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special above all ..
사라지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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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23:22
사실 연애의 묘미는 연애 초절정기의 불타오르는 열정과 뜨거운 사랑, 은밀한 몸짓보다도 처음 가슴의 동요를 감지하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발가락 끝까지 느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기다리는 설레임에 있음을 아는가?
포물선, 혹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배우처럼 이제는 하강만이 남은 자리에서 즐기는 극한의 쾌락보다는 꼭지점을 향해가는 길 위의 환희를 그대는 아는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대의 마음을 초당 백만비트의 속도로 이리재고 저리재는 그 미묘한 감정의 술렁임은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 어느 새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어떤 미지의 것'이 되고 만다. 아직은 데이트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처음 몇 번 만남의 어색함과 그 어색함 마저도 셀레임이 되어버리는 그때의 두근거림.
'내게 그런 사랑 다시 올까?'
쓰라린 이별에 쏘주 몇 병을 물 마시듯 들이켜 본 적이 있고 그 술기운에 이미 지워버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쭈글쭈글한 대뇌 피질 속 한 켠엔 여전히 아로새겨진 11자리 숫자를 조건반사처럼 눌러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나 어제 누구랑 얘기했니?'라며 수챗구멍 속에라도 기어 들어가고픈 심정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되뇌어 본 독백이리라.
여행은 마치 연애 초창기의 그것과 같다.
혼자서도 연애하는 법 - 여행을 가는 거다. 마치 어제 처음 만난 그녀와의 두번째 데이트를 고심하며 영화를 고르듯 비행기 티켓을 요모조모 따져본다. '뭘 먹을까? 그녀는 뭘 좋아할까? 안 먹는 음식은 없을까?' 채 두어시간도 되지 않던 그녀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레스토랑을 고르듯 가격대 성능비, 외양을 끝없이 견주어보며 수십 개의 게시물을 검색하여 내 몸 누일 숙소를 고른다.
더블데이트를 하듯 동행인을 구해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연애 상담을 하듯 관련 까페나 싸이트에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쪽지라도 받으면 마치 그녀에게 문자라도 온 마냥 콩닥거리며 쪽지 내용을 확인하고 때론 반가움을, 때론 스팸 쪽지에 허탈함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녀와 데이트 약속을 잡는 순간 부터 d-day까지 아드레날린의 끊임없는 분비가 한없이 가슴을 달뜨게 하듯 출국하는 그날까지 머릿 속은 온통 여행으로 가득차 있다. 어떤 고민도, 상념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렬하여 코카인, 대마, 엑스터시에 비길 바가 없다.
평소 이 정도의 반만 했으면 토익 텝스 토플 모두 만점받을 정도의 강인한 의지와 집념으로 여행정보를 차곡차곡 모은다. 그 어떤 공부 자료보다도 방대한 분량의 한글 문서가 보이지도 않을 8pt 내의 글씨로 빼곡히 정리된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에 두려운 건 없고 뭐든 잘 해낼거라는 믿음, 그녀와 함께라면 그 어떤 풍파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쉴드 마법처럼 온 몸을 휘감아 강력하게 나를 보호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선 그 미모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강력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햇살 좋은 봄날 오후.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원목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커피숍 1층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오고가는 사람들과, 파도와 바다새들을 바라본다. 누가 봐도 한 눈에 '아, 둘이 완전 연인이구나'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젊지만, 그렇다고 어리지는 않은 커플 한 쌍이 지나간다. 그들에게서도 변함없이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찬란한 기운에 눈이 부셔서일까? 살짝 뜨거워진 눈시울은...
어느 순간 빛이 꺼져버린 사람에게 그런 아우라는 마치 몇 십년을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보내다 마침내 출소하여 온몸으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빛 마냥, 숭고하지만 버거운 것이다. 그토록 갖고 싶었지만 금새 손에 쥘 순 없는 것, 한 때는 내게도 별 것 아닌 그 무엇이었지만 이젠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결코 내 것만은 될 수 없을 듯한, 손을 뻗으면 바로 앞에 있지만 결코 내 것은 아닌 것.
生에 길이 없어 헤매일 때, 후회없는 인생을 살자고 벼르던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될 때,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몇 번을 뒤척이다 새벽녁에야 회색 동트는 기운에 취하듯 눈 감게 될 때, 요가도 명상도 더 이상 약이 될 수 없을 때, 막다른 골목에서 난 -
여행을 택한다.
연인과의 사랑에서나 극강으로 뿜어져 나올 옥시토신은 여행지를 향한 나의 애정과 함께 분비되고, 막연한 기대와 예측불허의 어드벤쳐를 상상하며 몽롱한 몽상 속에 한없이 스스로를 빠뜨려 본다. 그 혹은 그녀에게 예상치 못하게 상처를 받고 아픔을 주듯, 믿었던 한민족에게 사기도 당해보고 애정하던 여행지의 이름모를 험악인에게 소매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다음 번엔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더 조심할 수도 있다. 연인에게 환상이 깨어지면 당분간은 힘들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면 더 신실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분명 어딘가에는 배울 점이 있으리라.
물론 운이 좋아서, 혹은 철저히 대비해서 미리 방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하자. 연애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너무 방어적이 되면 결국 나도 잃고 상대도 잃고 모두 잃는 수가 있다. (여기 그렇게 바보된 어리석은 한 사람이 있다 -_- ;)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연애의 끝에 이별이 있듯-연애의 종말이 결코 결혼은 아니다-여행의 끝엔 일상으로의 복귀가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그다지 슬프고 아프고 씁쓸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길 위의 답을 찾는 것은 비단 연금술사의 양치기만이 아니다. 짧든 길든 그 여정의 끝에서 당신이 어떤 해결책을 발견하듯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 어떤 해결 과정 보다도 담백하고 진실하며 군더더기 없을지어다.
여행을 떠나는 자- 모두에게 축복있으라.
그리고 그대가 찾던 그 무엇을 자신 안에 발견 할 지어다.
사족 .. 저는 대마는 커녕 담배도 못 피웁니다. 간접경험이랄까..
그 옛날 인도에 널린, 공짜로 굴러다녔던 하시시를 왜 한번 빨아 땡겨보지도 않았던고 ㅡㅡ;
윗글은 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