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짧은기억(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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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짧은기억(6)

광팔이 4 254
하지만,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돌아가고,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

두 번의 여름과 겨울 그리고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니, 때가 되고, 말년휴가 나가고, 결국은 2004년 12월 3일. 나는 정말 꿈에 그리던, 영원히 오지 않을것만 같았던 그날이 내 앞에 온것이다. 전역하고, 위병소 문앞을 나서는 순간. 정말 행복했다. 너무 홀가분하고, 십년묵은 체증이 다 나려가는 기분이었다.

말년에 약간 짜증나고 꼬이긴 했지만, 그래도 몸 어디 안다치고, 사고쳐서 영창두 안가구, 제 날짜에 무사히 전역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실 군생활 이라는 것은 그렇게만 해도 최소한 본전은 뽑은거 아닌감.

사실 군생활 하면서 주위에 불의의 사고로 다쳐서 불구가 되거나 죽은 사례를 많이 보았다. 작년에 대대전술훈련때는 통신장비를 적재한채 작계지역으로 출동하던 차량에 타고 있던 전역을 두달 앞둔 말년병장이 차량전복 사고로 머리가 터져 죽은 사고가 있었다.
또 병원에 후송가서는 대전자포 오발사고로 팔 다리가 잘려서 장애인이 된 사람도 봤다.

난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복받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몸건강히 아무 사고없이 전역한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들 지금 부대에 남아있는 한때 후임병이엇던 동생들. 다들 무사히 사고 없이 깨구리 마크 달고 위병소를 나가길 바란다.

누구나 때 되면 다 다는 거지만, 난 전투복 가슴, 전투모 중심에 달려진 깨구리 마크가 내 인생의 훈장처럼 느껴진다. ‘전역증’ 이라는 조그만 코팅된 카드를 받으려고 얼마나 2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국가에 저당잡혀야 했는가...

나는 20대 초반부터 얼마전까지 군대문제가 항상 내가 무엇을 하려고만 하면 항상 태클을 걸어와서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입대전에 두 번 태국을 놀러가려고 해도, 여권한번 만들기가 힘들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인감증명서와 재산세 및 토지세 과세 증명서, 또 기타 보증인의 그것들... 얼마나 절차가 복잡했는가... 또 정해진 기간내에 돌아와야 하고...

또 내딴에는 군에 빨리 가고 싶어서 공군에도 지원해 보고 해군에도 지원해서 두 번다 훈련소까지 갔었지만,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모두 귀가조치 당하고... 공군가서는 호흡기 질환이 해군에서는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각해져서 군의관한테 귀가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 젊은 시절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좌우간 날 괴롭히던 그런 것들을 다 넘어가버려서 정말 속시원하다.

내 주특기가 통신이고, 일병시절에 파견도 가보고, 말년에는 군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군생활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유격을 안받아서, 솔직히 어찌보면 날로 먹은 군생활 이긴 하지만, 아무리 편해봤자 군대는 군대 아닌가. 육체가 편하면 그만큼 정신적으로 짜증나고, 피곤한 법이다.

솔직히 내 친구중에 유일하게 포병가서 빡시게 군생활을 했던 육군병장으로 제대한 놈이 나보고 어디가서 군대갔다왔다구 하지 말라구. 땡보맨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전역하니까 너무 기분 좋다.

2002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날이 내 인생에서 정말 우울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라면,

2004년 12월 3일.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최고로 행복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전역식을 마치고, 위병소를 나올때 ,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친구여~’하며 작별노래를 불러주며 나를 환송해 주던 후임병들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감격에 겨워서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나올뻔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별거 아닌거 같고, 전역했으면 특전사에서 빡시게 했던, 취사병이어서 2년내내 밥만 짓다 나왔든, 운전병이어서 2년 내내 차만 몰다 나왔던, 하다 못해 PX병이어서 물건만 팔다가 전역했든 전역만 하면 다 똑같은 거지만, 그 당시에는 내 처지가 얼마나 답답하게만 느껴졌는지... 얼마나 그곳을 탈출하고만 싶었는지 모른다.

좌우간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큰 산을 하나 넘고 나니, 너무나 홀가분 하고 행복하다.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나 할까?

입대전에는 병역특례업체 취업해서 돈잘버는 내 친구들, 면제받은 야구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엇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 어쨋건 난 끝났으니까...

더군다나 내가 지금 행복에 겨운 이유는 내일 꿈에 그리던 태국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2년2개월전 귀국하면서,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면, 곧바로 태국으로 놀러가기로,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4 Comments
이상타... 2004.12.23 02:59  
  하필이면 군인에게 개구리 마크를 달다니 어울리지가 않네요. 진로 소주 선전에 나오는 것 비슷한 개구리인가요?
전광호 2004.12.23 03:22  
  군대 안갔다 오셨나요? 전역하면 달게되는 전역마크를 속칭 군대에서는 '꺠구리"라고 부릅니다.
내일 2004.12.23 10:09  
  10여년 전 제대할때 예비군 복이 얼룩덜룩 하여 개구리복이라 하여 개구리라 했습니다.
취사병 2004.12.27 18:23  
  내일님에게 한표!!!!25년 전에도 그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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