껀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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껀터를 아시나요

비육지탄 8 1413
껀터(Can tho)는 베트남 남부 메콩강 하류의 삼각주 유역 최대 도시입니다.
메콩델타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대도시에 속하는 곳입니다.
사실 a위에 점이 두개나 있고, o위에 물음표 비슷한 표기를 씁니다.
성조를 나타내는 표기라는데 외국인이 사용할때엔 그냥 Can tho라 쓰기도 합니다.

이른바 '다문화'라는 미명아래 우리나라 남성과 베트남 여성간의 혼인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여성들 대부분이 껀터나 껀터 인근의 소도시 출신 이랍니다.
몹시 가난한 가정의 여성들이죠.
한국 남자가 국제결혼 브로커에 지불하는 돈은 보통 1~2천만원에서 많게는 3~4천만원 이상입니다.
그러나 그 여성들 가정에 주어지는 돈은 $1,000 정도가 현실입니다. 백만원 남짓...
대략 베트남의 흔한 오토바이 한대 값입니다.
대부분을 베트남 브로커와 한국 브로커가 나눠 가져갑니다.
인구는 1억에 가까운데도 대중교통이 몹시 부족한 베트남은 1인 1바이크 가 필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베트남 내 오토바이 수가 약 5천만대에 육박하니 가히 생필품 수준이지요.
물론 국제결혼의 댓가로 천달러 정도 받아서 꼭 오토바이를 산다는 얘긴 아닙니다만..

기본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애정이란건 교감에서 시작합니다.
교감이 발전해 애정이 되고 사랑이 된다는게 제 논리입니다.
근데 그 교감은 소통에서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합니다.
베트남이 어떤 역사를 갖고있으며 어떤 민족인지 알기는 커녕 가본적도 없고 인삿말도 모르는 한국남자와,
한국이란 나라..말로만 들었지 돈때문에 이 악물고 가족을 위해 시집오는 베트남 처녀..
잘 살고,못 살고를 떠나 이건 일종의  Selling people인 것이지요.
베트남 여성과 미국,영국,스웨덴 등 유럽 백인들과의 혼인 절차는 몹시도 까다로운데
대만,중국,한국 남자들과의 혼인절차는 일사천리 수월하게 진행되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천년동안 지배했던 중국을 결국 몰아냈고,백년동안 지배했던 프랑스도 몰아냈고,
심지어 미국도 전쟁을 통해 몰아낸 사실 어마어마한 사람들 입니다.
실제로 그들 스스로도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참 강인한 민족입니다.
그렇게 시집와서 적응하고,한국어 배우고,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가정도 더러 있으니까요.

문제는 실패한 가정에서 비롯됩니다.
살아온 환경도,문화도 다른데다 기본적인 대화도 불가능한데 행복을 기대하는게 넌센스 입니다.
그런데도 곧 아이는 생깁니다 ;;;
크게 싸우거나,헤어지거나 하는 과정에서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옵니다.
문제는 이 아이들의 국적이 한국이라 교육의 권리가 없다는겁니다.
영문도 모른체 베트남에 와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가 껀터에만 수천명 입니다.

베트남 사람들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걸 압니다.
정부는 손놓고 있고, 사람들은 힘이 없고 가난해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저같은 여행자도 당연히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고,염려해야 할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 아이들이 커서 우리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아갈까요..
우리 국적의 그 아이들이 돌아와 무슨일을 할까요..

설명은 거창한,
티벳 고원쯤에서 발원된 메콩강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모든 나라를 지나
4,000km 넘게 흘러와 비로소  삼각주를 이루고 바다와 만나는 이 지역은..
사실 돌이킬 수 없을만큼 오염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무지가 너무나도 여실히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승자의 역사'
모든 관광지등이 베트남전에 승리한 북베트남 공산당 이른바 '베트 콩'의 관점이고,
모든 박물관도 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게 주제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모든 관람객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왔습니다.
분짜145,포2000 같은 곳에서 음식사진 찍는거엔 열광하지만 역사를 아는일엔 지루해 합니다.
전쟁박물관에서 전쟁의 참상에 대해 알기보다 그로테스크한 사진찾기에 매진합니다.
오염이 빤히 보이는 환경을 염려하기 보다 밤새 파티에 열중합니다.
모든이들이 빌어먹을 그 1차원적 탐욕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다닙니다.
외국인 여행자에겐 상식밖의 가격을 요구해도 된다는 의식이 깊습니다.

호치민 인근을 다니면 다닐수록 괜히 좀 쓸쓸한 기분이 들어 오늘밤 귀국합니다.
눈이 온다는데..비행기 착륙할때 미끄러지지 않을까도 염려됩니다.
8 Comments
곰돌이 2017.11.23 16:5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ojin88 2017.11.23 17:28  
그들의 인식변화와 노력에 더불어, 방문하는 이들 또한 마음가짐을 바꾸어야겠지요. 돌아오시는 길, 안전한 비행 되세요.
적도 2017.11.23 21:44  
혼란스런 호치민 ,2002년 호치민은 그래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신호등도 없는 길을 건너자면 죽을지 살지.
안정효 작가의 <하얀 전쟁>이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비육님은 늘 오래전 읽어 잠재 되어 있던 소설을 끄집어 내시네요.
사이곤 시절과 현재를  이어  놓는듯 합니다.
비육지탄 2017.11.23 22:47  
궁극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그래도 존재하는 웃음과 남아있는 인간미를
발견하는게 아시아 여행의 백미인것 같습니다.
2017.11.24 05:36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천년 동안 받은 나라가 아닙니다. 중국과 사대 외교를 해왔던 나라이지요. 그건 우리 나라의 전신인 고려, 조선과 같습니다.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나라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사대외교의 첫번째가 늘 고려, 조선이었고 두번째가 베트남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심심하면 칭제(황제국으로 불러달라)를 해서 중국과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한국, 베트남은 오백년 이상 공자의 제사를 나라에서 지낸 유교 국가였고 과거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은 동남아가 아니라 동아시아 FAR EAST로 구분되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맞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메콩 델타 지역은 크메르족의 땅이었습니다. 베트남이 침공해서 점령했죠. 피부색도 북베트남 사람과 남베트남 사람이 다릅니다. 그래서 지역 감정이라고 해야되나 북베트남 사람들이 남베트남 사람들을 무시하는 편입니다. 작고 못생기고 피부가 검다고. 베트콩의 정식 명칭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으로 베트민이 정식 줄임말이고 베트콩은 베트남 공산당, 베트남 빨갱이 쯤 되는 속어입니다. 그러니 북베트남에 있었던 베트남 노동당과는 다른 조직입니다. 베트남 남북통일, 베트남 전쟁의 과정에서 베트콩, 남베트남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고 구정 공세, 테트 공세 때 엄청나게 죽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북베트남이 통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다한 것처럼 그렇게 되었죠. 통일 이후 거의 모든 요직을 북베트남 노동당 사람들이 차지했습니다. 베트콩 출신들은 중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소외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oddeyes 2017.11.26 00:41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과거 실질적으로 독립국가를 유지한 것은 맞지만, 형식적으로는 조공관계를 맺고 신하의 나라로 중국 사신이 오면 왕이 나가서 맞았고 세자책봉에도 중국의 허가가 필요했고, 독립문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니,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도 할말은 없지 않을까해요... 베트남은 우리보다는 조금 더 자존심을 세웠기는 했지만, 중국을 황제국으로, 자신을 신하로 규정하고 제도를 유지했으니 엄밀하게 독립국가였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싶어요.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요.
지금갈께요 2017.11.24 13:42  
잘 읽었습니다.
너무 안스러운 이야기네요, 우리나라와서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oddeyes 2017.11.26 00:33  
베트남 여성이 한국 남성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이혼 후 베트남으로 데리고 가면 외국인 취급받아 교육도 못받는다는 것인가요? 제도의 문제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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