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후에. 무엇이 남으시나요..?
여행,
그리고 그 후.
무엇이 남으세요...?
저는,
미처 다 소진하지 못한 동전들,
왜 했는지 기억이 가물해진 날려쓴 메모.
왜 샀는지 알 수 없는 허접한 기념품.
가고 싶어서였는지 -결국 가지는 못한- 동그라미와 밑줄이
잔뜩 그어진 여행책의 어떤 페이지,
전세계 도시별로 다른 디자인이 나오는 특정한 브랜드의 머그잔,
돌아와서 보면 왠지 오기로 산듯한 옷들,
어딘가의 안내지도, 그것과 세트의 입장권,
교통수단의 티켓,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은 영수증.
유통기한이 임박해져도 먹기 아까워 죽겠는 과자나 사탕.
무작정 들어갔던 펍의 로고가 박힌 코스터나 성냥.
패스포트에 찍힌 입국, 출국 도장.
어딘가를 걸으며 들었던 음악,
누군가와의 서툰 언어로의 의미없는 대화,
마치 호흡하듯 찍어낸 다량의 사진.
그 사진 속에 녹아있는 나의 기억과 추억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람.
사람이 가장 크게 남네요.
여행지에서는 꽤 혼자였음에도 늘 사람이 남는게 신기한 일이죠.
to where 보다는 with whom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자 떠나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에 그 여행은 어땠어,
혹은 누군가와 떠났기 때문에 그 여행은 어땠어,
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것은 비교적 최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떠나 고독이라 말하는게 여행이지만,
지구의 일부인 이상 늘 사람을 만나게 되는것도 여행의 매력 아닐까요.
저는 꽤 장소에 집착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주로 아빠와 여행을 다녀서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요.
"나 어디어디 갔다왔어."
That's it.
그것 보다는,
"내가 거기를 갔던 이유는, 누구누구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야."
그 누구는 특별한 누군가, 혹은 불특정 다수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십몇년째 유학중인 친구, 라거나.
여행 중에 만난 네이티브 스피커 친구. 라거나.
길에서 사먹은 국수를 말던 노점아저씨라거나,
(이건 결국 국수를 먹고 싶은 거지만 말이예요)
거대한 채칼로 파파야를 썰던 아줌마라거나,
(이건 결국 쏨땀을 먹고 싶은 거겠죠)
"기분이니까 서비스-" 라는 말로 택시요금을 깍아주던 택시기사라거나.
다시 만나면 꼭 뒷통수를 후려 쳐주고 싶은 사기꾼이라거나 (...)
왠지 거기에 있을 것 같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를 기억 못하는 불특정 다수를 나는 왠지 잊지 못하기에,
또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잊지 못하기도 하고,
몇년만에 만나도 혹은 인스턴트 메세지로 이야기를 나눠도,
"너 그때 전혀 겸손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그러니?"
"그럼 넌 그때 술버릇이 고약했는데, 지금도 그런가봐?"
라고 서로 태고적 버릇을 들춰내며 긍정 혹은 부정하면서 같이 웃는,
나에게 '만나러' 간다는 이유를 주는 그런 사람들이 남기에,
"여행" 이라는 단어에 더 설레나봐요...
뭐 사실은,
굳이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이 훌쩍, 떠났다가 돌아와도,
어떤 물질적인 흔적을 남겨도 잊지 못하는건,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저에게는 역시, 사람이었어요.
문득 기차역의 역무원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곳이 생각나는- 그런 느낌.
.
.
.
때로는 그래서 잊지 못하기 때문에...힘들어지기도 하지만 말이예요...
burn your memory with me...
할 수만 있다면요. 가끔은 사람이라 더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