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카오산 사진과 함께 하는 옛날 여행 이야기
제가 처음 여행을 시작한 것은 1994년 1월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 할 때까지 몇달 동안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을 가지고 16일간 태국을 여행 한 것이 제 여행의 시작입니다.
해외여행에 대한 생각은 중학생때부터 했는데요, 그 당시 이문세씨가 진행하는 '별이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프로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감독 이규형씨가 일요일마다 나와서 다른나라를 배낭여행으로 돌아다닌 얘기를 해줬어요.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 방송을 들으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외국에 나가 볼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동경을 했던 것 같아요.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되고 햇빛다솜출판사 같은데서 배낭여행 관련한 책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90년대 들어 PC통신이 시작 되면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와 여행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수 있게 되었죠.
사실 처음에는 태국이란 나라는 여행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배낭여행하면 유럽이지~'라는 분위기였고 저도 당연히 유럽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제 수중에 있는 돈으로 유럽은 불가능하단 걸 깨닫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차선책으로 어디가 좋을까 찾아보니 동남아, 그중에서도 태국이 적당해 보이더군요.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일반적인 IATA 항공권 말고 SATA 항공권이라고 학생에게 저렴하게 팔던 항공권이 있었어요. 요즘은 이티켓으로 발행되고 여권만으로 탑승수속이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여행사에 직접 가서 무슨 수표책 같은 것에 손으로 써서 주는 항공권을 받아왔어요.
그렇게 비행기표와 작은 배낭에 짐 챙기고 400달러를 환전해서 태국으로 가게 됩니다.
태국 첫 여행은 아유타야-치앙마이-방콕-꼬싸멧-방콕의 루트였어요.
이 첫 여행부터 꽤 큰 난관을 만났는데 여행경비 중 50달러 짜리 세 장 150달러를 잃어 버린겁니다. 다행히 여행자수표였기 때문에 나중에 방콕에 와서 손실 없이 그대로 되돌려 받을 수 있었지만 수표 분실 신고를 하느라 이 은행 저 은행 찾아 다니고 미국으로 전화 걸고... 치앙마이에서는 그러느라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도 방콕으로 내려왔어요.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게시판에 질문하면 척척 해답이 나오지만 그당시에는 며칠동안 정말 멘붕 그자체 였죠.
아무튼 정말 다행히도 돈을 되찾고 나니 그제서야 태국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카오산도 실제로 가보고 열대의 바닷가 방갈로에서도 지내보고...
그렇게 첫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게, 사실 여행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태국이 그렇게 좋았던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계속 여행하던 나날들이 머릿 속에 맴도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그이후로는 여름방학때 알바를 해서 돈을 모르고 겨울방학때 해외여행을 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됩니다.
급기야 휴학을 하면서 여행을 하고 결국 제때 졸업도 못하고 교수님께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는 ㅠㅠ
지금은 사진은 물론이고 TV며 인터넷에서 여행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잖아요.
그때는 가이드북의 사진 몇 장과 단편적인 여행기에 의지해서 현지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행준비를 했어요.
처음 돈므앙 공항을 나와서 놀란게 너무 도시가 번듯한거였어요. 상상속의 태국은 길거리마다 쓰레기 더미가 넘치고 개들이 그 쓰레기를 뒤지고 다니는 그런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길에는 가로등도 있고 기차역도 제대로 되어있더라고요. 2년뒤 인도를 가니 제가 상상하던 그런 분위기가 거기에 있긴 하더군요. 그당시에는 동남아와 인도를 생각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려웠던 거지요.
첫 여행 방콕 카오산에서 느낀 멀끔하면서도 이국적인 도시 분위기에 다양한 여행자들로 활기찬 모습이 각인 되었고 그게 아마도 제 여행의 방향을 잡아 줬던 것 같아요. 저때 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갔더라면 아마 지금 태사랑이 없었을 수도? ^^;
첫여행 카오산에서 묵었던 숙소는 Dior 게스트하우스의 50밧짜리 1인실이었어요.
그때는 길에 사람도 지금처럼 많지 않고 노점도 적었지만 업소들은 밤새 영업을 했지요. 여행자들과 노천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새벽이 밝아 올때까지 여행얘기로 날을 지새곤 했습니다.
카오산에 한인업소가 처음 생긴 건 94년 말이었어요. TV프로 인간극장에도 나오셨던 박상철씨가 운영하던 만남의 광장입니다. 95년에는 홍익인간도 생겼죠. 두 곳 다 위치와 운영자분들이 몇번 바뀌었어요.
그 이전에도 쌈쎈의 뉴월드 롯지(지금의 누보시티 구관)에 '한국인의 집'이라고 여행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본격적인 한인업소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2000년 이전들의 사진은 올릴만한 사진이 별로 없어요.
필름카메라 당시에는 지금처럼 마음대로 사진도 못찍었어요. 찍은 다음에 확인 할 수도 없고 필름값도 만만찮았죠. 그야말로 '여기 왔다 감'을 표시하는 몇장의 증명사진이고 풍경만 찍는 다는건 사치였던 시절이네요.
지금처럼 사진이 풍부해지게 된 것은 디지털카메라와 대용량 메모리가 생기고 나서죠.
그나마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때 사진을 많이 못찍은게 메모리 카드 저장용량이 작은데다가 비쌌기 때문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리브레또와 3.5인치 디스켓 같이 생긴 외장저장장치 갖고 다니면서 백업 받으면서 다녔네요.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 품질도 너무 좋고 찍은 즉시 클라우드에 저장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스마트폰 때문에 좋아진 것 중 또 하나가 음악 듣기에요.
예전에는 다 아시다시피 워크맨으로 테입을 들었죠. 저는 워크맨은 아니고 아이와를 썼어요. 재충전해서 쓰는 충전지 였긴 한데 시간이 얼마 안가서 그거 아끼느라고 테입 되감을때는 볼펜에 끼워서 돌린 기억 나시는 분들 꽤 되실 듯...
그러다가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나오고, MP3 플레이어가 나왔을때는 정말 획기적이었죠.
카오산의 음악관련 노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 테입에서 음악CD, 그리고 MP3 CD로 변했는데 지금은 그런건 볼수 없고 블루투스 스피커나 헤드폰 파는 가게만 보이네요.
지금은 볼수 없는 카오산의 CD 노점
위 사진에서 왼쪽 뒤에 보이는 노란색 공중전화는 국제전화걸 수 있는 선불카드식 전화기에요.
저거 이전세대는 동전넣는 공중전화를 쓰거나 여행사 같은데 들어가서 전화번호를 적어서 주면 연결시켜 주고 분당 얼마씩 받는 형태였답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좋아진 것도 있지만 좀 삭막해 졌다고 할까...
예전엔 도미토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여행 정보도 나누고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 도미토리에 가면 각자 침대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더라고요.
인터넷 카페 요금표
예전엔 이렇게 가이드북도 많이 팔았어요.
요즘은 가이드북 갖고 다니는 여행자들도 많이 없죠.
사진에 일본책들이 많이 보이는데 예전에는 카오산에 보이는 동양인은 거의 20대 초반 일본인들이었어요.
96년 쯤 피안 도미토리에서 장기로 지낸적이 있는데 방에는 침대 13개가 있었고 그중 12개가 일본인.
침대 칸막이도 없고 1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은 형태 였죠.
딱 1개 있는 2층 침대의 1층은 그나마 프라이버시가 좀 보장되는 공간이어서 사람들이 들고나면서 고참 순서로 그자리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일본 여행자들과는 물론 역사적인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나마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죠. 영어 수준도 비슷하고 선호하는 음식메뉴도 비슷해서 잘 어울려 다녔던 것 같아요.
그곳에 장기로 있던 한 일본 남자 여행자는 나중에 몇년 만에 다시 카오산에서 만났는데 아예 방콕에 눌러 앉아서 일본 가라오케 매니저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요 사진은 뉴월드 백화점이 영업을 하고 있을때입니다.
아마 뉴월드 백화점이 영업을 할때 들어가신 분은 거의 없을거에요.
11층 건물인데 원래 4층까지만 인가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불법증축과 안전문제로 2004년부터 폐쇄가 되었어요.
여기 꼭대기 층에 푸드코트가 있었는데 남쪽으로 통유리 창이 있어 멀리 왕궁까지 보이는 괜찮은 식사장소 였답니다.
건물이 폐쇄되고 불법 증측된 부분은 철거 되었는데요, 소유권 지분 문제로 아직까지 완전 철거가 안되고 있는 유령건물입니다.
한때 이곳 지하층에 고인 빗물에 물고기를 길러 화제가 되기도 했죠.
>> 그 사진보기
람부뜨리 거리 사원 옆길 풍경입니다.
아직 람부뜨리 빌리지가 들어서기 전이죠.
지금은 북적북적하지만 2000년대 초에는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어요.
지금 람부뜨리 빌리지 자리에는 원래 이런 학교가 있었어요.
외국인이 ATM에서 돈을 뽑아 쓰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초에요.
그전에는 환전소를 이용했는데 환율좋은 사설환전소는 시내 나가야 됐고 은행환전소 밖에 없었죠.
지금은 노천바가 밀집해 있는 디앤디 앞 구역도 예전엔 이런 분위기였어요.
카오산은 현지인들이 잘 안오는 지역이었는데 이때쯤 부터 현지인들을 위한 업소가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지금 밤이 되면 카오산과 람부뜨리에 인파가 넘치게 된 것은 태국 현지인들이 놀러 오면서 부터에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카오산은 외국인만 있는 곳으로 알고 계신데 그렇지 않습니다. 밤시간에는 현지인, 외국인 비율이 반반 정도에요. 카오산 거리 구경오는 현지인도 있지만 태국인들이 주 고객층인 바, 클럽이 카오산과 주변에 꽤 많이 있어요. 거기 드나드는 유동인구 때문에 카오산이 북적이게 된 거죠.
요즘(코로나 이전)은 광란의 분위기인 카오산 센터 앞도 얼마나 단정한 분위기였는지 보세요.
한때는 경찰들이 말을 타고 순찰 돌기도 했어요.
카오산에 있는 차나쏭크람 경찰서도 공사중이라던데 규모도 좀 커지려나요...
이 당시 카오산 노점 물가입니다.
팟타이 10밧부터
각종 단품식사는 20밧 대
과일 쉐이크 15밧부터
중고품 사고파는 곳
요즘 카오산이 새로 단장 중이지요.
코로나때문이 아니고 카오산과 함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밤거리인 차이나타운, 씰롬을 깨끗하게 재정비하는 사업은 계획이 잡혀 있던 거에요. (기사참조)
마침 코로나 때문에 공사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 되겠네요.
세월이 흐르면서 거리도 변하고 거기에 있던 사람도 변하고... 또 나도 변하고...
옛날 사진 뒤적이다가 그때 시절이 생각 나서 두서없이 끄적여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