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왜 또 길을 나서는가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언제나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안락함이 보장된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가.
여행자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걸 즐기는 영혼의 고행자들이다. 이국의 문화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정신의 키가 한 뼘쯤 자라는 경험을 하고 싶은 자들이다. 지구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빼어난 문화유산의 향취를 온몸으로 호흡하는 순간, 여행자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무한경쟁의 도시적 삶에 찌들어 있다.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다 문득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즐거운가, 만족하는가. 내게는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나만의 삶이 있던가. 만약 있다면, 나는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일상의 바쁜 걸음걸이를 멈추고, 한번쯤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여행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는 시간이다.
지친 영혼의 소유자들이여, 도시의 때를 훌훌 벗어던지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영혼의 자궁을 찾아 라오스로 떠나자. 그곳에서 마음의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크리스마스에는 루앙프라방으로 오세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의 땅, 눈빛 맑은 아이들의 소박한 미소, 수줍음으로 볼이 발간 사람들의 해맑은 얼굴, 시골 외갓집처럼 따스한 정…… 라오스는 그런 곳이다. 비록 아시아 최빈국에 속하지만, 아직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경쾌한 발음의 루앙프라방은 1,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인 란쌍의 수도로 지정된 이후, 800년 동안 라오스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중심도시이다. 지금도 수도인 비엔티안에 이은 제2의 도시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신성한 불상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루앙프라방은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사원들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콜로니얼풍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묘한 풍미를 자아내는 곳이다. 이와 같은 역사성과 미학적 가치로 인해 1995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루앙프라방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사면이 내륙으로 둘러싸인 국가인 라오스의 중앙부, 메콩강과 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적지, 상점, 숙소, 음식점 등이 메콩강변을 따라 나란히 늘어서 있다.
루앙프라방은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걸어서 돌아다녀도 반나절이면 시내를 다 둘러볼 수 있으므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살던 도시의 삶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최대한 여유롭고 한가로운 걸음걸이로 거리를 돌아보자.
루앙프라방 관광은 먼저 푸씨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푸씨산은 루앙프라방 중심부에 있는 해발 100미터 가량의 작은 산이다. 꼭대기까지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루앙프라방과 그 일대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1804년에 세운 조그만 규모의 쫌씨 탑이 있다. 일몰 무렵에는 저 멀리 들녘 끝에서부터 조금씩 세상을 붉은색 비단으로 뒤덮으며 몰려오는 노을이 장관이다.
푸씨산 맞은편에는 루앙프라방 박물관이 있다. 루앙프라방 박물관은 애초에 왕궁으로 쓰이기 위해 1904년에 착공되어 1909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1975년에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왕은 북부로 유배되었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라오스 전통 양식에 프랑스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한 나라의 왕이 살던 궁궐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이곳에는 왕궁으로 사용될 당시에 쓰이던 물품과 루앙프라방 주변의 문화재들이 보관되어 있다.
신의 사도들과 만나다
루앙프라방에는 속된 말로 길을 가다가 발에 채일 정도로 불교사원, 즉 절이 많다. 불교는 라오스의 국교는 아니지만(라오스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국민의 95%가 불교신자일 정도로 보편화된 종교이다. 라오스의 남자들은 마치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 가듯이, 일생에 한번은 1주~3개월 정도를 절에서 수도승으로 지내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절은 왓 씨앙 통이다. 왓은 ‘절’이라는 뜻이고 씨앙 통은 ‘금으로 된 도시’라는 뜻이다. 1560년 쎗타티랏왕 시절에 건립된 왓 씨앙 통은, 1975년까지 왕실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다. 법당의 지붕은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따라 마치 땅을 박차고 솟구쳐 오를 듯 가파르면서도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본당 벽과 지붕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불교설화와 옛 생활 풍습 등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왓 씨앙 통 주변에는 수많은 절들이 있다. 왓 씨앙 통은 입장료를 받지만 다른 절들은 무료이므로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도시에 절이 있는 게 아니라 절속에 도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루앙프라방은 절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여염집인줄 알고 들어가 보면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는 절이다. 그곳에서 아직 앳된 개구쟁이 모습을 한 스님들과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함께 기념촬영도 할 수 있다.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거리로 나서면 색다른 볼거리와 만날 수 있다. 푸른 새벽 기운이 감돌고 있는 골목 어귀마다 주민들이 음식을 들고 서 있다. 잠시 후, 저 멀리 미명을 헤치며 일단의 사내들이 줄 지어 걸어온다. 머리는 파르라니 빛나고, 몸에는 주황빛 천이 휘감겨 있는 그들은 놀랍게도 맨발이다. 그들은 양손으로 자그마한 그릇 하나씩을 보듬고 있다. 스님들의 탁발 행렬인 것이다.
스님들이 멈춰 서면 주민들은 앞을 다투어 스님들이 들고 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준다. 음식으로 가득 찬 그릇을 든 스님들은 다시 열을 지어 미명 속으로 사라진다. 아직 잠이 덜 깬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이 단순한 탁발 행위는 그 어느 종교 행위보다 더 진지하고 엄숙하다. 세상에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으랴!
자전거가 루앙프라방 속으로 들어왔다
루앙프라방 교외에도 명소들이 많이 있다. 시간이 넉넉하고 체력이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보자.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싶은 사람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교통수단인 뚝뚝(점보)을 대절하면 된다.
쾅시 폭포는 시내에서 남쪽으로 29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버섯모양으로 생긴 석회질 바위 위로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폭포 아래에는 맑고 선명한 청록색 물이 고여 연못을 이루고 있다.
빡우 동굴은 시내에서 메콩강을 따라 약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빡우 동굴은 탐 띵과 탐 쁘라까차이 2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탐 띵에는 크기가 다른 불상들이 수없이 모셔져 있다. 언제부터 불상들을 모시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매년 4월 라오스의 신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들고 와서 소원을 빈다. 이곳은 보트를 타고 가야 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을 서구 세계에 알린 프랑스의 지리학자 앙리 무오가 루앙프라방 근교에 묻혀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1860년, 지금의 캄보디아 씨엠리엡 일대를 측량하다가 밀림에 뒤덮여 있는 거대한 유적지 앙코르 왓을 발견한 앙리 무어는, 계속해서 동남아 지역을 조사하다가 루앙프라방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추억은 그리움의 무늬로 남는다
10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없이도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틈에 하루라도 인터넷을 접속하지 않고 휴대전화의 문자를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과연 세상은 행복해진 것인가, 불행해진 것인가.
루앙프라방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우리의 시골 고향 같은 곳이다. 돈을 쓰고 싶어도 쓸 데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부족해서 불편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막상 떠나고 나면 이내 그곳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과 순박한 인심이 밀물처럼 그리워진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땅, 그래서 마음속에 채울 것이 넘쳐 나는 루앙프라방에서 여행자는 진정한 소유와 삶의 법칙을 깨달을 수 있을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언제나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안락함이 보장된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가.
여행자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걸 즐기는 영혼의 고행자들이다. 이국의 문화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정신의 키가 한 뼘쯤 자라는 경험을 하고 싶은 자들이다. 지구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빼어난 문화유산의 향취를 온몸으로 호흡하는 순간, 여행자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무한경쟁의 도시적 삶에 찌들어 있다.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다 문득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즐거운가, 만족하는가. 내게는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나만의 삶이 있던가. 만약 있다면, 나는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일상의 바쁜 걸음걸이를 멈추고, 한번쯤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여행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는 시간이다.
지친 영혼의 소유자들이여, 도시의 때를 훌훌 벗어던지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영혼의 자궁을 찾아 라오스로 떠나자. 그곳에서 마음의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크리스마스에는 루앙프라방으로 오세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의 땅, 눈빛 맑은 아이들의 소박한 미소, 수줍음으로 볼이 발간 사람들의 해맑은 얼굴, 시골 외갓집처럼 따스한 정…… 라오스는 그런 곳이다. 비록 아시아 최빈국에 속하지만, 아직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경쾌한 발음의 루앙프라방은 1,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인 란쌍의 수도로 지정된 이후, 800년 동안 라오스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중심도시이다. 지금도 수도인 비엔티안에 이은 제2의 도시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신성한 불상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루앙프라방은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사원들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콜로니얼풍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묘한 풍미를 자아내는 곳이다. 이와 같은 역사성과 미학적 가치로 인해 1995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루앙프라방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사면이 내륙으로 둘러싸인 국가인 라오스의 중앙부, 메콩강과 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적지, 상점, 숙소, 음식점 등이 메콩강변을 따라 나란히 늘어서 있다.
루앙프라방은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걸어서 돌아다녀도 반나절이면 시내를 다 둘러볼 수 있으므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살던 도시의 삶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최대한 여유롭고 한가로운 걸음걸이로 거리를 돌아보자.
루앙프라방 관광은 먼저 푸씨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푸씨산은 루앙프라방 중심부에 있는 해발 100미터 가량의 작은 산이다. 꼭대기까지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루앙프라방과 그 일대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1804년에 세운 조그만 규모의 쫌씨 탑이 있다. 일몰 무렵에는 저 멀리 들녘 끝에서부터 조금씩 세상을 붉은색 비단으로 뒤덮으며 몰려오는 노을이 장관이다.
푸씨산 맞은편에는 루앙프라방 박물관이 있다. 루앙프라방 박물관은 애초에 왕궁으로 쓰이기 위해 1904년에 착공되어 1909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1975년에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왕은 북부로 유배되었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라오스 전통 양식에 프랑스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한 나라의 왕이 살던 궁궐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이곳에는 왕궁으로 사용될 당시에 쓰이던 물품과 루앙프라방 주변의 문화재들이 보관되어 있다.
신의 사도들과 만나다
루앙프라방에는 속된 말로 길을 가다가 발에 채일 정도로 불교사원, 즉 절이 많다. 불교는 라오스의 국교는 아니지만(라오스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국민의 95%가 불교신자일 정도로 보편화된 종교이다. 라오스의 남자들은 마치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 가듯이, 일생에 한번은 1주~3개월 정도를 절에서 수도승으로 지내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절은 왓 씨앙 통이다. 왓은 ‘절’이라는 뜻이고 씨앙 통은 ‘금으로 된 도시’라는 뜻이다. 1560년 쎗타티랏왕 시절에 건립된 왓 씨앙 통은, 1975년까지 왕실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다. 법당의 지붕은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따라 마치 땅을 박차고 솟구쳐 오를 듯 가파르면서도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본당 벽과 지붕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불교설화와 옛 생활 풍습 등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왓 씨앙 통 주변에는 수많은 절들이 있다. 왓 씨앙 통은 입장료를 받지만 다른 절들은 무료이므로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도시에 절이 있는 게 아니라 절속에 도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루앙프라방은 절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여염집인줄 알고 들어가 보면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는 절이다. 그곳에서 아직 앳된 개구쟁이 모습을 한 스님들과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함께 기념촬영도 할 수 있다.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거리로 나서면 색다른 볼거리와 만날 수 있다. 푸른 새벽 기운이 감돌고 있는 골목 어귀마다 주민들이 음식을 들고 서 있다. 잠시 후, 저 멀리 미명을 헤치며 일단의 사내들이 줄 지어 걸어온다. 머리는 파르라니 빛나고, 몸에는 주황빛 천이 휘감겨 있는 그들은 놀랍게도 맨발이다. 그들은 양손으로 자그마한 그릇 하나씩을 보듬고 있다. 스님들의 탁발 행렬인 것이다.
스님들이 멈춰 서면 주민들은 앞을 다투어 스님들이 들고 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준다. 음식으로 가득 찬 그릇을 든 스님들은 다시 열을 지어 미명 속으로 사라진다. 아직 잠이 덜 깬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이 단순한 탁발 행위는 그 어느 종교 행위보다 더 진지하고 엄숙하다. 세상에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으랴!
자전거가 루앙프라방 속으로 들어왔다
루앙프라방 교외에도 명소들이 많이 있다. 시간이 넉넉하고 체력이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보자.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싶은 사람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교통수단인 뚝뚝(점보)을 대절하면 된다.
쾅시 폭포는 시내에서 남쪽으로 29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버섯모양으로 생긴 석회질 바위 위로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폭포 아래에는 맑고 선명한 청록색 물이 고여 연못을 이루고 있다.
빡우 동굴은 시내에서 메콩강을 따라 약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빡우 동굴은 탐 띵과 탐 쁘라까차이 2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탐 띵에는 크기가 다른 불상들이 수없이 모셔져 있다. 언제부터 불상들을 모시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매년 4월 라오스의 신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들고 와서 소원을 빈다. 이곳은 보트를 타고 가야 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을 서구 세계에 알린 프랑스의 지리학자 앙리 무오가 루앙프라방 근교에 묻혀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1860년, 지금의 캄보디아 씨엠리엡 일대를 측량하다가 밀림에 뒤덮여 있는 거대한 유적지 앙코르 왓을 발견한 앙리 무어는, 계속해서 동남아 지역을 조사하다가 루앙프라방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추억은 그리움의 무늬로 남는다
10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없이도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틈에 하루라도 인터넷을 접속하지 않고 휴대전화의 문자를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과연 세상은 행복해진 것인가, 불행해진 것인가.
루앙프라방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우리의 시골 고향 같은 곳이다. 돈을 쓰고 싶어도 쓸 데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부족해서 불편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막상 떠나고 나면 이내 그곳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과 순박한 인심이 밀물처럼 그리워진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땅, 그래서 마음속에 채울 것이 넘쳐 나는 루앙프라방에서 여행자는 진정한 소유와 삶의 법칙을 깨달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