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싼, 그 명칭에 담긴 비밀 이야기 - 명이의 태국 이야기 3
이싼이다.
왜 이싼일까?
오늘은 이싼이라는 이름에 대한 비밀을 풀어보겠습니다. 약속대로라면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역사 이야기는 너무 본격적인 느낌이라 중간에 명칭 이야기를 한번 끼워넣었습니다.
지역은 모두 자기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한 지역의 이름에는 여러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예로 들면 대전은 한밭, 넓은 들이란 뜻입니다. 부산은 솥두껑 모양의 산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면 서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서울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나왔습니다.
서라벌 => 셔ㅂ을 => 서울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언어학적인 설명입니다. 그럼 의미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서=새"로 볼 수 있는데 새롭다, 동쪽, 밝다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샛별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초저녁에 잠깐 동쪽에서 볼 수 있는 금성을 샛별로 불렀고 동쪽의 의미가 밝다, 빛, 해 등으로 발전해 나간 것으로 유추됩니다. 그리고 "벌=부리" 벌판, 평야, 너른 땅, 마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리란 단어는 태국에 많이 있죠. 촌부리, 랏차부리, 깐짜나부리 등등 많습니다.
그럼 서울은 '새로운 땅'이라는 뜻이 되고 신라 시절부터 수도를 뜻하는 단어가 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서울은 지명 중 거의 유일하게 한자가 없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순 우리말이죠.
나라 이름을 한번 봅시다.
조선 朝鮮 - 무슨 의미일까요?
19세기 구한말에 한자말을 그대로 번역하여 The Land of Morning Calm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조 朝 - 아침이고, 선 鮮 - 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역시 나라라는 뜻이라고 보면 위의 아침의 나라라는 해석이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조선을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로 해석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나라가 해가 일찍 뜨는 나라입니까. 한국 사람이 한국을 보면 해가 일찍 뜨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보다 서쪽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조선(아침의 나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일본 日本 -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자기가 스스로 해의 근본이라고 생각할리 없습니다. 일본보다 서쪽에 있는 우리의 시각으로 봐야지 일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조선과 일본의 명명 방식을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외부의 시각에 찾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타자화 시키는 나라 이름 짓기입니다.
중국 中國 - 가운데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건 반대입니다. 주변을 타자화 시키면서 만든 이름입니다. 가운데란 개념은 주변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변을 타자화 시키지만 이 역시 스스로를 타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조선, 일본과 다르지 않은 작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싼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태국 동부부 지방 사람들은 스스로를 '푸 이싼'으로 자신들의 방언을 '파사 이싼'으로 지역을 '팍 이싼'으로 부르며 이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ईशान • (ī́śāna, īśāná)
이싼은 산스크리트어 '이샤나 ī́śāna'에서 파생한 것으로 어원은 '이샤'ī́śā'입니다. 이샤는 힌두교에서 세계의 동북부를 지배하는 시바(Shiva)신의 한 별칭입니다. 여기에서 '이싼=동북부'라는 의미가 유래했다고 여겨집니다(영국의 산스크리트어 교수 Monier-Williams의 해석).
이싼이 동북부라는 말을 보자면 이싼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동북부'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계'는 바로 태국입니다.
역사란 것은 간단하게 보면 그땅(예를 들면 태국 동북부 이싼)은 누구 땅이었냐는 겁니다. 주인이 누구였냐입니다. 이싼은 누구 땅이었고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최초의 역사 기록을 보면 크메르의 땅이었습니다. 앙코르왓을 건설한 바로 그 크메르가 지금의 동남아시아 거의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태국 최초의 왕조 쑤코타이(13세기)가 나오고 뒤이어 아유타야(14세기)가 나옵니다. 아유타야 건국 즈음에 라오(Lao)의 왕자 파 응음은 크메르 군대의 도움(아유타야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음)으로 루앙프라방에 란상 왕국을 세웁니다. (1354년)
라오스의 역사는 란상 왕조가 시작입니다. 란(백만) 상(코끼리), 백만 마리 코끼리라는 뜻의 란상 왕국은 꽤 큰 나라였습니다.
란상 왕국 시절 많은 라오인들이 메콩강을 건너 지금의 이싼 지방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크메르인들이 살고 있었기에 자연히 크메르 문화의 영향도 받으면서 이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란상 왕국은 북쪽의 루앙파방, 중부의 위앙짠, 남부의 짬파삭으로 분열하게 되었고 시암인(태국 중부 동부에 살고 있는 타이족을 이르는 말)들은 동진하여 결국 이 3개 왕국을 모두 속국으로 만듭니다. 태국은 이때부터 서서히 이싼 지방에 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라오스 수도 위앙짠에 가면 커다란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동상은 위앙짠의 왕이었던 아누의 동상입니다. 왼손에는 칼을 들고 오른손은 태국을 향해 내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누군가는 태국을 향해 더이상은 오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아누(짜오 아누웡)왕은 짬빠삭과 연합하여 1827년 태국으로 쳐들어갑니다. 파죽지세로 코랏까지 내달렸지만 시암인들의 반격을 받아 수도인 위앙짠까지 완전히 털리고 맙니다. 이때부터 태국은 이싼 지방을 본격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이싼 지방은 작은 성읍 도시들이 있는 통치권이 불명확한 지역이었습니다. 태국은 라오스의 3개 왕국을 속국으로 두었지만 조공을 받는 형식을 취하면서 직접적인 지배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누왕의 공격을 계기로 이싼 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싼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북 지방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태국으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 생각에 이점이 우리가 이싼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어려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왜 이싼 사람들은 바로 메콩강 너머의 말도 같고, 음식도 같고, 문화도 같은 라오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의탁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저의 의문이었습니다. 이싼에 살면서 제가 보기에 그들은 분명히 라오 사람인데 이싼 사람들은 자신을 라오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자신을 고유하고 유일한 "나"로 느끼는 것을 주체성이라고 합니다.
나는 나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
하지만 어떻게 나를 고유한 "나"로 인식할까요? 그것을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가 타자성입니다.
주체성이 고유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면, 타자성은 다른 사람과 다른 나를 말합니다.
이싼 사람들은 현재 태국이라는 영토에 살고 있으면서 라오스 사람과는 다르다는 타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인이지만 결코 시암인들과는 같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느끼고 있습니다. 시암인들과는 다르다는 타자성, 바로 이 두 가지의 타자성이 이싼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의견입니다.
스스로 고유하지 못하고 타자성을 통해서 정체성을 만드는 이싼 사람들이 그래서 좀 슬퍼 보이고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이상이 스스로를 푸 라오(라오 사람), 콘 타이(태국 사람)가 아닌 푸 이싼(이싼 사람)이라고 부르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습니다.
다음은 정말 역사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역시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