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가다~
이 여행기는 20여년전에 강원도를 한바퀴 돌아온후
간략하게 어느지역을 거쳐서 돌아왔는지 정리해논
강원도 여행기이다,
이 시절만해도 가슴은 뜨거웠었건만,
심심하신분만 대충 훑어보시길,ㅎㅎ
1997년 여름,
난 무작정 떠났다,
중부 고속 도로는 차가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구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도로는 숨막힐 정도로
거북이 걸음을 해야 했다.
초행길의 초조함이 두근 두근 지루 했다.
남양주를 지나면서 강줄기 마다 피서객들로 만원 이었다.
경치가 무척 아름 다웠다.
도로 중앙에 서서 옥수수며 간식 군것질을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인상적 이었다.
푹푹찌는 아스팔트 도로위에 서서 장사 한다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노을진 춘천댐은 아름다웠다,
난 감탄을 했다.
너무 아름다운 호수댐 이었다.
댐 물줄기 따라 올라가면서 뜨거운 가슴에 용광로가 끊어올랐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 이었다.
노을진 춘천댐의 아름 다운 풍경을 잊지 못할것 같았다.
화천읍-조그만 소도시,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갈곳이 없었다.
화천에서 하룻밤 자고 갈것인지
철원을 향해 밤길을 달릴것인지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앳돼보이는 잘생긴 학생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서울에서 군에 있는 친구 면회온 대학생 인데요
초행길이라 지리도 모르고 좀태워다 주면 안될까요?"
"나도 초행길이라 잘모르는데요"
그는 당돌 했다.
그를 태운후 화천읍 구운리 포병부대를 물어 물어 찿아갔다.
밤8시가 막지나는 시간이었다.
부대는 구석지고 외진곳에 있었다.
그가 면회 신청후 한시간여후 a일병이 나왔다.
a일병의 첫인상은 뺀질한 인상이었다.
그와 a일병을 태우고 화천읍으로 나왔다.
화천읍에서 두사람을 내려 주려 하자 고맙고 미안 하다고
식사를 대접 하겠다고 했다.
마땅히 갈곳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좁은 상가 골목으로 들어 갔다.
"아저씨 잠깐만요 여관 방이 있는지 알아 보고 올께요"
잠시후 아줌마 하나와 같이 나왔다.
토요일 이라 여관방은 빈방이 없고 민박집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
골목을 돌아나와 구운리 쪽으로 가다 우회전 하니 2층집이 보였다.
민박집이 아닌 가정집 방하나를 임대 하는것이었다.
"아저씨 식사 하러 가시죠"
여관 아줌마가 식당 잘하는곳 이라며 송화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갈비탕이 나왔다.
밤10시가 넘어서야 먹는 저녁이었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같이 민박집에서
숙박을 하자고 하였다.
자기는 내일 일요일 이라서 차가 많이 밀리기 때문에
월요일에나 서울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식사후 민박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맥주와 마른안주를 사왔다.
침대가 있는 민박집은 무척 더웠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밤1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대광 수퍼앞 탁자에 앉자 수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수퍼 마켓은 외지 사람들을 보고 장사를 하기때문에
새볔 까지 장사를 한다고 했다.
수퍼 마켓 주인 내외는 화천 토박이인데 퍽사람이
좋게 보였고 순박하게 보였다.
새벽이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차에서 잠을 잤다.
잠을 자는데 빗방울이 차속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잠을 깼다.
아침 9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비가 많이 내렸다.
시장골목안 식당으로 들어가자 많은 손님들로 번잡하였다.
군인들이 많았다.
식사후 평화의 댐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파로호를 향해 달렸다.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파로호안 비수구미 마을을 생각 하고
호수 건너편 몇채 안되는 가옥들을 신기 한듯 바라 보았다.
파로호는 정말 아름다운 커다란 호수였다.
다시 평화의 댐을 향해 달렸다.
평화의 댐은 썰렁 하기만 했다.
평화의 댐은 물이 없어 바닥이 보였다.
다시 화천읍으로 나왔다가 양구를 향해 빗속을 사정없이 달렸다.
양구를 지나고 인제 내린천을 달렸다.
내린천은 비가 많이와 흙탕물이었다.
아주 길게 뻗은 내린천은 아름다운 강이었다.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서울 사람들의 래프팅 하던
모습들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린천을 지나면서 어둠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내린천을 지나 율전을 지나고 평창 속사를 향해 끝없이 달렸다.
평창 운두령 고개를 넘으면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운두령은 굽이 굽이 고갯길이 험한데다 오고 가는 차도 없고
민가조차 없는 고갯길이라 여간 무서운게 아니었다.
가끔 오고 가는 자동차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다.
장평 가는길과 하진부로 가는 갈림길에 왔을때
장평쪽으로 가는 도로는 완전히 차들로 밀려 있었다.
장평을 거쳐 평창으로 가려 했는데 포기 하고
반대로 하진부를 향해 달렸다.
하진부에 도착하니 조그만 읍내가 아늑한 분위기 였고
가로등 불빛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밤길 이정표를 보고 정선을 향했다.
정선에서 하룻밤 자고 갈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머나먼 장거리 운전으로 몸과 마음이 피곤 하였다.
정선은 작년 여름 여행을 하며 시외 터미널 부근 여관에서
자고간곳 이기도 하여 낯설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아우라지 강변도 구경할겸 에서였다.
한참을 달린후에 어둠속에서 아우라지 강을 볼수 있었고
힘찬 물줄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강물이 많이 불어 있었고
어둠에 잠긴 아우라지 강변을 바라보는 감정은 감개 무량 하였다.
강물줄기 속에서 정선 아리랑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구슬픈 정선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영상이고 환상이었다.희망이었다.
정선 읍내 들어 서기전 큰다리옆 강둑에서는
불어난 강물 줄기를 바라보면서 웅성대는 피서객들이 많이 보였다.
터미널 부근에서 작년 여름 자고 갔던 여관 불빛과
텅빈 시외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니 감해가 새로웠다.
다시 평창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그냥 이비오는 밤길에 한번 가볼때 까지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한참을 달린후 고개를 넘어 휴양림을 지나 민가집이 있는
정류소에서 차를 세웠다.
소변도 볼생각으로 차에서 내리니 불빛이라곤 가끔 오고 가는
자동차 불빛뿐 민가집은 모두다 불을끄고 잠들어 있었다.
오징어 한마리를 꺼내어 질겅 질겅 씹어 먹는 오징어 맛이 좋았다.
밤1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졸립지는 않고 두눈이 말똥 말똥 할뿐이었다.
오징어를 먹고 나니 요기가 되어 배가 든든 했다.
다시 평창을 향해 달렸다.
끝없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밤길 산간 오지 마을 비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 뿌려대니
혼자라는것이 결코 자유가 아니고 외로움 이라는것을 알았다.
난 언제나 혼자라는것은 자유라고 생각해 왔었다.
혼자라는것은 자기 구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창은 이미지가 좋았다.
메밀꽃 필무렵의 배경이 된곳이기도 해서 그런지
다정 다감 하게 느껴졌고 강냉이,감자 처럼 퍽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다정하게 살아 가는 고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메밀꽃이 하얗게 힌눈온것 처럼 펼쳐지는 광경이 그림처럼 보이는듯 했다.
메밀꽃 필무렵에서 나오는 봉평장을 보고 싶었고
순박한 시골 인심을 느껴 보고 싶었다.
차는 제천을 향해 달렸다.
제천 박달재를 넘으면서 졸음이 몰려 왔다.
고개 넘어 도로 옆에 주차하고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 그런지 금방 골아 떨어졌다.
잠에 취해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보았던 자가용 주인이 아침이니까
빨리 떠나라고 알려 주는것이었다.
건성으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 거린후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근 점심때가 된듯 보였다.
다시 충주를 지나고 수안보 온천을 지나고 문경에 들어섰다.
문경 시내에 들어서기전 산중턱길을 굽이 굽이 돌면서
바라보는 산아래 들녘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몇가구 안되는 시골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 가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보였다.
다시 상주를 지나고
보은을 지나고
옥천을 지나고
대전을 향해 달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내렸다. (1997년 여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