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미쳤다 한다... ^^ 그런가????
작년부터인가 ... 나는 일상의 지루함에 빠지기 시작한 것 같다. 출근하고 업무를 보고 다시 퇴근후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휴일이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시계바늘처럼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그래야하는 당위성처럼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마치 삶의 모두인 것처럼 쳇바퀴를 돌고 또 돌고 나도 돌아버려야 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의 욕구일거라 생각해본다. 삶에 대한 충전일수도, 현실에서의 잠시간의 도피일수도 그도 아니면 주어진 속박에 대한 자유를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배부른 자의 푸념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먼저 밝히듯이 본인은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작년에 불현듯 현실에 안주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였을 때, 나는 두려움의 시선으로 그림자의 음영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 얼마나 낙담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 속에는 어렸을적 순수의 눈동자로 꿈꾸던 모습은 눈꼽만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현실을 알라고 아직도 아이라고 나무란다. 그래 나는 언제이고 아이이고 싶다. 어렸을 때에 우리집에 찾아오시던 할머니의 고쟁이속에서 꺼내어진 50원짜리 동전하나에 온세상이 행복이라는 색으로 칠해진 도화지속의 풍경처럼 말이다. 지금은 50원의 수만배 수십만배를 갖는다 한들 그 풍경을 갖을 수 없다. 이제는 길들여진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흠... 흠... 어찌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지 물로가는지 방향이 없어진다. ( 횡설수설 맞나 )
그러면 어떠하리 ^^ 하고싶은 말 이렇게라도 할수 있느면 족하지 않을까?
일상의 탈출을 꿈꾸던 작년 8월인가 타는 목마름을 한방울의 청량함으로 적셔주던 태사랑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수많은 주옥같은 여행기들을 차분히 읽어가면서 그 속에 동화되어가는 나를 발견한 것이,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속에 설레임과 두려움과 부러움이 녹아내려 용기라는 놈을 만나 무작정 떠나기로 자신과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업무상의 해외출장들을 빼고는 십여년만의 여행만을 위한 나들이를 위해 무작정 항공권을 발권받고 집에는 회사업무로 회사에는 집안일로 핑계를 대고는 추석을 몇일 앞두고 무작정 떠났다. 떠나기전의 계획들은 실종되었지만 돌아올 때는 많은 추억과 아쉬움이라는 놈이 내옆에 커다란 과자가되어 존재함을 알고는 다짐했다. 그래 내 조금씩 너를 아끼고 아껴 야금야금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리라. 언젠가 네가 없어질때면 내 다시 나를 위해 탈출을 모의하리라.....
그리고...... 올 3월 8박9일의 탈출과 8월 13박14일의 탈출을 감행했다. 회사동료와 상사들의 “너 미쳤구나” 하는 소리와 함께 ㅠ.ㅠ
여행이란 무엇인가? 경험의 장일 수도, 휴식의 터전일 수도, 때로는 일상의 무료함으로 부터의 잠깐의 탈출일 수도 있겠다. 여행에서 바라는 것이 천차만별이듯 그것에서 얻어지는 것도 다양하고 특정한 장소에서 느끼는 것 또한 개인마다 틀리지 않을까?
개인이 느끼는 것의 차이를, 의견의 차이를, 서로가 인정해 주면 그만인 것을 남에게 조언을 넘어 감정의 싸움으로 번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30일 귀국후 내가 본 태사랑의 많은 글들이...... 이런 글 조차 쓰기가 무섭게 ^^
여행에서 돌아와 스트레스받는 많은 분들, 출발전에 가지셧던 마음과 좋은일만 생각하시길 그곳에서의 나쁜일은 모두 무시하시길을 바랍니다. 나쁜곳은 다음에 이용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것이 여행자의 권리아니 겠습니까?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글을 쓰시는 분의 의도는 아닌듯한데 쓰여진 글들의 몇곳에서 제삼자가 느끼기에 거북한 글들이 신경을 긁습니다. 그런글은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도움이되지 않는 듯 합니다.
=====> 게시판이 너무 우울해 그냥 끄적여 봤습니다. 이해하시기를.....
끝으로 이번 여행길에 좋은 친구가 되어준 시집중의 하나를 좋은..님을
따라 하나 적어봅니다.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 샤를르 드 푸코 ---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의 욕구일거라 생각해본다. 삶에 대한 충전일수도, 현실에서의 잠시간의 도피일수도 그도 아니면 주어진 속박에 대한 자유를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배부른 자의 푸념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먼저 밝히듯이 본인은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작년에 불현듯 현실에 안주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였을 때, 나는 두려움의 시선으로 그림자의 음영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 얼마나 낙담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 속에는 어렸을적 순수의 눈동자로 꿈꾸던 모습은 눈꼽만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현실을 알라고 아직도 아이라고 나무란다. 그래 나는 언제이고 아이이고 싶다. 어렸을 때에 우리집에 찾아오시던 할머니의 고쟁이속에서 꺼내어진 50원짜리 동전하나에 온세상이 행복이라는 색으로 칠해진 도화지속의 풍경처럼 말이다. 지금은 50원의 수만배 수십만배를 갖는다 한들 그 풍경을 갖을 수 없다. 이제는 길들여진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흠... 흠... 어찌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지 물로가는지 방향이 없어진다. ( 횡설수설 맞나 )
그러면 어떠하리 ^^ 하고싶은 말 이렇게라도 할수 있느면 족하지 않을까?
일상의 탈출을 꿈꾸던 작년 8월인가 타는 목마름을 한방울의 청량함으로 적셔주던 태사랑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수많은 주옥같은 여행기들을 차분히 읽어가면서 그 속에 동화되어가는 나를 발견한 것이,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속에 설레임과 두려움과 부러움이 녹아내려 용기라는 놈을 만나 무작정 떠나기로 자신과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업무상의 해외출장들을 빼고는 십여년만의 여행만을 위한 나들이를 위해 무작정 항공권을 발권받고 집에는 회사업무로 회사에는 집안일로 핑계를 대고는 추석을 몇일 앞두고 무작정 떠났다. 떠나기전의 계획들은 실종되었지만 돌아올 때는 많은 추억과 아쉬움이라는 놈이 내옆에 커다란 과자가되어 존재함을 알고는 다짐했다. 그래 내 조금씩 너를 아끼고 아껴 야금야금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리라. 언젠가 네가 없어질때면 내 다시 나를 위해 탈출을 모의하리라.....
그리고...... 올 3월 8박9일의 탈출과 8월 13박14일의 탈출을 감행했다. 회사동료와 상사들의 “너 미쳤구나” 하는 소리와 함께 ㅠ.ㅠ
여행이란 무엇인가? 경험의 장일 수도, 휴식의 터전일 수도, 때로는 일상의 무료함으로 부터의 잠깐의 탈출일 수도 있겠다. 여행에서 바라는 것이 천차만별이듯 그것에서 얻어지는 것도 다양하고 특정한 장소에서 느끼는 것 또한 개인마다 틀리지 않을까?
개인이 느끼는 것의 차이를, 의견의 차이를, 서로가 인정해 주면 그만인 것을 남에게 조언을 넘어 감정의 싸움으로 번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30일 귀국후 내가 본 태사랑의 많은 글들이...... 이런 글 조차 쓰기가 무섭게 ^^
여행에서 돌아와 스트레스받는 많은 분들, 출발전에 가지셧던 마음과 좋은일만 생각하시길 그곳에서의 나쁜일은 모두 무시하시길을 바랍니다. 나쁜곳은 다음에 이용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것이 여행자의 권리아니 겠습니까?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글을 쓰시는 분의 의도는 아닌듯한데 쓰여진 글들의 몇곳에서 제삼자가 느끼기에 거북한 글들이 신경을 긁습니다. 그런글은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도움이되지 않는 듯 합니다.
=====> 게시판이 너무 우울해 그냥 끄적여 봤습니다. 이해하시기를.....
끝으로 이번 여행길에 좋은 친구가 되어준 시집중의 하나를 좋은..님을
따라 하나 적어봅니다.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 샤를르 드 푸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