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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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좋아하세요?

이런이름 6 421
알라스카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두어달 지냈 적이 있습니다. 할 게 별로 없는 마을이였습니다. 산책(그나마 나중엔 곰 때문에 못했습니다.)을 하거나 맥도날드 매장에 앉아 본토 가격의 얼추 2배를 내고 산 햄버거를 먹으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정도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바다 위에 놓인 다리가 나옵니다. 다리 아래는 바닷물인데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고 바다로 흘러 들어오는 하천 몇 줄기와 갯벌 위를 흐르는 물길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그때가 대충 연어 산란기였던 것 같습니다.

산책을 나갔다가 하천 끝 쪽에 있는 곰 2마리를 보았습니다. 음... 곰이 영리한 게 밀물일 때는 안오고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일 때만 옵니다. 아무래도 썰물로 하천 수면이 낮아지고 폭이 좁아져서 연어를 낚아채기에 유리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곰은 하천 가운데서 네발로 서있다가 연어를 낚아 챕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성공률이 높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동물의 왕국에서는 성공한 장면들만 모아서 보여줬던 거 같습니다.

마을 사람 한 명이 연어가 올라가는 개울을 알려줘서 갔었습니다. 산 속에 있는 개울이였는데 폭은 펄쩍 뛰면 건널 수 있는 정도였고 수심은 연어 몸통이 다 잠기지 않고 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드러날 정도로 얕았습니다.

어쩌면 연어에게는 '마지막 마의 구간'이였을지도 모를 개울인 듯 했습니다. 그 개울에는 손으로도 건져 올릴 수 있을만큼 연어가 몰려 있었습니다. 바다에서부터 그 산속까지 올라오느라고 기운도 빠졌겠지만 너무 많이 몰려 있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북새통을 이루는 퇴근길 도로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개울 가장자리에는 올라가다 지쳐서 죽은 연어와 산란을 마치고 떠내려온 연어들로 빼곡합니다. 대개 생명을 다한 생물이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산란을 마친 연어는 정말 징그럽습니다.

색깔이 벌겋게 변해있고 비늘은 툭툭 떨어져 있어 마치 살갗이 벗겨져 있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물고기가 있다면 딱 저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마을 사람에게 벌겋게 변한 연어도 먹냐고 물어보니 맛이 없어 아무도 안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어는 산란지로 올라갈 때가 제일 맛있다고 했습니다.

앞서 곰이 영리하다고 했는데 영리할 뿐만 아니라 미식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천 상류로 가면 연어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데 굳이 하류에서 힘들게 잡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바로 '맛' 때문에 아닐까 싶더군요. 가장 활기있고 맛있는 상태의 연어를 먹으려는 미식가의 감각같은 거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마을에서 연어 머리를 굽는 것도 봤는데 (그 사람은 몸통도 나쁜 건 아닌데 머리구이는 별미라고 했습니다.) 기름이 많이 나오더군요. 장작불에 구우면 연어에서 떨어진 기름에 불길이 확 올라와 태워먹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연어 관찰기였습니다.
6 Comments
K. Sunny 2020.03.21 14:21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을 너무 맛깔나게 쓰시는 것 같아요, 멋진 소설가시네요^^
이런이름 2020.03.21 16:15  
음... 기분이 좋아지는 댓글이네요. 그럼 이번 기회에 소설가로 전업을 해볼까요?
(전업은 농담입니다. 전 지금 만족하고 있거든요.)
롤로토마시 2020.03.21 15:40  
아~너무 좋은 글이네요.
이런이름 2020.03.21 16:16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물에깃든달 2020.03.21 18:54  
우앙 작은 수필 하나 읽은것 같네요
이런이름 2020.03.21 20:42  
이거 참... 요즘 살벌한 글을 많이 봐서 기억을 더듬거려 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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