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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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가다~

향고을 18 390

이 여행기는 20여년전에 강원도를 한바퀴 돌아온후 

간략하게 어느지역을 거쳐서 돌아왔는지 정리해논 

강원도 여행기이다,

이 시절만해도 가슴은 뜨거웠었건만,

심심하신분만 대충 훑어보시길,ㅎㅎ 

 

1997년 여름,

난 무작정 떠났다, 

 

중부 고속 도로는 차가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구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도로는 숨막힐 정도로

거북이 걸음을 해야 했다.

초행길의 초조함이 두근 두근 지루 했다.

남양주를 지나면서 강줄기 마다 피서객들로 만원 이었다.

경치가 무척 아름 다웠다.

도로 중앙에 서서 옥수수며 간식 군것질을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인상적 이었다.

푹푹찌는 아스팔트 도로위에 서서 장사 한다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노을진 춘천댐은 아름다웠다,

난 감탄을 했다.

너무 아름다운 호수댐 이었다.

댐 물줄기 따라 올라가면서 뜨거운 가슴에 용광로가 끊어올랐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 이었다.

노을진 춘천댐의 아름 다운 풍경을 잊지 못할것 같았다.


화천읍-조그만 소도시,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갈곳이 없었다.

화천에서 하룻밤 자고 갈것인지 

철원을 향해 밤길을 달릴것인지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앳돼보이는 잘생긴 학생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서울에서 군에 있는 친구 면회온 대학생 인데요

초행길이라 지리도 모르고 좀태워다 주면 안될까요?"

"나도 초행길이라 잘모르는데요"

그는 당돌 했다.

그를 태운후 화천읍 구운리 포병부대를 물어 물어 찿아갔다.

밤8시가 막지나는 시간이었다.

부대는 구석지고 외진곳에 있었다.

그가 면회 신청후 한시간여후 a일병이 나왔다.

a일병의 첫인상은 뺀질한 인상이었다.

그와 a일병을 태우고 화천읍으로 나왔다.

화천읍에서 두사람을 내려 주려 하자 고맙고 미안 하다고 

식사를 대접 하겠다고 했다.

마땅히 갈곳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좁은 상가 골목으로 들어 갔다.

"아저씨 잠깐만요 여관 방이 있는지 알아 보고 올께요"

잠시후 아줌마 하나와 같이 나왔다.

토요일 이라 여관방은 빈방이 없고 민박집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

골목을 돌아나와 구운리 쪽으로 가다 우회전 하니 2층집이 보였다.

민박집이 아닌 가정집 방하나를 임대 하는것이었다.

"아저씨 식사 하러 가시죠"

여관 아줌마가 식당 잘하는곳 이라며 송화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갈비탕이 나왔다.

밤10시가 넘어서야 먹는 저녁이었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같이 민박집에서 

숙박을 하자고 하였다.

자기는 내일 일요일 이라서 차가 많이 밀리기 때문에 

월요일에나 서울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식사후 민박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맥주와 마른안주를 사왔다.

침대가 있는 민박집은 무척 더웠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밤1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대광 수퍼앞 탁자에 앉자 수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수퍼 마켓은 외지 사람들을 보고 장사를 하기때문에 

새볔 까지 장사를 한다고 했다.

수퍼 마켓 주인 내외는 화천 토박이인데 퍽사람이 

좋게 보였고 순박하게 보였다.

새벽이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차에서 잠을 잤다.

잠을 자는데 빗방울이 차속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잠을 깼다.

아침 9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비가 많이 내렸다.

시장골목안 식당으로 들어가자 많은 손님들로 번잡하였다.

군인들이 많았다.

식사후 평화의 댐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파로호를 향해 달렸다.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파로호안 비수구미 마을을 생각 하고

호수 건너편 몇채 안되는 가옥들을 신기 한듯 바라 보았다.

파로호는 정말 아름다운 커다란 호수였다.

다시 평화의 댐을 향해 달렸다.

평화의 댐은 썰렁 하기만 했다.

평화의 댐은 물이 없어 바닥이 보였다.

 

다시 화천읍으로 나왔다가 양구를 향해 빗속을 사정없이 달렸다.

양구를 지나고 인제 내린천을 달렸다.

내린천은 비가 많이와 흙탕물이었다.

아주 길게 뻗은 내린천은 아름다운 강이었다.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서울 사람들의 래프팅 하던 

모습들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린천을 지나면서 어둠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내린천을 지나 율전을 지나고 평창 속사를 향해 끝없이 달렸다.

평창 운두령 고개를 넘으면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운두령은 굽이 굽이 고갯길이 험한데다 오고 가는 차도 없고

민가조차 없는 고갯길이라  여간 무서운게 아니었다.

가끔 오고 가는 자동차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다.

장평 가는길과 하진부로 가는 갈림길에 왔을때 

장평쪽으로 가는 도로는 완전히 차들로 밀려 있었다.

장평을 거쳐 평창으로 가려 했는데 포기 하고 

반대로 하진부를 향해 달렸다.

하진부에 도착하니 조그만 읍내가 아늑한 분위기 였고

가로등 불빛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밤길 이정표를 보고 정선을 향했다.

정선에서 하룻밤 자고 갈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머나먼 장거리 운전으로 몸과 마음이 피곤 하였다.

정선은 작년 여름 여행을 하며 시외 터미널 부근 여관에서

자고간곳 이기도 하여 낯설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아우라지 강변도 구경할겸 에서였다.

한참을 달린후에 어둠속에서 아우라지 강을 볼수 있었고

힘찬 물줄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강물이 많이 불어 있었고

어둠에 잠긴 아우라지 강변을 바라보는 감정은 감개 무량 하였다.

강물줄기 속에서 정선 아리랑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구슬픈 정선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영상이고 환상이었다.희망이었다.

정선 읍내 들어 서기전 큰다리옆 강둑에서는 

불어난 강물 줄기를 바라보면서 웅성대는 피서객들이 많이 보였다.

터미널 부근에서 작년 여름 자고 갔던 여관 불빛과 

텅빈 시외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니 감해가 새로웠다.

 

다시 평창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그냥 이비오는 밤길에 한번 가볼때 까지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한참을 달린후 고개를 넘어 휴양림을 지나 민가집이 있는 

정류소에서 차를 세웠다.

소변도 볼생각으로 차에서 내리니 불빛이라곤 가끔 오고 가는

자동차 불빛뿐 민가집은 모두다 불을끄고 잠들어 있었다.

오징어 한마리를 꺼내어 질겅 질겅 씹어 먹는 오징어 맛이 좋았다.

밤1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졸립지는 않고 두눈이 말똥 말똥 할뿐이었다.

오징어를 먹고 나니 요기가 되어 배가 든든 했다.

다시 평창을 향해 달렸다. 

끝없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밤길 산간 오지 마을 비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 뿌려대니 

혼자라는것이 결코 자유가 아니고 외로움 이라는것을 알았다.

난 언제나 혼자라는것은 자유라고 생각해 왔었다.

혼자라는것은 자기 구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창은 이미지가 좋았다. 

메밀꽃 필무렵의 배경이 된곳이기도 해서 그런지

다정 다감 하게 느껴졌고 강냉이,감자 처럼 퍽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다정하게 살아 가는 고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메밀꽃이 하얗게 힌눈온것 처럼 펼쳐지는 광경이 그림처럼 보이는듯 했다.

메밀꽃 필무렵에서 나오는 봉평장을 보고 싶었고 

순박한 시골 인심을 느껴 보고 싶었다.

 

차는 제천을 향해 달렸다.

제천 박달재를 넘으면서 졸음이 몰려 왔다.

고개 넘어 도로 옆에 주차하고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 그런지 금방 골아 떨어졌다.

잠에 취해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보았던 자가용 주인이 아침이니까 

빨리 떠나라고 알려 주는것이었다.

건성으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 거린후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근 점심때가 된듯 보였다.

 

다시 충주를 지나고 수안보 온천을 지나고 문경에 들어섰다.

문경 시내에 들어서기전 산중턱길을 굽이 굽이 돌면서

바라보는 산아래 들녘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몇가구 안되는 시골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 가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보였다.

다시 상주를 지나고 

보은을 지나고 

옥천을 지나고 

대전을 향해 달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내렸다.    (1997년 여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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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Comments
적도 2018.03.24 21:46  
글을 읽으니 예전 생각이 나네요.
화천 구운리면 7사단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좀더 북쪽으로 가면 파포리 초소가 나오고
좌측으로가면 15사단 다목리가 나오고 우측으로가면 7사 단 8연대 노동리가 나오고
거기서도 더 북쪽으로 GOP까지 갔던 군시절이 생각 나네요.
보통 군대 갔다 고생한 것이 생각나 그쪽 향해선 소변도 안본다는 말처럼 이후 한번도 간적이
없으니 많이 변했겠지요
 저 코스로 문경까지 가셨다면 상당히 심적으로 혼란스러울 때라고 생각 되는데요
 암튼 재밌게 읽었습니다 공감도 되구요^^
향고을 2018.03.25 18:21  
본인은 춘천103보충대 군번인데요,
촌놈이 촌구석에 놀다가 천안역에서 춘천103보충대로
열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여행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동경사에 배치되어 버스타고 가는데 역시 여행가는 느낌이었구요,
전 전역후 삼척을 여러번 갔는데 예전 느낌은 전혀 아니었구요,
구석구석 시멘공구리 포장이 되어있어 영 아니었어요,
예전 그시절 삼척시내 방석집도 없어지고,ㅎㅎ
30줄 그시절만해도 뭔가모를 목마른 갈증때문에 좀허대고 다녔었지요,
하여간 지금은 가슴속 열정도 사라지고 그저 안전 건강을 우선하고 있네요,ㅎ
적도 2018.03.25 19:34  
저역시 논산서 기차타고 가다서고 내리는 신병들 보면서 용산 용사의 집서 다불백에
앉아서 하룻밤 보내고 다시 기차타고 간곳이 돈없고 빽없는 신병들이 모이는
 103보충대 춘천이였지요  그후 언젠가 103보충대가 101보충대로 바뀌었다더군요
원래 101보는 의정부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동경사면 꽤 좋은 곳에서 군생황 하셨네요  생선 많이 드시면서.....
  남자들은 본인들만 재밌는 군대 얘기들 이렇게 해대네요.ㅋㅋㅋ
거기다 겨울 물이 얼면 북한강에서 양구 21사단 사병들과 축구 시합도 했죠.. 가장 재미없는 군대서 축구하는 얘기죠^^
 군대 가는데 여행가는 느낌이었다니  공감을 못하겠네요??
전 1년여 사귄 여친을 떠나 군대를 갔으니 당시엔 좀 힘들었던것 같네요.
향고을 2018.03.25 20:12  
춘천103보충대에서 그당시 동경사 배치된 장정들을
제일 부러워했었지요,
전 논산에서 훈련을 안받고 삼척 갈천리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받을만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훈련생 모두가 똑같은 입장이었으니 어려움도 별루없었구요,
훈련소에서 바로위 부대에 배치를 받았는데 한두달은 똥오줌 못가렸죠,ㅎㅎ
하여간 후진해수욕장,촛대바위등등 풍경이 아름다운곳이었기에
더더욱 삼척은 애착이 가는곳임에 틀림없습니다,ㅎ
타이거지 2018.03.25 06:38  
메모하고..기록하는 좋은 습관을 지니셨네요.
1997..뜨거운 여름날..뜨거운 가슴..전투적 야간주행..고뇌..외로움..
제가 추억하는 강원도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기억이 소멸된 듯 합니다..
시간에 쫓기듯 치열한 삶을 살때는 고단함을 극복해야하고..
나이 들면..무료함과 외로움을 슬기롭게 극복해야하고...
내 안의 외로움은..곁에 누가 있어도..문득..문득..찾아 옵니다.
고을님~!
차라리 검열에 위반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짝퉁 19금이 나은 것 가타여..ㅜㅜ.
향고을 2018.03.25 18:26  
짝퉁19금,ㅎㅎ
사람은 누구나 외로울테지요,
전 외로움을 즐길때도 많구요,
사람들 가슴속에 외로움,고독,쓸쓸한 감정이없으면
세상 참 재미없을듯 해요,
감정이 풍부 흘러넘치는 재벌님이야 외로움은 덤 아닐까요,ㅎㅎ
샤이닝55 2018.03.25 07:34  
구리 춘천 화천 파라호 양구 내린천 평창 제천 충주 문경 상주
익숙한 동네이름들입니다.
파라호의 겨울 짙푸른 호수가 생각나고
문경 옥돌 돼지구이도 생각나고 1997 imf 시절--
향고을님은 그 때도 꽤 그럴싸한 방랑자이셨군요.
보문산에 올해 벚꽃이 4월초에 이쁘다던뎁쇼?
향고을 2018.03.25 18:32  
문학소녀 같은 샤이닝님은 어쩐지 여행전문가 맛집전문가란
생각이 드는데요,ㅎㅎ
보문산 벛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면
보문산 보리밥집,막걸리집,반찬식당,점집에도
사람들 발길이 흥청댈테지요,
본인도 어쩐지 벛꽃이 흩날릴땐
막걸리집을 기웃거리니까요,ㅎㅎ
돌이킬수없어요 2018.03.25 12:07  
1997년이라 저도 운전 하던때엿네요..
근대 전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경기도 밖을 벗어나본적이 없죠,,
그런 제가 4년전 한달 여행을 하고..
작년 11개월 여행을 혼자 햇어요^^
그만큼 태국 사람들의 정에 빠졋던것 같아요~
외롭고 외롭지만..
태국 사람들의 정이 그리운 하루네요!
향고을 2018.03.25 18:37  
암만해도 돌킬님은 태국에다가 말뚝을 박아야할듯해요,
아마 지금도 치앙마이 처자 팍세 처자,언년이 얼굴이 아른거릴테지요,ㅎㅎ
못견디겠으면 보따리 싸면 될테구요,
본인도 한때 무앙씽에 꽂혀 아무것도 안보여
짐 보따리를 싸서 떠난적이 있었지만
그어디든 너무 오래 익숙해지면 그게그거더라구요,
차라리 목마른 갈증이 오면 그때그때 출타하는것이 좋은듯도 합니다,
돌이킬수없어요 2018.03.25 21:56  
언년이 물 건너 간지 한참됏죠.
초상화 주인공도 귀찮은 시국인대..
그리고 가고 싶을때 갈수잇는 처지면 ...
얼마나 좋갯어요~~
향고을 2018.03.27 00:31  
돌킬님이야 가고싶을때 갈수있는 조건은 되는듯한디요,ㅎ
본인도 언제든 떠나도되는 조건은 되지만
몸이 늘것는지 여행에 대한 불같은 열정도 사라진듯 해요,
치앙콩 여티쳐가 빨리 오라고하지만 가슴떨림은 없네요,ㅎㅎ
이게 바로 너무 익숙해짐때문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초상화 처자 귀찮은 시국이면,노총각 딱지 못띠는디요,ㅎㅎ
미련때문에 한번쯤 연락은 해보지않을까 조심히 점쳐봅니다,ㅎ
돌이킬수없어요 2018.03.27 11:19  
흑흑 저 가고 싶을때 못간다니까요~~
왜 제 말을 못 믿으시나요?
이번 여행에 쓴돈이 많아서 언제 갈수 잇을지 몰갯어요?;;;
언년이는 손만 잡아봣고..
초상화 주인공은 어깨 베게가 끝이고..
제가 6개월 동안 좋아햇던 태국 여자는...허그 가  전부에요..
제 애정 행각에 큰 문제가 잇는것 같긴해요^^;;
향고을 2018.03.27 19:07  
연장있으면뭐하누,ㅋㅋ
눈처럼고운돌킬님을그누가녹여줄까,ㅎㅎ
그거시궁금혀요,ㅎ
언젠간?ㅎㅎ
진파리 2018.03.25 19:46  
89년도쯤부터 일 때문에
원주.강릉.속초.태백.정선.영월 쪽으로
2년넘게 출장을 다녔어요.
한번은 눈때문에 정말 죽을뻔도 했고요.
그때는 그렇게 다니는게 그렇게도 싫었는데
결혼때문에 다시 서울로 오고나니
총각시절때 그렇게 돌아다닌게 그리도 그립데요.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나이먹어 되돌아보니
어찌보면 가장 자유롭고 부담없는 시절이었던가도 싶어요.
지금은 나이먹어 그 시절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살지만
돈이 없어도 혼자였던 자유와
돈이 있어도 가족이 있는 자유는 다른것 같습니다.
향고을 2018.03.25 20:00  
맞아요,
본인은 항상 울 아들에게 말합니다,
현재 너는 지금이 제일 황금기라구요,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않는법,
시간될때 여행을 하고 마시고 즐기라구요,
가급적 고급술을 마시고 고급 안주를 먹으라구요,
젊어서 마시는 술맛은 늙어서 마시는 술맛에 비할바가 아니니까요,
늙어서 호강하면 그얼마나 호강일까요,
젊어서 하는 모든 행위는 가슴떨림,느낌이 확오지만
어쩐지 몸이 늙으면 감각이 무감각,시들한것이 별맛은 덜한건 분명하니까요,
고로 젊어서  니나노 해야한다는 결론입니다,ㅎㅎ
송천동 2018.03.26 08:07  
1997년도라.....
전 담배를 끊었던해....ㅎㅎ
향고을 2018.03.26 23:14  
1997년은 20세기였으니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인듯해요,
벌써 휘리릭 20년 세월이 흘렀으니 세월 무상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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