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의 하루
일단 느지막이 일어나 숙취 또는 허기와 타협하고자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기러 나선다. 몽중에 출현한 김부장으로 말미암아 이른 아침을 맞아버린 자들이라면 마음을 다스리는 차원에서 시급히 동나버리는 새하얀 쌀죽 한 그릇을 삼켜도 좋을 일이다.
커피 한잔을 한다. 거리로 시선을 놀려 사람 구경하거나 정신을 내려놓고 멍을 잡거나 영미 분석철학에 대해 궁구해도 좋지만 영양가 없는 수다가 적격이다. 혹여 심심해질 경우 서울의 순대 같은 지하철을 떠올리면 돌연 낙락해진다.
아무 일도 없으니 어떤 일도 생길 수 있다는 백수지심(白手之心)으로 소복이 살 오른 햇살을 음미하며 서풋서풋 거리를 싸돌아다닌다. 시선이 멈추는 조형물을 향해 찰칵거리는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빠이를 브랜드로 내세운 각종 소품을 구경하고 고르기도 한다. 그러다 아는 낯짝들을 만나 스쿠터로 외각의 들녘을 가로지르거나 아니면 오후 두시의 고양이처럼 한가로이 낮술을 마신다.
딱히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저녁. 환경보호와 원가절감 차원에서 재사용시 삼분지 일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대나무 통 차 하나를 손에 들고 도저히 지루할 길 없는 야시장으로 흘러든다. 테크닉보다는 필링으로 승부하는 라이브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감수성 충만한 먹거리들. 맥주 안주로 그만인 육해공 꼬치들을 비롯하여 감자 옥수수 고구마 유의 구황작물 구이, 고칼로리의 달콤한 로띠, 육포를 닮은 쌀호떡, 초저가 스시, 색깔 좋은 비빔국수, 옵션별로 다양한 팟타이, 오믈렛, 케밥, 커리, 만두, 크레페......
술 한 잔 하셔야지? 소화도 시킬 겸 포켓을 치거나 공연을 보거나 하면서 슬슬 취기를 자극하다가 어영부영 모여든 놈팡이들과 어울려 여행자의 밤을 가속한다. 맞물려 치솟는 기분에 독주를 꼴딱 삼키기도 하고 부둥켜 안겨오는 몸짓에 유유한 춤사위를 펼치기도 하고. 밤은 그렇게 짙어져 슬렁슬렁 아침으로 향한다. 그리고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
일단 느지막이 일어나 숙취 또는 허기와 타협하고자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기러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