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스토리...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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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7 11:46
나는 어릴 때부터 여행을 참 좋아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여행은 상여를 따라서 공동묘지까지 간 것이었다.
온갖 빛깔의 만장에 홀려서 정신없이 쫓아가다보니 묘지까지 갔던 것이다.
나중에 부모님께 물어보니 내가 두 살 되던 해의 일이란다.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무렵부터 내게는 가출, 또는 떠돌이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여권과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해외여행을 갈 수 있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지 못했다.
돈이 많다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주 특별한 신분의 특별한 임무, 일테면 국가공무원의 출장이나 머리가 뛰어난 엘리트의 유학일 때만 해외여행이 허락되었다.
그것도 신분조회와 사상교육을 무사히 통과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국가공무원도 아니었고 머리도 뛰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줄창 국내여행만 다녔다.
주로 산을 다녔다.
설악산도 여러 번 갔고 지리산은 종주만 열 번 이상했다.
봄에도 갔고 여름에도 갔고 가을에도 갔고 겨울에도 갔다.
12월 31일 밤, 장터목산장에서 옆 사람의 발 냄새를 맡으며 잠들었다가 1월 1일 새벽에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기도 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본다는데 나는 갈 때마다 봤다!^^)
6월 항쟁의 결과물 중 하나는 해외여행 자유화였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돈이 없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지금도 청년실업이 큰 문제이지만 내가 청년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실업자가 많아서 별 불만이 없었을 뿐.
내가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첫 해외여행은 다니던 회사의 출장으로 유럽을 갔다.
일만 보고 바로 귀국해야 했지만, 휴가를 붙여서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를 여행했다.
국내만 주구장창 다니던 내게 외국은 신세계였다.
모든 게 신기하고 특별했다.
결국 나는 1년 만에 사표를 쓰고 여행자의 세계로 급격하게 빨려들었다.
동남아를 8개월 동안 여행했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1년 동안 체류하기도 했다.
첫 해외여행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1년에 대여섯 번은 꾸준하게 여행을 다녔다.
그 결과 대학원 석사논문도 여행소설에 관한 것이었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행소설을 한권 쓰기도 했다.
그간의 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 후배들에게 몇 가지 잔소리를 하고 싶다.
먼저 국내여행을 어느 정도 한 뒤에 해외여행을 하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면 여행이 더 즐거워지고 의미가 깊어진다.
국내여행을 하면서 눈을 키운 뒤에 해외여행을 가야 아깝지가 않다.
그리고, 가능하면 혼자 여행을 하라.
아무리 친한 사이, 친구는 물론이고 부부나 가족도 여행을 같이 하다 의견이 갈려서 대립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행은 24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의견이 갈리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국내라면 참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도, 외국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이라면, 반드시 여행을 함께 해보라고 권한다.
24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상대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사람이 내게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내 나이 육십이 되는 걸 기념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다.
세계 일주에 관한 책도 스무 권 넘게 독파했다.
내 계획은 이렇다.
먼저 세계 일주 항공권을 구입한다.
세계 일주 항공권은 1년 동안 열여섯 번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즉, 세계 16개 도시를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항공권으로 세계 16개 도시를 각각 1주일씩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기간은 4개월쯤 걸릴 테고 경비는 1천만원쯤 들 것이다.
여기에 항공권을 이코노미 석으로 끊으면 5백만원쯤 추가되고 비즈니스 석으로 끊으면 1천만원쯤 추가된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한 달에 50만원씩 열심히 적금을 붓고 있다.
캬~캬~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