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많은 멋진곳 놔두고 요즘들어 생각나는 매쌀롱(매살롱) 차밭마을
여행지에서는 열심히 여행을 다니지만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까워서 여행자특유의 여유로움과 낭만어린 시선으로 태국이나 태국인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하여튼 감성적으로다가 좀 이런 목석같은 스타일인데, 요 얼마간은... 언젠가 태국에 가게 되면 그곳에 다시금 가봐야지... 라는 맘이 들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곳이 있어요.
치앙라이 주의 도이 매쌀롱(매쌀롱 산)입니다.
치앙라이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인 매싸이 방향으로 붕붕 달리다가, 매짠이라는 마을에서 내려서 썽태우를 타고(중간에 다른 썽태우로 한번 갈아탐)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빙빙 돌아가다 보면 도착하는 산속의 작은 마을. 산등성이를 따라 마을이 있고 양쪽 산비탈에는 차나무 들이 심어져 있어요.
이곳은 2차대전이 끝나고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운남에서 밀려 내려온 국민당 잔류세력과, 문명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소수민족(고산족) 들로 채워진 이방인들의 마을입니다.
이방인들이 고립된 고산지대에에서 차밭을 일구고 살고 있다... 뭔가 좀 마음을 울리는 서사가 있지요.
어쩌다 이곳에 국민당 잔류세력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혹시라도 궁금하시면 10년전에 요술왕자가 쓴 글인데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거야요. 이게 한국전쟁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거든요...
https://thailove.net/bbs/board.php?bo_table=myinfo&wr_id=19712
몇 년전 연말연시 연휴기간에 갔을때는 여기 놀러오는 현지인들이 꽤 많아져서 방도 없고 시끌벅적한게 좀 유원지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특수연휴기간이 아니면 지금도 고즈넉할겁니다.
매쌀롱을 처음 간, 대략 20여년 전에는 마을 아이들이 산짐승 잡아다가 목에 끈 달아서 막 델꾸 다니고 하더라고요. 그 아이들 이제 성인이 되었을 텐데, 지금도 여전히 거기서 살지 아니면 도시로 나갔을지 궁금하네요. 간혹 도시로 나가서 일하는 고산족과 중국인(태국 국적이 없는)이 있던데 태국에도 영주권 비슷한게 있는 것 같아요.
동트기 전 농구장 뒷길에 바지런하게 새벽시장이 열리는데 지대가 높다보니까 우리나라랑 비슷한 작물도 보이고, 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린 우리에게 딱 마시기 좋은 따끈한 두유가게도 있고, 갓김치 비슷한 고춧가루를 무친 채소절임도 있고요... 망고, 보리수 열매, 옥수수, 고구마 같이 그때그때의 제철 채소들과 과일이 소박하게 나와 있어서 10밧 20밧에 사먹기도 하고 그랬어요.
새벽시장을 구경하고 저멀리 동편 산봉우리에 해가 솟아오를때면 터덜터덜 내리막길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운남면교관에 들러서 아침식사를 합니다. 이름 그대로 ‘면’과 ‘만두(교자)’를 파는 식당입니다.
맨 처음 먹었을 20년전 즈음에는 20밧 했는데 요즘은 40밧 정도 할거에요. 그 당시 꼬마였던 어린이들이 지금은 애기 엄마가 되어서 장사를 거들고 있었어요. ^^
우리나라에 있을때는 이렇게 이른 아침에 위장에 뭔가가 당췌 들어가질 않는데 여기서는 마냥 술술 들어갑니다. 보드라운 면발에 고기 고명에 완탕까지 클리어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 그 날 하루는 그냥 평화 그 자체였어요.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였다니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너무 그리워요.
베란다에 앉아서 뭉글뭉글 푸르른 차밭 사이로 해 뜨는거 보고, 저녁엔 온통 강렬한 석양빛 사이에서 둥둥~ 그러다가 다리에 힘을 좀 붙이고 싶으면 근처 왓 싼띠끼리에 올라가고요. 여기 계단이 무려 700개가 넘어서 다리가 후덜덜해집니다.
무진장 심심하지만 그래서 평화로운 곳, 이방인 특유의 연대가 있고, 차밭의 푸른빛이 눈을 편안히 해주는 곳, 그래서 저절로 근심걱정을 내려 놓게 되는 곳...
제가 요즘 아침잠이 없어져서 새벽에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이 있는데... 매쌀롱에서라면 이 이른 시간에도 시장을 구경하고 양손에는 과일과 튀김도 사서 들고는, 따뜻한 먹을것들로 배도 채웠겠지... 싶어서 이래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당시 사진이나 몇장 올려봅니다. ^^
매쌀롱 전경
마을 뒷쪽 718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불탑
찻집, 차밭
새벽시장
오렌지와 떡 두종류, 그리고 김치
토마토, 도넛, 맨 아래는 보리수열매
운남면교관의 국수, 완탕국수
매쌀롱의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