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옥수수 동동주를 한잔하고 있는중이다, 내곁에 명월인 없지만 그래도 유튭에서 흘러나오는 70년 가요를 들으며 옥수수 동동주 한잔 하는 맛이란, 45년전 앵두나무가 있던 형목이네 뒷곁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기억을 추억하는 맛이 아닐런지, 형목이는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 같이 다니던 친구지만 국민학교를 아홉살에 들어가서 나보다 한살 많은 국민학교 동창이다. 형목이네 엄마는 형목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우리 동네 삼거리에서 막걸리 주막집을 하면서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형목이는 국민학교 동창인 나를 볼때마다 나를 자기집 뒷곁으로 오라고 하고선 찌그러진 양은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 반주전자를 부엌 안쪽 땅속에 막걸리가 시원하라고 묻어 놓은 장독에서 퍼놓고 대신 우물물,맹물 한바가지를 술독에다가 쏟아 부어놓고 완전 범죄다 확신을 하는양 힌이빨을 드러내며 한번 씨익 웃고 막걸리가든 주전자를 들고 짠지 한접시 하고 주섬주섬 뒷곁으로 들고 왔다.
이런날은 분명 형목이 엄마는 볼일보러 밖에 나가고 집에 없다는것을 나는 짐작으로 눈치 채고 형복이가 사기그릇에 따라 주는 달콤한 막걸리 맛에 취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마시고 있으면 농사철이 아닌이상 막걸리 받으러 오는 사람도 드물고 형목이네 앵두나무가 있는 뒷곁은 아방궁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나와 형목이는 죽이 잘맞아던지 같이 붙어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형목이네는 논골 방죽 위에 뙤알밭이 있었고 뙤알밭 뚝방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감나무는 많았지만 밭에 밤나무가 있는집은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밤한톨 맛이라도 보려면 산밤을 따러 산으로 올라가야 했던 시절이다. 형목이는 항상 자기밭 뙤알밭 뚝방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다는걸 자랑스러워 했고 언제나 가을철 밤이 벌어져 떨어질때면 누가 알밤을 주워갈까봐 학교만 갔다오면 책보따리를 마루에다 집어 내팽개치고 지개를 지고 뙤알밭 밤나무 밑으로 가서 밤나무를 지키며 어깨에다 잔뜩 힘을 주고 자기가 벌써 어른이라도 된양 으시대면서 그때만 해도 비싸서 아버지들도 피우지 못하는 아리랑 담배 궐련 한개피를 뽑아 물고 성냥 불에 불을 그어 담배 연기 한모금 그럴싸하게 내뿜는데 형목이는 같은 또래들 보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는 몰라도 나는 마치 형목이가 어른 같이 느껴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형목이는 국민학교를 졸업 하고 객지 밥을 먹으며 도회지를 떠돌았다. 철공소에 다닌다고도 했고 주물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내가 군대 제대후 집에 와보니 형목이는 고향집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형목이는 사람이 많이 변해 있었다.
형목이는 한때 주물공장을 다니며 착실히 일해서 목돈도 만져봤다고 하는데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정신적 충격 때문에 도회지 이곳저곳 떠돌다가가 벌어논 돈도 다까먹고 할수없이 고향집으로 돌아왔노라고 말했다. 형목이는 항상 고향집에 돌아와 술에 취해 살았다. 땅떼기라도 일궈야 먹고 사는데 형목이는 뭐라도 하려는 의욕을 잃고 방황속에서 술만 마셔대는 날이 많아 보였다. 그후 나는 고향집을 떠나 되회지로 취직을 해서 나왔는데 몇년이 흐른후 형목이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죽었다는 형목이를 떠올리면서 그옛날 뙤알밭 밤나무 밑에서 의기양양 호기를 부리며 궐련 연기를 멋지게 내뿜던 형목이를 그리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