낮처럼 밝히는 황홀한 광휘는 감동적이야. 이런 달 아래 미치지 않고 견딜 사람이 있을까.'

어느날 문득 고시원으로 찾아온 형은 태국에 간다고 했다. 어린시절부터 형은 승부욕이 없었고 '승자가 되기 위해 남을 패자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런 형을 비웃으며 언젠가는 나를 쓰러뜨린 놈들을 모두 굴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쌍둥이 형제의 생각과 성격은 이렇게 판이했지만 형의 여권 사진이 동생의 것이었을 정도로 외양은 같았다. 한 사람 안에 내재한 상반된 두 개의 욕망과 지향이다. 형은 유서처럼 남긴 마지막 편지에 그가 풀문 파티 해변에서 불춤을 추던 소녀를 만난 사연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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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달빛에 취해 해변을 쏘다니다 불춤을 추는 사람을 보았어. 어린아이처럼 조그만 몸집의 사람이 양쪽 끝에 횃불을 매단 봉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있더군. 불의 혼을 가진 불새처럼 그 사람은 불과 하나였지.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그 춤의 주인공은 소녀였어. 소녀는 밤새도록 불춤을 추었어. 자신의 영혼마저 태워버릴 듯 쉬지 않고 불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달의 요정 같았어.'
 

그 여인과 머물다가 형은 다시 정주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몇 년 후 다시 그곳에 들렀을 때 불춤 추던 여인은 자신의 아이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이 그 여인의 소망대로 태국 시골 마을로 들어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정착을 한 배경이다. 형의 정주는 이제 말라리아가 방해했다. 형에게 이승에서 정주의 운명은 허락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비아토르'의 기질을 유독 강하게 타고난 그는 여행의 임계치에 이른 이승에서 이제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버린 셈이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지만, 헤테라토피아는 고향 집 같은,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향이죠. 어떤 이에겐 바다나 섬일 수 있고, 저에겐 태국일 수도 있지요. 유토피아만 바라는데 인간에겐 헤테라토피아 같은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결국 제 소설의 화두는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무엇인가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풀문 파티도, 루앙프라방도 그런 곳을 찾아가는 여정에 당도한 공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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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는 밤 태국의 섬에서 벌어지는 '풀문 파티' 현장의 김완준. [김두하 사진] 

 

 

김완준은 이어지는 단편 '루앙프라방 가는 길'에서는 라오스의 작은 도시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삶의 끝을 저울질하는 화자를 등장시킨다. 김완준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 위해 먼저 그곳에 가 1년 정도 살다가, IMF구제금융사태를 맞아 이민이 좌절된 후 동남아 쪽으로 눈을 돌려 그곳 여행서를 집필하기도 하면서 동남아 3부작 장편을 추진해왔다. 그 첫 결실이 10여 년에 걸쳐 50여 차례 태국을 오가며 펴낸 장편 '더 풀문 파티'이거니와, 이제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왓을 이어서 장편으로 형상화할 예정이다. 이 단편집의 여행 소설은 그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이다.

 

"잉크빛 바다와 야자수와 은모래가 있는 해변이 서양인들이 말하는 파라다이스의 전형이지요. 동남아에 가면 그런 파라다이스가 널려 있고 물가도 쌀 뿐 아니라 여행 인프라가 잘 돼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양이나 한국은 이미 개발이 다 됐지만 그곳에는 아직도 원시적인 열대의 공간이 남아 있어요. 우리가 무의식 심층에서 그리워하는 것들이 그곳에 있는 거지요."

 

표제작에서 형을 구원해준 불춤 추는 여자도 그런 그리움의 원형일 수 있다. 김완준은 '유목'과 '소외'라는 두 키워드가 중심인 자신의 소설에서 여성은 구원의 상징이라고 했다. 유목형 인간의 전형인 형은 구원을 찾아 떠돌았고, 여행소설이 아닌 국내의 핍진한 삶의 현장을 다룬 '중독'이나 '겨울 시인' 같은 단편에는 소외된 이들의 현실이 펼쳐진다. 신춘문예 등단을 위해 고투하는 가난한 젊은 청년의 갈망이 잘 드러난 '겨울 시인'에서 화자는 구겨진 원고가 담긴 쓰레기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면서 '육신의 무게와 영혼의 무게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지' 고뇌한다. 등단 18년 만에 처음 묶어낸 이번 소설집에는 위에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1980년대 젊은이들의 투쟁과 이후 삶을 다룬 '그 들판의 행방'을 비롯해 '세 사람이 만났다' '예언자의 꿈'을 포함해 모두 7편이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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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모래와 잉크빛 바다가 펼쳐지는 동남아의 전형적인 해변을 찾아간 김완준. 그는 '동남아 3부작'을 장편으로 집필하는 중이다. [김완준 제공]

 


매일신문 신춘문예(1986)를 통해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뒤 오래 꿈꾸었던 소설가의 길로 2002년 다시 나서서 시와 소설을 겸업해온 김완준은 "내게 소설 쓰기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라며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쓸 뿐"이라고 말한다. 그를 '살림' '시공사' 같은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인으로 먼저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이즈음은 전주에 내려가 지역 문인들이 투자한 '모악'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인과 시인, 소설가 중 어느 쪽 정체성에 더 방점을 찍는지 물었더니, 그는 단숨에 '여행 작가'라고 답했다. 여행을 테마로 한 소설을 지속적으로 쓸 예정인데, 요즘은 섬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시인의 감수성이 진득하게 배어든 문체는 이번 소설집의 가외 매력이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던 신경림 시인이 '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시'라고 상찬했다는 '신월동의 눈'은 이렇게 내린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있다/ …/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땅을 위하여/ 이곳의 아이들은 종이배를 접지만/ 그들이 가닿을 꿈의 항구는 눈발에 가려 아득하고/ …/ 인간이 사는 마지막 동네를 찾아 떠나온/ 집배원 우편낭 속으로 눈발이 날려/ 기억할 수 없는 몇몇의 주소가 지워지고/ 매운 바람에 코를 씻으며 돌아다니는 / 아이들 한쪽 어깨가 젖고 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http://www.upinews.kr/newsView/upi202011270084?fbclid=IwAR0q2UvbhE5tn4vwVEmZBd5rxvDWLqCKEiIbnCpd48IXl9flN0f60lxc7Wk 

2 Comments
펀낙뻰바우 2020.11.28 22:46  
이번 여행 막바지엔 풀문파티가 열리는 팡안섬엘 들러서 필리핀님께서 소설속 영감을 얻었던 핫린에서 하루이틀 마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필리핀 2020.11.29 07:42  
그리운 태국...그리운 꼬팡안...넘넘 가고싶어요ㅠㅠ
코로나 물러가면 푸켓으로 입성해서 무꼬쑤린 찍고
꼬사무이 꼬팡안 꼬따오 방콕...이렇게 일주하고 싶어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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