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과 [김생민의 영수증]
제가 자랄 때에는, 안목도 짧고 경험도 없으니 그냥 우리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이구나 했는데
한 분은 팔순을 넘으시고, 또 한 분은 팔순에 가까워지시는 요즘, 이분들을 뵙고 있으면
이분들이 괜히 KS이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은 저보고, 부모님처럼 늙을 수 있다면 치매 따위는 걱정 없겠다고 하고요.
하여간 요즘 우리 부모님의 입맛에 딱 맞는 프로그램 두 개가 등장했으니
하나는 [팬텀싱어 2]이고, 또 하나는 [김생민의 영수증]입니다.
팬텀싱어 시즌 1을 할 때부터 그렇게 보시라고 보시라고 하는 제 권유를 귓등으로 들으시더니
뒤늦게 시즌 2에 빠지셔서, 시즌 1은 다시보기로 다 보셨다고들 합니다.
다만 저하고 최애 싱어에 대한 입맛이 완전 달라서,
팬심으로 함께 불타오를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네요.
[김생민의 영수증]에 대해서는, 저는 팟캐스트 때부터 소문을 들어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지상파에 진출한 이후에 애청자가 되신 모양입니다.
[큰아버지를 문병가려고 차를 가지고 왔었는데, 나중에 보니 주차비가 4000원이나 나왔더라.
효도 스뜌삣~ 이었어.
그래서 다음부턴 꼭 버스 타고 다닌다]
한평생 살림의 경쟁 상대를 독일 주부로 삼으셨던 우리 엄마께서 제게 하셨던 말입니다.
우리 아빠와 11살 차이나시는 큰아버지가 동생들을 다 아버지처럼 길러 주신 덕분에
저희 부모님께서는 할아버지 대신 큰아버지를 부모처럼 여기고 모셨었거든요.
하지만 가족에게 드는 비용은 그게 무엇이든 스뜌삣이 아닌 그뤠잇~ 아닌가요?
부모님께서는 김생민씨가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나는 형 같은 개그 안 해요]
라는 태도를 보였던 것까지도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두 분 다 그 질문을 했던 상대방을(봉숭아 학당에서 잘 안 된 개그맨의 구체적인 이름을 물었던)
퇴출하자고 만든 사이트에 서명까지 하셨나 보더라고요.
대체 그런 사람을 우리 나라에서 누가 좋아한다고 계속 TV에 나오느냐시면서요.
마무리로, 부모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넌 우리 집안의 YOLO족이지만, 그럴 수 있는 것도 네 팔자지, 뭐]
네가 욜로족 따위인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그렇게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도 기쁘다, 하는 더블 뉘앙스가 잔뜩 느껴지네요.
아니, 노친네들이 YOLO라는 말까지 아셔? 하고 놀라면서, 제가 왜 YOLO족이냐고 물으니
[너처럼 혼자 훌쩍 여행가고 하는 사람이 욜로족인 거 아니냐?]
라고 하시더군요.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서, 저도 우리 집안 욜로족을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욜로족이지만, 저도 부모님을 보고 자란 욜로족이라서
절약하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냥 습관이 몸에 배어 있거든요.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어찌나 감동을 받았는지
다음과 같은 글을 태사랑 카페에 써 봤는데, 별로 호응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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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프로그램은 안 봤고, 팟빵에서 몇 개 방송을 들었지만
절약으로 큰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준다는 점에서 정말 유익한 방송인 것 같아요.
20세기의 우리나라는 분명히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여기는 절약 조장의 사회였는데
요즘은 어쩐지 YOLO 등등을 내세우면서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가 된 듯하네요.
더구나 여행이라는 게, 원래 돈을 모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소비적인 일이라서
여행과 절약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여행 중에도 절약하는 기쁨을 알아간다면, 한 번 여행갈 거 두 번 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사랑 사이트에서는 하도 경제적 여행의 고수들이 많으셔서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방콕처럼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도시에서도, 쓸 거 다 쓰고 살 거 다 사고 할 거 다 하면서도
하루에 500바트 정도만 쓰면서 정말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제 여행 가계부 중 일부를 올려보겠습니다.
김생민씨가 이걸 보고 [Stupid!] 또는 [I like it!]을 몇 번 외치실지 저도 궁금하네요.
제 1일]
6043바트로 시작
팁 20
제 2일]
6023바트로 시작
껌 10
팁 20
롯뚜 29
BTS 1일권 140
터미널 21 300(첫날이라서, 푸드코트 카드 충전을 300바트 해 놓았습니다. 이 중에서 닭고기밥 30 씀)
바이부아복과 안찬 주스 7개 99
차옌아이스 45
카무 블랙티 39
오드리 카페의 마일로 오페라 케이크 1+1 135
적선 6
테스코 64.5(두유 50/튀긴 계란 14.5)
팁 미리 떼어 놓음 20
총 886바트 씀
제 3일]
5116바트로 시작
프라카농행 버스 6.5
프라카농-시나카린 간의 뱃삯 15
시컨스퀘어행 롯뚜 10
포켓몬 유심 49
쇠고기국수+밥 60+10=70
207번 버스 12
중간에 헤매다 탄 버스 8
결국 길 찾는 거 포기하고 탄 택시 41
멜론 38.5
간식용으로 계란 4개 32
간꼬치 3개 15
망고스틴 2킬로 60(길에서 망고스틴 트럭 만남)
온눗행 버스 13
370바트 씀(너무 길 헤매다가 2바트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는 날)
제 4일]
4744바트로 시작
BTS 원데이패스 140
닭고기밥 50
빅씨 100.25(중국생선 36.75/에그타르트 2개 26/밀크푸딩 12.50/두유 25)
케이크 40
센트럴 248(연어 199/채소구이 49)
팁 미리 떼어 놓음 20
599바트 씀
제 5일]
4145바트로 시작
버스 15(진짜 이것밖에 지출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전날 샀던 연어 199만 먹게 되어서.
숨겨진 스토리가 좀 깁니다)
제 6일]
4130바트로 시작
빅씨 147.50(캔털루프 20.5+22//망고스틴 42.5+62.5)
7-11 44(두유 14/라임주스 15*2)
버스 13
7-11 샌드위치 35
랍짱 20
팁 미리 빼 놓음 20
280바트 씀(연어의 느끼함에 질려서 과일만 잔뜩 먹은 날)
제 7일]
3851바트로 시작
3 day MRT pass 230
택시 40
소시지빵 1+1 29
차놈 19
독일족발 88
탑스 248.75(멜론 100/버섯볶음 39*2/샌드위치 29.5/아몬드 크라상 41.25)
7-11 57(물 두 병 28/타이 티 두유 14/컵라면 15)
712바트 씀
제 8일]
3139바트로 시작
헌금 300
장미차 45
(터미널 21 똠얌국수 30/볶음국수 25. 카드 잔액 215)
두유 14
짜뚜짝 스카프 180
적선 10
탑스 464
(동파육 72/닭 감자 카레 73.5/버섯 39*2/갈비국 39*2/시금치라자냐 54/라자냐 49/사과주스 49)
1013바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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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랑에 얼마나 절약 고수님들이 많이 모여 계시는지 압니다.
우리 한 번 같이 [스튜삣~] [그뤠잇~] 이런 거 해 봐요.
서로 가계부를 비교해 보면서요.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