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내 앞에서 다른 이에게 맞을 이유가 없다.
"밍글라바"
내 눈을 뽑아버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뺨을 맞은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맞는 남편을 보는 그 아내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미얀마라는 나라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아내와 13세 아들을 하나 둔
37세 가장입니다.
3 년 전인 2002년 2월 모 재단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던 저는
간호사인 아내 "세실리아"와 아들놈"안토니오"를 남겨두고 내 꿈을 찾아 홀로 이역만리
낮선 미얀마 땅에 와서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남겨둔 아내가 직장을 다니며 아들놈 하나를 키우는데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내 꿈을 찾아 떠나온 어느 가장이 아내가 주는 돈 한푼 헛되이 쓸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조금 더 가지고 가라고 찔러주는 퇴직금을 뿌리치며
손에 양곤행 비행기 티켓과 2,000$만을 가지고 꼭 내 꿈을 이루리라 다짐을 하며
미얀마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여 먼저 그곳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서
양곤 외국어대학교(Y.U.F.L) 미얀마과에 입학하였습니다.
30원짜리 현지인들이 먹는 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20원짜리 로컬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가 그립고
두고 온 아들놈이 눈에 밟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왜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서 고생을 할까? 라는 생각도 문득문득 들었지만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던 아내의 얼굴이 그 생각들을 물리쳐 주었습니다.
그래 !
난 할 수 있어 !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현지인들과 묻어 지내며 익힌 미얀마어와 나름대로 현지적응을 빨리 한 탓으로
1년 조금 더 지난 후 저는 가족들을 미얀마로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번듯한 사업체도 하나 차렸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꿈도 못 꾸었던 미얀마에서의 인터넷 사용이
제가 미얀마 최초 인터넷 카페 "토니 넷 카페"를 오픈 하면서 현실로 보여주었습니다.
아내와 아들이 현지에 적응해가고 인터넷 카페도 웬만큼 수익이 나서
점차 생활도 안정되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42살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학도로서
양곤 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들놈 하나도 외국인 학교에 잘 적응해서 모든 것이 불편한 개발도상국임에도
저와 제 가족들은 잘 적응해 갔습니다.
이렇듯 생활이 안정되자 저는 3 여년을 준비해 왔던
그리고 제 꿈 이였던 여행사를 오픈했습니다.
여행사를 오픈한 그 날..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잘 참아 주었던 제 아내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런 배경도 없고 아는 사람 없는 이 낮선 땅에서
내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는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운영했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신명이 나질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제가 여행사일에 전념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여행사가 빨리 안정을 찾아가고
또 제 아내가 학교에 다니느라 제 손으로 만들어 놓은
미얀마 최초의 인터넷 카페의 수익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민을 와서 사업체를 꾸리고
현지인을 고용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문화와 관습이 큰 장애가 되지요
그러나 저는 이미 현지화 되어서 큰애로는 없었습니다.
단지, 저와 제 아내가 여행사 운영하랴.. 학교 다니랴... 바쁘다보니
인터넷 카페를 장시간 비우게 되어서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주인이 없는 가게에서 많은 수익을 거두기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제가 운영하는 미얀마 커뮤니티에 인터넷 카페를
매물로 내 놓았습니다.
정말 아쉽더군요,,,
제가 미얀마에서 만들어 놓은 첫 작품 이였는데..
그래도 누군가가 인수해서 잘 운영해 저처럼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공개매물로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표명해 왔지만 직접 미얀마에 와서
시장조사를 한 후 저희 인터넷 카페를 보고 인수의사를 표시한
J모씨께 인터넷 카페를 넘겼습니다.
그 후 J모씨 부부는 2달 여를 열심히 잘 운영했습니다.
제가 마침 미얀마 여행시즌이라서 바빠서 많이 도와주지는 못했어도
서로 식사 초대도 하고 가끔 전화도 하고....
젊은 부부가 낮선 이국 땅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아
제 마음도 흡족했고요
그러나
계약이 끝나고 잔금까지 다 치른 2달이 지난 후 갑자기 이분들이 이상해 졌습니다.
원래 교민사회가 작다보니 여기저기서 이말 저 말이 오고가고
남에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거래에 대해서 입방아를 찧기 시작하면서
이 젊은 부부를 괴롭히고..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계약을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하더이다.
무슨 계약이 애들 장난입니까?
자기 책임 하에 계약을 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힘들다고..
와이프가 이곳 생활이 지옥이라고
끝난 지 2달이 지난 계약을 없었던 일로 하자니요?
제가 그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거절하니
미국 시민권자이며 미얀마 군부에 뒷배경이 많다고 떠벌리고 다니며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즐기는 (주)에스콰이어 현지공장의 이사 사모님(에스콰이어 과장이라고 함)이 개입했습니다.(이분이 개입한 동기는 젊은 부부 측에서는 이분이 자발적으로 개입했다고 하고 이분은 젊은 부부가 살려달라고 해서 개인간의 문제에 개입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개입했다고 서로 말이 틀립니다.)
이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은 여기저기 제 주변사람들을 불러다가 협박을 하고
심지어는 저와 친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중반의 교민 아저씨에게
술을 마신 후 그 젊은 부부가 써온 진정서에 서명할 것을 강제로 요구하였습니다.
그분이 그 요구를 거절하자 현지인 종업원이 보는 앞에서
그분의 뺨을 때리고 쓰고있던 안경을 빼앗아 발로 짓밟아 부수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여기저기 다니며 저의 험담을 하고 다니고
저를 사기꾼으로 몰아 부쳤습니다.
저는 이대로 당할 수 없어서 그 사모님이 제 지인과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에게 부탁해서 그 사모님이 저에 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을
현장에서 녹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대사관에서는 이 거래문제가 한인사회에서 이슈가 되자 저희 매매당사자를 불러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만남의 자리에서 제가 그 젊은 부부에게 "왜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느냐"
그리고 "외부인을 개입시켜서 내 주변사람들을 폭행하고 괴롭히느냐"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녹취 사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부부는 대사관 만남이 끝난 후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께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자기가 험담을 한 것이 녹음되었다는 사실(그 녹취에는 제 험담 이외에 많은 사람들의 험담을 한 것이 녹음되어 있습니다)을 안 그 사모님은
매우 흥분하여 1월 27일 저녁 10시경 남편인 에스콰이어 이사와 함께
저희 집 앞에서 대기하던 중,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를 붙잡아
녹취사실을 캐물었습니다.
저는 녹취해준 분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녹취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멱살을 틀어쥐고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나서 그 남편에게
"봐라 이 새*가 녹음 안 했다고 했잖아 내가 거짓말이라고 했지"하며
"너 이 개*끼 내가 죽여버리겠다"며 온갖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전 일단 집에 들어갔다 나오겠다며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제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울면서 저 여자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나가지 말 것을 간청했습니다.
집사람과 이야기하느라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사모님의 남편인 에스콰이어 이사가 우리 집 대문을 발로차고 흔들며 고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때 저희 집에는 제가 모시고 사는 76세의 장인어른이 계셨고
(약 2 달 전에 장모님께서 돌아가셔서 저희가 모시고 삽니다)
그리고 제 아이와 저희 여행사 여직원 그리고 그의 친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나가려고 하자 제 아내가 울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나로 인해 벌어진 일, 나가서 수습하려고 대문 자물쇠를 풀자마자
그 사모님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제 아내가 보는 앞에서
제 멱살을 움켜쥐고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안나가려고 버티자 제 아내가 보는 앞에서 제 따귀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지켜보는 데도 멱살을 틀어쥔 채로 1시간 30분 동안 저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함께 폭행을 가했습니다.
전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입니다.
제가 왜 이 사모님에게 아내가 보는 앞에서 개*끼 소리에 온갖 욕설을 들어야 하며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하며 따귀를 맞아야 하는지요?
왜 내가 이 미얀마에서 뒷배경이 있는 자에게 억눌리고 폭행을 당해야 하는지요?
정말 세상에 법이 있습니까? 정의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힘없는 자는 당해야만 합니까?
그 후 저는 이들의 집으로 끌려가서 그 젊은 부부가 보는 앞에서
다음날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온갖 협박을 받은 후 풀려났습니다.
협박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미얀마는 외국인이 단독으로 사업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외국인 사업체가 현지인 명의를 빌려서 합니다.
그런데 이 약점을 이용해서 인터넷 카페 명의를 빌려준 현지인을 매수해서
인터넷 카페의 명의인 인 현지인이 자기것 이라고 주장하게 해서 매매대금을
저에게 빼앗아 이 젊은 부부에게 주겠다 라는 협박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깡패입니다. 조직폭력배입니다.
정당한 거래를 무효로 하고 돈을 내놓으라고 폭행과 협박을 일삼는 자들이
조직폭력배, 깡패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과정을 지켜본 이 젊은 부부는 뒤늦게 교민들에게 2월 6일 이메일로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죄문을 발송하고 대사관에서 공식적으로 이 거래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제 주변사람들과 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께 이유 없이 구타당한 수많은 미얀마 한국 교민들처럼
그 여자가 미국시민권자라고....
미얀마에 뒷배경이 많다고.....
돈이 많은 부자라고....
자기 친척 중에 안기부 고위관리가 있다고...
그것들이 두려워서
아내 앞에서 온갖 욕설과 폭행을 당한 저는 가만히 당하고 있어야 합니까?
네티즌 여러분!
저는 이 사모님을 미얀마 법정에 세우려 합니다.
어제 무단 가택침입과 폭행죄로 미얀마 경찰서에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재 미얀마 한국 대사관과 한인회에 그동안 당한 몇몇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제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무모한 쥐가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한인들끼리 일로 고소를 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남자가 창피하게 여자에게 맞고 한풀이한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제 아내도 여자입니다.
어느 아내가 자기 보는 앞에서 남편이 온갖 모욕을 당하고 따귀를 맞는데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건 이후 제 아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고 평범한 일에도 자주 깜짝깜짝 놀래고
매일 밤 자다가 살며시 일어나서 숨죽여 울고있는 제 아내를 위해서라도
전 이 人面獸心 (주)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그는 사람이길 외면했습니다.
태사랑 회원 여러분
전 그 사모님 보다 힘이 없습니다.
미얀마에서 뒷 배경도 없습니다.
안기부 친척도 없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돈도 많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 13 살 아들놈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들에게 떳떳한 아버지요 남편입니다.
이것이 제 힘입니다.
제가 이 여자를 상대로 미얀마에서 싸우는 것은
"목숨의 위협"도 느낍니다.
하지만
제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조금이나마 명예를 회복하려고 몸부림치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무릎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정 범래 배상
제 홈페이지 http://www.myabiz.com 에 격려의글 부탁드립니다.
이메일 korea@myanmar.com.mm
내 눈을 뽑아버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뺨을 맞은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맞는 남편을 보는 그 아내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미얀마라는 나라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아내와 13세 아들을 하나 둔
37세 가장입니다.
3 년 전인 2002년 2월 모 재단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던 저는
간호사인 아내 "세실리아"와 아들놈"안토니오"를 남겨두고 내 꿈을 찾아 홀로 이역만리
낮선 미얀마 땅에 와서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남겨둔 아내가 직장을 다니며 아들놈 하나를 키우는데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내 꿈을 찾아 떠나온 어느 가장이 아내가 주는 돈 한푼 헛되이 쓸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조금 더 가지고 가라고 찔러주는 퇴직금을 뿌리치며
손에 양곤행 비행기 티켓과 2,000$만을 가지고 꼭 내 꿈을 이루리라 다짐을 하며
미얀마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여 먼저 그곳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서
양곤 외국어대학교(Y.U.F.L) 미얀마과에 입학하였습니다.
30원짜리 현지인들이 먹는 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20원짜리 로컬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가 그립고
두고 온 아들놈이 눈에 밟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왜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서 고생을 할까? 라는 생각도 문득문득 들었지만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던 아내의 얼굴이 그 생각들을 물리쳐 주었습니다.
그래 !
난 할 수 있어 !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현지인들과 묻어 지내며 익힌 미얀마어와 나름대로 현지적응을 빨리 한 탓으로
1년 조금 더 지난 후 저는 가족들을 미얀마로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번듯한 사업체도 하나 차렸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꿈도 못 꾸었던 미얀마에서의 인터넷 사용이
제가 미얀마 최초 인터넷 카페 "토니 넷 카페"를 오픈 하면서 현실로 보여주었습니다.
아내와 아들이 현지에 적응해가고 인터넷 카페도 웬만큼 수익이 나서
점차 생활도 안정되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42살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학도로서
양곤 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들놈 하나도 외국인 학교에 잘 적응해서 모든 것이 불편한 개발도상국임에도
저와 제 가족들은 잘 적응해 갔습니다.
이렇듯 생활이 안정되자 저는 3 여년을 준비해 왔던
그리고 제 꿈 이였던 여행사를 오픈했습니다.
여행사를 오픈한 그 날..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잘 참아 주었던 제 아내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런 배경도 없고 아는 사람 없는 이 낮선 땅에서
내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는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운영했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신명이 나질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제가 여행사일에 전념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여행사가 빨리 안정을 찾아가고
또 제 아내가 학교에 다니느라 제 손으로 만들어 놓은
미얀마 최초의 인터넷 카페의 수익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민을 와서 사업체를 꾸리고
현지인을 고용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문화와 관습이 큰 장애가 되지요
그러나 저는 이미 현지화 되어서 큰애로는 없었습니다.
단지, 저와 제 아내가 여행사 운영하랴.. 학교 다니랴... 바쁘다보니
인터넷 카페를 장시간 비우게 되어서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주인이 없는 가게에서 많은 수익을 거두기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제가 운영하는 미얀마 커뮤니티에 인터넷 카페를
매물로 내 놓았습니다.
정말 아쉽더군요,,,
제가 미얀마에서 만들어 놓은 첫 작품 이였는데..
그래도 누군가가 인수해서 잘 운영해 저처럼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공개매물로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표명해 왔지만 직접 미얀마에 와서
시장조사를 한 후 저희 인터넷 카페를 보고 인수의사를 표시한
J모씨께 인터넷 카페를 넘겼습니다.
그 후 J모씨 부부는 2달 여를 열심히 잘 운영했습니다.
제가 마침 미얀마 여행시즌이라서 바빠서 많이 도와주지는 못했어도
서로 식사 초대도 하고 가끔 전화도 하고....
젊은 부부가 낮선 이국 땅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아
제 마음도 흡족했고요
그러나
계약이 끝나고 잔금까지 다 치른 2달이 지난 후 갑자기 이분들이 이상해 졌습니다.
원래 교민사회가 작다보니 여기저기서 이말 저 말이 오고가고
남에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거래에 대해서 입방아를 찧기 시작하면서
이 젊은 부부를 괴롭히고..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계약을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하더이다.
무슨 계약이 애들 장난입니까?
자기 책임 하에 계약을 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힘들다고..
와이프가 이곳 생활이 지옥이라고
끝난 지 2달이 지난 계약을 없었던 일로 하자니요?
제가 그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거절하니
미국 시민권자이며 미얀마 군부에 뒷배경이 많다고 떠벌리고 다니며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즐기는 (주)에스콰이어 현지공장의 이사 사모님(에스콰이어 과장이라고 함)이 개입했습니다.(이분이 개입한 동기는 젊은 부부 측에서는 이분이 자발적으로 개입했다고 하고 이분은 젊은 부부가 살려달라고 해서 개인간의 문제에 개입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개입했다고 서로 말이 틀립니다.)
이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은 여기저기 제 주변사람들을 불러다가 협박을 하고
심지어는 저와 친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중반의 교민 아저씨에게
술을 마신 후 그 젊은 부부가 써온 진정서에 서명할 것을 강제로 요구하였습니다.
그분이 그 요구를 거절하자 현지인 종업원이 보는 앞에서
그분의 뺨을 때리고 쓰고있던 안경을 빼앗아 발로 짓밟아 부수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여기저기 다니며 저의 험담을 하고 다니고
저를 사기꾼으로 몰아 부쳤습니다.
저는 이대로 당할 수 없어서 그 사모님이 제 지인과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에게 부탁해서 그 사모님이 저에 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을
현장에서 녹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대사관에서는 이 거래문제가 한인사회에서 이슈가 되자 저희 매매당사자를 불러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만남의 자리에서 제가 그 젊은 부부에게 "왜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느냐"
그리고 "외부인을 개입시켜서 내 주변사람들을 폭행하고 괴롭히느냐"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녹취 사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부부는 대사관 만남이 끝난 후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께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자기가 험담을 한 것이 녹음되었다는 사실(그 녹취에는 제 험담 이외에 많은 사람들의 험담을 한 것이 녹음되어 있습니다)을 안 그 사모님은
매우 흥분하여 1월 27일 저녁 10시경 남편인 에스콰이어 이사와 함께
저희 집 앞에서 대기하던 중,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를 붙잡아
녹취사실을 캐물었습니다.
저는 녹취해준 분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녹취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멱살을 틀어쥐고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나서 그 남편에게
"봐라 이 새*가 녹음 안 했다고 했잖아 내가 거짓말이라고 했지"하며
"너 이 개*끼 내가 죽여버리겠다"며 온갖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전 일단 집에 들어갔다 나오겠다며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제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울면서 저 여자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나가지 말 것을 간청했습니다.
집사람과 이야기하느라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사모님의 남편인 에스콰이어 이사가 우리 집 대문을 발로차고 흔들며 고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때 저희 집에는 제가 모시고 사는 76세의 장인어른이 계셨고
(약 2 달 전에 장모님께서 돌아가셔서 저희가 모시고 삽니다)
그리고 제 아이와 저희 여행사 여직원 그리고 그의 친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나가려고 하자 제 아내가 울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나로 인해 벌어진 일, 나가서 수습하려고 대문 자물쇠를 풀자마자
그 사모님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제 아내가 보는 앞에서
제 멱살을 움켜쥐고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안나가려고 버티자 제 아내가 보는 앞에서 제 따귀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지켜보는 데도 멱살을 틀어쥔 채로 1시간 30분 동안 저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함께 폭행을 가했습니다.
전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입니다.
제가 왜 이 사모님에게 아내가 보는 앞에서 개*끼 소리에 온갖 욕설을 들어야 하며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하며 따귀를 맞아야 하는지요?
왜 내가 이 미얀마에서 뒷배경이 있는 자에게 억눌리고 폭행을 당해야 하는지요?
정말 세상에 법이 있습니까? 정의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힘없는 자는 당해야만 합니까?
그 후 저는 이들의 집으로 끌려가서 그 젊은 부부가 보는 앞에서
다음날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온갖 협박을 받은 후 풀려났습니다.
협박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미얀마는 외국인이 단독으로 사업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외국인 사업체가 현지인 명의를 빌려서 합니다.
그런데 이 약점을 이용해서 인터넷 카페 명의를 빌려준 현지인을 매수해서
인터넷 카페의 명의인 인 현지인이 자기것 이라고 주장하게 해서 매매대금을
저에게 빼앗아 이 젊은 부부에게 주겠다 라는 협박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깡패입니다. 조직폭력배입니다.
정당한 거래를 무효로 하고 돈을 내놓으라고 폭행과 협박을 일삼는 자들이
조직폭력배, 깡패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과정을 지켜본 이 젊은 부부는 뒤늦게 교민들에게 2월 6일 이메일로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죄문을 발송하고 대사관에서 공식적으로 이 거래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제 주변사람들과 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께 이유 없이 구타당한 수많은 미얀마 한국 교민들처럼
그 여자가 미국시민권자라고....
미얀마에 뒷배경이 많다고.....
돈이 많은 부자라고....
자기 친척 중에 안기부 고위관리가 있다고...
그것들이 두려워서
아내 앞에서 온갖 욕설과 폭행을 당한 저는 가만히 당하고 있어야 합니까?
네티즌 여러분!
저는 이 사모님을 미얀마 법정에 세우려 합니다.
어제 무단 가택침입과 폭행죄로 미얀마 경찰서에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재 미얀마 한국 대사관과 한인회에 그동안 당한 몇몇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제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무모한 쥐가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한인들끼리 일로 고소를 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남자가 창피하게 여자에게 맞고 한풀이한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제 아내도 여자입니다.
어느 아내가 자기 보는 앞에서 남편이 온갖 모욕을 당하고 따귀를 맞는데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건 이후 제 아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고 평범한 일에도 자주 깜짝깜짝 놀래고
매일 밤 자다가 살며시 일어나서 숨죽여 울고있는 제 아내를 위해서라도
전 이 人面獸心 (주) 에스콰이어 이사 사모님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그는 사람이길 외면했습니다.
태사랑 회원 여러분
전 그 사모님 보다 힘이 없습니다.
미얀마에서 뒷 배경도 없습니다.
안기부 친척도 없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돈도 많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 13 살 아들놈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들에게 떳떳한 아버지요 남편입니다.
이것이 제 힘입니다.
제가 이 여자를 상대로 미얀마에서 싸우는 것은
"목숨의 위협"도 느낍니다.
하지만
제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조금이나마 명예를 회복하려고 몸부림치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무릎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정 범래 배상
제 홈페이지 http://www.myabiz.com 에 격려의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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