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지만, 정작 그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였습니다.
만약 17세기 인물인 선조가 타임머신을 타고 기원전 로마를 여행했다면
아마도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오, 로마인들은 미쳤어! 제 정신 박힌 인간들이 아니야!>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길에 대해 폐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 좋으라고 길을 만들어? 그러다 오랑캐라도 쳐들어오면 어쩌려고.’
사정이 그렇다보니 제대로 된 길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지방마다 서로 다른 <아리랑>이 만들어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이 생각했던 길에 대한 개념은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일산에서 서울까지 길을 만든다고 해보시다.
짤짤이가 마두에서 화전까지 길을 개통하고 죽는다면 이열리님이 이어받아 화전에서 마포까지 연결하고 다시 참새하루님이 마포에서 한남까지…….
그들에겐 당대에 끝마쳐야 한다는 조급함 같은 건 없었습니다.
언젠가 상해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근처에서 30위안 주고 담배를 샀는데 다른 곳에서는 28위안에 팔더라고요.
저는 담뱃가게로 달려가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안 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군요.
그래서 주인과 대판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중국통인 어느 교수님께 했더니 그분께서 그러시더군요.
“그 상인은 잘나서 물건을 비싸게 판 것이고, 자네는 모자라서 비싸게 산 거야.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네. 눈탱이 맞았느니, 바가지를 썼느니 하는 것은 자네 생각일 뿐이야.”
심리학 용어 중에 인지부조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이나 논리적 모순과 문화적 관습의 차이, 어떤 생각이 자신의 일반적 가치관과 배치될 때 기인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실제로 겪게 되는 현실적 결과가 다른 것 때문에 머릿속에서 혼란을 겪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부조화를 메우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행태가 ‘자기합리화’입니다.
짧으면 며칠, 길어야 몇 달 머무는 게 고작인 여행객들이 다른 나라의 생활과 풍습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요.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상식적인 선에서 볼 때>의 <상식>은 우리의 잣대일 뿐입니다.
그것은 나라마다 다르고 또한 가변적인 것입니다.
제가 아둔한 탓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문구 하나를 이해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와 생활과 풍습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