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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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이야기

이런이름 14 952
일회용 나무도시락, 타원형의 모서리없는 어린이용 도시락, 검정색 보온도시락, 직사각형의 노란색 양은 도시락, 플라스틱 재질의 2단 도시락. 제가 사용해 보았던 도시락통들입니다.

이 중에서 용적량은 큰데도 부피도 작고 무게도 가벼운 노란색 양은 도시락통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겨울철에는 난로 위에 올려놓고 데워서 먹을 수도 있었지요. 이렇게 데운 도시락은 밥이 살짝 눌기도해서 보온도시락통이 갖을 수 없는, 이를테면 비빔밥과 돌솥비빔밥의 차이같은, 좀 독특한 식감의 밥을 맛볼 수도 있었습니다.

보온도시락통은 장점도 있지만 부피가 큰 탓에 따로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학년이 올라가고 책가방이 무거워지고부터는 안썼습니다. 얇은 나무로 만든 일회용 도시락은 소풍 갈 때만 사용해서 그런지 늘 김밥이 담겨져 있어서 아직도 '나무도시락 = 김밥도시락'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종이로 모서리를 붙혀서 접었다폈다 할 수 있게 만든 발상은 특허감이죠. 2단 도시락은 현재 갖고 있는 앙증맞은 도시락통인데 사용빈도가 거의 없어서 그냥 찬장 속에 넣어두고 있는 형편입니다.

도시락하면 역시 반찬이 가장 큰 관심거리인데요 제 도시락 반찬은 별 거 없었습니다. 좀 좋은 반찬을 싸가면 한 젓가락씩 집어가서 정작 저는 반찬이 모자르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무난한 거로만 갖어갔지요.

좋아했던 반찬은 고추장에 볶은 조갯살이나 지리멸치였어요. 조림반찬 중에서는 감자조림을 좋아한 편이였고요. 싫어했던 반찬은 두부였어요. 깍두기를 좋아했고 볶음김치도 무난했지만 그냥 김치는 싫어했지요. 그리고 달걀후라이와 구운 김은 꼭 있어야 했습니다.

달달한 양념고추장 한 숟가락도 빠지면 무척 서운하지요.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양념고추장에 쓱쓱 비며서 김에 싸먹으면 도시락 한 통은 간단히 비울 수 있었으니까요.

근래에는 카페나 술집에서 양은 도시락통에 밥과 반찬을 담아 '옛날 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팔기도 한다더군요. 아래 동영상은 옛날 도시락의 가장 흔한 구성인 듯 합니다.
https://youtu.be/OSJzqOJ7Swc
(동영상 총길이 : 1분 03초)

제 도시락과 동영상 속의 도시락을 비교하자면 멸치는 고추장에 볶고 김치는 들기름에 볶는 차이점을 빼면 아주 많이 비슷해요. 근데 제 도시락에는 분홍소세지는 없었어요. 대신에 구운 김이 있었지요. 곰곰히 따져보니 제 도시락에서는 양념고추장, 달걀후라이, 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였네요.

급식제가 시행되면서 도시락이 없어진 요즘의 아이들은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를 모르겠지요? 넉달만에 20cm나 자랄만큼 폭풍성장을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어요. 더운 김이 빠지지 않은 채 식은 찬밥은 왜 그리도 달던지...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을 야금야금 먹다보면 정작 점심시간에는 밥이 절반도 안남아 구내식당에서 우동이나 라면을 사먹어야 했었지요.
(우동국물에 말아먹는 찬밥도 별미였습니다. 그때는 뭐든 다 맛있었지만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던 시절의 식성과 지금의 식성을 비교해보니 차이는 거의 없더라고요. 근데 편식은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심해졌어요. 구할 수 있는 한식 재료가 제한적이다보니 먹는 것만 먹게 되는데다 돼지고기와 생선을 극도로 기피하게 되었거든요. 게다가 어렸을 때와는 달리 제 입맛에 맞춰주는 식사를 계속 하다보니 편식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걸 교정하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했지만 짧은 식성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요.

매일 반찬을 달리해서 도시락을 싸주시는 게 엄청 어려운 일이셨을텐데 철딱서니없이 반찬투정이나 해댔으니... 그걸 또 싫은 소리 한번 안하시고 다 들어 주셨어요.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한없이 고맙고 그리워지는 게 꽤 있더라고요. 도시락도 그 중에 하나더군요.
14 Comments
sarnia 2020.09.13 09:15  
인천공항 1 청사 지하에 가면 푸드 온 에어라는 식당이 있어요. Food On Air.
분식집 비슷한데 노란색 양은 도시락에 담은 ‘추억의 도시락’이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반찬을 보니까 계란후라이, 콩장, 김치, 계란옷 입힌 햄이 전부 다 였던 것 같아요. 
햄이나 소시지는 진주햄 브랜드여야 할텐데 그것까지는 확인 안 해 봤구요. 
5000 원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다른 걸 먹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저 반찬 네 가지만으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우동국물을 따로 주니까 구색이 딱 맞기는 합니다.
공항식당이 다 비쌀 것 같지만, 지하에는 아주 저렴한 식당이 있어요.
일반 승객들보다는 승무원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식당 매뉴 중에는 순대 2000 원 떡볶이 3000 원 부산어묵 1000 원 등등 도 있어요.
저길 왜 내려갔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암튼 한 번 내려가서 잔치국수를 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이름 2020.09.13 11:15  
예전에는 잡곡을 섞어서 밥을 지었다는 걸 선생님한테 확인받아야 하는 '도시락 검사'라는 게 있었지요?

도시락 밥만 따로 하는 집은 드물테니 자연스럽게 다른 가족까지 잡곡을 먹게 만들어서 부족한 쌀 생산량 문제를 풀어보려던 유신정권의 묘방인 셈이였지요. 가정에선 쌀 위에 잡곡을 조금만 얹어 밥을 지어서 그 부분만 도시락통에 담는 방법으로 나름대로 피해가기도 했고요.

그 '도시락 검사'라는 거 때문에 저도 통보리쌀의 톡톡 씹히는 묘미를 알게 되었는데 진정한 의미의 옛날 도시락이나 추억의 도시락이라고 부르려면 밥에 잡곡이 섞여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근데 콩이 들어가면 싫어요. 수수나 통보리는 좋고요.)
물에깃든달 2020.09.14 13:06  
저는 도시락들고다니다가 중간에 급식으로 바뀐 경우입니다(지방이라 보급(?)이 좀 늦은것 같아요). 2교시 끝나고 까먹는 도시락 진짜 별미죠... 그리고 점심시간에 매점가서 5백원짜리 햄버거 사먹고, 담장 넘어가서 떡볶이 먹고 그랬습니다.ㅋㅋㅋ 진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팟던 시절이었네용...
지금은 그때의 소화력이 부러울뿐...ㅠㅠ
이런이름 2020.09.15 02:12  
오! 담치기. 여학생들도 담치기를 하는군요. 학교 다니면서 그런 추억이 한두 개쯤은 있어야 세월이 지나서 빙긋 웃을 수 있지요.

어른들 말씀으로는 그 무렵을 "돌도 삼키면 소화가 되는 나이"라고 하시더군요.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하루에 5끼를 먹어도 간식은 따로 챙겨 먹어야 했었지요. 그렇게 먹어도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서 몸은 젓가락처럼 바짝 마르고 키만 자라더라고요.
물에깃든달 2020.09.15 09:09  
저는 먹는 족족 살로가긴 했지만 그렇게 잘 먹으니 키도 좀 빨리 크긴 하드라구요ㅋㅋㅋ
담치기 당연히 하죠!! 교복치마 안에 체육복바지입고 넘거나...아니면 담장 바로앞의 문방구아줌마가 배달해주시기도 했지요.
비육지탄 2020.09.14 15:14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식기 전에 먹어라"라는 말씀을 듣고 자라서
등교와 동시에, 김이 아직 있을때 섭취 했드랬죠 ㅋ
역시 밥은 따뜻한 밥이 제 맛이죠
아침 8시에 등교해서 밤 12시에 하교라 점심,저녁 두끼 밥을 큰 양은 도시락에 싸갔는데
컨디션에 크게 문제가 없으면 보통 아침에 작살을 냈죠...남자답게..ㅠ
그 후로는 한문수업 시간에 배운 "십시일반" 을 실천 했죠. .
숟가락 하나 들고 교실 순회하며 한숫갈씩...ㅠ

어렸을때 어른으로부터 겪은 일들중 아직까지 미스테리가 몇가지 있는데..
하나는 운동부 시절 제가 맞은것만큼 아이들을 때리는게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숙생에게 2년동안 도시락 반찬을 오로지 히멀건한 김치 한가지만 싸주는 일이에요
입장 바꿔 제가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죠
이런이름 2020.09.15 02:34  
하숙을 하셨던 모양이네요. 같은 반에 경기도 대부도에서 유학와서 하숙을 하던 학생이 있었는데 도시락 반찬이 그 정도는 아니였어요. 비육지탄님이 살았던 하숙집이 좀 이상한... 어쩌면 십시일반을 통해 편식없는 식생활을 할 수 있게 지도해주신 고마운(?) 하숙집 주인이군요.

저는 교육을 목적으로 제한한 범위 내에서의 체벌에 찬성하는 쪽이지만 (미국서도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체벌이 있는 학교들이 있어요.) 폭력이나 구타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예전에는 운동부 활동을 하면 어떤 운동부든 많이 맞는다고 알려져 있었던 거 같아요. 폭력을 통해 악발이 근성을 키운다는... 경기에서 지면 아오지 탄광에 보낸다는 북한의 스포츠 상벌정책과 비슷한 일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비육지탄 2020.09.15 08:59  
밥얘기 하다 문득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취미로 하는 운동은 안그럴지 몰라도 선수목적 운동부는 뭐 엄청났죠
낮엔 감독,코치에게 맞고 밤엔 선배들에게 맞고 ㅋ
요즘 이따금 스포츠 구타사건이 터져 사회적 이슈가 되고 그러는게
저는 좀 낯설고 새삼스러운 감정이 좀 있어요 ㅋ
세상이 엄청 좋아진거죠
부모님께 하소연해도 소극적인 시절이었거든요..

그 십시일반도 사실은 좋은 행동은 아니죠
저는 제것도 나눠 먹느라고 서슴없이 오픈 했습니다만 (도시락을 깜빡 안챙겨온 녀석 때문에)
자기 먹이를 나누고싶지 않아하는건 어쩌면 당연한거죠 ㅋ
제가 밥 뺏어먹은 이 일 때문에 연예인을 못해요ㅋㅋㅋ
물에깃든달 2020.09.15 09:12  
첫째줄에서 빵타졌습니다. 진짜 ㅋㅋㅋㅋ 상상이상입니다ㅋㅋㅋㅋ
비육지탄 2020.09.15 09:30  
부모님 말씀요??
제가 쫌 가정교육을 잘 받은 편이죠.. ㅡ.,ㅡㅋ
롤러캣 2020.09.19 12:12  
맞은 만큼 때리는게 불가능...하하하
복학왕 소환되네요
비육지탄 2020.09.19 12:36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맞았으면 맞은만큼 때릴 수도 있다는 말씀인지
복학왕은 무슨 말씀인지요?
저는 맞았지만 그때 제 나이의 지금 아이들을 제가 맞은만큼
때리는건 도저히 못 할 일이란 얘기였는데
혹시 오해를 하신건 아닌지요
롤러캣 2020.09.19 12:09  
도시락하니 국민학교 삼학년 남자 짝꿍이 생각나네요.
앞의 두명이 돌아앉아서 일년내내 넷이서 도란도란 도시락을 먹었지요.  잘생기고 착한 짝꿍이 늘 자기반찬을 먹으라고 권유하는데 부끄러워서 못먹었네요.
저도 두부는 싫었어요. 뜨거운 두부는 너무 맛있는데 차가운 두부는 그 두부가 아닌듯하고 식감이 고약하죠.
고추장에 볶은 조갯살은 무슨 맛일까요 감칠 맛나고 맛있을 것 같네요. 저희집은 콩장 싫은데 콩장 자꾸 싸주셨죠. 검은 코끼리 밥통에 마지막 단에 된장국 김칫국 싸가지고 다녔는데 흐른 기억이 별로 없으니 잘만든 밥통인가 봅니다
이런이름 2020.09.20 00:28  
고추장에 볶은 조갯살은 "설탕을 넣었나?" 싶을 정도로 달아요. 근데 설탕 단맛과는 전혀 다른 단맛이지요. 아마 그게 말씀하신 감칠맛이 아닐까 싶네요.

이거 만들 때는 이것 저것 넣으면 망해요. (집에서 담근 덜 달은) 고추장과 조갯살만 넣고 볶아야 조갯살에서 나온 즙이 고추장을 지배해서 맛이 극대화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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