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구두쇠들의 나라--(4)
이번에는 5시에 일어났다,,
to be 계속되어지고 있지요.. 한방에 끝나면 재미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대부분의 일이 공사판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동양인 인부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난 일이 없었다
일이 없는 사람들이 할 일 이라곤 술마시고,, 담배나 피고
농담이나 따서 먹는 일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태국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비쌌다..
특히 담배가 비쌌다,,
말보루 한갑에 11세켈 정도 이니까 3달라다 당시 바트로는 160바트 정도였다
카오산에서 마일드 세븐이 40바트 정도 했으니까 이스라엘의 담배값은
태국의 4배 정도 였다,,
그러다 보니 담배 인심이 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에게 한 까치 주면 여기 저기에서 손을 벌린다 ,,
한국사람 인심에 그렇다고 담배를 안줄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담배 한갑을 사서 남들에게 나누어 주다 보면,..
하루에 두갑도 모자랐다,,
그래서 서양애들은 담배 잎과 담배 종이를 따로 사서 직접말아서 피웠다,,
그러면 담배 값이 절반정도는 절약이 된다고 했다...
간혹 백인들이 담배를 말아 피는 것을 보고 한국 여학생들이 멋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 왠지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왜 담배를 말아 피는 지 이유를 말해 주지는 않았다 ,,
그러면 나의 비참했던 이스라엘에서의 생활이 들어 날까봐 두려워서였다,,,
아무튼 그들과의 연일 계속되는 잡담속에서 그들의 국적과
그들이 이스라엘에 온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동구권에서 돈을 벌로 온 불법 노동자였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사람들,,,
그런데 가장 의문이 들었던 건 영국에서 온 사람들 이었다..
영국에서 불법노동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왜일까 ? ?
신사의 나라 영국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혹시 해가 지지 않아서,, 해지는 걸 보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걸까 ! !
그러나 무덤에도 이유가 있듯이 ,,,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그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경제적 난민이었다
영국 ,,특히,, 런던의 겨울은 매우 매섭다고 한다..
그런데 런던은 집값이 워낙 비싸서 런던에서 웬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
추운 겨울을 지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런던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리고 홍콩이 반환되기 전에는 영국인들은 홍콩에서 워킹비자가 필요없었고,
또 영국인을 위한 일자리가 많았었는 데,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과 함께 보금자리를 잃은 많은 영국 떠돌이들이
그 차선책으로 택한 곳이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도 영국인들이 홍콩 반환을 아쉬워 했는 지
그 한가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동구권 친구들과 달리
그들 영국인들은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따듯한 남쪽나라
이스라엘을 찾아서 오는 것이었다..
그저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서 온 것이었다..
세상에 !!! 저렇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생존을 위해 조국을 등져야만 하다니.
역시 세상에는 모순이 많이 존재 한다,,,
또한 그렇게 연일 계속되는 잡담 속에서 ..
이스라엘 남부의 이집트와의 국경도시인 "에이랏"을 가면
그곳은 휴양도시이기 때문에 일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그렇게 몇 일을 잡담과 담배연기 속에서 보내다가
이대로 시간만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에이랏" 행을 결심했다.
다음날 난 텔아비브에서 버스를 타고 에일랏으로 향했다..
이스라엘에는 고속버스가 없다.
아니,, 이름은 "EXPRESS"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완행이었다.
이곳 저곳 다 들리고,... 가다가 길에서 손들면 세워 주기도 하고,,
작전 중인 군인들도 버스를 세워서 타고 가고..
버스안의 의자도 그렇다 ,, 우리나라 좌석 버스 같은 의자다.
하지만 가격은 우리나라 보다 훨씬 비쌌다...
난 버스의 맨 마지막 줄에 앉았다,, 내 옆의 아가씨들 몇 명은
바캉스를 가는 지 매우 "휴가틱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근데 이 아가씨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네명이서 동시에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놀라서 웬일인가 하고 물어 보니 ,,
아마도 이 아가씨들 첨보는 동양인에게 호기심을 느낀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태국"이냐.. "중국"이냐 ,,, "일본"이냐
아니다,, 이건 분명히 "필리핀"이다 하면서 ,,
내 국적을 자기들 맘대로 정해 버렸고,, 난 "타이랜디"로 결정 되어졌다,.
태국인이 아니고,한국인이라는 나의 대답에 그들의 토론은 다시 계속되었다.
한국은 싱가폴 옆이다,,아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옆에 있는 데
가끔 전쟁을 한다느니,..그러다가 대한민국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로...
인도와 중국 사이 어디쯤으로 결정이 되어졌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외국에서 수난을 금치 못한 날 이었다 .
굳이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가끔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에 대해서 묻는다 .
(참고 : 난 지금 중국에 살고 있다)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한다
"응 , 너희 중국이나 비슷해 , 기냥 중국이랑 비슷한 생활 수준이야" 라고
말해 버린다...
어차피,, 미국 사람들이 전세계를 돌며 자신들의 국가가 어디에 있으며,,
국민소득은 얼마이고,,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 광고를 하고 다니지는 않지 않는 가 ! ! !
굳이 우리가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 광분하기 보다는 ,,,
그 시간과 돈으로 국력을 키운다면,,
그래서 세계의 정치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면
굳이 우리가 말할 필요 없이 아쉬운 사람들이 우리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닌가..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은 한국에 온지 일,이년 지나면 한국말을 잘한다.
아니,, 언제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있었을 까 하고 놀랄 정도다,.
전에 한국에서 영어를 십년 가르쳤다는 미국인을 방콕에서 만난 적이 있는 데
그 사람이 한다는 한국말이 “한국 탕수육이 맛있어요” 였다.,
아니 도데체 그 사람이 사는 동네 짜장면집 탕수육이 얼마나 맛있었는 지는
몰라도 할 수 있는 한국말을 물어 보니까 첫 마디가 탕수육이었을까 !!
아무튼 그렇다,,, 여행하시는 분들 혹시 여행중에 한국을 모르는 현지인이
있어도 화낼 일이 아니다,..
난 최근까지도 “우간다”가 방글라데시 옆에 있는 나라인지 알았다..
아무튼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 지는 그녀들의 상상에 맡기고
난 그녀들과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대화라기 보다는 지금 생각하면 ,, 작업을 위한 뻐꾸기를 날렸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자를 보고 작업이나 할 생각을 했다니 ! ! !
참으로 ,,,,,
,,,
난 직업정신에 투철한 전직 작업맨 이었던 것 같다,,
오가는 대화속에 무르익는 작업의 분위기,
이제는 거의 다 됐다 싶었는 데..
난 그녀들의 한마디 말에 나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
그녀들은 중3 이었다.. 그러니까 만 15살 ..
혹시, 내가 영계를 좋아하는 변태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절대로 "로리타" 그런거 안한다...
물론 맹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니다,, 그 누가봐도 그녀들은 성숙한 20대였다..
하기야, 서양애들은 키가 크니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대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계는 키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들을 성인으로 착각하게 했단 말인가 ???
그건 그들의 가슴 사이즈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유태인 여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미인이라고 하는 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유태인 여자가 세계에서 가슴이 가장 크지않을까 한다.
물론 평균치를 말하는 것이다,,누구나 큰건 아니니까..
정말 거짓말 안하고 그 여학생들 가슴의 크기는
우리나라 “?소 부인” 크기 정도였다..
그리고 그 크기 보다도 곡선의 뚜렷함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도저히 15살 어린 소녀로 볼 수 없게 했다..
이렇게 글을 썼다고,,, 또 카오산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여자들
가슴 뚫어지게 바라보지 마시기를,, 그저 스치듯 그러나 예리하게
상대방에게 한치의 허점도 보이지 말고 정확하게 모양을 캐치 하시도록..
아무튼 그 이후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지금 까지도 인상에 남는 것이
바로 유대인 여성들의 " ? ? " 이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난 페미니스트 아님.. 물론 이것도 맹세할 수는 없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에이랏"에서 이 호텔 저 호텔을
일을 찾아 다녔다,,
마치 내가 가난한 나라에서 온 그야 말로 경제적 난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한번은 아주 큰 고급호텔로 일을 구하러 갔다,,,
정문에서 나를 본 경비는 이미 예상했던 데로 나를 잡았다..
그리고 난 아무말도 안했는 데,, 뒤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일을 구하러 온 사람은 그리로 들어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난 정말로 한마디도 안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에도 관상을 보는 사람이 있나 ??? 지금도 의문이다
그의 말대로 난 뒤로 돌아서 지하로 들어 갔고 무슨 쓰레기 장 같은 곳
근처에서 어둡게 생긴 아프리카 아이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검은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한다,,
마치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그들의 전문영역인듯,,,
주방에서나 식당안에서는 그들을 본적이 없었다..
그 쓰레기장 옆에는 경비실 같이 생긴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난 한시간을 기다렸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스라엘 사람이
그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갔다,, 누가 책임자인지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마다 일을 구하러 왔다고 했고
그들은 말없이 상당히 느끼한 웃음을 내게 보냈다,
난 그들이 지금 나를 비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영화에서나 나오는 노예들의 비굴한 웃음으로 그들에게 답했다..
그리고 어떤 백발의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이번에도 난 정말 한마디도 않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 내게 이렇게 말했다..“NO JOB"
한시간의 나의 비굴함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렇게 삼일간을 헤메다가 이거 원 !! 돈을 벌로 온건지
아님 무슨 구직 활동 연습을 하러 온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걸 포기 했다,, 그리고 방콕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했다..
텔아비브로 돌아 가는 날,, 이스라엘에서는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장대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가에 앉아..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비내리는 호남선”까지...
혼자서 그렇게 비참하고 슬프게 노래를 흥얼 거렸다,,
옆에 앉은 아줌마는 가는 내내 나를 마치 실성한 사람 보듯이 했다..
연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쭈 ~~~ 욱 ~~~
to be 계속되어지고 있지요.. 한방에 끝나면 재미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대부분의 일이 공사판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동양인 인부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난 일이 없었다
일이 없는 사람들이 할 일 이라곤 술마시고,, 담배나 피고
농담이나 따서 먹는 일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태국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비쌌다..
특히 담배가 비쌌다,,
말보루 한갑에 11세켈 정도 이니까 3달라다 당시 바트로는 160바트 정도였다
카오산에서 마일드 세븐이 40바트 정도 했으니까 이스라엘의 담배값은
태국의 4배 정도 였다,,
그러다 보니 담배 인심이 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에게 한 까치 주면 여기 저기에서 손을 벌린다 ,,
한국사람 인심에 그렇다고 담배를 안줄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담배 한갑을 사서 남들에게 나누어 주다 보면,..
하루에 두갑도 모자랐다,,
그래서 서양애들은 담배 잎과 담배 종이를 따로 사서 직접말아서 피웠다,,
그러면 담배 값이 절반정도는 절약이 된다고 했다...
간혹 백인들이 담배를 말아 피는 것을 보고 한국 여학생들이 멋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 왠지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왜 담배를 말아 피는 지 이유를 말해 주지는 않았다 ,,
그러면 나의 비참했던 이스라엘에서의 생활이 들어 날까봐 두려워서였다,,,
아무튼 그들과의 연일 계속되는 잡담속에서 그들의 국적과
그들이 이스라엘에 온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동구권에서 돈을 벌로 온 불법 노동자였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사람들,,,
그런데 가장 의문이 들었던 건 영국에서 온 사람들 이었다..
영국에서 불법노동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왜일까 ? ?
신사의 나라 영국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혹시 해가 지지 않아서,, 해지는 걸 보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걸까 ! !
그러나 무덤에도 이유가 있듯이 ,,,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그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경제적 난민이었다
영국 ,,특히,, 런던의 겨울은 매우 매섭다고 한다..
그런데 런던은 집값이 워낙 비싸서 런던에서 웬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
추운 겨울을 지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런던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리고 홍콩이 반환되기 전에는 영국인들은 홍콩에서 워킹비자가 필요없었고,
또 영국인을 위한 일자리가 많았었는 데,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과 함께 보금자리를 잃은 많은 영국 떠돌이들이
그 차선책으로 택한 곳이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도 영국인들이 홍콩 반환을 아쉬워 했는 지
그 한가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동구권 친구들과 달리
그들 영국인들은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따듯한 남쪽나라
이스라엘을 찾아서 오는 것이었다..
그저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서 온 것이었다..
세상에 !!! 저렇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생존을 위해 조국을 등져야만 하다니.
역시 세상에는 모순이 많이 존재 한다,,,
또한 그렇게 연일 계속되는 잡담 속에서 ..
이스라엘 남부의 이집트와의 국경도시인 "에이랏"을 가면
그곳은 휴양도시이기 때문에 일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그렇게 몇 일을 잡담과 담배연기 속에서 보내다가
이대로 시간만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에이랏" 행을 결심했다.
다음날 난 텔아비브에서 버스를 타고 에일랏으로 향했다..
이스라엘에는 고속버스가 없다.
아니,, 이름은 "EXPRESS"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완행이었다.
이곳 저곳 다 들리고,... 가다가 길에서 손들면 세워 주기도 하고,,
작전 중인 군인들도 버스를 세워서 타고 가고..
버스안의 의자도 그렇다 ,, 우리나라 좌석 버스 같은 의자다.
하지만 가격은 우리나라 보다 훨씬 비쌌다...
난 버스의 맨 마지막 줄에 앉았다,, 내 옆의 아가씨들 몇 명은
바캉스를 가는 지 매우 "휴가틱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근데 이 아가씨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네명이서 동시에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놀라서 웬일인가 하고 물어 보니 ,,
아마도 이 아가씨들 첨보는 동양인에게 호기심을 느낀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태국"이냐.. "중국"이냐 ,,, "일본"이냐
아니다,, 이건 분명히 "필리핀"이다 하면서 ,,
내 국적을 자기들 맘대로 정해 버렸고,, 난 "타이랜디"로 결정 되어졌다,.
태국인이 아니고,한국인이라는 나의 대답에 그들의 토론은 다시 계속되었다.
한국은 싱가폴 옆이다,,아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옆에 있는 데
가끔 전쟁을 한다느니,..그러다가 대한민국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로...
인도와 중국 사이 어디쯤으로 결정이 되어졌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외국에서 수난을 금치 못한 날 이었다 .
굳이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가끔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에 대해서 묻는다 .
(참고 : 난 지금 중국에 살고 있다)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한다
"응 , 너희 중국이나 비슷해 , 기냥 중국이랑 비슷한 생활 수준이야" 라고
말해 버린다...
어차피,, 미국 사람들이 전세계를 돌며 자신들의 국가가 어디에 있으며,,
국민소득은 얼마이고,,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 광고를 하고 다니지는 않지 않는 가 ! ! !
굳이 우리가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 광분하기 보다는 ,,,
그 시간과 돈으로 국력을 키운다면,,
그래서 세계의 정치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면
굳이 우리가 말할 필요 없이 아쉬운 사람들이 우리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닌가..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은 한국에 온지 일,이년 지나면 한국말을 잘한다.
아니,, 언제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있었을 까 하고 놀랄 정도다,.
전에 한국에서 영어를 십년 가르쳤다는 미국인을 방콕에서 만난 적이 있는 데
그 사람이 한다는 한국말이 “한국 탕수육이 맛있어요” 였다.,
아니 도데체 그 사람이 사는 동네 짜장면집 탕수육이 얼마나 맛있었는 지는
몰라도 할 수 있는 한국말을 물어 보니까 첫 마디가 탕수육이었을까 !!
아무튼 그렇다,,, 여행하시는 분들 혹시 여행중에 한국을 모르는 현지인이
있어도 화낼 일이 아니다,..
난 최근까지도 “우간다”가 방글라데시 옆에 있는 나라인지 알았다..
아무튼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 지는 그녀들의 상상에 맡기고
난 그녀들과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대화라기 보다는 지금 생각하면 ,, 작업을 위한 뻐꾸기를 날렸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자를 보고 작업이나 할 생각을 했다니 ! ! !
참으로 ,,,,,
,,,
난 직업정신에 투철한 전직 작업맨 이었던 것 같다,,
오가는 대화속에 무르익는 작업의 분위기,
이제는 거의 다 됐다 싶었는 데..
난 그녀들의 한마디 말에 나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
그녀들은 중3 이었다.. 그러니까 만 15살 ..
혹시, 내가 영계를 좋아하는 변태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절대로 "로리타" 그런거 안한다...
물론 맹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니다,, 그 누가봐도 그녀들은 성숙한 20대였다..
하기야, 서양애들은 키가 크니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대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계는 키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들을 성인으로 착각하게 했단 말인가 ???
그건 그들의 가슴 사이즈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유태인 여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미인이라고 하는 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유태인 여자가 세계에서 가슴이 가장 크지않을까 한다.
물론 평균치를 말하는 것이다,,누구나 큰건 아니니까..
정말 거짓말 안하고 그 여학생들 가슴의 크기는
우리나라 “?소 부인” 크기 정도였다..
그리고 그 크기 보다도 곡선의 뚜렷함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도저히 15살 어린 소녀로 볼 수 없게 했다..
이렇게 글을 썼다고,,, 또 카오산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여자들
가슴 뚫어지게 바라보지 마시기를,, 그저 스치듯 그러나 예리하게
상대방에게 한치의 허점도 보이지 말고 정확하게 모양을 캐치 하시도록..
아무튼 그 이후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지금 까지도 인상에 남는 것이
바로 유대인 여성들의 " ? ? " 이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난 페미니스트 아님.. 물론 이것도 맹세할 수는 없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에이랏"에서 이 호텔 저 호텔을
일을 찾아 다녔다,,
마치 내가 가난한 나라에서 온 그야 말로 경제적 난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한번은 아주 큰 고급호텔로 일을 구하러 갔다,,,
정문에서 나를 본 경비는 이미 예상했던 데로 나를 잡았다..
그리고 난 아무말도 안했는 데,, 뒤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일을 구하러 온 사람은 그리로 들어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난 정말로 한마디도 안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에도 관상을 보는 사람이 있나 ??? 지금도 의문이다
그의 말대로 난 뒤로 돌아서 지하로 들어 갔고 무슨 쓰레기 장 같은 곳
근처에서 어둡게 생긴 아프리카 아이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검은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한다,,
마치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그들의 전문영역인듯,,,
주방에서나 식당안에서는 그들을 본적이 없었다..
그 쓰레기장 옆에는 경비실 같이 생긴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난 한시간을 기다렸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스라엘 사람이
그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갔다,, 누가 책임자인지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마다 일을 구하러 왔다고 했고
그들은 말없이 상당히 느끼한 웃음을 내게 보냈다,
난 그들이 지금 나를 비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영화에서나 나오는 노예들의 비굴한 웃음으로 그들에게 답했다..
그리고 어떤 백발의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이번에도 난 정말 한마디도 않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 내게 이렇게 말했다..“NO JOB"
한시간의 나의 비굴함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렇게 삼일간을 헤메다가 이거 원 !! 돈을 벌로 온건지
아님 무슨 구직 활동 연습을 하러 온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걸 포기 했다,, 그리고 방콕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했다..
텔아비브로 돌아 가는 날,, 이스라엘에서는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장대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가에 앉아..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비내리는 호남선”까지...
혼자서 그렇게 비참하고 슬프게 노래를 흥얼 거렸다,,
옆에 앉은 아줌마는 가는 내내 나를 마치 실성한 사람 보듯이 했다..
연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쭈 ~~~ 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