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보고 싶다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짤짤 20 922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사람입니다.

매 순간 몌별을 준비해야 하는 길 위에서의 만남,

떠나와 돌아보니 아찔하게 그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우연히 조우했던 뚜이 형제 역시

제 기억의 한 부분을 선명하게 물들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들을 만난 건 베트남 남서부에 위치한 쩌우독에서였습니다.

쩌우독은 메콩 델타의 여느 지역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로,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캄보디아와 마주하고 있어 국경 특유의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사귄 친구가 뚜이입니다.

그는 시장 어귀에서 반미를 파는 젊은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친구의 노점을 찾는 것으로 제 하루 일과는 시작되었습니다.

카페의 조그만 나무의자에 앉아 반미와 함께 카페 농을 마시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 주변에는 뚜이 말고도 반미를 파는 행상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그곳만 줄기차게 애용했던 이유는

맛이 특별하다거나 값이 저렴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오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했다더군요.

하루는 프놈펜으로 가는 배를 예약하고 여행사를 나서는데

길 건너편에서 뚜이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점심 안 먹었으면 자기 집으로 가자며 뚜이가 제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차마 그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마지못해 따라 나섰습니다.

그의 집은 메콩 강변에 줄지어 늘어선 수상가옥 중간쯤에 있었습니다.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안쪽에 위치한 탓에 대낮인데도 빛이 들지 않아 실내가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살림살이라곤 구닥다리 TV와 이불, 바닥 한쪽에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그릇들, 그리고 벽에 걸린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습니다.

다섯 평 남짓한 그 집에서 아내와 다섯 살짜리 딸, 그리고 동생이 함께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뚜이의 아내는 자기 집에 외국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습니다.

신문지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 차려진 밥과 나물 한 접시.

그것은 밥상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뚜이는 접시 가득 밥을 푸더니 제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비록 초라한 밥상이었지만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뚜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자기 동생이 가이드가 꿈인데, 실습 겸 해서 같이 다녀줄 수 없냐고.

쩌우독에서 며칠 더 체류할 예정인데 본인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다고 했더니

제 손을 붙잡고 고맙다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그렇게 뚜이의 동생과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속짱, 박리에우를 거쳐 남부의 끝자락인 까마우까지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쩌우독으로 귀환하는 날,

그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이드 자격증을 따려면 학원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500불이 없어서 미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뚜이의 수입으로는 네 식구 생활하기도 빠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형이 자신을 위해 250불이나 저축해놓았다며 그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미 한 개의 가격이 만동입니다.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500원 정도죠.

하루에 100개 팔아봐야 재료비 빼고 나면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수준이겠지요.

천만동, 50만원에 불과한 그 돈이 그들에겐 몇 년을 모아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거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줄담배를 피우며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던 저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빠져나와 지갑에서 100불짜리 세 장을 꺼내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제 일주일치 여행비에 해당하는 피 같은 돈이었습니다.

3일 동안 가이드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내 작은 성의니까 부담 갖지 말고 가족들끼리 식사나 하라면서

그 봉투를 그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뚜이의 동생이 호텔로 찾아왔습니다.

프놈펜으로 떠나기 위해 배낭을 챙기다가 프런트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호텔 입구에서 서성이던 그가 저를 발견하고는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받은 봉투를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상상하지 못한 큰 액수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돈은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형도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장사 때문에. 형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래요.”

된다 안 된다, 실랑이를 하는 중에 저를 픽업해줄 미니밴이 도착했습니다.

차에 올라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는 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미니밴이 막 출발하려는 순간 저는 창문을 열고 그를 향해 봉투를 던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뚜이 형제에게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20 Comments
참새하루 2017.02.27 02:20  
짤짤님 안녕하셨어요
베트남 여행에서
짧지만 긴여운 ~~~ 인연을 만드셨군요
언제 다시 만날지
어쩌면 평생 다시 만날수 없을지 몰라도
짤짤님과 뚜이가족에게는
정말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겠지요
이런 글 읽으면서 배경 음악하나 쫙 깔아두면
정말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짤짤 2017.02.27 14:32  
참새하루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작년 가을 씨엡립에 머무는 동안 참새하루님이 큰맘 먹고 수집하셨다던 로봇과 
태사랑에 올리셨던 사진들이 가끔씩 떠올랐습니다.
왜 그것들이 제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을까요.
참 신기하죠?
2017년도 늘 강건하시길...
적도 2017.02.27 07:54  
여행중 돈은 그야말로 생명줄인데
쉽지 않은 선택을 하셨네요.
그걸 안받겠다는 뚜이도 그렇구요.
300불이 우리에겐 없어지면 아쉬운 돈이지만 그들에겐 평생 기억되는 무언가 이겠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짤짤 2017.02.27 14:42  
세상에 특별한 곳은 없다, 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죠.
제가 먼저 마음을 열면 상대도 그에 호응하더군요.
물론 단기간 여행에서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건 어렵겠지만...
진정성 문제인 것 같아요.
타이거지 2017.02.27 08:11  
짤짤님..
글이 참 이상해요....
짠하고..훈훈했다가,,가슴 아리고..눈물이 날라했다가..행복하고..
그런데..이것도 이상해요.
그냥.."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짤짤 2017.02.27 14:51  
사람은 백인백색이라고 하지요.
많은 분들이 동남아 국가 중에서 태국을 즐겨 찾지만
저는 베트남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닉을 바꿔볼까 합니다.
베트남양아치로요. ㅋㅋ
돌이킬수없어요 2017.02.27 09:32  
따뜻한 이야기네요^^
ricolee 2017.02.27 11:15  
짤짤님은...참 좋으신분이네요...
영등놀이 2017.02.27 11:24  

기분좋은 내용 입니다.
이역시 더불어 사는 빙식이 겠지요 ~~
수서뱅짱이 2017.02.27 12:17  
좋은글이네요. 간만에 가슴이 따듯해 지는 이야기 였습니다.
Hidden 2017.02.27 18:21  
따뜻한 이야기 이긴 한데.. 한편으론 결국은 돈이 있어야 가이드 학원을 가고 가이드를 할 수 있고 좀더 나은 삶이 될수 있다는거네요. 베트남도 더 살기 좋은 빈부격차가 줄어든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크로스핏 2017.02.28 09:13  
앗 아침부터,,눈물날뻔 ㅎ 멋지세요
트와이스 2017.03.01 03:20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입니다.  가슴이 찡합니다.
글에서 짤짤님에 성품이 느껴지네요.
간만에 세상 아직 살만 하다고 느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jindalrea 2017.03.01 19:13  
자꾸 눈물이 나요.. 감동했습니다.
힙걸 2017.03.02 00:37  
눈물나네요! 잘하셨어요! 그분 꼭 가이드돼서  꼭 다시 만나시길...
폼락쿤타이 2017.03.02 02:45  
새벽에 아무생각없이 봤다가... 너무 찡했습니다.. 감동이네요
진짜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여행하면서 그런친구 한명만날수있을까요..?
짤짤 2017.03.02 04:15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겠죠.
저 같은 경우는 한 군데 오래 머무는 편입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방문하는 경우도 적잖고요.
몇 달 아파트를 얻어서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생활이라고 할까요.
그러다보니 낯익은 얼국들이 좀 있는 편입니다.
단기간 여행하시는 분들의 경우 현지인들과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분명한 건 지속적으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 화답하더라는 겁니다.
물론 실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것 역시 제가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였겠지요.
76138068 2017.03.05 13:45  
정말 저렇게 하고 싶은데 저렇게 하기가 힘든것 같아요
아무런 의심없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불신과 의심이 마음속에 가득해져서는..
이번에 태국가면 그런것들을 좀 버리고 사람을 보려고 노력해봐야겠어요
스위트 2017.03.08 15:08  
짤짤님 때문에 눈물나자나요.......
은하철도roh 2017.04.04 16:23  
아, 정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앙코르와트 어느 유적지인지 모르겠네요..입구에서부터 저에게 다가와 앙코르와트 책을 사달라 하던 12살쯤 되보이는 소년이....
단체 셔틀버스가 떠나는 순간 앗차! 했어요..이미 그 소년은 저 멀리 멀어져 버렸죠..
두고두고 마음 아플것 같습니다..
그 소년을 위해 씨엠립에 다시 가야 할것 같습니다..
님의 글을 보니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네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