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방콕 체류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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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방콕 체류기-4

필리핀 4 466


여행자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빨래이다. 태국처럼 늘 더운 나라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하므로 금세 빨래감이 쌓인다. 관광대국답게 태국 곳곳에는 여행자를 위한 빨래방이 많이 있다. 오전에 맡기면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에 찾을 수 있으며 요금은 1킬로그램에 35밧으로 한화로 1500원 수준이다.

방콕 카오산에는 내 단골 빨래방이 있다. 작고 비쩍 마른 체구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그 빨래방에만 옷을 맡긴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할머니는 별다른 가족도 없이 혼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것 같았다. 그 많은 빨랫감을 혼자 힘으로 세탁하고 널고 개고 간혹 다림질도 한다. (다림질은 옵션이다.) 게다가 그 빨래방에서 숙식도 해결하는 것 같았다. 담도 벽도 없고 천막을 지붕으로 삼은 바깥 공간에서 말이다.

어떤 여행 친구는 할머니가 물 아끼느라 헹굼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때가 덜 가시는 그 빨래방을 왜 이용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같은 값에 훨씬 깔끔하게 빨래를 해주는 곳도 많은데 하필이면 그 집이냐고. 그 물음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친구 말이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란 게 존재한다. 툭하면 옷이 바뀌고 양말 한 짝이 사라져서 속을 썩이곤 하지만, 나는 방콕에 올 때마다 그 빨래방에 옷을 맡긴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간단한 안부 인사도 제대로 나눌 수 없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잘 지키고 계신지 눈인사라도 하러 일부러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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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히어블루스바에서 이틀 연속 같은 사람들과 합석을 했다. 애드히어블루스바는 장소가 협소해서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는 일은 당연하다. 특히 주말에는 한 테이블에 서너 팀이 합석하기도 한다.

이틀 연속 나와 합석을 한 두 여성은 얼굴이 너무 닮아서 쌍둥이냐고 물어봤더니 자매라고 했다. 언니는 46세이고 동생은 43세란다. 자매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살고 있단다. 태국에서 악세사리와 의상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언니의 출장길에 동생이 따라왔다고 했다. 태국 남부의 섬 꼬따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한국인 사진가를 만났는데, 내가 자신들이 만난 두번째 한국인이란다. 둘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데 아이를 둘씩 키우고 있단다. 둘 다 미혼모인 셈이다. 그런 말을 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미혼모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스페인 자매의 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내가 몇 살이라고 알려주자 자기보다 어린 줄 알았다고 하면서 10년 뒤에 자기랑 사귀자고 한다. 연예도 예약이 되던가? (코로나19가 스페인을 휩쓴다는 뉴스를 보고 페이스 북으로 연락을 했더니 두 자매는 무사하며 집콕 중이라고 한다.)

어제는 캐나다에서 온 중년 부부와 합석을 했다. 두 사람은 태국에 처음 왔단다. 재즈 공연을 무척 좋아해서 어제는 방콕의 또 다른 라이브바 색소폰에 갔단다. 남편은 판사이며 부인은 살림만 한단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는 걸 기억하고 있으며 같은 해에 자신이 살고 있는 캘거리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고 한다. 나는 내년에 한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캘거리에서 온 판사는 음악에 대한 상식이 깊었다. 서로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는데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자 판사는 내게 나이를 물었다. 내가 나이를 알려주자 깜짝 놀라면서 내가 서른 살쯤 먹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같은 세대라면서 껄껄거렸다.

오늘은 또 어느 나라에서 온 어떤 사람과 합석을 하게 될까? 오늘은 합석한 사람이 나이를 묻더라도 절대 곧이곧대로 알려주지 말고 스무살 쯤 적게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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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비육지탄 2020.05.03 14:36  
에헤이..자꾸만 제가 1번 댓글러인게 죄송한데요
그 빨래방은 저도 단골인데요
할머니와 딸이 함께 운영합니다
세탁상태도 너무 심하게 빨아서 면티셔츠 맡기면 물이 빠질 정도에요
1kg이 35바트인데 4kg맡기면 120바트에 해주시기도 합니다
저는 다른곳에서 안맡기고 꾹참고 모았다가 방콕와서 이곳에서 세탁해요
이제고만 닥칠께요 ㅠ
필리핀 2020.05.03 14:56  
허허
댓글을 다시려면 빠짐없이 달아야쥐
달다가 말면 하나도 안 다는 것만 못하죠
물에깃든달 2020.05.03 17:07  
저는 그냥 특별히 아주 비싸지만 않으면 숙소 빨래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단골도 있으면 정감있고 좋을것 같네요. 그렇지만 치앙마이에 단골 네일샾은 있답니다+_+
필리핀 2020.05.03 18:10  
뭐든지 단골이 있으면 좋죠
익숙해지면 편하고
신뢰가 쌓이면 인정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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