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한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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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작은 생각

임헤라 17 1365
작년 11월.
일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난다는 제 말에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저지를 것을 알고 있었던 듯.

대학를 졸업하고 딱 1년만 백수로 살아보기로 했었습니다.
25년이라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한 문제를 풀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그러나 개인사정때문에 백수계획은 물건너가고
몇년간 변변한 휴가 한번 없이 일에 파묻혀 살았죠.
매일 매일 '나는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지 못했어요.
일년에 단 며칠도 휴가가 없었던 직장에서
시간과 돈을 맞바꾸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이
나에게 다른 선택이란 없지 않느냐고, 당장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우겼습니다.
유일하게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친구들과의 술자리뿐이었고,
어느 순간 마치 지나치게 잡아당겨버린 용수철처럼
탄성을 잃어버리고 늘어나버린 자신을 보았을 때의 참담함이라니..

일을 그만두고 나서 제일 먼저
밥도 굶어가며 정신없이 잠만 잤습니다.
그리고 집에 틀어박혀 그동안 허영심에 모아둔 책들을 꺼내서
며칠 굶은 사람이 허겁지겁 음식에 달겨들 듯 책에 매달렸습니다.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내리 읽어대다보니
어느새 제 손에는 여행과 관련된 책들만 들려있더군요.
그리고는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떠나고자 하는 것일까?

혼자 떠나는 여행.
바쁜 일정으로 관광지나 유적지를 둘러보고 싶지도 않고
쇼핑이라든가 새로운 친구만들기라든가 하는 것도 실은 좀 귀찮습니다.
여행중의 로맨스? 낭만적인 추억 만들기? 사진만큼 남는 것도 없다면서요?
현지인들의 소박한 삶을 슬그머니 들여다 보는 일도, 글쎄요..
제가 무슨 권리로 그들의 삶을 동물원 원숭이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물처럼 바람처럼 잠시 왔다가 흔적없이 지나가고 싶을 뿐입니다.
오히려 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열심히 지우고 다니고 싶은걸요.
바라는 것이라고는 고작
조용히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술도 한잔 하고 편지도 보내고 하면서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백수 근성을 맘껏 드러내 보고 싶을 뿐이지요.

친구가 냉정하게 말하더군요.
왜 돈써가며, 시간버려가며 멀리까지 가려고 하냐고.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냐고.
사실은 그저 도피하는 것일 뿐, 다녀와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나 역시 친구에게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찾는 것은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것, 알고 있다고.
다만 그 정답을 찾기 위해 바보같이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고 싶지는 않다고.
뭔가 달라지길 기대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간다고.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것은 이방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되기에 사람들은 생전 하지 않을 일도, 하지 못할 일도 하게 되지요.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은 여행지에 묻어두고 온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을 찔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행은 돌아올 것을 전제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멀리 떠나도 결국은 내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랍니다.

즐기기 위해 떠나는 사람도
생각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도
혼자이고싶어 떠나는 사람도
결국 돌아올 것을 예정하고 있다면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돌아오지만 그들은 머물러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떠날 것을 예정하고 이곳을 둘러보다가 참 많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정보와 감상들이 넘치는 이곳에서
여행에 대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고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을 것이며
떠난 동안의 시간을 좀 더 소중하게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떠난 그 곳에서 마주친 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만나게 되면 술 한잔 권하고 친해져보렵니다.

모두 건강히 여행하시길 빕니다.
17 Comments
리노 2006.01.25 16:32  
  어리석은 자는 방황하고 현명한 자는 여행을 한다고 하지 하지 않습니까!! 여행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좋은 여행하세영....good luck!!
포맨 2006.01.25 18:40  
  언젠가 비슷한 아이디 가진분이 있었습니다...
제 10년전 코스와 똑같이 도시더군요...
그분은 아니지요?^^
필리핀 2006.01.26 11:04  
  평생 여행만 하다 죽는 사람도 있어여.
여행을 하다 여행지에서 정착을 하는 사람도 있고...
떠난 곳으로 돌아온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여...
저는 여행은 더 큰 깨달음(혹은 색다른 경험)을 위해
낯선 세계에 자신을 오체투지하는 거라 생각해여.
평생을 내가 태어난 땅에서
비슷한 생활을 반복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지구가 이렇게 클 필요는 없지 않겠어여???
은빛얼음새 2006.01.26 13:32  
  채우기 위해 비울수 있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
우리네 생이란 그런 거 겠지요..
뭐 돌아온다는 것이 출발한 그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분명 아닐테니까요..
미야모토 2006.01.26 15:04  
  너무 오버하시네요.그냥 가세요.
임헤라 2006.01.26 16:30  
  오버하는거 맞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오버하지 않으려고 애쓰지요. 오버하고 사는 것, 재미있답니다.

임헤라 2006.01.26 16:33  
  포맨님..아마 맞을 것 같은데요...^^ 근데 좀 달라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정은 짰지만 일정무시하고 돌아다닐 가능성이 더 크죠..^^
포맨 2006.01.26 22:12  
  여행은 [스케줄없슴]이 가장 편한상태겠지요. 타임테이블짜갖고 다닌다면 집이랑 회사왔다갔다 하는거랑 똑같지요...에까마이에서 뜨랏가는 버스표를 샀다...근데 시라차행버스가 지나간다.....야~ 거기 스톱~~~~
보통 뭐 이럽니다...험험...
여사모 2006.01.27 10:19  
  어제밤 kbs 문화지대에서 치앙마이 인근의 빠이(pai)에 대해 소개하더군요.
계획없이 와서도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 예술가가 되는곳이라더군요.
저는 지금처럼 쪼끔도 틀이 갖춰지지않았을때 가봤는데 저의 생활을 돌아볼수 있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아궁이에 입바람을 불어넣어 불을 지피는 일본인 예술가 커플이 인상 깊었습니다.
빠이 추천합니다.
.
삼계탕 2006.01.27 10:25  
  포맨님은 저와 비슷하신듯..스케줄없는...
임헤라 2006.01.27 19:31  
  안그래도 전에 태국에 갔을 때는 북부쪽에 전혀 못가봤던 한이 있어서 돈무앙 도착하자마자 북부터미널에서 버스타고 치앙마이를 갈 예정입니다. 다음 날 바로 온천을!!  2월 13일에 들어가니까..발렌타인데이에 빠이에서 같이 온천하실 분 오셔요...ㅋㅋ
해피걸 2006.01.30 19:41  
  멋지네요....전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서 언젠가 또 다시 떠날 나를 꿈꾸면서 일상을 즐기려고 노력해요...^^
멋진 여행되시구요 많은거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하게 되세요~~
araina 2006.02.01 14:34  
  have an unforgettable trip!저도 한달간 아무 계획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괜히 눈물이 날것같아 얼른 기분 좋은 생각을 해야많 할정도로 행복한 여행 이였거든요..

많은것 보고.. 가슴속에 자신 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멋진 사진 많이 담아 오시구요..
건강하세요^^
여행사랑사랑 2006.02.02 12:46  
  님을 글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어요.. 저또한 곧 님처럼 일을 하게 될것이고,, 현실에 안주하며 일만 하며 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요~!! 옛날엔 제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 했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요즘은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구요~! 방학땐 여행을 하며 지낼수 있잖아요.. 저 또한 1년간 학교에서 방황을 하며 이번 겨울에 먼가의 깨닳음을 위해 여행을 가는데... 가서 많은 것을 느끼고 왔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관광과 쇼핑이 아닌 제 자신을 찾는 그런 여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연이 된다면 꼭 만났으면 좋겠네요~!!^^
임헤라 2006.02.03 01:44  
  선생님...좋은 일을 하시는 군요. 게다가 방학!!이라는 훌륭한 여유시간이 있으니 참 부럽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기를 저도 바라겠습니다.
여행사랑사랑 2006.02.03 08:51  
  ㅋㅋ 님.. 저의 직업은 선생님이 아니예요~!! 요즘들어 매력적으로 보인다구요..~!! 저는 선생님과 무관한 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 이예요..ㅋㅋ
kenny-쥐 2006.03.15 19:39  
  굳이 좋은 여행을 하면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니시는 분이 몇분이나 계시겠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올땐 뱅기 안에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듯 ^^
온지 6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너무 즐거운 여행이라 일 생각 거의 안하고 걸어다닙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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