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아․태 유스랠리
Real Madrid
David Beckham
등 뒤에 영문 표기된 분홍 반팔 티셔츠가 아주 예뻤다.
“너, 그 티셔츠 어디서 샀니?” 세 명의 여학생이 3층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 중 그 분홍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에게 내가 질문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오히려 나에게 반문해했다. “어느 나라 분이세요?”
아니 내가 한국 사람한테 한국말로 물었는데, 머리 염색도 한 일없는 토종인 한국 사람인 나한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되묻는 이런 황당한 일이.......?
하지만 그 여학생이 그렇게 질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유스호스텔 연맹이 주최하는 Youth Rally다. 매년 여름 유스호스텔 연맹 산하의 대학과 고등학교 유스호스텔 동아리, 국제자원봉사단 그리고 우리 동우회가 이 랠리에 참여해 왔다. 작년에는 국제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해서 열지 못했고 문경새재 유스호스텔에서 아․태 유스랠리라고 해서 아시아 태평양에 속하는 100여명의 외국 학생들과 한국에서 150여명이 모여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 3일 동안 랠리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29일 오후 3시경 문경새재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군악대의 환영인사로 랠리가 시작됐다. 18개 조로 나뉘어 방 배치를 받고 짐을 풀었을 때 동우회는 16조로 3층에 배정된 우리 방에는 회장님 사모님과 다른 여자 회원 한 분, 태국 치앙라이에서 온 닌이라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중국에서 온 중의학과 4학년의 Miss 등(발음은 등이랑 달랐지만 등소평과 같은 한자를 성으로 썼다.), 나와 김만까지 6명이, 회장님 방에는 회장님을 비롯한 5명의 남자 동우회 회원과 5명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가장 많은 방글라데시인이 48세라고 했다. 대부분이 학생인 이번 랠리에 참가한 외국인 중에도 이 방글라데시 사람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29일 저녁 식사 후에는 조별로 스턴츠를 해야 했는데 스턴츠란 어떤 주제를 집단무언극 형식으로 표현하는 연극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가 스포츠이기에 남자들은 축구를 하다가 골을 슬로우 모션으로 넣고 골 세레머니를 하면 여자들은 치어리더가 되서 응원을 하는 것으로 남녀가 각각 따로 연습하자고 내가 제안했다.
우리 방에서는 중국여학생 Miss 등이 가르쳐준 우슈와 같은 체조 동작과 태국의 닌이 제안한 마무리 동작을 배우느라 열심이었다.
우리 조 남자들이 식사시간이 다가오는 데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아서 결국 우리 조는 본래 스턴츠가 요구하는 주제인 스포츠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우슈 동작을 1분 정도 보여주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스턴츠가 시작되기 전에 각국 별로 강당에서 장기자랑이 있었다. 한국은 이미 도착하자마자 전문 국악인들이 전통 무용과 국악 등을 강당에서 공연하였기에 따로 한국 유스호스텔러들의 장기 자랑은 준비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외국회원이 참여한 국가는 태국으로 20명이 훨씬 넘었다. 다음으로 중국이었고 일본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공연을 했다. 내 아들 김만은 기어이 그 장난감 중 하나를 얻고야 말았다. 호주에서는 단 한명의 여대생이 왔는데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들려줬다.
이어서 시작된 스턴츠는 우리 조가 첫 번째였다. 1번을 뽑은 회장님을 원망했었는데 먼저 끝나서 방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기에 오히려 좋았다. 심사를 맡으신 회장님은 끝까지 남아서 밤 11시가 넘도록 각 조를 심사하고 상을 주시느라고 수고해 주셨지만. 물론 우리 조는 국물도 없었다.
랠리의 각 프로그램은 우리말과 영어 통역을 하는 사회자 두 명이 나와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메인 프로그램의 영어 통역자가 인도 여대생이었다. 한서대학교 4학년이라는 이 유학생은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통역할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인도인과는 달리 영어 인터네이션도 아주 좋았다. 인도인들은 일반적으로 공영어인 영어와 힌디어, 지방어인 벵갈어 등의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 대신에 억양의 변화가 없어서 인도인의 영어를 알아듣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 여대생은 영어 억양도 아주 훌륭했다.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사람이 인도인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도착 첫날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에 놀라서 내 앞에 있는 3명의 여고생들(나중에 여고생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스스로를 밝히지 않으면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전혀 알아챌 수가 없다)은 내 국적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아무리 완전하게 생긴 한국인이라도 안심할 수가 없어서......
스턴츠를 일찍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지만 피곤해도 잠을 자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새벽에 남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우리 방의 화장실에서 샤워하지 않고 3층의 공동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여고생들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물론 한국 사람이지. 그런데 이슬람 여자들은 정말 불편할거야. 항상 히잡을 둘러쓰고 있으니.”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대답하면서 공동 샤워실에 들어왔다가 둘러보고만 나가던 이슬람 여자들이 생각나서 말을 이었다. 몇몇 말레이시아 이슬람 여자들이 이 랠리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고생들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이슬람을 하나의 국가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질문했다. “그럼 이슬람의 수도가 어디니?”
이슬람이 국가 이름이라면 수도가 있을테니 그 수도 이름이 뭐냐고 질문했더니 물론 모른다고 한다. 이슬람이 종교의 한 종류이고 여자들은 보통 참정권도 없어서 투표를 하거나 재산권도 없고 네 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다는 설명을 해줬더니 자기네는 인문계가 아니라서 공부를 안 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세 명 중 다른 한명이 자신은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지만 모른다며 깔깔 웃었다.
다시 한번 분홍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에게 레알 마드리드 베컴 팬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전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등에 써 있는 영어가 그런 뜻이었어요?”
고등학생이면서 읽지도 못하는 영문 알파벳으로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사실보다는 그런 일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그들이 기가 막혔지만 더 이상 내색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 후 두 파트로 나뉘어 우리 파트는 문경새재 제 2관문까지 걸어갔다 왔고, 점심 식사 후 다른 파트가 오전에 했던 풍물 배우기와 인공 잔디 위에서 물썰매 타기, 수영장에서 수영하기 등을 했다.
도착해서 문경새재 유스호스텔 앞을 흐르는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역류하며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만이가 신발을 잃어버렸다. 아들에게는 내 아쿠아 슈즈를 신기고 새재 입구 가게에서 내 젤리 슈즈를 샀는데, 너무 작아서 산행을 하는 동안 발이 까지고 물집이 생겼다가 터지는 등 아주 고생을 했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 여름인 정확히 20년 전에 올라갔던 이 문경새재를 다시 답사하고 있어서 정말 느낌이 남달랐다. 그때는 지금보다 나무가 울창하지 않아서 뙤약볕을 받으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갔기에 훨씬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무를 심고 가꾸면 혜택이 많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해준 좋은 답사길이었다.
저녁 식사 후 강당에 모여 도미노를 세웠다. 각 조가 세우는 도미노는 앗차하는 순간에 쓰러져서 또 세우고 다시 쓰러뜨리곤 했다. 각 조들이 세운 도미노들을 일부는 쓰러진 부분을 그대로 둔 채로 연결해서 차례로 쓰러뜨리는 피날레를 장식한 후에 캠프파이어와 포크 댄스, 촛불 의식을 끝으로 둘째 날이 저물었다.
예전에 랠리는 대학생 중심이라 동우회 회원들은 그다지 재미없게 느끼는 시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은 내용이 알차고 준비를 많이 해서 정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게끔 했다. 그리고 더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내년에도 이와 같은 국제 대회로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날은 이제 서로 헤어지는 날이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온 닌은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독일로 간다고 한다. 중국의 Miss 등은 버릇없는 아들 김만을 보면서 자기 나라 아이들도 다 그렇다면서 웃는다. 한 자녀만 낳아 길러서 모두가 소공자 소공녀라고 불리는 그들일테니 오죽 하랴. 그런데 놀라운 것은 태국 아가씨와 중국 아가씨가 모두 한국 드라마를 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제목도 모르는 드라마를 잘 알고 있어서 두 아가씨가 서로 누가 멋있다는 둥 한국 탈렌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의 Miss 등은 “내 이름은 김삼순”까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디오 테입이 중국으로 건너가지도 않았을텐데 그 드라마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에서 중국어 자막으로 시청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일본 아이찌 박람회에 가서 일본 아줌마들의 욘사마 사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나로서는 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한류 열풍이 허상이 아님을 실감했다.
3일을 같이 보내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서 2일 밤을 서울의 호스텔러 집에서 묵으며 한국을 체험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KT가 Korea Telecom의 약자라는 정도는 꿰고 있고, 심지어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아시아 태평양의 외국 젊은이들을 보면서, 정신차리고 더 많이 배우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의 주도자가 될 수 없음을 우리 대한의 젊은이들도 크게 깨닫는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 랠리가 뜻 깊은 행사였을 것이다.
등에 써 있는 영어도 못 읽고 이슬람을 국가 이름으로 알고 있던 그 세 여고생에게 이 랠리는 어떤 계기가 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David Beckham
등 뒤에 영문 표기된 분홍 반팔 티셔츠가 아주 예뻤다.
“너, 그 티셔츠 어디서 샀니?” 세 명의 여학생이 3층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 중 그 분홍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에게 내가 질문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오히려 나에게 반문해했다. “어느 나라 분이세요?”
아니 내가 한국 사람한테 한국말로 물었는데, 머리 염색도 한 일없는 토종인 한국 사람인 나한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되묻는 이런 황당한 일이.......?
하지만 그 여학생이 그렇게 질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유스호스텔 연맹이 주최하는 Youth Rally다. 매년 여름 유스호스텔 연맹 산하의 대학과 고등학교 유스호스텔 동아리, 국제자원봉사단 그리고 우리 동우회가 이 랠리에 참여해 왔다. 작년에는 국제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해서 열지 못했고 문경새재 유스호스텔에서 아․태 유스랠리라고 해서 아시아 태평양에 속하는 100여명의 외국 학생들과 한국에서 150여명이 모여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 3일 동안 랠리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29일 오후 3시경 문경새재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군악대의 환영인사로 랠리가 시작됐다. 18개 조로 나뉘어 방 배치를 받고 짐을 풀었을 때 동우회는 16조로 3층에 배정된 우리 방에는 회장님 사모님과 다른 여자 회원 한 분, 태국 치앙라이에서 온 닌이라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중국에서 온 중의학과 4학년의 Miss 등(발음은 등이랑 달랐지만 등소평과 같은 한자를 성으로 썼다.), 나와 김만까지 6명이, 회장님 방에는 회장님을 비롯한 5명의 남자 동우회 회원과 5명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가장 많은 방글라데시인이 48세라고 했다. 대부분이 학생인 이번 랠리에 참가한 외국인 중에도 이 방글라데시 사람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29일 저녁 식사 후에는 조별로 스턴츠를 해야 했는데 스턴츠란 어떤 주제를 집단무언극 형식으로 표현하는 연극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가 스포츠이기에 남자들은 축구를 하다가 골을 슬로우 모션으로 넣고 골 세레머니를 하면 여자들은 치어리더가 되서 응원을 하는 것으로 남녀가 각각 따로 연습하자고 내가 제안했다.
우리 방에서는 중국여학생 Miss 등이 가르쳐준 우슈와 같은 체조 동작과 태국의 닌이 제안한 마무리 동작을 배우느라 열심이었다.
우리 조 남자들이 식사시간이 다가오는 데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아서 결국 우리 조는 본래 스턴츠가 요구하는 주제인 스포츠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우슈 동작을 1분 정도 보여주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스턴츠가 시작되기 전에 각국 별로 강당에서 장기자랑이 있었다. 한국은 이미 도착하자마자 전문 국악인들이 전통 무용과 국악 등을 강당에서 공연하였기에 따로 한국 유스호스텔러들의 장기 자랑은 준비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외국회원이 참여한 국가는 태국으로 20명이 훨씬 넘었다. 다음으로 중국이었고 일본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공연을 했다. 내 아들 김만은 기어이 그 장난감 중 하나를 얻고야 말았다. 호주에서는 단 한명의 여대생이 왔는데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들려줬다.
이어서 시작된 스턴츠는 우리 조가 첫 번째였다. 1번을 뽑은 회장님을 원망했었는데 먼저 끝나서 방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기에 오히려 좋았다. 심사를 맡으신 회장님은 끝까지 남아서 밤 11시가 넘도록 각 조를 심사하고 상을 주시느라고 수고해 주셨지만. 물론 우리 조는 국물도 없었다.
랠리의 각 프로그램은 우리말과 영어 통역을 하는 사회자 두 명이 나와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메인 프로그램의 영어 통역자가 인도 여대생이었다. 한서대학교 4학년이라는 이 유학생은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통역할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인도인과는 달리 영어 인터네이션도 아주 좋았다. 인도인들은 일반적으로 공영어인 영어와 힌디어, 지방어인 벵갈어 등의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 대신에 억양의 변화가 없어서 인도인의 영어를 알아듣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 여대생은 영어 억양도 아주 훌륭했다.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사람이 인도인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도착 첫날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에 놀라서 내 앞에 있는 3명의 여고생들(나중에 여고생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스스로를 밝히지 않으면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전혀 알아챌 수가 없다)은 내 국적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아무리 완전하게 생긴 한국인이라도 안심할 수가 없어서......
스턴츠를 일찍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지만 피곤해도 잠을 자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새벽에 남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우리 방의 화장실에서 샤워하지 않고 3층의 공동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여고생들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물론 한국 사람이지. 그런데 이슬람 여자들은 정말 불편할거야. 항상 히잡을 둘러쓰고 있으니.”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대답하면서 공동 샤워실에 들어왔다가 둘러보고만 나가던 이슬람 여자들이 생각나서 말을 이었다. 몇몇 말레이시아 이슬람 여자들이 이 랠리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고생들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이슬람을 하나의 국가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질문했다. “그럼 이슬람의 수도가 어디니?”
이슬람이 국가 이름이라면 수도가 있을테니 그 수도 이름이 뭐냐고 질문했더니 물론 모른다고 한다. 이슬람이 종교의 한 종류이고 여자들은 보통 참정권도 없어서 투표를 하거나 재산권도 없고 네 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다는 설명을 해줬더니 자기네는 인문계가 아니라서 공부를 안 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세 명 중 다른 한명이 자신은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지만 모른다며 깔깔 웃었다.
다시 한번 분홍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에게 레알 마드리드 베컴 팬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전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등에 써 있는 영어가 그런 뜻이었어요?”
고등학생이면서 읽지도 못하는 영문 알파벳으로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사실보다는 그런 일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그들이 기가 막혔지만 더 이상 내색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 후 두 파트로 나뉘어 우리 파트는 문경새재 제 2관문까지 걸어갔다 왔고, 점심 식사 후 다른 파트가 오전에 했던 풍물 배우기와 인공 잔디 위에서 물썰매 타기, 수영장에서 수영하기 등을 했다.
도착해서 문경새재 유스호스텔 앞을 흐르는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역류하며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만이가 신발을 잃어버렸다. 아들에게는 내 아쿠아 슈즈를 신기고 새재 입구 가게에서 내 젤리 슈즈를 샀는데, 너무 작아서 산행을 하는 동안 발이 까지고 물집이 생겼다가 터지는 등 아주 고생을 했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 여름인 정확히 20년 전에 올라갔던 이 문경새재를 다시 답사하고 있어서 정말 느낌이 남달랐다. 그때는 지금보다 나무가 울창하지 않아서 뙤약볕을 받으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갔기에 훨씬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무를 심고 가꾸면 혜택이 많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해준 좋은 답사길이었다.
저녁 식사 후 강당에 모여 도미노를 세웠다. 각 조가 세우는 도미노는 앗차하는 순간에 쓰러져서 또 세우고 다시 쓰러뜨리곤 했다. 각 조들이 세운 도미노들을 일부는 쓰러진 부분을 그대로 둔 채로 연결해서 차례로 쓰러뜨리는 피날레를 장식한 후에 캠프파이어와 포크 댄스, 촛불 의식을 끝으로 둘째 날이 저물었다.
예전에 랠리는 대학생 중심이라 동우회 회원들은 그다지 재미없게 느끼는 시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은 내용이 알차고 준비를 많이 해서 정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게끔 했다. 그리고 더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내년에도 이와 같은 국제 대회로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날은 이제 서로 헤어지는 날이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온 닌은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독일로 간다고 한다. 중국의 Miss 등은 버릇없는 아들 김만을 보면서 자기 나라 아이들도 다 그렇다면서 웃는다. 한 자녀만 낳아 길러서 모두가 소공자 소공녀라고 불리는 그들일테니 오죽 하랴. 그런데 놀라운 것은 태국 아가씨와 중국 아가씨가 모두 한국 드라마를 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제목도 모르는 드라마를 잘 알고 있어서 두 아가씨가 서로 누가 멋있다는 둥 한국 탈렌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의 Miss 등은 “내 이름은 김삼순”까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디오 테입이 중국으로 건너가지도 않았을텐데 그 드라마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에서 중국어 자막으로 시청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일본 아이찌 박람회에 가서 일본 아줌마들의 욘사마 사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나로서는 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한류 열풍이 허상이 아님을 실감했다.
3일을 같이 보내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서 2일 밤을 서울의 호스텔러 집에서 묵으며 한국을 체험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KT가 Korea Telecom의 약자라는 정도는 꿰고 있고, 심지어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아시아 태평양의 외국 젊은이들을 보면서, 정신차리고 더 많이 배우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의 주도자가 될 수 없음을 우리 대한의 젊은이들도 크게 깨닫는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 랠리가 뜻 깊은 행사였을 것이다.
등에 써 있는 영어도 못 읽고 이슬람을 국가 이름으로 알고 있던 그 세 여고생에게 이 랠리는 어떤 계기가 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