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안녕하세요, 태사랑 형님들 그리고 누님들.
짤짤이 인사 올립니다.
발기찬 주말, 아니 활기찬 주말 보내고 계신지요.
오늘은 인생의 맛에 대해 여쭙고자 합니다.
<방콕이나 호치민, 치앙마이나 하노이에 인생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과연 그 맛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겠지요. 더위를 먹어 맛이 갔나보다고 혀를 차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다시 여쭙겠습니다.
<형님과 누님들이 생각하시는 인생은 어떤 맛인가요?>
연세 드신 분들이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면서 접미사처럼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쓰면 무조건 대하소설 10권짜리야!”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짐짓 허세를 부리는 거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항로를 지나왔고 그 과정을 반추하면서 느끼는 감회 또한 남다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아픔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덤덤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희 둘째이모가 그런 분입니다. 당신의 무딘 성정은 어쩌면 힘겨운 시집살이와 평생을 폼에 살고 폼에 죽던 이모부의 바람기를 견뎌내는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모부는 동네에서 소문난 한량이었습니다. 훤칠한 외모에 가무는 물론이고 언변까지 뛰어나 젊은 시절 여자깨나 울렸던 분입니다.
“이 00동 바닥에 느 이모부 손 안 탄 여자가 없었니라.”
“속깨나 끓이셨겠어요, 이모님.”
보통 이렇게 추임새를 넣으면 한숨 한 자락 깔고 나서 신세한탄이라도 할 만한데 둘째이모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남편의 바람기 문제로 둘째이모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둘째이모는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쓰다 달다 말이 없었습니다. 갑갑해진 아주머니가 둘째이모를 졸랐습니다.
“성님, 이 일을 우짜믄 좋겠능교? 성님이라면 어떤 방법을 썼겠어예?”
그때까지 눈만 끔벅거리던 둘째이모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읎다. 암만 그케 봐야 외박할 놈이 외박 안 하고 바람피울 놈이 바람 안 피우겠나? 다 지 맴 먹기 달린 기지……. 우째 내 꺼라고 내만 데리고 살겠노. 고마 두루두루 갈라 쓰면서 살그라. 그래봐야 인생 팔십 아이가. 지가 죽어서도 그 짓 하겠나?”
이모부가 돌아가셨을 때도 둘째이모는 덤덤했습니다. 대개는 한풀이하느라 과장되게 곡을 하며 장례를 치르기 마련인데, 둘째이모는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앉아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을 뿐입니다.
“쯧쯧……. 거 가면 딴 짓도 못할 낀데 갑갑스러버서 우짜노?”
어찌 들으면 야유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둘째이모의 가슴은 여과지 같아서 그곳을 통과하고 나면 어떤 복장 터질 일도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사촌동생에게 둘째이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 사람이 욕심을 부리자면 한이 읎능기라. 쪼매 더 벌라고 용쓰지 말고 있는 거나 잘 지키그레이. 안 굶고 다리 뻗을 곳 있으면 그만이제 더 벌어서 뭐할라카노. 가진 것 많으면 죄만 더 짓게 된데이.”
한때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았던 아이 엄마 역시 둘째이모와 비슷한 부류였습니다.
제가 사소한 일에도 냄비처럼 부르르 떨면서 광분하는 스타일이라면
그녀는 묵묵히 속으로 삭이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하루는 그녀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그때 제 반응은 이랬습니다.
<그 얘길 나한테 하면 뭐해. 당사자한테 직접 따지지 않고. 내가 언제 밖에서 있었던 일로 당신한테 화풀이한 적 있어?>
언제나 그런 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손톱만큼의 손해를 보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진 인간과 20여년을 함께 살면서 그녀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어머니는 어머니만큼 생각하는 겁니다.
아내는 아내만큼 생각하는 겁니다.
쫌보 남편은 쫌보 남편만큼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쫌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