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에서 익사할 뻔 하다!
방비엥 필수코스 튜빙!
빠이에서 가죽 신발 사다 만난 엘사를 여기서 다시 만나
어제 그녀의 일행과 함께 튜빙을 하러 갔다.
영국, 독일, 캐나다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과 나를 포함해 9명.
튜브 3개를 1/n로 빌린 후 튜빙 포인트로 고고씽~!!
2시가 좀 넘었을 시간으로 추정되는데(아무도 시간을 모른다)
아직들 덜 취한건지 다이빙 포인트는 한산했고
다른 친구들은 오늘이 2번째지만 난 처음인지라
약간의 두려움과 흥분을 그러안고 먼저 난간을 올라갔다.
2번 이상 스윙하는 쪽팔림을 피하기 위해
처음 스윙했을 때 아찔함을 무릅쓰고 강으로 풍덩~
아아~앗~~ !
계속 비가 오느라 그런지 물살은 생각보다 빨랐고
급류에 휩쓸림과 동시에 급당황하고 있었다.
나, 수영할 줄 안다. 돈 들여서 배웠다 -_- ;
근데 난 풀장이 아닌 흐르는 강에서 수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당황하면 머릿 속이 백짓장처럼 하얘진다던데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 메콩강을 떠내려가면서 절감하고 있었다.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가 20-50m 간격으로 띄엄띄엄 위치하여
중간중간에 튜빙하다가 멈출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래쪽 바로 옮겨가면서 파티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는다.
첫번째 바가 있는 다이빙 포인트에서 2번째 바를 지나서 떠내려가다가
구조되었으니 거의 5-60m 이상을 떠내려가면서 메콩강 흙탕물을 먹었을거다.
처음에는 정신을 집중해서 어떻게든 헤엄쳐 보고자 노력했으나
콘택트렌즈가 빠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자유형을 향한 나의 갈망은 허우적거림으로 변하고 있었다.
'물에 빠져 죽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즈음, 포인트를 지키던 라오 청년이 나를 구하러 왔다.
물에 빠진 것 치고는 정신을 똑바로 차린 덕택에
곧 튜브를 붙잡고 강 기슭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10m만 더 떠내려 갔어도
의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나를 구해준 라오 청년은 발에 상처를 입었고
대충 정신을 차린 후 100,000킵을 치료비로 주었다.
라오에서는 그닥 적은 돈이 아니지만
내 목숨의 댓가치고는 적은 액수일지도 모른다.
또한 같이 있던 독일인 친구와 엘사가 다소간의 금액을 보태주었다.
친구들이 계속 나를 걱정해 주었고
정신적 트라우마로 다시 물에 못 들어가는 나를 위해서
엘사는 함께 튜빙 대신 걸어서 다음 바로 이동해주는 수고를 하였다.
3번째 바에서 4번째 바로 이동하는 길은 무쟈게 더럽고 험했다 -_- ;
돌아와서는 위로와 격려, 그리고 내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날려 주었다.
엄마 빼고 동성과의 첫키스를 그녀에게 주어서 행복했다 ㅋㅋ
신이(나는 범신론자임) 내게 또다른 생을 주셨고
나는 나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을 떠날 때,
나는 극도로 우울했고 여행하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콩강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나는 너무도 간절하게 살고 싶다고 소망했다.
10시 이후엔 전기를 쓸 수 없는 빡벵에서의 충격과 함께
라오스는 내게 매일 특별한 사건들을 선사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마냥 행복한 일들만은 아닐지언정
어떻게든 내게 깨우침을 주고 있으니
길은 또 다시 내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학창시절, 나는 공모전에 탑으로 입상할만큼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었다.
졸업 후, 비록 그것이 evil일지언정 내게 큰 부와 명성을 주는 회사
-여행하면서 만난 세계각국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에 다녔고
더 이상 타인에 대해 생각할 여력도 필요도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얻어냈다.
生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그 동안 나는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던 것들을 잊고 살았다.
신이 내게서 목숨을 앗아가지 않은 것은
아직 내가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길 위에 있는 모든 여행자들에게 축복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