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싼의 역사 1 - 명이의 태국 이야기 4
이싼의 역사를 얘기하려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결정해야 합니다.
먼저, 시간은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으니 기원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공간은 코랏 고원(현재의 이싼 지방을 일컫는 지리적인 용어로 평균 고도 200m인 평야 지대)만 뚝 떼어놓고 할 수 없으니 섬 지방을 제외한 대륙 동남아시아 전체를 배경으로 하겠습니다.
글이 얼마나 길지 재미가 있을지 지금은 저로서도 모르겠네요.
그럼 출발합니다.
<Frank Ramspott 라는 아티스트가 만든 지형도로 해발 고도를 과장하여 지형을 강조함>
지형도를 먼저 보여드리는 것은 이곳으로 사람과 문화가 어떻게 들어왔냐를 알기 위함입니다. 히말라야가 인도 북부를 벗어나도 높은 건 변함 없습니다. 동쪽으로 달리던 히말라야 산맥은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인도와 미얀마를 가로지르는 [여까잉 산맥], 미얀마와 태국을 가르며 말레이 반도 끝까지 내달리는 [빌라우따웅 산맥]과 라오스와 베트남 사이의 [누이쯔엉 산맥]. 이렇게 험준한 산들이 사람의 통행을 막고 섰습니다. 동쪽 끝 베트남 북부의 홍강 삼각주만이 북쪽과 좀 이어진 느낌을 줍니다.
영국이 인도를 먹고 네덜란드가 동남아 일대의 섬들을 집어삼킨 후 프랑스는 이곳으로 진출하면서 인도와 차별화된 지역이라는 의미의 인도차이나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말 그대로 지리적으로는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문화적으로도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란 뜻입니다. 그러면서 인도차이나 지역을 식민지화 합니다.
그런데 지형도를 보면 알겠지만 인도에서 육로로 동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중국이 홍강 델타로 남진해봐야 서쪽으로 진출은 역시 불가합니다. 중국이 고대에 이곳에 끼친 영향은 오직 베트남을 통해서였습니다.
베트남은 중국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중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진나라 말기 진나라의 장수였던 조타는 홍강 유역 일대를 점령한 다음 국경을 닫고 스스로 남비엣의 왕이 됩니다. 이 조타(베트남어: Triệu Đà찌에우 다 趙佗)는 우리나라 역사의 기자조선의 기자와 같이 조금 애매한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후 다시 한나라에 정복당한 후 900년대까지 중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인도 문화는 어떻게 왔을까요.
바닷길을 따라서 왔습니다. 인도의 상인들은 바닷길을 따라 동진하여 말라카 해협을 건너 메콩강 하류 삼각주에 도착하게 됩니다.
<푸난 왕국 영역도>
이때부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푸난(Funan 부남 扶南) 왕국이 이 지역 최초의 정치 결사체였다고 여겨집니다. 인도의 브라만이 와서 그 당시 이곳을 다스리던 여왕과 결혼하여 왕이 되었다고 중국 역사책에 남아 있습니다. 푸난 왕국은 인도화된 최초의 나라였고 인도와 중국의 중개 무역을 통해 번성하게 됩니다. 이때가 1세기로 추정됩니다.
그 후 2세기 경에 또 하나의 인도화된 왕국인 참파(Champa, 임읍 林邑) 왕국이 생겨나 15세기까지 베트남과 크메르와 사이에서 경쟁하며 존속했습니다.
<참파 왕국 영역도>
그럼 1세기 경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최초의 원주민들은 체구가 왜소하고 피부가 검은 네그리토(Negrito)족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원전 4천년 경부터 북부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에게 쫓겨납니다. 이때의 이주민을 북쪽의 몽골계와 구분하여 남부 몽골계라고 부릅니다.
남부 몽골계는 언어적으로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말레이 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남부(오스트로네시아족)
따이(Tai) 계: 타이, 라오스, 중국의 장족 (따이-까따이족)
버마 티벳 계: 미얀마 (중국-티벳트족)
몬 크메르 비엣 계 : 몬-크메르족, 비엣족 (오스트로아시아족)
동남아시아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문화적 다양성"입니다. 인도와 중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토착 문화, 여러 인종과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만큼 동남아시아인들의 인종적인 정체성을 찾아내어 분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을 분류할 수있는 유일한 기준은 언어입니다.
푸난 왕국과 참파 왕국은 말레이 민족의 나라였습니다.
푸난은 메콩 델타의 풍요로움과 함께 해상 무역을 독점하면서 쌓아올린 부로 동남아 일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위의 푸난 왕국 영역도는 3세기경 푸난 왕국이 가장 강성하던 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말레이시아 지역에 있는 왕조(슈리위자야 왕국)에게 무역의 지배권을 뺏기게 되어 쇠퇴하다 북에서 내려온 크메르 민족에게 흡수당하게 됩니다.
<크메르 제국의 최대 영역>
크메르 제국은 인도의 힌두교를 받아들여 그 유명한 힌두교 사원 앙코르왓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불교 사원 앙코르 톰도 건설하면서 그 국력의 크기를 가늠케 합니다.
크메르 제국이 한창일 무렵 크메르와 친족인 몬족은 오늘날 태국 북부에 하리푼자야 왕국을 버마 지역에는 파간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크메르와 몬족의 가장 큰 역할은 따이족에게 불교(테라바다 불교, 상좌부 불교, 소승불교)를 전래하고 문자를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크메르는 인도의 종교와 함께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받아들였고 문자 또한 남인도의 팔라바 왕국에서 사용하던 그란타(Grantha)문자를 받아들여 크메르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앙코르 시대에 이미 산스크리트어와 크메르 문자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중국을 거쳐 문화를 받아들인 베트남 북부를 제외하면 동남아시아에서의 문화는 바닷길을 따라 들어온 인도 문화의 영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인도 문화는 말레이 민족이 세운 푸난 왕국에서 크메르로 전해지고 크메르에서 다시 따이족(타이, 라오)으로 그리고 버마족으로 전해졌습니다.
9세기부터 시작된 크메르 문명은 사실상 역사가 잠들어 있었던 동남아시아를 깨어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4세기 짜오프라야강 하류에서 일어난 타이족의 아유타야 왕국에게 수도인 앙코르왓을 침략당한 후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부터는 지금까지 오욕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야 우리 주제인 이싼으로 돌아가자면 이싼 지역의 최초의 지배자는 크메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한 줄이 오늘의 요약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본격적인 태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