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교훈적인 글,,,,,,
* 한국에 불법체류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많으며 그들은 데모에 앞장 서기도 합니다.
이런 자들을 보호해 주자고 외치는 기독교 단체들은 제 정신인지 궁금합니다.
내가 남자들에게 주눅이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나는 성희롱을 당했다.
파키스탄으로 떠나기 전 그 나라를 경험한 배낭여행객들에게 현지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듣고,
자료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빼놓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희롱에 관한 부분이었다.
인도에서 12시간을 기다려 여권을 도난당할 뻔(?)한 위기상황까지 거쳐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길,
바로 옆자리에 앉은 파키스탄인은 지친 동양 여성을 위해 친절을 베푸는척했다.
그는 조는 듯하면서 점점 내 쪽으로 기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손가락을 뻗어 내 가슴을 툭툭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아 ,이 사람이 졸다가 날 건드리는구나.
이슬람권 사람들은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자극을 받으면 가만있지 않는다고 했으니 문제를 일으키면 안되겠다' 는
생각에 악몽 같은 몇 시간을 그냥 견디고만 있었다.
심지어는 거의 통로로 몸을 기울여 그이 손가락을 피해야만 했다 스튜어티스
역시 그의 그런 기색을 눈 여겨 보고 있었으나 아무론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후
에도 난 여러 번의 성희롱을 당했다.
택시를 타면,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그 나라에선 그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뒷자리가 상석이니 '미천한'여자가 운전사 옆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택시 운전사들이 기어조작을 하면서 여자들의 무릎을 슬쩍슬쩍 건드 릴 수 있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드시 운전석 옆자리에 앉게 한다고 했다,
그사실을 알게 된후, 나는 내 무릎을 치거나 무릎에 무심코 손을 얹는 사람들에
게 반드시 항의 표시를 했다.
"건드리지 마! 니가 왜 내 몸에 손을 대느냐!"
그들의 장난은 대개 거기서 그쳤고, 그 이상 나는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세관역시 마찬가지였다.
공항의 일부 직원들은 일부러라도 여자여행객의 배낭을뒤지고 싶어했지만 나는 세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다, 여자 직원을 데리고 와라. 그렇지 않으면 배낭을 열지 않겠다."
대개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세관통과가 간소화되거나, 별 문제없이 통과가 되곤했다.
쓸데없이 생리대등을 손에 들고 이게 뭐냐고 묻는 세관직원들의 횡포 역시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다.
난민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난민들은 나에게 돌을 던지고,
심지어는 똥침을 놓기까지 했다.
'프로 텔레반'들이 거주하는 국경인근의 주민들이 던진 돌에 한번 맞은 후로는 오히려 맘이 담담해졌다.
이슬라마바드 근처의 난민촌도 마찬가지였다.
열댓 명쯤 되는 아이들이 내주위로만 몰려들어 엉덩이를 만지고,
옷을 잡아당겼으며 나뭇가지로 등으로 찔러댔다.
그 모습을 본 남자어른들은 내가 안 되었던지 나뭇가지를 꺽어 아이들을 쫓아주었다
처음, 내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무리는 말 그대로 '공포'였다 순박한 눈빛으로
내게 접근한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돈을 달라고 요구하고 차를 따라다녔다.
돈을 주지 않은 채 마을을 떠날 기색을 보이자 자동차 본네트며 트렁크를 손으
로 치기도해서 파키스탄인 드라이버는 몇 번이고 자동차를 세워 화난 기색을 보여야만했다.
이걸 본 한국의 기자들은 수시로'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여기 라'고 충고했다.
어느 날 밤, 남자들만 벅적댄다는 야시장 쪽으로 취재를 나가기로했다. 그런데
내가 묵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극구 이를 말리는 것이었다.
여성은 절대 밤길을 다녀서는 안 된다며
그는 "함께 길을 가는 남자조차도 위험해" 진다며 만류했다.
전날 게스트 하우스에 들른 현지한국인의 이야기 때문에 나는 더욱 겁을 먹어야만 했다.
"어느날 한국인 여자 배낭객과 일본인여자 배낭객이 짝을 이뤄 여행을했어요.
그들이 어느날 납치를 당해 파키스탄의 한 산간지역 토굴에 갇혔죠.
몇 달간 낯선 남자들에게 겁탈을 당한 후에 간신히 구출되었는데 ,
일본대사관에서는 엠뷸런스로 일본인여성을 데려갔어요.
그런데 한국대사관에서는 왜 여자혼자 그런 위험 한 곳을 여행했느냐며 오히려 야단을 쳤다지 뭡니까."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글과 사진/ 이유진 기자 ( bachjin@yeozawa.com) : 여자와 닷컴
한국여자, 파키스탄인을 만나지 말라?
'박싱헬레나'(BOXING HELENA)란 영화가 있다. 극단적인 사랑, 아니 집착에 빠 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헬레나를 사랑하던 남자는 그녀가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헬레나의 팔다리를
절단한 채 자신의 집에 가둔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이야기를
한 한국인 배낭여행객을 통해서 들었다.
"한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인도 여행길에 어쩌다가 사창가를 지나가게 됐다는
거 다. 그런데 자꾸만 포주가 잡더란다. 잡다잡다 안 되니까 살며시 귀에 대고 얘기 하더라고 했다.
일본인 여자가 있으니 구경이나 하라고. 일본 사람이니까
귀가 번쩍 뜨일 거 아닌가. 일단 그 여자가 누군지,
왜 이 먼 인도까지 와서는 몸을 팔고 있는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 포주를 따라 일본여자가 있다는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실지로 일본인 여자가 있더라고 했다. 눈앞엔 참혹한 풍경이 있었다.
일본인 여성이 사지가 절단된 채 그곳에 있더라고 했다.
그녀는 충격으로 일본어를 거의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고,
여러 가지를 묻 던 그 일본인 친구에 게 단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나는 벌레야'라고."
중동국가의 여성인권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이은 세 중동국가에 대한
여성인권 척도지수는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소문이었다.
물론 편견에 사로잡힌 이야기들이 많았겠지만 예의 '소문'들은 내 발을 얼어붙게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민사회엔 '파키스탄 에 붙잡혀 사는 한국인 여성들'에 대한 문제가 떠들썩했다.
심지어 대사관의 한 관계자의 입에서조차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어느 교민이 전 해준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이곳 국제공항에서의 일이다.
어느 동양인 아주머니가 한국말로 "미친x, 미친x" 하며 울고 있었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내가 한국 사람인데, 대체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 의 말이,
자신의 딸이 파키스탄 남자와 살고 있어 잠시 다니러 와서 보니 사는꼴이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딸은 한국에서 8급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전문대 야간출신이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모범택시를 몰고 있었다. 부족한 것 없이 살고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딸이 이태원 등지에서 파키스탄 남자와 눈이 맞아 결국 파키스탄으로 시집을 왔다는 것이다.
보통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조금
만 벗어나도 파키스탄은 아주 깡촌이다.
그런데 그곳은 진흙바닥에,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금방 무너질 듯한 통나무 침대가 가구의 전부다.
음식은 짜파티(파키스탄식 빵)에 겨우
고추, 감자, 좀 더 나아봤자 콩을 기름에 볶은 것 정도다.
양고기나 닭고기쯤은 한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하는 음식이다.
보통 방 세 개짜리 정도 되는 집에 11식구가량이 생활 한다.
그러나 한국 여자들은 집 근처 30미터를 채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시집 식구들이 여자를 붙잡아온다.
게다가 한국 여자들의 여권을 남자들이 붙들고 있어 여자는 이러지
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 엄마도 그런 집에 살고 있는 딸을 탈출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다.
결국 어떤 한국인 사장의 집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딸의 남편이 사설 경찰을 불러 다 집을 포위하고 그 사장을
협박하는 통에 딸은 남편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혼자서 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간혹 한국 말을 하고 있으면 차도르를 쓴 어떤 여자가 휙 돌아본다. 눈이 분명 한국 여자 다.
차도르 안에서 눈물이 한 방울 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사라져버린다."
글과 사진/ 이유진 기자 ( bachjin@yeozawa.com) : 여자와 닷컴
한국여자, 파키스탄인을 만나지 말라?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인 부부가 차를 타고 어딜 가다가 한국 남자가
차에 부인을 놔두고 잠시 자릴 비웠다. 누군가 그 차를 그대로 몰고 날랐다.
어느 날 그 여자는 사막에서 시체 로 발견되었다."
실지로, 페샤와르를 다녀오던 나는 참을 수 없는 요기를 느껴 차를 잠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벌써 어둑해진 들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했다.
결국 어느 주유소에 들러 간신히 용변을 보고 나오는데, 동행한 기자선배가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밖에 계속 서 있었어. 무슨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잖아."
여자 혼자서는 화장실에 갈 수조차 없는 현실이라니. 한국 여자들은 파키스탄 남자의 '밤일'에 홀린다?
한국 여인들의 고달픔을 알려주던 한국 교포들의 결론은 아래와 같았다.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파키스탄 남자에게 잘 속는다. 영어 잘 하지,
생긴 것 번드르르 하지, 그리고 자신이 파키스탄 사람이라고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 호주인이라고 말한다.
한국 여자들은 그에 잘 속는다.
게다가 파키스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술안 마시지, 양고기 많이 먹지. 당연 정력이 좋을 거 아닌가.
'밤일'도 아주 잘할 것이다.
그러니 한국 여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미친x, 미친x하고 울고 있던
한국 아주머니도 자기 딸이 아마도 남자의 ' 밤일'에 홀려 저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소문이 사실인지,
그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대사관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교민들은 '대사관의 업무태만'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대사관에 대한 교민들의 불신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발발 직전이 되어서야 대사관은 현지 상사의 직원들을 동원해 비상연락망을 짜고,
대사관 집무실 에 언제든 탈출할 수 있도록 가방을 놓아두곤 했다니까.
한 교민은 대사관에 대한 불만을 단적으로 털어놓았다.
"대사관은 여기서 고생하며 살고 있는 한국여성들에 대해 아무런 조
치를 하지 않는다. 대사관 직원들은 해외를 떠돈지 오래 된 사람들이다.
누구나 꺼리는 나라가 바로 이 파키스탄이다.평소엔 거들먹거리면서 좋은 집에 살다가,
요즘은 그나마 한국 기자들이 와서 '군기'가 바짝 든 상태다."
그러나 현지 교민들의 말과는 달리, 대사관은 밀려드는 업무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했다.
어느 대사관 관계자의 말.
"한국 여성들에 대한 나쁜 소문은 우리도 들어 알고 있다. 한국인 여자들이 파키스탄 남자를 보고 잘 반한다.
대체로 이혼녀, 노처녀 등 나이든 여자들이다.
파키스탄 남자들이 대개 잘 생기고 영어를 잘 하고 여자들에게 사근사근 친절하다.
그런 친절에 반해 결혼한 후, 한국에서 돈을 어느 정도 벌게 되면 파키스탄
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들은 거의 집안에서 갇혀 지낸다.
여권을 남편들이 잡아두고 있어 한국으로 못 간다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이 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대사관으로 찾아온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보낼준비가 되어 있다.
임시여권도 발행해줄 수가 있다. 단,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 정도만 여자 의 집에서 마련해준다면."
10월 말 현재까지 이슬라마바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은 모두 4명.
그러나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현지에서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한국 여성들의 현황에 대해 물으니 대사관 관
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 이슬라마바드는 한국 여성들이 거의 없어요. 카라치에는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긴 우리 대사관 관할이 아니고 카라치 총영사관 관할이거든요.
그쪽으로 물어보시죠. 그리고 제발 한국 여성들이 파키스탄 남자들하고 결혼하
지 말라 고 기사 좀 쓰세요."
자국민의 보호를 도외시한 채, 그들의 피맺힌 이야기들을 한낱 '이야깃거리'쯤으
로 전락시키는 한국 공무원들의 모습을 나는 현지에서 똑똑히 보고 들을 수 있었
다.
글과 사진/ 이유진 기자 ( bachjin@yeozawa.com) : 여자와 닷컴
이런 자들을 보호해 주자고 외치는 기독교 단체들은 제 정신인지 궁금합니다.
내가 남자들에게 주눅이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나는 성희롱을 당했다.
파키스탄으로 떠나기 전 그 나라를 경험한 배낭여행객들에게 현지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듣고,
자료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빼놓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희롱에 관한 부분이었다.
인도에서 12시간을 기다려 여권을 도난당할 뻔(?)한 위기상황까지 거쳐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길,
바로 옆자리에 앉은 파키스탄인은 지친 동양 여성을 위해 친절을 베푸는척했다.
그는 조는 듯하면서 점점 내 쪽으로 기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손가락을 뻗어 내 가슴을 툭툭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아 ,이 사람이 졸다가 날 건드리는구나.
이슬람권 사람들은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자극을 받으면 가만있지 않는다고 했으니 문제를 일으키면 안되겠다' 는
생각에 악몽 같은 몇 시간을 그냥 견디고만 있었다.
심지어는 거의 통로로 몸을 기울여 그이 손가락을 피해야만 했다 스튜어티스
역시 그의 그런 기색을 눈 여겨 보고 있었으나 아무론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후
에도 난 여러 번의 성희롱을 당했다.
택시를 타면,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그 나라에선 그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뒷자리가 상석이니 '미천한'여자가 운전사 옆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택시 운전사들이 기어조작을 하면서 여자들의 무릎을 슬쩍슬쩍 건드 릴 수 있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드시 운전석 옆자리에 앉게 한다고 했다,
그사실을 알게 된후, 나는 내 무릎을 치거나 무릎에 무심코 손을 얹는 사람들에
게 반드시 항의 표시를 했다.
"건드리지 마! 니가 왜 내 몸에 손을 대느냐!"
그들의 장난은 대개 거기서 그쳤고, 그 이상 나는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세관역시 마찬가지였다.
공항의 일부 직원들은 일부러라도 여자여행객의 배낭을뒤지고 싶어했지만 나는 세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다, 여자 직원을 데리고 와라. 그렇지 않으면 배낭을 열지 않겠다."
대개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세관통과가 간소화되거나, 별 문제없이 통과가 되곤했다.
쓸데없이 생리대등을 손에 들고 이게 뭐냐고 묻는 세관직원들의 횡포 역시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다.
난민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난민들은 나에게 돌을 던지고,
심지어는 똥침을 놓기까지 했다.
'프로 텔레반'들이 거주하는 국경인근의 주민들이 던진 돌에 한번 맞은 후로는 오히려 맘이 담담해졌다.
이슬라마바드 근처의 난민촌도 마찬가지였다.
열댓 명쯤 되는 아이들이 내주위로만 몰려들어 엉덩이를 만지고,
옷을 잡아당겼으며 나뭇가지로 등으로 찔러댔다.
그 모습을 본 남자어른들은 내가 안 되었던지 나뭇가지를 꺽어 아이들을 쫓아주었다
처음, 내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무리는 말 그대로 '공포'였다 순박한 눈빛으로
내게 접근한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돈을 달라고 요구하고 차를 따라다녔다.
돈을 주지 않은 채 마을을 떠날 기색을 보이자 자동차 본네트며 트렁크를 손으
로 치기도해서 파키스탄인 드라이버는 몇 번이고 자동차를 세워 화난 기색을 보여야만했다.
이걸 본 한국의 기자들은 수시로'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여기 라'고 충고했다.
어느 날 밤, 남자들만 벅적댄다는 야시장 쪽으로 취재를 나가기로했다. 그런데
내가 묵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극구 이를 말리는 것이었다.
여성은 절대 밤길을 다녀서는 안 된다며
그는 "함께 길을 가는 남자조차도 위험해" 진다며 만류했다.
전날 게스트 하우스에 들른 현지한국인의 이야기 때문에 나는 더욱 겁을 먹어야만 했다.
"어느날 한국인 여자 배낭객과 일본인여자 배낭객이 짝을 이뤄 여행을했어요.
그들이 어느날 납치를 당해 파키스탄의 한 산간지역 토굴에 갇혔죠.
몇 달간 낯선 남자들에게 겁탈을 당한 후에 간신히 구출되었는데 ,
일본대사관에서는 엠뷸런스로 일본인여성을 데려갔어요.
그런데 한국대사관에서는 왜 여자혼자 그런 위험 한 곳을 여행했느냐며 오히려 야단을 쳤다지 뭡니까."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글과 사진/ 이유진 기자 ( bachjin@yeozawa.com) : 여자와 닷컴
한국여자, 파키스탄인을 만나지 말라?
'박싱헬레나'(BOXING HELENA)란 영화가 있다. 극단적인 사랑, 아니 집착에 빠 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헬레나를 사랑하던 남자는 그녀가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헬레나의 팔다리를
절단한 채 자신의 집에 가둔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이야기를
한 한국인 배낭여행객을 통해서 들었다.
"한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인도 여행길에 어쩌다가 사창가를 지나가게 됐다는
거 다. 그런데 자꾸만 포주가 잡더란다. 잡다잡다 안 되니까 살며시 귀에 대고 얘기 하더라고 했다.
일본인 여자가 있으니 구경이나 하라고. 일본 사람이니까
귀가 번쩍 뜨일 거 아닌가. 일단 그 여자가 누군지,
왜 이 먼 인도까지 와서는 몸을 팔고 있는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 포주를 따라 일본여자가 있다는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실지로 일본인 여자가 있더라고 했다. 눈앞엔 참혹한 풍경이 있었다.
일본인 여성이 사지가 절단된 채 그곳에 있더라고 했다.
그녀는 충격으로 일본어를 거의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고,
여러 가지를 묻 던 그 일본인 친구에 게 단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나는 벌레야'라고."
중동국가의 여성인권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이은 세 중동국가에 대한
여성인권 척도지수는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소문이었다.
물론 편견에 사로잡힌 이야기들이 많았겠지만 예의 '소문'들은 내 발을 얼어붙게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민사회엔 '파키스탄 에 붙잡혀 사는 한국인 여성들'에 대한 문제가 떠들썩했다.
심지어 대사관의 한 관계자의 입에서조차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어느 교민이 전 해준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이곳 국제공항에서의 일이다.
어느 동양인 아주머니가 한국말로 "미친x, 미친x" 하며 울고 있었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내가 한국 사람인데, 대체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 의 말이,
자신의 딸이 파키스탄 남자와 살고 있어 잠시 다니러 와서 보니 사는꼴이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딸은 한국에서 8급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전문대 야간출신이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모범택시를 몰고 있었다. 부족한 것 없이 살고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딸이 이태원 등지에서 파키스탄 남자와 눈이 맞아 결국 파키스탄으로 시집을 왔다는 것이다.
보통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조금
만 벗어나도 파키스탄은 아주 깡촌이다.
그런데 그곳은 진흙바닥에,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금방 무너질 듯한 통나무 침대가 가구의 전부다.
음식은 짜파티(파키스탄식 빵)에 겨우
고추, 감자, 좀 더 나아봤자 콩을 기름에 볶은 것 정도다.
양고기나 닭고기쯤은 한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하는 음식이다.
보통 방 세 개짜리 정도 되는 집에 11식구가량이 생활 한다.
그러나 한국 여자들은 집 근처 30미터를 채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시집 식구들이 여자를 붙잡아온다.
게다가 한국 여자들의 여권을 남자들이 붙들고 있어 여자는 이러지
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 엄마도 그런 집에 살고 있는 딸을 탈출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다.
결국 어떤 한국인 사장의 집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딸의 남편이 사설 경찰을 불러 다 집을 포위하고 그 사장을
협박하는 통에 딸은 남편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혼자서 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간혹 한국 말을 하고 있으면 차도르를 쓴 어떤 여자가 휙 돌아본다. 눈이 분명 한국 여자 다.
차도르 안에서 눈물이 한 방울 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사라져버린다."
글과 사진/ 이유진 기자 ( bachjin@yeozawa.com) : 여자와 닷컴
한국여자, 파키스탄인을 만나지 말라?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인 부부가 차를 타고 어딜 가다가 한국 남자가
차에 부인을 놔두고 잠시 자릴 비웠다. 누군가 그 차를 그대로 몰고 날랐다.
어느 날 그 여자는 사막에서 시체 로 발견되었다."
실지로, 페샤와르를 다녀오던 나는 참을 수 없는 요기를 느껴 차를 잠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벌써 어둑해진 들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했다.
결국 어느 주유소에 들러 간신히 용변을 보고 나오는데, 동행한 기자선배가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밖에 계속 서 있었어. 무슨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잖아."
여자 혼자서는 화장실에 갈 수조차 없는 현실이라니. 한국 여자들은 파키스탄 남자의 '밤일'에 홀린다?
한국 여인들의 고달픔을 알려주던 한국 교포들의 결론은 아래와 같았다.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파키스탄 남자에게 잘 속는다. 영어 잘 하지,
생긴 것 번드르르 하지, 그리고 자신이 파키스탄 사람이라고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 호주인이라고 말한다.
한국 여자들은 그에 잘 속는다.
게다가 파키스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술안 마시지, 양고기 많이 먹지. 당연 정력이 좋을 거 아닌가.
'밤일'도 아주 잘할 것이다.
그러니 한국 여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미친x, 미친x하고 울고 있던
한국 아주머니도 자기 딸이 아마도 남자의 ' 밤일'에 홀려 저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소문이 사실인지,
그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대사관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교민들은 '대사관의 업무태만'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대사관에 대한 교민들의 불신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발발 직전이 되어서야 대사관은 현지 상사의 직원들을 동원해 비상연락망을 짜고,
대사관 집무실 에 언제든 탈출할 수 있도록 가방을 놓아두곤 했다니까.
한 교민은 대사관에 대한 불만을 단적으로 털어놓았다.
"대사관은 여기서 고생하며 살고 있는 한국여성들에 대해 아무런 조
치를 하지 않는다. 대사관 직원들은 해외를 떠돈지 오래 된 사람들이다.
누구나 꺼리는 나라가 바로 이 파키스탄이다.평소엔 거들먹거리면서 좋은 집에 살다가,
요즘은 그나마 한국 기자들이 와서 '군기'가 바짝 든 상태다."
그러나 현지 교민들의 말과는 달리, 대사관은 밀려드는 업무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했다.
어느 대사관 관계자의 말.
"한국 여성들에 대한 나쁜 소문은 우리도 들어 알고 있다. 한국인 여자들이 파키스탄 남자를 보고 잘 반한다.
대체로 이혼녀, 노처녀 등 나이든 여자들이다.
파키스탄 남자들이 대개 잘 생기고 영어를 잘 하고 여자들에게 사근사근 친절하다.
그런 친절에 반해 결혼한 후, 한국에서 돈을 어느 정도 벌게 되면 파키스탄
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들은 거의 집안에서 갇혀 지낸다.
여권을 남편들이 잡아두고 있어 한국으로 못 간다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이 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대사관으로 찾아온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보낼준비가 되어 있다.
임시여권도 발행해줄 수가 있다. 단,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 정도만 여자 의 집에서 마련해준다면."
10월 말 현재까지 이슬라마바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은 모두 4명.
그러나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현지에서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한국 여성들의 현황에 대해 물으니 대사관 관
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 이슬라마바드는 한국 여성들이 거의 없어요. 카라치에는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긴 우리 대사관 관할이 아니고 카라치 총영사관 관할이거든요.
그쪽으로 물어보시죠. 그리고 제발 한국 여성들이 파키스탄 남자들하고 결혼하
지 말라 고 기사 좀 쓰세요."
자국민의 보호를 도외시한 채, 그들의 피맺힌 이야기들을 한낱 '이야깃거리'쯤으
로 전락시키는 한국 공무원들의 모습을 나는 현지에서 똑똑히 보고 들을 수 있었
다.
글과 사진/ 이유진 기자 ( bachjin@yeozawa.com) : 여자와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