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밧, 단돈 만원의 테이블... 방콕의 저녁식사
기나긴 쑤쿰윗 대로를 척추 등뼈로 치자면, 그 등뼈에 붙어 지네발처럼 촘촘하게 뻗어있는 수많은 쏘이들
어떤 쏘이에서는... 현란한 조명 불빛 아래 리비도가 철철 흘러넘치는 와중에 협잡꾼들이 술 취한 호구를 물색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쏘이는 일본인들의 오랜 거주지 역할을 충실하게 해오면서 일본계슈퍼와 일식당들이 군락을 이루며 그들의 섬을 이루고, 어떤 곳은 정말이지 서민적이고 로컬스럽기만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쏘이는 방콕시민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인 아주 일상적인 곳들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퇴근시간이면 지친 얼굴의 태국인들이 집으로 가기위해 좁은 인도 변에 모여서는 버스나 썽태우 또는 모떠싸이 랍짱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봅니다. 하루의 피곤이 쌓여서 그런걸 수도 있겠고 차를 기다리는 동안 노후 한 버스가 뱉어내는 먼지와 매연, 더위 때문에 절로 찌뿌린걸 수도 있겠고요... 하여튼 대부분은 지친 표정들이네요.
저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일반적인 태국시민들에 대해 그 어떤 말랑한 감상도 가지지 않고 있어서 그런가... 가난하지만 행복하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뭐 그런 외부인이 현지인에 대해 가지는 낭만적인 이미지는, 일종의 신기루 같은 거라고 여기는 냉소적인 인간이 되었어요... 퇴근길 저녁 방콕시민들에게 느껴지는 건 그저 하루의 끝이 주는 짙은 고단함뿐이랄까...
하여튼 많고 많은 수쿰윗의 쏘이 들 중에서 어느 한 골목 안에 자리 잡은 태국식당에서 저녁 한끼입니다.
외국인이 그렇게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지만 이 지역 대부분의 태국식당들이 그러하듯 영어메뉴가 잘 되어 있고, 가격은 현지 생활 물가에 맞춰 있어 요모조모 두루 편합니다.
에어컨 같은 건 있을 리가 없고 거리와 가게가 하나처럼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주인장과 잘 아는 듯 인사하며 들어와서 혼밥하는 태국 아저씨는 볶음국수 하나에 덮밥 하나 여기에 리오 맥주 큰 거 한 병 시켜 싹싹 비우고 나가는데 이렇게 3개 시키고 가격은 200밧이 안되네요. 많이 시장하셨나, 앉은 자리에서 두 그릇입니다요. 하긴 육체노동을 하는 남자라면 태국의 밥 한 그릇은 포만감이 전혀 일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여느 시민식당가나 한 그릇 시키면 배가 제법 부르잖아요.
역시 혼밥하는 태국인 아주머니도 밥이랑 국물요리 각각 하나 시켜서 135밧
재잘재잘 젊은 여성들은 각자 음식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떨다 나가고...
외국인인 우리는 각자의 밥(나는 팟까파오)을 시키고 쏨땀 그리고 고기구이와 맥주 한 병을 곁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총 275밧...
일단 한 가지가 좋아지면 그것만(팟까파오) 주구장창 먹는 이 괴상한 버릇을 고쳐야 되는데... 이것도 가벼운 편집증의 일종이지 않을까 의문이 들 정도에요.
하여튼 로컬 밥집인데 주문은 초보여행자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이런 식당들이 좋습니다.
이런 식당의 특성상 종업원은 뭐 그다지 사근사근하지는 않지만... 이건 아마도 우리나라 종업원들이 많이 친절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 일 뿐이겠죠. 그리고 우리가 한번 오고는 다시 안 올 뜨내기 외국인이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
하여튼 단돈 만 원 한 장으로 맛있는 밥과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어두운거리에서 뿜어져나오는 소음도, 식당의 화구에서 전달되는 열기도 그저 다 기분 좋은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
이래서 여행 나오나 싶기도 하고요.
쏨땀타이(태국식 쏨땀)와
커무양(돼지목살 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