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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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

cafelao 13 369


지지난 겨울이었습니다.

저녁나절 즈음

은빛 머리색 자그마한 할머니 한분이

커피 집 문을 조금 열고 내부를 들여 다 보고 가시더군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요.

 

 

그리고

웬 젊은 사람이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원두를 조용히 사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은빛 머리색의 할머니가 들어오셨어요.

할머니 말씀이

작은 손주가 여기 위치를 설명해 줘서 큰손주랑 커피 사러 왔다고...

좀 전에 커피 사간 청년이 큰 손주 라고...

 

그래서 제가 여쭤 보았지요.

작은 손주가 어떻게 생긴 학생이냐고...

할머니가 손주를 설명하시는데

그 손주는 바로 그 학생이었습니다.

 

너무 뜻밖이었어요.

 

작은 손주가 유학 가면서

가족들에게 제 가게 위치를 설명하고 상호를 메모해 놓았던 겁니다.

마침 멀리 있다가 집으로 돌아 온 큰손주가

커피 먹고 싶다고 하니

큰손주를 데리고 저희 가게를 찾아 오셨던 거였더군요.

 

처음 저희 가게를 들여 다 보고 가신 것은

제 가게가 맞는지 확인하려 하셨던 거고

골목에 오랫동안 주차 할 수 없었기에

할머니가 차에 계시고 큰손주를 커피 사러 보내신 거였고

그리고 다시 큰손주가 차에 있고

할머니가 저를 보러 오셨던 거였어요.

 

할머니는 제 손을 잡으시면서

“우리 손주가 집에(저를 지칭 하심) 얘길 많이 해서

한번 꼭 보고 싶었다고...

이렇게 와서 보고 가니 참 좋다고“

그리고

골목에 주차를 오래 할 수 없어서 그만 가셔야 겠다고...

저는 할머니께

따뜻한 커피 한 잔 드리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극구 만류를 하셨지만

그때가 겨울이었던 지라

급히 커피 한 잔을 뽑아 종이컵에 담아 드렸어요.

할머니는

커피를 받아 들고

그럼 우리 큰손주가 커피를 좋아해서 큰손주 줘야 겠다 하시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하시면서 가게를 나가셨어요.

 

 

할머니가 떠나신 후

잠시 저는 멍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할머니랑 잠시 얘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것은

참 단아하시고 정갈하시다란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은 마치

어렸을 때 본 빙어처럼

할머니는 투명하셨어요.

사람이 빙어처럼 투명 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이 학생은 집에서 제 얘기를 자주 했던 모양이에요.

 

 

할머니가 다녀가신 후

방학이 되어 처음 한국들어온 그 학생은

아버지랑 함께 저희 가게를 왔었지요.

그때

제가 물어봤었어요.

할머니는 참 고우시다고...

고생 한번 안해 보신듯하다고

너무 맑고 단아하고 정갈하셔서

마치 빙어처럼 투명하신거 같다고...

 

그 학생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어요

할머니는 6.25때 북에서 내려오셔서

노점도 하시고 엄청 고생 많이 하셨다고

옛날 얘기를 자주 해 주신다고...

 

 

어쩌다 보니 그학생의 가족중 어머니만 못 뵙고

다 뵙게 되었어요.

그 학생의 어머니도 한 번 오고 싶어 하신다는데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못 오신다고 ...

 

 

그 학생의 아버지나 할머니를 뵈면서

이 학생이 커피 집 아줌마랑 잘 대화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가정 환경에서 자란 탓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

아랫글을 읽으신 분들이

이 학생이 궁금하실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두서없이 써 보았습니다.

13 Comments
호루스 2017.08.25 11:23  
카페라오님은 커피점보다 수필 작가로 나섰으면 ...이라고 생각하다가 커피점을 안했으면 이런 소재가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 글과 더불어 잔잔한 여운을 주는 글 잘 보았습니다.
cafelao 2017.08.25 19:41  
감사합니다...^^
참새하루 2017.08.25 14:08  
카페라오님의 잔잔한 일상 수필
늘 감동적입니다
cafelao 2017.08.25 19:41  
아이고~~~칭찬이 넘 과하세요 ^^
K. Sunny 2017.08.25 15:26  
슬퍼요.
글 내용 때문이 아니고.
뭐라고 해야할지.
 
cafelao님께서 써 내려가신 이 잔잔한 글을 읽으면서.
책을 내시면 정말 잘 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을 하니까 슬펐어요.

30여년 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우리 동네 골목 어귀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cafelao 2017.08.25 19:43  
아...써니님의 어린시절 풍경이 있는
골목길을 잠시 상상해봤어요.
넘치는 칭찬 감사합니다^^
K. Sunny 2017.08.26 00:07  
이 글을 읽고 진짜 너무 감동받아서..
cafelao님 글을 다 찾아서 읽어봤어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읽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진심으로,, 나중에 책을 내시게 되면 꼭 말씀해 주세요. 꼭 꼭요.
커피가게 손님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단편이자 장편의 느낌으로 너무 재미나고 감명깊게 읽힐 것 같아요. 저 카페라오님 팬 됐어요!
cafelao 2017.08.26 17:57  
써니님
너무  칭찬해 주셔서 부끄러워요.
커피집이 작다 보니 손님들이랑 가까워지는거 같아요^^
펀낙뻰바우 2017.08.25 16:17  
빙어같은 할머니라니...

하루키도 울고 갈 글 솜씨~~~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cafelao 2017.08.25 19:44  
에구 에구
민망해요 ^^;;
SOMA 2017.08.25 20:02  
저도 올 한해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있었던 만남이라면 한국에서 까페라오님을 뵈었던 일이었죠. 잠깐이었지만 정말 깊은 차 한잔(좋은 커피였죠) 을 마신느낌이었습니다. ^^
cafelao 2017.08.26 18:00  
저도 소마님 만나 뵌것은 엄청 인상적이었답니다.
더운날
멀리서 시간내서 오셨잔아요.
다른분 같으면 그냥 안오실텐데...
카페준비 잘하시구요
내년에 태국가면 카페구경 가겠습니다^^
SOMA 2017.08.27 00:33  
넵 감사합니다. 뵐 때까지 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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