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밧, 단돈 만원의 테이블... 방콕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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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밧, 단돈 만원의 테이블... 방콕의 저녁식사

고구마 28 1033

 

기나긴 쑤쿰윗 대로를 척추 등뼈로 치자면, 그 등뼈에 붙어 지네발처럼 촘촘하게 뻗어있는 수많은 쏘이들

어떤 쏘이에서는... 현란한 조명 불빛 아래 리비도가 철철 흘러넘치는 와중에 협잡꾼들이 술 취한 호구를 물색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쏘이는 일본인들의 오랜 거주지 역할을 충실하게 해오면서 일본계슈퍼와 일식당들이 군락을 이루며 그들의 섬을 이루고, 어떤 곳은 정말이지 서민적이고 로컬스럽기만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쏘이는 방콕시민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인 아주 일상적인 곳들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퇴근시간이면 지친 얼굴의 태국인들이 집으로 가기위해 좁은 인도 변에 모여서는 버스나 썽태우 또는 모떠싸이 랍짱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봅니다. 하루의 피곤이 쌓여서 그런걸 수도 있겠고 차를 기다리는 동안 노후 한 버스가 뱉어내는 먼지와 매연, 더위 때문에 절로 찌뿌린걸 수도 있겠고요... 하여튼 대부분은 지친 표정들이네요. 

 

저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일반적인 태국시민들에 대해 그 어떤 말랑한 감상도 가지지 않고 있어서 그런가... 가난하지만 행복하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뭐 그런 외부인이 현지인에 대해 가지는 낭만적인 이미지는, 일종의 신기루 같은 거라고 여기는 냉소적인 인간이 되었어요... 퇴근길 저녁 방콕시민들에게 느껴지는 건 그저 하루의 끝이 주는 짙은 고단함뿐이랄까...

 

하여튼 많고 많은 수쿰윗의 쏘이 들 중에서 어느 한 골목 안에 자리 잡은 태국식당에서 저녁 한끼입니다. 

 

외국인이 그렇게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지만 이 지역 대부분의 태국식당들이 그러하듯 영어메뉴가 잘 되어 있고, 가격은 현지 생활 물가에 맞춰 있어 요모조모 두루 편합니다. 

에어컨 같은 건 있을 리가 없고 거리와 가게가 하나처럼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주인장과 잘 아는 듯 인사하며 들어와서 혼밥하는 태국 아저씨는 볶음국수 하나에 덮밥 하나 여기에 리오 맥주 큰 거 한 병 시켜 싹싹 비우고 나가는데 이렇게 3개 시키고 가격은 200밧이 안되네요. 많이 시장하셨나, 앉은 자리에서 두 그릇입니다요. 하긴 육체노동을 하는 남자라면 태국의 밥 한 그릇은 포만감이 전혀 일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여느 시민식당가나 한 그릇 시키면 배가 제법 부르잖아요. 

역시 혼밥하는 태국인 아주머니도 밥이랑 국물요리 각각 하나 시켜서 135밧

재잘재잘 젊은 여성들은 각자 음식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떨다 나가고...

 

외국인인 우리는 각자의 밥(나는 팟까파오)을 시키고 쏨땀 그리고 고기구이와 맥주 한 병을 곁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총 275밧...

일단 한 가지가 좋아지면 그것만(팟까파오) 주구장창 먹는 이 괴상한 버릇을 고쳐야 되는데... 이것도 가벼운 편집증의 일종이지 않을까 의문이 들 정도에요. 

하여튼 로컬 밥집인데 주문은 초보여행자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이런 식당들이 좋습니다.

이런 식당의 특성상 종업원은 뭐 그다지 사근사근하지는 않지만... 이건 아마도 우리나라 종업원들이 많이 친절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 일 뿐이겠죠. 그리고 우리가 한번 오고는 다시 안 올 뜨내기 외국인이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 

하여튼 단돈 만 원 한 장으로 맛있는 밥과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어두운거리에서 뿜어져나오는 소음도, 식당의 화구에서 전달되는 열기도 그저 다 기분 좋은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

이래서 여행 나오나 싶기도 하고요. 

 

 

쏨땀타이(태국식 쏨땀)와

커무양(돼지목살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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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까파오 까이 랏 카우
(닭고기 바질 볶음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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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 팟 퐁 까리 랏 카우
(해물 커리 볶음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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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Comments
냥냥 2019.03.15 19:45  
저는  태국에서는  국수에  집착이 심해서  하루  세번  국수먹은  적도  있어요.
솜땀에  꽂히면  하루 솜땀만  세번. ㅎ
고구마 2019.03.16 09:10  
오...저같은 분이 또 계셨어요.
제가 편집증이 아닌거구만요. ^^
꼬북이님 2019.03.15 19:49  
저는 정말 태국음식이 입에 너무잘맞아서 ㅠㅠ
한국에서 먹는 태국음식은 뭔가 본토의 그맛이 안나요 ㅠㅠ
고구마 2019.03.16 09:11  
우리나라에서 먹을때는 거의 흡족한적이 없었어요.
가격은 높은데 맛은 모하해서...자의로는 간적이 거의 없었어요. ㅠㅠ
태국초봉 2019.03.16 00:16  
이번에 태국 한달 넘게 가는데 맛있는거 많이 먹어야겠네요 ㅋㅋ
이번엔 혼자가는거라 혼밥이 쫌 두렵긴하지만 ㅠㅠ
고구마 2019.03.16 09:12  
혼밥으로도 먹을수있는 아이템이 좀 되니까...맛있는거 많이 드시길 바래요.
말을 이렇게하긴하는데 실제로 혼자서는 식욕이 잘 안생기긴 하더라고요. ㅠㅠ
다람쥐 2019.03.16 05:11  
글을 읽는 내내 현장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네요.
언제나 느끼지만,
고구마님 필력은 예술입니다.
제가 고구마님 필력 50%만 있어도
네이버 앱소설 분야 1천만 뷰는 가볍게 달성할 것인데,
내가 쓴 내 글을 봐도 기계적인 느낌만 나고 아무런 상상조차 안되니
이글을 보는 내내 감탄만 합니다.
고구마 2019.03.16 09:14  
어억.....안절부절 -_-;; 다람쥐님 감사할 따름이야요. ^^
우리나라에서 구황작물로만 간단히 먹다가 저래 먹으니까...
간소한 상차림인데도 맛있게 느껴져서 기분이 아주 좋아지더라고요. ^^
필리핀 2019.03.16 06:44  
아하!
경륜에서 배어나온 인생의 묘미가
맛깔난 음식 사진과 함께 문장 곳곳에 배어 있어서
왠지 찡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네요!!
저도 얼렁 떠나고 싶어요~ㅠㅠ
고구마 2019.03.16 09:16  
정말이지 예전에 필리핀님 여행 자주 나오셔서 , 이곳 저곳 후기 쓰시던게 그립구만요.
요즘은 바쁜게 큰 복인 세상이라고는 하니 , 일로 분주하신게 잘된거긴한데...
얼른 여행할 짬이 나시길 진심 바랠뿐이야요.
여사모 2019.03.16 10:15  
저는 저기저기 커무양에 환장하는 사람입니다
포스가 있는 집은 간도 적당히 스며 들어 있고
젤리처럼 쫄깃쫄깃 하죠
먹고온지가 엇그젠데...
솜땀 타이와 라무,꺼무양으로 점심 먹으러 가볼까봐요
고구마 2019.03.16 22:02  
저도 랍무 좋아해요. 랍무는 향신료가 쎄고 좀 매워서 늘 저만 먹게되서 주문을 잘 안하게는 되지만....ㅠㅠ
커무양은 고소하고 그에비해서 랍무는 더 개운해서 밥이랑 꿀떡꿀덕 잘 넘어가더라고요.
여사모 2019.03.17 20:07  
맞아요
라무는 원래 매운것 같더라구요
저는 항상 no스파이시로 주문 합니다 ㅎㅎ
쏨브레로 2019.03.16 10:47  
글에서 뭔가 낭만도 느껴지고 음식들도 맛있어 보이네요. 잘 봤습니다!
고구마 2019.03.16 22:02  
나중에 드셔보세요. ^^
2019.03.16 17:37  
태국 음식 그리워요. 싼 물가도, 뜨거운 열기도.
고구마 2019.03.16 22:03  
낮에는 진짜 야외활동하는게 곤란할정도 볕이 찌르는데
밤이 되면 기분좋게 더운정도여서 잘 다니고있어요. 꽁이랑 같이 어여어여 태국놀러오세요. ^^
Ferragamo 2019.03.18 10:46  
와 다해서 275바트면 엄청 저렴하네요. 곧 여행가는데 기대됩니다 ㅎ
세네스 2019.03.19 01:00  
개인적으로 해물커리볶음 덮밥이 맘에 드는군요..
망고를찿아서 2019.03.20 13:13  
나도 태국 1달 요리 저리 돌아 댕겼어도 음식은 뭐가 뭔지 몰라 배고프니 먹어 기억이 안남니다
사진보고 이것 주세요
나이가 들어서 입맛이 별루
여행은 젊어서.
키오 2019.03.24 13:49  
태국에 다녀온게 8일 전인데 또 태사랑에 올라온 글을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망고님 음식이름을 모르시는건 연세 탓이 아니고 관심이 없어서일겁니다.  제 나이 70이 낼 모레인데 태국엘 가면 아직도 못 먹어본 메뉴를 섭렵하느라 시간이 모자라죠. 특히나 혼밥을 하다보니 하루 2끼(호텔 조식 제외) 혹은 3끼로는 경험치 확장에 한계가 있네요. ㅎㅎ
xjshsnd 2019.03.20 13:49  
앞으로도 좋은 맛집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사진두요!
오렌지라인 2019.03.24 10:56  
쏨땀타이와 커무양
완전 제 취향입니다. 꼭 같은 곳은 아니더라도 음식은 먹어야겠어요.
키오 2019.03.24 14:03  
쏨땀과 커무양에 비어창 환상의 궁합이죠.  술이 조금 더 받는 날엔 쁠라묵 팟프릭파우(매콤한 오징어 볶음) 하나 더 시키는게 제 스타일. 열흘 전쯤 테웻시장을 지나다가 내려 수로 옆 노천식당에 앉아 먹었던 메뉴들입니다. 언제, 또 언제까지 방콕 길거리 식당에서 시간을 보낼수 있을는지?... 문득 치앙마이 럿롯식당도 생각이 나는군요.
태호독존 2019.03.25 19:59  
와 !! 가성비 끝장이네요 저도ㅠ조만간 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ㅎ 맛난거 많이 먹고 싶네요
미뇽신뇽망나뇽 2019.03.25 22:56  
태국음식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먹으면 너무 비싸요 ㅠㅠ 얼른 태국 가서 맛있는 음식들 많이 먹고 싶네요!!
여미0 2019.03.27 16:51  
태국은 다들 음식이 맛있다고 그래서 진짜 기대되요 ㅠㅠ 티비로만 봤던 쏨땀이나 사진 올려주신 돼지고기 같은 것두요
달래블라썸 2019.04.23 09:51  
가성비 끝판왕이네요 기억해둬야겠어요 가격도 싸고 맛도 좋다고 하니 꼭 메모해둬야할 집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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